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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환단고기가 위서가 아니라는 13가지 증거

작성자황덕표|작성시간05.05.27|조회수541 목록 댓글 6
한류열풍 사랑 카페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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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부인과 천부경의 비밀>의 구길수 님-------------------


* 환단고기는 몇 남지않은 우리의 상고사 기록이기에 우리에게 매무 중요한 책이다.

그러나 강단사학에서는 이 책의 시대사항의 사건이나 용어등을 들어 일고의 가치도 없는 위서로 몰고 있다.

여기서 환단고기의 三聖紀全 上은 신라의 승녀인 安含老가 撰 했고 三聖紀全 下는 시대와 행적이 불분명한 元董仲이 지었으며 檀君世紀는 고려시대 행촌 이암이 지었고 北夫餘紀는 고려말 학자 범장이 전했으며 태백일사는 이조 연산군과 중종때 학자 이맥이 전한책을 이조말 일제 점령기에 계연수가 한데묶어 만든 책인데 당시 인쇄나 영인술이 없어 모두 필사본 들 이다.

필사본이란 먼저번책을 베껴쓰는 것인데 여러사람의 손을 걸치면서 자기의 생각이 들어가 본래의 뜻이 왜곡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책을 읽어보면 진실된 귀중한 자료도 많지만 자기 의견으로 가필된 흔적이 너무많아 진본까지도 도매금으로 훼손 시키는 僞書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특히 이맥의 태빅일사등)

그러므로 이책은 진본과 가필된 부분을 분리하여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 가필됬다는 대표적인것 한두가지 예를 든다.

* 三神五帝本紀 - 王儉氏承徑一周三徑一(두르잡)四之機
(삼신오제본기 - 왕검씨는 지름에 3.14를 곱하여 둘레를 만드는 기계로...)
단군왕검때 그런 수학 공식이 있었다? 이는 이조중기 연순군때 태백일사를 쓴 이맥도 몰랐던 수학공식이므로 일제초 계연수 선생의 가필로 추정된다.

* 三韓管境本記(馬韓世家上) - 昔者桓雄....曆以三百六十五日五時四十八分四十六秒爲一年也
(삼한관경본기(마한세가상) - 예날에 환웅께서는...달력을 365일 5시간 48분 46초로 일년을 만드시고....)


이역시 이조중기 이맥의 가필이 아니라 계연수의 가필로 보인다. 아니 환웅시대 그러니까 5-6천년전에 일년이 365일 5시간 48분 46초 라니....초등학생도 믿지않을 소리로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우리 역사에서 귀중한것은 이 책속에는 너무나 귀중한 우리의 상고사가 실려 있기 때문이다.

* 여기서 환단고기가 더러 가필된 부분은 있을망정 위서가 아니라는 증거를 댄다.

' 하나 되는 한국사'를 저술하신 고준환 박사에 의하면 그는 환단고기가 전부 진실이라고 볼수는 없지만 위서가 아니라는 증거 열가지를 제시 하고 있다.


이것을 간략하게 요약하면

1. 환단고기 전에는 밝혀지지 않았던 발해 3대왕 문왕 대흠무의 연호가 환단고기 에서는 大興이라고 기록 되어 있는바 이는 1949년 중국 길림성 화룡현 용두산에서 출토된 정효공주묘지 비문에서 문왕 대흠무가 자기 존호를 大興寶曆孝感金輪聖法大王 이라 한것을 보면 환단고기의 실증적 가치를 알수 있다.


2.환단고기에 단군조선 13세 흘달간군 50년 (서기 1733) 다섯개의 별이 일렬로 서는 五星聚婁현상이 써 있는데 이것을 천문학자인 서울대 박창범 교수가 슈퍼컴퓨터를 이용하여 사실임을 입증 하였다.

이 사실은 너무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 상술하지 않는다.

3. 고구려 유장 이정기가 중국 중동부 15개 주에 대제 (大齊, 평로치청) 라는 큰 나라를 세운 기록이 있는데 이것도 1997년 처음으로 발간된 '고구려를 위하여' 라는 책에 (김병호저) 처음 역사적으로 증명 되었다.

4. 강화도 제천단에 참성단이 있어 지금도 매해 천제를 지내는데 그 기록이 환단고기중 단군세기 단군왕검 무오51년에 싸았다는 기록이 있다.


5. 환단고기의 단군조선 실재를 보여주는 평앙도 강동현에 있는 대박산에서 단군능릉이 1993년 북한 당국자들에 의하여 발견되었으며 여기에는 왕과 왕후로 보이는 유골까지 발견 되었고 당시 동아일보, 조선일보 등에서 모금 운동까지 하여 북한 당국자와 함께 성역화 하였다.


6. 환단고기 태백일사 고구려국 본기에 장수왕이 즉위하자 建興이라는 년호를 사용한 기록이 있는데 이 년호는 1915년 충북 충주시 노은면에서 출토된 불상의 光背銘 에 建興五年歲在丙辰으로 나타난다.

광대토대왕 비문에 따르면 대왕은 壬子년인 412년에 붕어 하는데 卽位年 稱元法에 따라 이 해를 장수왕 즉위 원년으로 보면 장수왕 즉위 5년은 바로 병진년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병진년 불상광배명과 태백일사를 통해 建興이 장수대왕의 년호라는 것까지 알수 있다.


7. 환단고기에는 조대기를 인용하여 연개소문의 아버지 이름은 太祚이고 조부는 子遊이며 증조부는 廣 이라 서술했다.

이 연개소문의 조부와 증조부의 이름은 환단고기 기록 이외엔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그런데 1923년 중국 낙양의 북망산에서 출토된 연개소문의 아들 천남생의 묘지에서 천남생의 증조부 이름이 子遊로 나타나고 있다.


8. 환단고기 태백일사에 '진역유기'를 인용하여 현재 태국에 있는 아유타 국과 백제 상인이 교역한 기록이 있다.

이는 백제가 현재 캄보디아인 扶南國과 교역 했다는 일본서기의 기록까지 뒷바침 해 준다.

9. 사대 식민사학 의 거두 이병도 조차도 말년에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환단고기 기록을 믿어야 한다고 조선일보 일면등에 투고한 사실이 있다.


10. 환단고기가 위서라면 위서라는 사실을 육하원칙에 의하여 밝혀야 하는 데 아직까지는 이 사실을 논리적으로 설명한 학자가 없다.

이상이 고준환 박사가 밝힌 환단고기가 위서가 아니라는 증거인데 필자는 여기에 아래와 같은 세가지 이론을 더 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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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단고기가 위서가 아닌 증거 (단기고사와 단군세기 기록으로본 증거

(역시 천부인과 천부경의 비밀 58쪽 - 59쪽에 있는 글을 그대로 올린다.)



1) 환단고기의 단군세기에 12세 단군 아한때 가림토로 추정되는 우리 원시 한글이 없어질 것을 염려하여 순수관경비를 세워 역대 제왕의 이름을 새겼다는 내용과 단기고사에 역시 이같은 내용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렇다면 만약 환단고기가 위서라면 단기고사 역시 환단고기를 위작한 사람이 역시 위작한 위서라도 볼 수밖에 없다.

과연 위작하는 사람들이 엄청난 시차를 오가며 무슨 이유로 위서를 썻겠는가?


* 단기고사의 기록
천제께서 유위자에게 물어가로대
" 우리 후손들의 성쇠의 기간이 과연 어떻겠습니까?"
대답하여 가로되
"...중략 ... 그때를 당하여 기하(基下)의 후손은 혹은 북방의 터를 보전하고 혹은 동방으로 천도를 하며 혹은 남방에 건국하리니 큰 나라는 수 천리요 작은 나라는 수백리 인데 후속들은 서로 침략이나 하다보니 문화가 차츰 쇠퇴하여 조국의 문자는 돌아보지 않고 모화(慕華)사상이 날로 높아져서 그 천년 뒤에는 모화 하는 미친 선비들이 나라에 가득하여 우리의 문자를 폐지하고 한문만을 전용하여 나라이름이나 왕의 칭호나 벼슬이름이나 지방의 이름 그리고 사람의 이름이나 물건의 이름에 이르기까지 모두 중국식으로 하여 마침내 자손은 그 조상을 잃을 것이오니 장래를 생각하면 참으로 통한 스럽나이다. 엎드려 비오니 기하께서는 깊고 멀리 생각하시어 후일을 예비하소서."

천제께서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은 참으로 천고의 신인(神人)이십니다. 능히 반만년 뒤의 일을 추측 하시다니요."

그러시고 하명을 하셔서 사방 국경에 제왕의 명호를 본국의 문자로 비석에 새겨 국문을 영원히 보전케 하시니라.-

(帝問於有爲子曰吾之雲孫盛衰之期果如何曰.....中略.... 當其時基下之後孫或保基北方或遷都東方或建國南方大邦數千里小邦數百里後屬疏遠相尋以干戈文化漸退不顧祖國文字慕華思想日漸高廣後其千年則慕華狂儒遍滿國中全廢吾國文字專用漢文至於國名王號官名地名人名物名相同於中華終至於子孫失其祖先想見將來眞所痛恨也伏乞基下深思遠慮豫備後事帝曰先生眞千古神人能推測半萬年後事乃下詔立石碑於四方國境刻帝王名號刻以本國文字曰永遠保全國文 - 檀奇古事)


* 단군세기 기록

12세 단군 아한 재위52년
무자이년(BC 1833) 여름 4월 외뿔가진 짐승이 송화강 북쪽에 나타나다. 가을 8월 천제께서 나라안을 순시하시고 요하의 좌측에 이르러셔서 관경을 순수하신 비를 돌에 새겨서 세우게 했는데 여기에 역대 제왕의 명호를 새겨서 전하게 했다. 그런데 이것이 금석문의 가장 오래된 것이다.

(十二世檀君阿漢 在位五十二年 丁亥元年
戊子二年夏四月一角獸見於松花江北邊秋八月帝巡國中至遼河之左立巡狩管境碑刻歷代帝王名號而傳之是金石之最也 - 檀君世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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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단고기가 위서가 아닌 증거 (가림토와 가림다로본 증거)

환단고기가 나온후로 수많은 사람들이 번역을 했고 또 많은 사람들이 읽었었을 것이다.
그러나 원시 한글이라는 가림토(加臨土)가 왜 가림다(加臨多)라는 다른 표현도 있으며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아무도 생각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중대한 사건으로 세종이전 원시한글 존재 유무와 환단고기 진위문제... 더 나가서 일본 신사에 있는 신대문자(神代文字)가 원시한글인 가림토 이라는 증거까지 나오고 따라서 일본 신사는 우리 조상을 제사지내기위한 사당이라는 근거까지 나온다.
다음은 '천부인과 천부경의 비밀 95쪽 - 96쪽을 그대로 전재한다.

* 원시한글 가림토 존재의 증거

加臨多(또는 加臨土)가 너무나 한글과 같아서 후세의 학자들은 가림다 뿐 아니라 이 가림다가 실려있는 환단고기 자체가 위서라는 것이다.
즉 지금으로부터 거의 5천년전 원시인 같은 사람들이 어떻데 그렇게 체계화된 글자를 만들어 썼느냐는 것이다.

加臨土는 고려 말엽 충정왕을 받들기 위해 원나라에 다녀와서 찬성사를 거쳐 좌정승이 되고 홍건적이 침입하자 수문하시중 으로써 서북면 도원수가 되어 활약한 행촌 이암 선생이 그간 수집한 고서들을 인용해 찬술한 단군세기에 기록되 있고 가림다는 이암선생의 현손으로 연산군 때에 문과에 급제하여 강직한 성품으로 연산군의 노여움을 사 유배되어 우리의 역사 서적만 읽고 있다가 중종때 복위되어 찬수관이된 십일당주인 이맥이 지어묵은 태백일사의 소도경전 본훈에 있다.

즉 이맥은 복위한 직책이 찬수관 이므로 내각에 비장 되 있던 수많은 역사 서적을 대할 수 있어 이들을 귀양살이 할 때 읽은 책들과 비교분석 귀중한 찬술하였으나 당시 중국을 종주국으로 믿으려는 미친 선비들과 중국의 감시 때문에 우리의 바른 역사인 이 책을 찬술하고도 감히 내놓지 못하고 은밀히 후손을 통해 전해오고 있었던 태백일사(太白逸史)의 소도경전본훈(蘇塗經典本訓)에 있으며 그 내용은 먼저 가림다를 말한바와 같다.

그런데 여기서 단군세기나 태백일사가 위서가 아니라는 증거는 물론 신지문자나 가림토가 원시한글 이었다는 증거까지 나온다.
그 이유는 여기서 관과하지 못할 것은 '가림토'의 '土'와 '가림다'의 '多'의 다른 표현이다. 이는 대쪽같고 비교 분석을 좋아하는 십일당 주인 이맥 같은분이 무조건 자기 선조 행촌 이암선생의 단군세기를 배척 하거나 무조건 베꼈을 리가 만무하고 토(土)를 다(多)로 잘못 기록 했을리도 없다.

그러므로 이는 행촌 이암이 참고한 '가림토' 라는 기록 이외에 십일당 주인 이맥이 참고한 '가림다' 라는 기록이 또 있었다는 이야기이며 그렇다면 어느것이 옳은가 하는 문제인데 단적으로 말하면 이는 같은 말이고 여기서 우리 글자의 창제 과정과 우리말을 한문으로 표현하는 과정을 엿볼 수 있다.

즉 '환한나라의 사내' 이라는 '환숫'을 한문으로는 '환'은 음을 따서 '桓'으로 '숫'은 뜻인 숫컷웅(雄)자를 써서 '환웅(桓雄)' 으로 표기하듯 우리말에 '.....을 대신 한다'는 '가름하다'의 '가름'이나 '앞가림을 하다' (분별하다)의 '가림' 에 토대, 즉 땅이라는 우리말의 '다'를 붙여 ' 가림다' 가 된 것이다.

우리말에 '다' 는 땅이다. 그래서 地자역시 지금은 '따지'인데 400년전 한자사전인 훈몽자회(訓蒙字會)만 하더라도 '따지'가 아니라 '다지'였다.

이는 요즘 소주가 쏘주가 되고 번데기가 뻔데기가 되듯 말이 강해진 탓이다.

그러니까 '가림다'란 말은 '무엇을 대신하는....무엇을 분별한는 땅, 즉 바탕이 되는 토대' 라는 말이 되는데 '무엇을'은 바로 어떤 사건(事件)이나 이 사건을 표현하는 말이다.

따라서 '가림다'란 '어떤 사건이나 이 사건을 표시하는 말을 대신하는 즉 가름하는 토대' 가 바로 '가림다'이다.

이 얼마나 소박한 우리말의 표현인가?

문자나 글자란 말조차 생겨나기 이전의 순수한 우리말이다.

이 순수한 우리말이 세월이 흐른 후 우리글자는 없어지고 한자로 기록하자니 '가림' 또는 '가름'은 그 음대로 '加臨'으로, '다' 즉 땅은 그냥 우리말의 음을 한자 多로표기하여 加臨多라 표기한것이고 加臨土는 이 우리말 '다'의 뜻이 땅 이므로 그 뜻만을 택해 土라 하여 加臨土라 한것이다.

여기서 이 우리말의 뿌리나 우리말이 한자로 표기되는 과정을 행촌선생 이암이나 십일당주인 이맥이 연구했을리가 만무하니 단군세기의 가림토나 태백일사의 가림다는 각자가 각기 다르게 전해 내려오는 기록들을 그저 그대로 인용했으리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 '토'와 '다' 하나만 가지고도 우리 문자 생성시기, 그리고 우리글이 한자에 밀리는 경위를 추정할수 있고 따라서 단군세기나 태백일사는 물론 환단고기 까지 간혹 가필은 있을망정 위서는 아니라는 증거가 된다.

즉 이런말이 위서가의 작품 이라면 가림다건 가림토건 한 가지로 표현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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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단고기가 위서가 아니라는 증거 (蘇塗와 山像雄常의 비밀)

대저 위서가들이 어떤 목적으로 위서를 쓰려면 독자들이 그 내용을 알수있게 글을 쓸 것이다. 만약 어떤 독자건 아무도 알 수 없는 글을 쓴다면 그는 정신이상자에 불과 할 것이다.
그러나 독자는 그만두고 글 쓴 사람도 무슨 소린지 모르고 글을 썻다면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먼저 환단고기가 위서가 아니라는 증거에서 가림토와 가림다의 다른 표현 이 그랬고 지금 제시하려는 蘇塗와 山像雄常의 정체가 바로 그것을 말해준다.

이는 작가가 전해지는 말이나 책의 내용을 자신도 이해할수 없어 자신이 번역이나 해설해서 쓸수가 없으니까 그저 원전 그대로 썻다는 증거이다.

환단고기 태백일사 삼한관경 본기 제4의 마한세가 상을 한번 보자

"전략.... 自是蘇塗之立到處可見山像雄常....후략"
(이때부터 소도가 세워지는곳마다 산상웅상(山像雄常)을 보게 되었다)

이게 무슨 말인가?

환(한)단고기를 번역한 임승국님은 물론 심지어 안호상 박사까지 모르는 소리라는 것이다.

이런 대 석학도 모르는 소리를 썻다면 이는 분명 이 글을쓴 십일당 주인 이맥도 그 뜻을 모르는 채 그저 전해 내려오는 대로 쓴 것 일 것이다.
우선 한단고기를 번역한 임승국님의 말을 들어보자 (한단고기 201쪽 참조)

....전략 "안호상 박사는 다음과 같이 산해경의 기록을 잘라 말하였으니 참고할만 하다. 즉 '北有樹 名曰雄 常先八代帝 於此取之' 라고 雄과 常을 갈라놓고 '북에 나무가 있는데 이를 雄 이라 한다. 늘 앞서는 8대의 임금들이 여기서 이를 취해갔다'로 한 것이다... 중략 .... '산 형상의 웅상을 보게 되었다'(可見山像雄常)는 좀체로 이해하기 힘든 구절이다. 언젠가는 雄常의 참뜻이 한국학에서 밝혀질 날이 있을것으로 기대 한다" 라고 했다.
임승국님의 참으로 솔직한 표현에 존경이 간다.

여기서 그 신비한 '山像雄常'의 뜻을 밝힌다.

이는 천부인으로 만들었다고 볼수밖에 없는 우리의 글자 ㄱ ㄴ ㄷ....ㅎ 속에 어떤 뜻이 들어있는 가를 연구하여 우리말의 뿌리를 밝혀보지 않고서는 알수없는 말이다

이 산상웅상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先八代帝王 즉 중국 역사의 창시자로 알려진 삼황오제들이 이 산산웅상을 취해다가 그들의 정신적 지주로 썻을까?

이는 환단고기가 위서가 아니라는 증거는 물론 우리 민족신앙의 인식을 달리해야 하는 문제이다.

책 '천부인과 천부경의 비밀' 384쪽 '사람천부인 △' 중
'남근을 뜻하는 ㅅ',
'남근상을 숭배한 우리민족' 부터
'남근상이 모셔진 소도(蘇塗)'
그리고 396쪽의 남근 형상의 산상웅상(山像雄常)의 내용에서 요약된 내용을 발췌한다.

단군세기 11세단군 道奚 재위 57년 기록을 보자

'庚寅元年帝命五加擇十二之名山之最勝處設國仙蘇塗多環植檀樹擇最大樹封爲桓雄像而祭之名雄常....'
(경인원년에 천제 께서는 오가 1)에게 명하여 12명산의 가장 뛰어난 곳을 골라 국선2)의 소도〔蘇塗〕를 설치케 하였다. 많은 박달나무를 둘러심고 가장 큰 나무로 환웅상를 봉한후 제사지냈는데 이것의 이름을 웅상〔雄常〕이라 했다.')

1)오가 - 고조선 벼슬이름
2)국선 - 國仙=男巫=花郞=화랭이

그러면 웅상이 무엇인가는 밝혀졌다. 즉 웅상은 환웅상인데 선택된 밝달나무 라는 것이고 이는 소도 안에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소도(蘇塗)는 무엇인가?

* 남근상이 모셔진 소도 (蘇塗).
어문학계, 또는 사학계로 부터 욕을 먹거나 조상에 대한 불경죄로 매를 맞을 수도 있겠지만 냉정하게 검토해 볼 말이다.
소도는 '솟앗다'는 '솟'과 집터 라는 '터'로 솟터 > 솟토 > 소토 > 소도(蘇塗)가 된 한문표기인데 그 터안에 무엇이 솟았겠는가?

이는 당연히 남근인 '숫'이 솟았다는 말로 우리 말에서 감둥기 검둥이가 같은 말이듯 모음이 혼동되다보니 '솟'이나 '숫'은 같은 말이된다.

그러니까 이 소도 안에는 남근상(男根象)이 솟아있다는 말인데 이 남근상도 그냥 남근상이 아니라 여음에 삽입된 남근상이 솟아있다는 말이다.

즉 힌두교 성지에는 '링가' 라는 남근(男根)상이 서있고 그옆에는 '요니' 라는 여음(女陰)상이 누어있는데 우리 조상의 성소였던 소도 안에는 남근을 의미하는 나무에 돌무더기를 쌓아놓아

아예 여음에 남근을 삽입(揷入)한 삽입 상이있었다고 보여진다.

이는 우리의 원류로 추정되는 지금 바이칼호 부근의 부라이트 족이나 몽골족의 서낭나무인 '오보'를 보면 알수 있는데 이 '오보'란 우리 뿌리말로 어보 > 업 으로 사실상 남근이라는 말이고 서낭나무 역시 6.25때 까지만 하더라도 산 고개마루 마다 서낭나무가 있었는데 그 나무밑은 돌로 싸 올렸고 나무 둥치에는 오색천을 찢어 새끼줄에 끼어 나무 둥치에 둘렀으며 나무 위에는 북이나 곡식 자루를 올려 놓았었다.

여기서 서낭나무는 남근을 뜻하고 돌 무더기는 여음을 뜻하며 나무 둥치의 오색천은 신령스런 음모를 뜻하고 나무위의 곡식자루는 고환을 뜻하는 것이였다.

( 지금 민속촌의 나무가지에 오색을 거는 것은 잘못된것임)

그러나 현대 국어사전에 보면 "소도는 솟대의 기원으로 마한(馬韓)과 백제 때에 고을마다 방울과 북을 단 큰 나무를 세우고 귀신에게 제사 하던 일" 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그 이유와 어원은 어디에도 밝혀진데가 없다.

또 현대 국어사전에서 솟대는
1) 과거(科擧)에 급제한 사람을 위하여 그 마을 어귀에 높이 세웠던 장대. 곧 붉게 칠한 장대 위에 푸른 칠을 한 나무로 만든 용(龍)을 단 것.
2).농가에서 볍씨 등을 큼직한 자루 등에 담아 높이 달아매는 장대
3) 무당이 굿을 할때 쌀 등에 꽂아놓고 방울 등을 달아매는 나무라고 했다.
그러면 왜 장대 위에 용이나 볍씨 등의 자루나 방울 등을 달아매었으며 이것이 무엇을 상징했던 것일까?

'소도'가 우리에게는 얼마나 소중한 장소인지 모르는 중국의 '이십오사'를 다시 보면
...평소 오월달에 파종을 마치고 귀신에게 제사를 지내는데 무리 지어 노래부르고 춤추고 술 마시기를 밤 낯을 쉬지 않는다. 그 춤은 수십인 이 일어나 서로 따르며 땅을 구르고 몸을 업드렸다 일어났다 하며 손발로 장단을 맞추는데 장단은 중국의 탁무(鐸舞?)와 유사한데가 있다. 시월에 농사일이 끝나면 역시 이같이 귀신을 믿는데 나라의 읍마다 각기 한사람씩 세워 천신을 주제케 하며 그 이름을 천군(天君) 1) 이라 한다. 또 모든 나라에 각각 특별한 마을이 있는데 이름을 '소도(蘇塗)라 하며 큰 나무를 세워 방울과 북을 달아놓고2) 귀신을 섬기는데 어떤 도망자건 그안에 들어가면 대개 싸움을 할망정 돌려주지는 않는다. 그 소도를 세운뜻은 부도(浮屠)와 비슷하나 옳고 그름 행하는 바는 다름이 있다.
(...常五月下種訖祭鬼神群聚歌舞飮酒晝夜無休其舞數十人俱起相隨踏地低昻手足相應節奏有似鐸舞十月農功畢亦復如之信鬼神國邑各立一人主祭天神名之天君又諸國各有別邑名之蘇塗立大木懸鈴鼓事鬼神諸亡逃至其中皆不還之好作賊其立蘇塗之義有似浮屠而所行善惡有異...)
1) 천군 - 무속에서 무당을 만신(萬神) 또는 천군(天君) 이라도도 하는데 이는 단군(檀君)과 같은 뜻이다.
2) 큰 나무를 세워 방울과 북을 달아놓고 - 뒤에도 수없이 나오지만 환웅은 '숫'을 의미하므로 환웅상은 남근일 수밖에 없으며 북 등은 고환을 그리고 방울은 '알' 즉 '씨앗' 등을 상징 한다.

* 남근 형상의 웅상(山像雄常)
감히 불경스럽게도 웅상을 남근(男根)으로 보지 않는 한 웅상의 정체는 풀리지 않는다.

대체로 생각해 보자 '환웅'이 무엇인가? 한자가 생기기 전인데 환웅을 桓雄이라 불렀을 것인가? 다시 말하지만 '환한숫컷' 이라는 '환숫'을 나중에 한자가 생기니까 '환'은 음을따고 '숫'은 뜻을 따서 환웅(桓雄)을 만든 것이 아닌가? 그리고 이런 류 는 먼저 말한 기림다와 가림토, 그리고 처용가 등의 脚烏伊(가로리) 四時於羅(네시어라) 등에서 얼마던지 볼수 있지 않은가?

그러므로 정확히 언제부터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생명의 창조 도구인 신성한 남근을 비천시 하여 조상의 신상을 감히 남근으로는 상상도 하지 못한 유치한 생각은 먼저 말했드시 생명연장의 가장 신성한 성을 쾌락만의 도구로 사용한자들의 자가당착 적 발상이 아닌가 한다.

다음 산형상의 웅상(山像雄常) 중에서 '山'은 우리 말로 山이 아니다.

우리 말에서 山은 '뫼' 라고 하거나 '오름'이다. 이 오름 이란 말은 지금 제주도 한라산의 '윗세오름' 에서 찾아 볼수 있다.

이와 같이 우리말에 山은 '뫼' 이거나 '오름' 인데 이 뫼나 오름 이 한자 '山'으로 번역 했을리 만무하다.

왜냐하면 이 야기는 한자가 생기기 전 이야기 이고 그때 만약 우리말 '뫼' 형상 또는 '오름 형상의 웅상' 이라고 했다면 이는 말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山像雄常에 써진 山 '산'은 뫼나 오름이 아닌 사내(男)이다. 즉 사내의 뿌리말은 산 이고 이는 산 > 산애 > 사내'인데 이 사내란 아이들이나 늙은이가 아닌 젊은 남자 이다.

이 말의 근거를 댄다. 먼저말한 훈몽자회에서 장정(壯丁)이라는 丁자는 고무래 정이 아니라 '산정' 자이다. 즉 '사내' 가 단축된 말이니 젊은 사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젊은사내'의 원 뜻은 사내의 다른 기관이 아닌 남근(男根)을 말하게 된다. 즉 생식현상에서 다른 기관은 오직 생식기를 기르고 먹여 살리는 종속된 기관에 불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말로 '산 형상의 웅상' 이란 '남근형상의 웅상'을 말하는 것이고 이것이 후대 한문으로 적어 내려 오면서 '산(山) 형상의 웅상' 이라고 했으니 '남근'을 염두에 두지 않고서는 '소도'나 '웅상'이나 현재의 서낭당까지 이해할수 없는 것이다.

다음은 우리 조상들이 이 남근상을 얼마나 신성시 하고 바뜰었는지 이번에는 고조선 유적지에서 츨토되는 청동기에 새겨진 명문을 통하여 알아 보자


청동기 유물 을미고(乙未觚) 에 새겨진 명문 (남근을 둘이서 바뜰고 있다)


중국인들이 父己라고 해독하는 청동기에 새겨진 명문. 그러나 이는 잘못된 해독이고 우리 말로 업뱀(夫巳)라고 표현해야할 남근을 바뜨는 그림


이상으로 볼때 환단고기가 누군가가 꾸민 위서라면 위에서 말했드시 환웅의 '숫'으로부터 연유된 소도(蘇塗)나 산상웅상(山像雄常)이라는말을 창작해낼 천재가 없다.


즉 우리 순수한 말들은 옛날부터 구전되어 오다가 신지문자로 쓰여지고 그 후대에 금문과 은허갑골문 그리고 대전 소전 을 거처 현재쓰는 한문으로 쓰여지자니 그 뜻이나 문맥이 통하지 않는 부분이 많은데 그 중 한 예가 바로 소도나 산상웅상과 같은 역사가들도 이해를 못하는 대목이다.

따라서 환단고기가 모조리 위서라면 독자는 그만두고 그 위서를 쓴 작가조차도 이해하지 못했을 문구들을 늘어놓았을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원문의 많은 양을 요약해 올리다 보니 설명이 불충분하다. 많은 양해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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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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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이동한 | 작성시간 05.05.29 물론... 역사왜곡엔 님 말대로 절대로 순수창작 없습니다. 위서일지라도 어느정도는 다른곳에서 모티브를 빌려온 것들이지요...
  • 작성자이동한 | 작성시간 05.05.29 또한 이것이 위서가 아닐지라도, 사실에 기반한 것이라 할지라도.. 위의 이탄님 말씀대로 수많은 부분이 한반도와 열도로 옮겨지게끔 교열되었습니다... 제가 보기엔...
  • 작성자황덕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5.05.29 어이없는 사실은 한류열풍 사랑 카페 회원들이 "삼국사기,삼국유사만 조선사편수회에서 왜곡이 되었고 한단고기는 아니다."라고 믿는 것입니다.
  • 작성자황덕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5.05.29 한단고기가 사실일지라도 현재 한국인과 무관합니다. 왜냐하면 한단고기에서 서술하는 사건들과 왕조들은 모두 황하강 유역에서 있었던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 작성자황덕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5.05.29 실제로 한단고기에서 왜곡된 부분은 삼성기,신시기,단군세기에서 나온 왕조의 영토,호적이 과장되었다는 것이고 고구려기,대진기,고려기에서 한반도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단고기에 나오는 종교성은 20세기 초반에 어떤 종교세력에 의해 삽입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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