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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동방견문록인가?-1 을 정리하며 의문점은?

작성자지명선|작성시간08.09.11|조회수350 목록 댓글 0

한헌석선생님글을 정리하다고 궁금한 점이 아래와 같이 나왔네요...

 

 

<동방견문록의 여행로- 중앙아시아~인도>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의 중국서남부여행로가 밝혀졌다(2008.4.19 대륙조선사연구회 제 4회 세미나에서 발표). 카라샤르(얜치)에서 투르크메니스탄까지 갔다가 아프간 인도까지 갔다오는 길이다. 

  

-의문: 마르코폴로는 현중국땅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 아닌가?  

  

  

<왜곡된 역사, 대도는 카라샤르, 앤치에 있다> 

그런데 현 역사는 카라샤르(얜치)에 있는 대도를 만리도 넘는 현북경으로 옮겨 조작해 놓고, 마르코 폴로가 카라샤르에서 투르크메니스탄까지 여행한 중국서남부여행로를 동방견문록을 조작하여 북경에서 미얀마까지로 조작해 놓은 것이다. 

  

-의문: 동방견문록이 중국에서 있었다고 한 것은 원을 중국으로 옮기기 위한 수단인가?  카라샤르가 대도인 이유는?

  

<동방은 카타이,고려,중앙아시아,중원이다> 

마르코 폴로는 동방견문록에서 동방을 카타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카타이라는 이름이 500번도 더 등장한다. 조작되지 않은 실제 카타이는 어디인가? 파미르 주변의 동서 중앙아시아를 중심으로 하여 그 동서남북인 것이다. 카타이가 카라이고 구례이고 구려이고 고려다. 이 중앙아시아가 이 고려의 중원이고 중주고 신주고 중국이다. 

  

- 의문: 카타이가 왜 고려인가? 

  

<신강성 쿠차는 평양,서경> <카라샤르,앤치,대도는 송도,개경이다> 

이제 동방견문록에 의해 밝혀진 중앙아시아 즉 중원의 황제의 수도의 변화를 통해서 그 중원의 역사 구조를 살펴보자. 동방견문록에서 마르코폴로는 신강성의 쿠차를 지나 가면서 그곳을 피양(PIYANG)이라고 말하고, 집사에서는 그 곳을 서경이라고 한다. 집사 몽골비사에서는 대도(카라샤르,얜치)를 송도(JUNGDU-J는 S음을 표기하는 문자고, U는 O음을 표기하는 문자다.)라고 부른다. 

  

-의문: 집사는 무엇인가?  대도가 송도이면 원나라의 수도가 송의 수도란 말인가? 그럼 송을 멸망시키고 그 수도를 원의 수도를 삼았나? 그 원의 수도가 고려의 수도인가? 

  

<바그라시,박달시,카라샤르, 대도는 고려성이다> 

대당서역기는 바그라시라고 부른다. 바로 박달시다. 카랴샤르는 카라이샤르(카타이성, 카라이성) 즉 고려성이라는 말이다. 얜치는 殷丘(은이 망할 때의 수도)의 발음과 같다. 송도라는 것은 송의 수도라는 말이다. 상이 망하고 미자가 그 조금 아래 위리(<부리)에 봉함 받아서 송국을 세워서 상나라 제사를 유지하였기 때문에 송도이다. 

  

-의문: 대당서역기는 누가 지은 것인가?  왜 바그라시가 박달시인가? 옌치,송도는 은,상의 수도이자 송의 수도라? 

  

<주나라 무왕은 앤치(국내성,송도)에 수도를 정했다가  쿠차(평양,서경)로 천도한다><돈황은 낙양이었다> 

 주무왕은 殷丘의 부리성(불이성, 국내성)으로 주의 수도를 정했다가 쿠차의 서경 평양으로 나중에 천도한다. 그리고 전국시대로 접어들 때 돈황의 낙양세력에게 의탁하여, 동주시대라는 말을 남긴다. 

  

-의문: 주나라는 신강성에 있었나? 그당시에는 사막이 아니라 옥토지역이었나?

  

<쿠차는 평양, 서경, 돈황은 낙양, 동경이다> 

파미르 이서 지방의 진나라가 잠시 중원을 장악하지만, 쿠차 지방 출신의 유방이 다시 쿠차 평양에 도읍을 정하여 한나라(구려)를 건국하여 국내성인 불이성과 평양성의 양경제도를 유지하다가 당항(돈황, 신라-감숙성, 영하성, 섬서성, 청해성 지역)세력에게 멸망한 후 당신라의 서경(평양, 장안, 쿠차)과 동경(돈황, 낙양)의 양경을 유지하다가 

  

-의문 : 낙양은 송도,개경,옌치,과 무관한가? 당항세력이 무엇인가? 당항세력이 고구려로 보이는데, 왜 하필이면 신라인가?

  

  

<고려의 개경은 앤치,불이성,국내성,송도,원의 대도, 남경은 호탄,강화도> 

조씨 송고려가 이 불이성에 수도를 정하여 宋都(開京, 開都, 원의 대도, 松都-이 이름은 반도사에서 부르는 이름)라고 부르고, 서경(평양, 쿠차), 동경(돈황, 낙양), 남경(호탄, 강화도-이 이름은 반도사에서 부르는 이름)의 4경체제를 유지하다가 원에게 정복당하자 지세의 천험을 이용해 남경(호탄, 반도사에는 강화도)에 피난해 있다가, 

  

-의문:고려의 남경이 호탄인 이유는? 반도사관의 남경은 서울로 표기되어 있다. 호탄의 위치가 어디인가?

  

<조선의 한양은 19세기 후반에 투르판에서 서안으로 옮겼다>   

파미르 이서의 케시(함흥)에 근거지를 둔 이성계 세력(명)에게 망하였고, 이성계 세력은 이 개경(송도)에 도읍했다가, 한양(트루판, 북경, 연경-연나라의 수도, 역사적으로 유명한 세 연왕이 있는데, 주무왕이 소공을 연왕으로 봉하고, 쿠빌라이의 장남 친킴을 연왕으로 봉하고[그래서 동방견문록에서는 트루판을 친킨탈라스라고 부른다], 태종이 즉위하기 전까지 연왕으로 봉해진다.)으로 천도했다가 19세기 중반에 서안으로 천도한다. 

 

-의문: 케시가 함흥이라면 파미르지역이 함경도지역인가? 그러면 중국전체가 함경도란 말인가?  트루판이 왜 연나라의 수도인가? 그리고 왜 한양인가?  태종이 연왕인 것은 한양이 트루판에 있어서 그런가? 19세기에 서안으로 천도했다는 증거가 무엇인가? 그렇다면 19세기까지 트루판을 포함한 신강성이 수풀이 우거진 좋은 기후로 존재해 있었는가? 기후변화로 수도를 서안으로 옮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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