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의 후신 카자르족 - 미스터리의 왕국
- 글쓴이: PKwon
- 조회수 : 352
- 05.05.12 12:50
그래서, 카자르족이 언제 시작했는지, 언제 망했는지조차 확실하게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앙아시아에 있던 카자르 제국이 고려 - 구리 - 쿨리 - 쿨쟈에서 나온 고구려의 자손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이들이 유태교로 개종한 것은 '불란 왕'때라고 하지만, 불란 왕이 언제 살았는지조차 알 수가 없습니다. 740년경이라고 추정만 할 뿐, 830년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확실한 것은, 9세기 말경에는 이들 카자르족들이 완전히 유태교로 개종해 있었다는 것과, 이들이 결국 지금 '유태인'이라 부르는 인간들의 조상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쉬케나짐과 세파르딤 이야기는 다시 하지 않겠습니다. 세파르딤은 중동에나 가야 찾아볼 수 있음. 아쉬케나짐이 세파르딤을 다루는 것은 백인이 검둥이를 다루는 것과 비슷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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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불란' 왕과, 발해 제 11대 왕이라는 선왕(宣王) 대인수 (시호가 성종(聖宗) 입니다. 성(聖)자는 종교적으로 큰 업적을 남겼을 때에만 붙이는 칭호입니다.) 가, 동일인물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대인수는 그 혈통을 알 수 없으며 (대조영의 동생인 대야발의 자손이라고만 알려졌을 뿐 아버지 이름조차 모름), 별로 한 일도 없는데 위대한 중흥군주라는 호칭을 들었었습니다.
카자르라는 이름의 뜻은 '카자'의 자손이라는 뜻인데, 이 카자라는 말의 뜻도 확실치가 않습니다. (나중에 야벳의 자손인 도갈마에게 갖다 붙이긴 했지만)
카자르족은 원래 텡그리(하늘, 단군)을 숭배했으나, 종교적인 갈등이 심하여 왕들이 다른 종교들을 찾기 시작했고 결국 유태교가 선택되었다고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카자르 제국이 나라 꼴을 갖춘 것은 680년 경으로 알려져 있으며, 한때는 비잔틴 제국의 내정에도 매우 깊이 간여하는 등 힘을 날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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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르 제국과 발해가 같은 나라인지 아닌지는 아직 말하기에는 이릅니다. 하지만, 반도사관으로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지만 이름으로 확실히 알 수가 있지요.
단군 아술이 앗시리아 제국의 조상신인 '앗수르'라는 사실을 이미 전에 다른 곳에 쓴 바가 있습니다만,
고구려의 중심지가 만주가 아닌 중앙아시아로 놓고 해석한다면, 충분히 이해가 되고도 남음이 있는 대목입니다.
이스라엘이 왜 중동에서 유일하게 터키하고만 친한가 하는 것도 그렇게 생각하면 이해가 되는 일입니다.
대야발이 돌궐(터키)에 다녀왔다는 기록이 있지요. 원래 고구려와 돌궐은 형제국, 그러니 카자르의 자손인 이스라엘과 돌궐의 자손인 터키도 생태적으로 적이 되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실제로 터키 지배시 팔레스타인의 유태인들은 그리 박해받지는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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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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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호근 작성시간 09.01.14 카자르인들의 조상이 고구려인라면 충격적인 역사적 사실이 되겠군요. 우리가 배워왔던 전투적이고 진취적인 고구려인이 아니라 호전적이고 잔인한 전쟁을 일삼는 고구려 후손들이 결국 대조선을 멸망시키는 사악한 무리가 되는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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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황덕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09.01.15 카자르는 고구려귀족의 후손보단 귀족밑에 있었던 수하들의 후손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들은 초기에 고구려건국에 도움을 주었지만 나중엔 자기가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서 수당을 끌어드려 고구려를 멸망시키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대조영이 발해를 세우는 바람에 그런 계획은 실패했고 발해가 거란에게 멸망되기 전까지 다시 수하로 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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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황덕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09.01.15 비밀세력의 음모를 서양사에 한정되어 서술하고 있는데 대륙조선대로라면 동서양 구분은 의미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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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필유니버최남석 작성시간 09.01.16 앗수루는 단제 아술과는 관계 없습니다 제석천의 후예인 단제들은 귀아수라들의 공격을 받았는데 귀아수라들이 사는 방향을 귀방이라 호칭할 정도로 단제들과 귀 아수라들은 자주 싸웠습니다 앗시리아는 귀아수라의 후손으로 아프간 의 암혈에 살던 人鬼들 입니다 다시 고찰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