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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비다족(Dravdian), 인도 반도의 원주민. - 현재 주거지 :인도(印度)의 남부와 스리랑카 및 남동아시아의 여러섬,
(네이버백과사전)
드라비다라는 명칭은 원래 언어집단에 대한 용어였으나, 후에 민족이나 인종에까지도 사용하게 되었다. 이 종족은 일찍이 고다바리강 이남의 남인도를 무대로 높은 수준의 문화를 발전시킴으로써 북인도의 아리아족(族)과 더불어 인도 문화 형성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인종적으로는 장두형(長頭型)의 지중해 인종을 근간으로 하며, 문화적으로는 농경생활을 기반으로 모계적 성격이 강한 사회조직과 여신(女神) ·소[牛]의 숭배, 거석문화(巨石文化) 등의 특징을 지니고 있어서, 인도유럽계의 언어, 북방인종형, 반농반목생활(半農半牧生活), 부권적인 사회조직, 자연숭배 등의 특징을 지닌 아리아족과는 모든 면에서 대조적이었다. 드라비다어가 현재로 보아서 고립되어 있는 것과 같이 드라비다족의 문화사적 위치도 반드시 명확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북서 인도의 모헨조다로를 중심으로 BC 3000∼BC 1500년에 번영한 인더스 도시문명은 고대의 지중해문화와 드라비다문화와의 양쪽에 공통적인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 더욱이 파키스탄의 발루치스탄에 고립되어 있는 브라후이어(語)가 드라비다어계(語系)에 속하는 것으로도, 일찍이 북인도 일대에 전개되고 있던 드라비다문화가 아리아족의 침입으로 남인도에 밀리어 압박되었다는 추정이 유력시되었다. 그러나 그 후, 돌널을 수반한 거석분묘(巨石墳墓)가 특징인 성기철기문화(盛期鐵器文化)가 BC 3세기 이후 남인도에서 데칸고원으로 급속하게 퍼져 갔음이 명백해졌다. 이 문화와 드라비다어의 분포가 일치했던 것으로 보아 그 문화의 담당자가 드라비다족이며, 아리아족이 북서인도에 들어온 뒤에 드라비다족은 해로(海路)로 직접 남인도에 침입함으로써 드라비다문화가 확대되었다는 설도 나오고 있다. 이 설에 따르면, 인도에서 전개된 고대 지중해 문명과 유사한 문화는 인더스문화와 드라비다문화의 2단계로 구분된다. 이 두 문화에 대한 고고학적(考古學的) 연구성과에 의하여, 드라비다족은 미개한 민족이며, 인도에서의 높은 수준의 문화는 오로지 아리아족이 그 주체였다는 과거의 설은 완전히 타당성을 잃게 되었으며 문화민족으로서의 드라비다족의 지위가 확립되게 되었다. 그 후의 문헌학적 연구나 역사 민족학적 연구에서, 힌두교나 카스트제도를 비롯하여 현재의 인도문화 형성에 이바지한 드라비다족의 역할은 상상외로 컸음이 밝혀지고 있다. 그러나 외부문화와의 관계, 인도에의 이주 시기와 경로 등에 대하여는 확실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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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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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재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08.08.17 고대 조선인의 후예는 '드라비다 족'인 되는 것인가? 아니면 '아리안 족'이 되는 것인가? 아니면, '모두 다' 고대 조선의 후예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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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김재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08.08.17 석가모니가 나올때가 바로 아리안족이 드라비다인을 인도의 남부로 몰아내고, 카스트제도를 만들어 사회를 구분하여 사회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라고 하네요. 한반도내 북한과 남한의 갈등, 북방계인종과 남방계인종의 사회갈등과도 유사한 내용입니다. 또 한명의 성인이 '한반도'에서 탄생하는 것은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