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日本 東京大學, 倭寇圖卷, http://www.hi.u-tokyo.ac.jp/conference-seminar/science/ez01.html]
위 그림은 "倭寇圖卷"의 일부입니다만,
자세히 살펴보면 왜구들의 배에는 여자 2명이 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해적들의 배에는 여자를 태우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혹시.... 약탈시에 포로로 잡혀온 사람이었을까요? 아니면 전용 요리사였을까요?
그것도 아니라면, 종군위안부/정신대였을까요?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태평양 전쟁 때에만 종군위안부가 있었던 건 아닌가 봅니다.
[출처=위키백과, "16세기 왜구의 침략"]
위 그림을 살펴보면, 왜구들이 지나(支那)의 해안 지역과 (조선)반도 지역까지 진출한 것으로 나옵니다.
물론 <아시아대륙사관>에 기초하여 왜구들의 본거지에 관해 다시 검토되어야 합니다만,
왜구들의 활동 영역이 역사기록에 나온 것보다 더 넓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위 그림에는 고인돌 분포 지역과 흑조(黑潮)라는 해류가 어떻게 흐르는지 나옵니다.
왜구들의 활동 영역과 거의 일치하는 것 같습니다.
참고로, 일본 최초의 그리스도교(카톨릭) 신자는 '야지로-'(안지로-)라는 사람인데, 그는 왜구 즉 해적의 일원이었다는 견해가 있습니다.
그가 무역에 종사하였다고 하지만, 해적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가 살인을 하여 그리스도교(카톨릭)를 믿게 되었다는 견해도 있기 때문입니다.
1563년 일본에 처음 도래한 포르투갈 카톨릭 예수회 신부였던 '루이스 프로이스'(Luís Fróis)는 그의 저서인 "일본사"에서 '야지로-'가 '해적'이었다고 기록하였습니다.
일설에 따르면,
포르투갈 사람이자 카톨릭 예수회 신부였던 프란치스코 하비에르(San Francisco Xavier)가 1547년 12월 말라카(지금의 말레이시아 말라카 주; 말레이어=Melaka, 영어=Malacca, 중국어=満剌加)에서 일본인 '야지로-'(안지로-)를 처음으로 만났었고, 그 후에 '야지로-'는 카톨릭 교회의 신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야지로-'는 인도(印度)로 가서 세례(洗禮)를 받았고 카톨릭 교리를 더 공부했다고도 합니다.
이때부터 하비에르가 일본 선교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두었다는 견해가 있습니다.
드디어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는 1548년 11월 인도 고아(Goa)에서 선교감독이 되었고,
1549년 8월 하비에르는 그의 동료 신부들과 일본인 '야지로-'(안지로-)와 함께 일본에서 선교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음모론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하비에르가 특수한 목적을 가지고 일본으로 진출하였다고 합니다.)
'왜구'였다고 추정되는 일본인 '야지로-'가 (살인을 저지르고) 말라카까지 진출(도망?)한 것으로 보면,
포르투갈 등의 유럽국가 사람들과 처음으로 접촉한 일본인은 역시 '왜구'였다고 생각됩니다.
대항해 시대에 인도 항로를 이용하여 동아시아로 처음 진출한 국가는 포르투갈이었고, 그 후에 다른 유럽국가들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경쟁하며 동아시아로 진출한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화승총 또한 '왜구'들에 의해 일본에 처음으로 전해졌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습니다.
참고로, 말라카는 1511년 포르투갈의 인도총독이 정복했으며, 이후 말라카는 동남아시아에 있어서 포르투갈 해상제국의 거점이 되었습니다.
그 당시 말라카에는 요새와 카톨릭 교회가 세워졌으며, 1545년 9월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는 말라카에서 동아시아 포교에 나서기도 하였습니다.
[출처=위키백과, "포르투갈의 해상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