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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세에 동북 3성의 이름 변천

작성자이창섭|작성시간09.10.18|조회수610 목록 댓글 6

청대에 동북지방의 성이름

 

전에는 세력이 미치지 않고 성이 없던 동북지방에 청대에 와서 성경성(봉천, 요녕성) , 길림성, 흑룡강성을 만들어 진출.
성경성의 성처는 성경 (심양) 이고, 길림성은 길림, 흑룡강성은 아이훈 (흑하) 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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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조 몰락후 중화민국이 되었을때  

흑룡강성의 성처는 아이호(흑하)에서 치치하얼로 옮겼고, 길림성 성처는 길림에서 장춘(長春) 이라는  새로 만든 신도시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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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민국 시대에 동북지방의 영역은 거의 매년 바뀌다시피함.
1917년: 길림성, 흑룡강성, 봉천성.
1930년대 동북삼성이 9성으로 갈라집니다.
              봉천성 --- > 요북성(성처: 요원), 요녕성(봉천), 안동성(통화)
              길림성 --- > 길림성(길림), 눈강성(하얼빈), 송강성(목단강), 합강성(쟈무쓰)
              흑룡강성 -- > 흑룡강성(치치하얼), 북안성(하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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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인민공화국이 수립되자 1951년 아래와 같이 5성으로 굳어집니다.

북안성(하일라), 요북성(요원)을 내몽고자치구라고 고치고, 구역을 조정하여
요서성(금주), 요동성(심양), 길림성(길림), 송강성(하얼빈), 흑룡강성(치치하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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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모택동 정권이 확립되자,

오랫동안 눈엣가시같이 북경인들을 열받게 했던 몽골계 지명 찰합이성(즉 직례성)을 1953년 한국전쟁 직후에 없애 버리면서

동북의 지명도 한번 더 바뀌게 되는데,

1954년 심양-장춘-하얼빈의 만주 동북 3도시 체제 확립. 

요서성 + 요동성을 합해 요녕성으로,

송강성 + 흑룡강성을 합해 흑룡강성으로 바꾸면서 현재의 심양-장춘-하얼빈의 동북 3도시 체제가 확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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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 말기만 해도, 만주에 도시라고 할 만한 것은 심양(봉천, 성경)과 길림이 고작이었고,

만주의 총인구가 6백만이 못 되었음(이는 만주에서 청나라가 통치하던 인구가 6백만이 못 되었다는 뜻)

현재 동북3성 (내몽고 제외)의 총인구가 1억 1천만인데, 100년도 못 되어 인구가 10배 이상 늘은 예는 세계사에 없습니다. (미국을 들먹인다면, 미국은 세 차례에 걸쳐 영토확장이 있었으므로, 직접비교는 할 수 없음)
그러니 동북 지방에도 사람들이 살았었지만, 청나라 사람들이라곤 볼 수 없었다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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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대혁명 시기에 얼마나 많은 조선족, 몽골족, 만주족들이 한족으로 둔갑하였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행정구역이 수차 바뀌는 동안, 길림성의 일부였던 하얼빈이 흑룡강성의 중심지로 둔갑해 버렸고,

송강성이 완전히 흑룡강성의 일부가 되어, 반도와의 연계까지 끊어지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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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땅에 그려 넣은 행정구역이라는 것이 아주 조변석개해온 역사를 알 수 있습니다.

조선8도의 경계가 500년간 단 한 번도 바뀌지 아니했다는 세계에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소설을 역사라고 내놓고 있는 우리 나라가 이상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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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8도의 현재 경계는 19세기 후반에 확립된 것이라고 보는게 설득력 있습니다.

 

출처 : 우리 력사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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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이창섭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9.10.20 핵심을 잘 지적한 것 같습니다. 왜곡되기 이전에 한반도에는 어떤 형태의 국가나 행정구역이 되어 있었을까? 어찌보면 제일 중요한 우리역사의 정체성을 찾는 문제인데에 비해 전혀 관심과 연구실적은 하나 없고 대륙조선만의 연구만 가득하니 늘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김홍필 | 작성시간 09.10.21 연구자들이 한반도(韓半島) 또는 조선반도(朝鮮半島) 고유의 역사에 관해 관심이 없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한반도가 (역사기록상) 조선의 중심이 아니라는 증거들은 지금까지 다수 제시되었습니다만, 구체적으로 그 위치를 비정하는 것에 관해서는 연구자들의 견해가 아직도 일치하지 않으며, 여러 학설(學說)의 등장으로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왜곡/날조되기 이전의 한반도 역사를 논의하게 되고, 또 그 최종 결론이 나온다면, <대륙조선사> 연구의 마무리 국면이 될 것입니다.
  • 작성자신석재 | 작성시간 09.10.21 청사 지 30 지리 2 봉천에 보면 봉천부 치소가 설치된 성경 심양의 연혁이 잠깐 언급됩니다. 1657 년 봉천부를 설치하고 1905 년 봉천성으로 승격? 확대? 개편합니다. 그리고 서남쪽으로 경사 즉 북경까지의 거리가 1470 리라고 하였습니다. 현대 지도에 표기된 심양이 북경에서 동북쪽으로 1470 리 거리에 있다는 기록일까요? 택도 없는 거리라고 생각이 듭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작성자이창섭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9.10.21 그럼 1470리면 어디쯤이고 신석재선생은 봉천성이 당시 동쪽으로 어디까지라고 보십니까?
  • 작성자신석재 | 작성시간 09.10.25 청사 지리 1 직예 영평부에서는 서쪽으로 직예성 치소인 경사까지가 830 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청국 영평부 치소인 노룡현은 현대 지도에 표기된 바와 같이 하북성 동북부에 있는 란하의 하류 동쪽에 있었습니다. 현대 축척 지도에서 북경에서 노룡까지가 830 리라면 1470 리 동북방향은 어느 쯤이 되겠습니까? 지금의 요하를 넘어 왔을까요? 봉천성 역시 지금의 요하를 넘지 못하였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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