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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伽倻)에 관하여

작성자김홍필| 작성시간09.12.16| 조회수928| 댓글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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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김홍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09.12.17 최두환 선생님은 위 글에서 '倭'(왜)는 일본열도(日本列島)가 아니라 대륙(大陸)의 동쪽 끝에서 서쪽으로 3만2000리나 되는 곳에 있었고, 따라서 <또 하나의 다른 왜(倭)>는 "서(西)-아시아"의 끝이라고 결론을 내리셨고, "시대에 따라 '왜'(倭)의 개념도 많이 달라져야 하겠다"는 말로 글을 마무리하셨습니다. [출처=http://cafe.daum.net/asiaculture/Dd9i/171]
  • 답댓글 작성자 김홍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09.12.21 <신교본(新校本) 양서(梁書)/열전(列傳)/권54(卷五十四) 열전제48(列傳第四十八)/제이(諸夷)/동이(東夷)>에서는...
    고구려(高句驪), 백제(百濟), 신라(新羅), 왜(倭), 문신국(文身國), 대한국(大漢國), 부상국(扶桑國)에 관한 내용이 '순서대로' 나오는데...
    동이(東夷) 조(條)에는 대한국(大漢國)과 부상국(扶桑國) 사이에 있었던 '중국'(中國)은 안 나옵니다.

    <또 하나의 다른 왜(倭)>가 "서(西)-아시아"의 끝에 있었다고 한다면...
    고구려(高句驪), 백제(百濟), 신라(新羅)는 도대체 어디에 있었던 것이 될까요? 지금의 유럽(Europe) 대륙이었을까요?
    그렇다면, 동이(東夷) 전체의 지리적 영역은 어떻게 될까요?
  • 작성자 김홍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09.12.17 저는 '倭'(왜)의 시대별(時代別) 이동경로(移動經路)에 관하여 연구하고 있습니다만,
    위 댓글에 인용된 최두환 선생님의 글 내용과 일본(日本)의 인터넷판 "월간-침묵의 병기"(月刊-沈黙の兵器)에 나오는 내용이 서로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 작성자 김홍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09.12.19 "월간-침묵의 병기"(月刊-沈黙の兵器)의 집필자는 한때 일본(日本)에서 핫이슈이었던 '日猶同祖論'(일유동조론; '일본인과 유태인은 그 조상이 같다'는 이론 또는 가설)의 근거로서 위 자료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日猶同祖論'(일유동조론)은 '날조된 거짓'이라는 견해도 있으나, 서(西)-아시아의 '왜'(倭) → 문신국(文身國) → 대한국(大漢國) → 중국(中國) → 부상(扶桑)으로 이어지는 경로(육로? + 해로?)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보입니다. 참고로, 그 집필자는 '倭'를 '人'+'委'로 풀이하면서 '委'(일본식 발음='이')는 '이스라엘'의 줄임말이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 작성자 김홍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09.12.17 물론 날조되었다고 봅니다만... 일본(日本)의 역사는 기원전 660년부터 시작하였고, '이스라엘'이 '앗시리아'(사르곤 2세)에게 멸망한 시기는 기원전 722년입니다. 그 후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어디론가 이동하였는데, 아직까지 그 경로가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저도 '日猶同祖論'(일유동조론)은 '날조된 거짓'이라고 봅니다만, 위 댓글에 인용된 역사기록(특히, "南史")들을 살펴보니까, 무언가 연결되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 답댓글 작성자 김홍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09.12.19 참고로, 1948년 중동(中東)에 세워진 '지금의 이스라엘'(Israel)과 기원전 722년에 멸망한 '이스라엘'은 서로 다른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솔로몬' 왕이 죽은 후에 12개 부족의 유태(猶太) 국가는 남(南)과 북(北)으로 나뉘었습니다. 2개 부족인 남조(南朝)는 '유대'(猶大) 또는 '유다'(Judah)이었고, 10개 부족인 북조(北朝)는 '이스라엘'이었습니다. 북조(北朝) '이스라엘'은, 기원전 722년에 멸망한 후, 전부 소멸되어 그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 김홍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09.12.19 반면, 2개 부족으로 구성된 남조(南朝) '유대'(유다)는 기원전 597년 신(新)바빌로니아 왕국에게 멸망하였으나 잠시나마 그 존속이 허용되었는데, 결국 기원전 586년 바빌로니아 제국에게 멸망하여 지배자와 귀족들이 전부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그 후에 그들의 땅으로 돌아와 간신히 소생하였고 그때부터 유태(猶太) 국가를 '이스라엘'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의 이스라엘'(Israel)은 남조(南朝) '유대'(유다)의 연장선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남조(南朝) '유대'(유다)는 12개 부족 명칭 중의 하나이었으며, 그 중에서 가장 강력한 부족이었습니다. '히브리'(Hebrew; 헤브루)라는 낱말은 가장 오래된 명칭입니다.
  • 작성자 최두환 작성시간09.12.17 김홍필님1 이런 많은 내용을 댓글에 올려놓았으니, 보기가 참으로 좋지 않네요. 이런 중요한 내용은 차라리 답글에다 넣어서 본문과 연결시키는 것은 어떠신지요? 아니면 아예 "글쓰기"란에 시작하시든지요.
  • 답댓글 작성자 김홍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09.12.17 제가 별도로 글을 올릴 만한 주제는 아니라서 댓글로 여러 자료를 붙였습니다. 생각나는 대로 적어 보았으므로, 미흡하지만 여러분이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부득이하게 댓글이 길어져서 죄송합니다.
    만약 논쟁을 한다면, 댓글이 100개 이상도 작성됩니다. (하하하)
  • 작성자 freeman 작성시간10.09.27 가야의 위치는 바이칼 호수 부근으로 추정됩니다. 근거 1. 가야국의 동남쪽에 바다가있었다고 했는데, 흑해를 바다라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근거 2. 허왕옥공주님이 아유타국이 망하자 동쪽으로 갔다고 했습니다. 아유타국의 동쪽이면 바이칼호수를 기점으로 서쪽입니다. 많이 가야 그근처입니다. 동남쪽으로는 높은 산들이고 동쪽으로는 길이 평탄합니다. 말타고 달리기에 안성마춤입니다. 그렇다고 한반도 낙동강까지 팔도유람하가에는 너무 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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