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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의조선책략(私擬朝鮮策略)...

작성자정병진|작성시간09.02.01|조회수726 목록 댓글 1
선생님 여러분~안녕하십니까? 새해에도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평소 대륙조선사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갖고 당 연구회에 올려진 글들을 나름 정독하고 확실한 믿음을 갖고 있는 한 사람입니다.
<조선책략>은 학교에서 배운 입시용 정도의 내용만 알고 있었지만 우연한 기회에 다시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 글을 쓴 청국의 외교관으로 알려진 황준헌은 대륙조선사의 연구에 있어서 상당히 중요한 시기에 살았던 인물로 생각됩니다.
사실, 원문이라고는 하나 필사본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 글 또한 일제의 교열을 거쳐 반도사관에 짜맞춰진 것이라 판단되지만, 한문실력이 일천한 제가 원문과 번역을 대조하며 봐도, 아마추어인 제 눈에도 무심코 지나칠 수 없는 내용들이 나오기에 여러 선생님들의 고견을 듣고자
<조선책략>의 원문과 번역을 함께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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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백과사전 : 《조선책략》은 주일청국참사관(駐日淸國參事官)으로 있던 청국인 황쭌센(黃遵憲, 황준헌)이 1880년경에 저술한 외교문제를
다룬 외교방략서이다. 원명은《사의조선책략》(私擬朝鮮策略)이다. 주된 내용은 러시아의 남하정책(南下政策)에 대비하기
위하여 조선과 일본, 청국이 장차 펼쳐야 할 외교정책을 논술하였다. 조,일,청 3국은 서양의 기술과 제도를 배워야 한다는 것,
러시아의 남진 세력을 막기 위해서는 동양3국이 수호(修好)해야 하며, 미국과 연합하는 것(親中國 結日本 聯美邦) 등의 내용
으로 되어 있다.

네이버백과사전 : 청국인 황준헌(黃遵憲)이 러시아의 남하정책에 대비하기 위해 조선, 일본, 청국 등 동양 3국의 외교정책에 대해 서술한 책.
필사본1책. 1876년 한일수호조규를 맺고 일본에 개항한 조선은 그해 5월 제1차 수신사로 김기수를 파견한데, 이어 1880년
3월 23일에는 제2차 수신사로 예조참의 김홍집(金弘集)을 일본에 파견하였다. 김홍집은 일본에 약 1개월간 머무는 동안
국제정세 탐문 및 국제법과 관련하여 활동을 전개했는데, 그는 특히 청국 공관을 왕래하면서 주일 청국공사 하여장(何如璋),
참찬관 황준헌(黃遵憲) 등과 외교정책에 관해 의견을 교환하고, 귀국하는 길에 황준헌이 지은 《사의조선책략 私擬朝鮮策
略》을 얻어와 고종에게 바쳤다.
이 책은 러시아를 방어하기 위한 조선의 외교정책이 핵심 내용이다. 즉 황준헌은 러시아가 이리처럼 탐욕하여 유럽에서
아시아까지 정벌에 힘써온 지 300여년 만에 드디어 조선까지 탐낸다고 하면서, 조선이 이를 방어하기 위한 책략은 친중국
(親中國), 결일본(結日本), 연미국(聯美國)하여 자체의 자강을 도모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중략-
《조선책략》은 황준헌이 쓴 작은 책자에 불과하지만 그것이 조선에 유입된 후 조선 조야의 반향은 상당히 컸다.
정부에서는 찬반 논의가 격렬하게 전개되었고, 재야에서는 보수 유생들을 중심으로 거국적인 위정척사운동이 일어났다.
1880년 11월 7일 유원식(劉元植)의 척사상소를 비롯하여 1881년 2월에는 이만손(李晩孫)을 소두(疏頭)로 한 영남만인소
(嶺南萬人疏)는 전국의 척사 풍조를 자극하여 신사(辛巳) 척사상소운동을 선도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당시
고종을 비롯한 집권층에게는 큰 영향을 주어 1880년대 이후 정부가 주도적으로 개방정책의 추진 및 서구문물을 수용하도록
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네이버백과사전 : 황준헌 [黃遵憲, 1848~1905.3.28]
중국 청말의 외교관 겸 작가. 당시 러시아의 남하정책에 대한 대책으로는 한,중,일 3국이 협력하여 미국과 연합세력을
구축하는 것이 최선책이라고 주장했다. 문학인으로서 그는 개화파 문학을 이끌었는데, 문학의 진화와 의식의 근대화 등에
바탕한 자유신시를 주창했다.
호는 인경려주인(人境廬主人), 자는 공도(公度)이고, 광둥[廣東] 출신이다. 초대 주일공사(駐日公使) 하여장(何如璋)을
따라 일본에 건너가 외교관으로 활동하였는데, 당시 러시아의 남하정책에 대한 대책으로는 한,중,일 3국이 협력하여 미국과
연합세력을 구축하는 것이 최선책이라고 주장하였다. 1880년(고종 17) 조선의 수신사 김홍집(金弘集)이 일본에 갔을 때
여러 차례 그와 만나 국제관계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였으며, 이 같은 그의 주장을 피력한《사의조선책략(私擬朝鮮策略)》
이라는 책자를 김홍집에게 기증하였다.
김홍집이 일본에서 돌아와 왕에게 복명하고 그 책자를 올렸는데, 조정에서는 이에 대한 찬부 양론이 벌어져 김홍집이
인책당하였다.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朝美修好通商條約)의 조약문을 초안하여 보내와 조선 정부의 조약체결에 참고가
되도록 하였다.
문학인으로서 그는 개화파 문학을 이끌었는데, 문학의 진화와 의식의 근대화 등에 바탕한 자유신시(自由新詩)를 주창
하였고 '신파시(新派詩)'의 시도로 시 속에 외래어, 새로운 단어, 방언과 속어 등을 거침없이 사용하였다.
시집 《인경려시초(人境廬詩草)》11권에 1천여 편의 시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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修信使日記 : 朝鮮策略 廣東黃遵憲私擬
수신사일기 : 조선책략 광동 황준헌의 개인적으로 헤아린 글


地球之上, 有莫大之國焉, 曰俄羅斯, 其幅員之廣, 跨有三洲, 陸軍精兵百餘萬, 海軍巨艦二百餘艘, 顧以立國在北, 天寒地瘠,
故狡然思啓其封疆, 以利社稷,
― 지구의 위에는 막대한 나라가 있는데, 아라사(러시아)라고 한다. 그 너비가 광대해서 3대륙에 걸쳐 있다. 육군 정예병이 백여만이고,
해군 거함이 이백여척이다. 다만, 나라를 북쪽에 세워서 하늘은 차고 땅은 척박하였다. 고로 빠르게 그 영토를 넓혀서 사직을 이롭게
하려는 생각을 가졌다.

自先世彼得王以來, 新拓疆土, 旣踰十倍, 至於今王, 更有括四海, 幷合八荒之心, 其在中亞細亞回鶻諸部, 蠶食殆盡,
― 선세로부터 피득왕(표트르대제)이래 새로 강토를 개척하여 이미 (이전보다) 10배가 넘었다. 지금의 왕에 이르러서는 다시 4해를 관할하고
팔방을 병합하려는 마음으로 중아세아(중아시아)에 있는 회골(위구르)의 모든 부족을 잠식하여 거의 다하였다.

天下皆知其志之不少, 往往合從以相距, 土耳其一國, 俄久欲並之, 以英法合力維持, 俄卒不得逞其志, 方泰西諸大若德, 若奧, 若英, 若意,若法,
皆耽耽虎視, 斷不假尺寸之土以與人,
― 천하가 모두 그 뜻이 작지 아니함을 알고 왕왕 합종하여서 서로 항거하였다. 토이기(투르크) 한 나라를 러시아가 오랫동안 병합하고자
하였으나 영국과 법국(프랑스)이 합력하여 유지해 나감으로 러시아가 끝까지 굳세게 그 뜻을 얻을 수가 없었다. 바야흐로 서양의 여러
대국들, 독일,오스트리아,영국,이탈리아,프랑스 같은 나라들이 모두 호시탐탐 결단코 한 척, 한 촌의 땅이라도 남에게 주려고 하지 않았다.

俄旣不能西略, 乃幡然變計, 欲肆其東封, 十餘年來, 得樺太洲於日本, 得黑龍江之東於中國, 又屯戍圖們江口, 據高屋建瓴之勢, 其經之營之,
不遺餘力者, 欲得志於亞細亞耳,
― 러시아가 서양 공략을 이미 할 수 없게 되자, 이에 번연히 계획을 바꾸어 그 동쪽의 땅을 마음대로 하고자 하였다. 십여년 이래로 화태주
(사할린)를 일본에게서 얻고, 중국에게서 흑룡강 동쪽을 얻었으며, 또한 도문강 입구에 주둔하여 지켜서 높은 집에서 물병을 거꾸로 세워
놓은 듯한 형세이고, 그 경영하여 여력을 남기지 않는 것은 아시아에서 뜻을 얻고자 함이다.

朝鮮一土, 實居亞細亞要衝, 爲形勝之所必爭, 朝鮮危則中東之勢日亟, 俄欲略地, 必自朝鮮始矣,
― 조선의 땅은 실로 아세아의 요충에 자리잡고 있어, 형세가 반드시 싸우는 바가 되니 조선이 위태로우면 즉 중동의 형세가 날로 급해질
것이다. 러시아가 땅을 공략하고자 하면 반드시 조선으로부터가 시작일 것이다.

嗟夫, 俄爲遞狼秦, 力征經營, 三百餘年, 其始在歐羅巴, 繼在中亞細亞, 至於今日, 更在東亞細亞, 而朝鮮適承其弊, 然則策朝鮮今日之急務,
莫急於防俄, 防俄之策, 如之何, 曰親中國, 結日本, 聯美國, 以圖自强而己,
― 아! 러시아가 이리 같은 진나라처럼 정벌에 힘을 쓴 지, 3백여년, 그 처음이 구라파에 있었고, 다음에는 중아시아였고, 오늘에 이르러서는
다시 동아시아에 있어서 조선이 그 피해를 입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즉, 오늘날 조선의 책략은 러시아를 막는 일보다 더 급한 것이 없을
것이다. 러시아를 막는 책략은 무엇과 같은가? 중국과 친하고 일본과 맺고, 미국과 연결함으로써 자강을 도모할 따름이다.

何謂親中國, 東西北背俄, 連界者惟中國, 中國之地大物博, 據亞洲形勝, 故天下以爲能制俄者莫中國若, 而中國所愛之國, 又莫朝鮮若, 爲我藩屬,
己歷千年, 中國緩之以德, 懷之以恩, 未嘗有貪其土地人民之心, 此天下之所共信者也, 况我大淸, 龍興東土, 先定朝鮮而後伐明, 二百餘年,
字小以德, 事大以禮,
― 중국과 친한다는 것은 무엇을 일컬음인가? 동,서,북이 러시아를 등지고 경계를 잇고 있는 것은 오직 중국뿐이다. 중국은 땅이 크고 물자가
풍부하며, 형세가 아시아주에 거하고 있다. 그런 까닭으로 천하는 러시아를 제어할 나라로는 중국만한 나라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중국이 사랑하는 나라로는 또한 조선만한 나라가 없다. 조선이 우리 번속이 된지 이미 천년이 지났으되 중국은 덕으로써 편안히 지내게
하고 은혜로써 품어 줄 뿐, 한번도 그 토지와 인민을 탐내는 마음을 가진 적이 없었음은 천하가 함께 믿는 바이다. 하물며 우리의 대청은
동쪽 땅에서 제국을 일으켜, 먼저 조선을 평정하고 후에 명을 정벌해서 2백여년 동안 덕으로 소국을 사랑하고 조선은 예로써 대국을
섬겨왔다.

當康熙, 乾隆朝, 無事不以上聞, 己無異內地郡縣, 此非特文字同, 政敎同, 情誼親睦己也, 抑亦形勢昆連, 拱衛神京, 有如左臂,
休戚相關而患難相共, 其與越南之疏遠, 緬甸之偏僻, 相去固萬萬也,
― 강희, 건륭조를 당하여서는 무슨 일이든지 상문하지 않은 것이 없이 내지의 군현과 다름이 없었다. 이는 문자가 같고, 정교가 같고
정의가 친목할 뿐만 아니라, 또한 형세가 연접하여 신경(북경)을 껴안아 호위함이 마치 왼발과 같다. 서로 휴척을 같이하고, 서로 환란을
함께 하였으나, 저 월남(베트남)의 소원과 면전(버마)의 편벽과는 본디 서로 떨어짐이 오래됨이다.

向者朝鮮有事, 中國, 必糜天下之餉, 竭天下之力以爭之, 秦西通例, 兩國爭戰, 局外之國, 中立其間, 不得偏助, 惟屬國則不在此例,
今日朝鮮之事中國, 當益加於舊, 務使天下之人曉然於朝鮮, 與我, 誼同一家, 大義己明, 聲援自壯, 俄人, 知其勢之不孤, 而稍存顧忌,
日人量其力之不足敵, 而可與連和, 期外釁潛消, 而國本益固矣, 故曰親中國,
― 지난번 조선에서 일이 있을 때에는 중국은 어김없이 천하의 양식을 소비하고 천하의 힘을 다하여서 싸웠다. 서양의 통례에 따르면 양국이
전쟁할 때면 국외의 나라는 그 사이에서 중립을 지키고 한편을 도와주지 않는다고 한다. 오직 속국은 곧 이 예가 아니다. 오늘날 조선은
중국 섬기기를 마땅히 예전보다 더욱 힘써서 천하의 사람들로 하여금 조선과 우리는 한 집안 같음을 알도록 해야 할 것이다.
대의가 밝혀지고 성원이 스스로 성해지면 러시아 사람은 그 형세가 외롭지 않음을 알고, 조금은 돌아보고 꺼림이 있을 것이다. 일본 사람은
그 힘이 대적할 수 없음을 헤아리고 가히 더불어 연결하여 화친하고자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기필코 외국의 혼란은 슬며시 없어지고
나라의 근본은 더욱 견고해질 것이다. 이런 까닭으로 중국과 친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何謂結日本, 自自自中國以外, □密邇者, 日本而己, 在昔先王, 遣使通聘, 載在盟府, 世世職守, 至於近日, 則有北豺虎同据肩背, 日本苟或失地,
八道不能自保, 朝鮮有一變故, 九州, 四國, 亦恐非日本能有, 故日本與朝鮮, 實有輔車相依之勢,
― 일본과 맺어야 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함인가? 중국 이외에 가장 가까운 나라는 일본이다. 옛날 선왕이 사신을 보내어 통교한 나라는 맹부에
실려 있고, 그들은 대대로 맡은 일에 충실하였다. 근일에 이르러서는 즉 북으로 이리와 호랑이가 어깨와 등을 걸쳐 타고 있어 만일 일본이
혹 땅을 잃으면 조선 팔도가 능히 스스로 보전할 수가 없을 것이다. 조선은 한번 변고가 생기면 구주, 사국이 또한 일본의 차지하는 바가
되지 못할 것이다. 고로 일본과 조선은 실로 보거상의의 형세에 놓여있다.

韓, 趙, 魏合從, 秦不敢東下, 吳, 蜀相結, 魏不敢南侵, 彼以强隣交迫, 欲聯脣齒之交, 爲朝鮮者自當損小嫌而圖大計, 修舊好而結外援,
苟使他日者, 兩國之輪舶鐵船, 縱橫於日本海中, 外侮自無由而入, 故曰結日本,
― 한,조,위가 합종하자 진이 감히 동쪽으로 내려오지 못하고, 오,촉이 서로 결합하자 위가 감히 남쪽으로 침략해 오지 못하였다.
저들이 강대한 이웃 나라의 핍박으로 순치의 교분을 맺고자 하니, 조선으로서는 작은 거리낌을 버리고, 큰 계획을 도모하여야 할 것이다.
구교를 닦고 외원과 결합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훗날 양국의 윤선과 철선이 일본의 바다 위에 종횡으로 누비게 되면 외해는 절로
들어올 길이 없어질 것이다. 이런 까닭으로 일본과 맺어야 하는 것이다.

何謂聯美國, 自朝鮮之東海而往, 有亞美利加者, 卽合衆國所都也, 其本爲英屬, 百年之前, 有華盛頓者, 不願受歐羅巴人苛政, 發奮自雄,
獨立一國, 自是以來, 守先王遺訓, 以禮義立國, 不貪人土地, 不貪人人民, 不强與他人政事, 其與中國, 立約十餘年來, 無纖芥之國,
而與日本往來, 誘之以通商, 勸之以練兵, 助之以改約, 尤天下萬國之所共知者,
― 미국과 연결해야 한다는 것은 무엇을 일컬음인가? 조선을 동해로부터 가면 아메리카가 있는데 즉 합중국이 도읍한 곳이다. 그 근본은
영국에 속해 있었는데 백년 전에 화성돈(워싱턴)이란 자가 유럽사람의 학정을 받기를 원치 않고 발분 자립하여 한 나라를 독립시켰다.
이 뒤로부터 선왕의 유훈을 지켜서 예의로써 나라를 세우고 토지를 탐내지 않고, 남의 인민을 탐내지 않고, 굳이 남의 정사에 간여하지
않았다. 그와 중국과는 조약을 맺은 지 십여년이 되었는데, 그동안 조그마한 분쟁도 없는 나라이다. 일본과의 왕례에 있어서는 통상을
권유하고 연병을 권유하고, 약속을 고칠 것을 도와주니, 이는 천하만국이 모두 알고 있는 것이다.

盖其民主之國, 共和爲政, 故不利人有, 而立國之始, 由于英政酷虐, 發憤而起, 故常親於亞細亞, 常疎於歐羅巴, 而其人, 實與歐羅巴同種,
其國之强盛, 常與歐羅巴諸大地, 驟於東西兩洋之間, 故常能扶助弱小, 維持公義, 使歐人不能肆其惡, 其國勢遍近大東洋, 其商務獨盛大東洋,
故又願東洋, 各保其國, 安居無事, 使其使節不來, 爲朝鮮者, 常當遠泛萬里之重洋, 而與之結好, 而况其迭遣使臣, 旣有意以維繁朝鮮乎,
引之爲友邦之國, 可以結援, 可以紓禍, 吾故曰聯美國,
― 대게 민주국이란 공화로써 정치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있는 것을 이롭게 여기지 않는다. 미국이 나라를 세운 시초는 영국의
혹독한 학정으로 말미암아 발분하여 일어났으므로 고로 항상 아시아와 친하고 유럽과는 항상 소원하였다. 그 인종은 실은 유럽과 동종이다.
그 나라의 강성함은 유럽의 여러 대지와 더불어 동,서양 둘 사이에 끼여 있기 때문에 항상 약소한 자를 부조하고 공의를 유지하여,
유럽사람으로 하여금 그 악을 함부로 행할 수 없게 하였다. 그 국세는 대동양에 두루 미치고 그 상무는 홀로 대동양에서 성하였다.
또한 동양이 각기 제 나라를 보전하여 편안히 거하고 무사하기를 원하였던 까닭에 그 사절을 보내지 않았다. 그러나 조선으로서는 마땅히
항상 만리 대양에 사절을 보내서 그들과 더불어 수호해야 할 것이다. 하물며 그들이 연달아 사신을 보내어 조선과의 연결을 유지하려는
뜻이 있음에랴! 우방의 나라로 끌어들이면 가히 구원을 얻고, 가히 화를 풀 수 있다. 이것이 미국에 연결해야 하는 까닭이다.

夫曰, 親中國, 朝鮮之所信者也, 曰結日本, 朝鮮之將信將疑者也, 曰聯美國, 則朝鮮之所深疑者也.
― 무릇, 중국과 친하는 것은 조선의 믿는 바이요, 일본과 맺는 것은 조선이 장차 믿고, 장자 의심할 것이다.
미국과 연결하는 것은 즉 조선이 심히 의심할 것이다.

(출처 : http://historia.tistory.com/17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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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필유니버최남석 | 작성시간 09.02.02 귀중한 자료 입니다 재삼 재사 정독 해야 할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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