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백과사전>에 따르면, 사이(四夷)는 고대(古代) 중국(中國)에서 주변(週邊)의 이민족(異民族)을 총칭(總稱)한 용어(用語)라고 합니다.
그리고 사이(四夷)는 지리적(地理的) 방향(方向)에 따라 동이(東夷), 서융(西戎), 남만(南蠻), 북적(北狄)으로 구별(區別)됩니다.
서융(西戎)은 서이(西夷)라고도 합니다.
‘夷’(이), ‘戎’(융), ‘蠻’(만), ‘狄’(적)이라는 한자(漢字)들은 모두 ‘오랑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이(四夷)는 동이(東夷), 서이(西夷), 남이(南夷), 북이(北夷)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똑같은 한자(漢字)의 중복(重複)을 회피(回避)하기 위해서 동이(東夷), 서융(西戎), 남만(南蠻), 북적(北狄)이라고 표현(表現)한 것에 불과(不過)합니다.
그렇다면, 동왜(東倭), 서왜(西倭), 남왜(南倭), 북왜(北倭)라는 표현(表現)도 성립(成立)될 수 있을까요?
사이(四夷)라는 낱말은 중국(中國)을 기준(基準)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먼저, 중국(中國)은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본래(本來)의 중국(中國)은 중토(中土), 중원(中原), 중방(中邦), 중주(中州), 중화(中華)라는 낱말들과 같은 뜻입니다.
중국(中國)이라는 명칭(名稱)은 1911년 10월 10일 신해혁명(辛亥革命) 이전(以前)까지 특정(特定)한 ‘나라 이름’(國名)이 아니었습니다.
중국(中國)을 중앙조정(中央朝廷), 중조(中朝), 천조(天朝)라는 행정적(行政的) 개념(槪念)으로 설명(說明)하는 연구자(硏究者)도 있습니다. 지리적(地理的) 개념(槪念)으로 내지(內地), 관중(關中), 경기(京畿)라고도 합니다.
이른바 ‘경조’(京兆)는 경사(京師) 또는 한사(漢師)라고도 말하는데, ‘천자(天子)가 머무는 땅’ 또는 ‘천자(天子)가 직접(直接) 다스리는 지역(地域)’을 가리킵니다.
이를 ‘신주’(神州)라고 합니다. 그리고 신주(神州)에 팔역(八域)을 더하면 ‘구주’(九州)가 됩니다.
천자(天子) 또는 황제(皇帝)가 제후(諸侯)들을 두고 통치(統治)하는 지역(地域)을 ‘사해’(四海)라고 합니다.
결국(結局) 사해(四海)는 곧 구주(九州)라고 말할 수 있으며, 그 중심(中心)은 신주(神州)입니다.
사해(四海)는 <산해경(山海經)>의 해내동경(海内東經), 해내서경(海内西經), 해내남경(海内南經), 해내북경(海内北經)에 나오는 지역(地域)을 말하며, 신주(神州)는 <산해경(山海經)>의 해내경(海內經) 별권(別卷)에 나옵니다.
해내(海內)는 사해(四海)의 내부(內部)를 말합니다.
또한 <산해경(山海經)>의 해외동경(海外東經), 해외서경(海外西經), 해외남경(海外南經), 해외북경(海外北經)에 나오는 지역(地域)은 ‘오랑캐’ 곧 동이(東夷), 서이(西夷), 남이(南夷), 북이(北夷)가 활동(活動)하는 곳이며, 천자(天子)가 통치(統治)하지 않는 지역(地域)입니다.
해외(海外)는 사해(四海)의 외부(外部)를 말합니다.
아세아(亞細亞)는 곧 조선(朝鮮)이라는 개념(槪念)을 적용(適用)하여 지리적(地理的) 위치(位置)를 검토(檢討)한다면,
조선(朝鮮)의 중심(中心) 지역(地域)인 중국(中國)은 중앙(中央)-아세아(亞細亞), 동이(東夷)는 동(東)-아세아(亞細亞)의 변방(邊方), 서이(西夷)는 서(西)-아세아(亞細亞)의 변방(邊方), 남이(南夷)는 남(南)-아세아(亞細亞)의 변방(邊方), 북이(北夷)는 북(北)-아세아(亞細亞)의 변방(邊方)으로 비정(比定)할 수 있을까요?
지금부터 ‘오랑캐’의 일종(一種)인 ‘왜’(倭)는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여기서 사이(四夷)의 ‘이’(夷)를 곧 ‘왜’(倭)라고 보아도 무방(無妨)할까요?
‘倭’라는 한자(漢字)를 일본어(日本語)로 음독(音讀)하면 ‘와’(わ), 훈독(訓讀)하면 ‘야마토’(やまと)라고 합니다.
‘두산동아(斗山東亞)’ 출판사(出版社)의 <현대활용옥편(現代活用玉篇)>에 따르면, ‘倭’의 본음(本音)은 ‘와’라고 합니다. 이것은 일본어(日本語)의 음독(音讀)과 똑같습니다.
‘倭’의 본음(本音)인 ‘와’는 ‘하’가 변화(變化)된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어(日本語)에서는 ‘하’를 ‘와’로 발음(發音)하는 경우(境遇)가 있습니다.
예(例)를 들면, 문장(文章)에서 ‘は’(하)는 주격(主格) 조사(助詞)로 사용(使用)될 때에 ‘わ’(와)로 발음(發音)됩니다. 발음(發音)의 편의상(便宜上) 자연(自然)스럽게 바뀌는 것입니다.
‘하’는 본래(本來) 태양(太陽)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보이며, 편의상(便宜上) ‘해’, ‘히’와 같은 소리로 변화(變化)되었습니다. 이것은 고대(古代)의 태양신(太陽神) 숭배(崇拜)와 깊은 관계(關係)가 있습니다.
‘야마토’(やまと)라는 낱말 또한 어원적(語源的)으로 태양신(太陽神)에 관련(關聯)됩니다.
결국(結局), 왜(倭)라는 낱말은 태양신(太陽神) 숭배(崇拜)를 나타내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럼, ‘남왜’(南倭)와 ‘북왜’(北倭)라는 표현(表現)이 등장(登場)한 배경(背景)을 살펴보겠습니다.
<산해경(山海經)>에 나오는 “蓋國在鉅燕南倭北倭屬燕”(개국재거연남왜북왜속연)이라는 문구(文句)를 일본(日本)의 역사학자(歷史學者)들이 에도(江戶; えど) 시대(時代)까지는 “蓋國在鉅燕”과 “南倭北倭屬燕”로 구분(區分)하여 “개국(蓋國)은 거연(鉅燕)에 있다. 남왜(南倭)와 북왜(北倭)는 연(燕)에 속(屬)한다”고 해석(解釋)한 것에 유래(由來)합니다.
메이지(明治; めいじ) 시대(時代)부터는 “蓋國在鉅燕南, 倭北. 倭屬燕”으로 구분(區分)하여 “개국(蓋國)은 거연(鉅燕)의 남(南), 왜(倭)의 북(北)에 있다. 왜(倭)는 연(燕)에 속(屬)한다”고 해석(解釋)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쪽이 합리적(合理的)이고 진실(眞實)에 가까울까요?
필자(筆者)가 생각하기에는, 이와 비슷한 지리적(地理的) 위치(位置)들을 <산해경(山海經)>에서 얼마나 일관성(一貫性) 있게 문장(文章)으로 표현(表現)하고 있는지를 먼저 고찰(考察)하여야 한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蓋國在鉅燕南倭北倭屬燕”(개국재거연남왜북왜속연)이라는 문구(文句)만을 특이(特異)하게 해석(解釋)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서왜’(西倭)는 어떠한 유래(由來)가 있을까요?
다음은 <南史(남사)> 동이(東夷) 조(條)의 왜(倭)에 관한 내용(內容)입니다.
<梁書(양서)>에서도 비슷한 문구(文句)가 나옵니다.
扶桑在大漢國東二萬餘里, 地在中國之東.
부상(扶桑)은 대한국(大漢國)의 동쪽 2만여리에 있고, 그 땅은 중국(中國)의 동(東)쪽에 있다.
大漢國在文身國東五千餘里.
대한국(大漢國)은 문신국(文身國)의 동(東)쪽 5천여리에 있다.
文身國在倭東北七千餘里.
문신국(文身國)은 왜(倭)의 동북(東北)쪽 7천여리에 있다.
위에 인용(引用)된 기록(記錄)만을 살펴보면,
각(各) 나라들의 위치(位置)는 대략(大略) 서(西)쪽에서 동(東)쪽으로,
왜(倭) → 문신국(文身國) → 대한국(大漢國) → 중국(中國) → 부상(扶桑)의 순서(順序)로 배치(配置)됩니다.
여기서 ‘부상’(扶桑)의 위치(位置)는 ‘왜’(倭)와 분명(分明)히 다르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부상’(扶桑)과 ‘왜’(倭)는 별개(別個)라는 뜻입니다.
중국(中國)을 중원대륙(中原大陸)이라고 전제(前提)한다면,
왜(倭)는 서(西)-아세아(亞細亞)의 끝에 있었다는 논리(論理)가 성립(成立)됩니다.
그런데 문제(問題)는 왜(倭)-문신국(文身國)-대한국(大漢國)-부상(扶桑)의 위치(位置)는 상대적(相對的) 거리(距離)로 추측(推測)할 수 있지만, 중국(中國)에 관(關)해서는 그 방향(方向)의 기준(基準)과 거리(距離)가 기록(記錄)되지 않아서 애매(曖昧)하다는 것입니다.
1911년 10월 10일 신해혁명(辛亥革命) 이전(以前)까지 중국(中國)은 특정(特定)한 ‘나라 이름’(國名)이 아니었기 때문에, <南史(남사)> 동이(東夷) 조(條)에서 대한국(大漢國), 문신국(文身國)과 같은 ‘나라 이름’(國名)들과 함께 중국(中國)이 나온다는 것은 매우 어색(語塞)하므로 무언가 다른 의미(意味)가 있다고 보입니다.
중국(中國)이라는 낱말에는 무엇보다 ‘땅’의 의미(意味)가 강(强)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므로 ‘땅 이름’(地名)에 가깝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南史(남사)> 동이(東夷) 조(條)에서 “地在中國之東” 곧 “그 땅은 중국(中國)의 동(東)쪽에 있다”고 하는 문구(文句)가 성립(成立)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질(性質)이나 성격(性格)이 같은 것끼리 서로 비교(比較)되어야 자연(自然)스럽기 때문입니다.
특정(特定) 사서(史書)의 특정(特定) 문구(文句)만을 가지고 분석(分析)하면 과정(過程)이나 결론(結論)에 오류(誤謬)가 발생(發生)할 수 있습니다.
가급적(可及的) <南史(남사)>와 <梁書(양서)> 이외(以外)의 다른 역사(歷史) 기록(記錄)들도 함께 검토(檢討)하여야 합니다.
만약(萬若) 서로 양립(兩立)할 수 없는 기록(記錄)들이 있다면, 어느 쪽이 진실(眞實)에 가까운 것인지를 최우선적(最優先的)으로 판단(判斷)하여야 합니다.
또한 사서(史書) 자체(自體)의 특성(特性)과 오류(誤謬)도 감안(勘案)하여야 합니다.
특(特)히, 중국(中國) 25사(二十五史)는 19세기(十九世紀) 말엽(末葉)~20세기(二十世紀) 초엽(初葉)의 격변기(激變期) 이후(以後)에 왜곡(歪曲)/날조(捏造)되었다고 하므로, 그것을 분석(分析)하려면 세밀(細密)한 주의(注意)가 필요(必要)합니다.
참고(參考)로 언급(言及)하면, 일본인(日本人) 학자(學者) ‘타카하시 타츠오’(高橋 龍雄; たかはし たつお)는 그의 책(冊) <대일본국호고(大日本国号考)>[pp.61~64, 同文館, 1900年]에서 ‘부상국’(扶桑國)을 ‘멕시코’(Mexico)에 비정(比定)하였습니다. 이것은 ‘일본’(日本)을 ‘부상’(扶桑)으로 간주(看做)하는 기존(旣存)의 일반적(一般的) 견해(見解)와 명백(明白)히 다릅니다.
멕시코(Mexico)는 태양신(太陽神) 숭배(崇拜)와 대규모(大規模) 인신공양(人身供養)으로 유명(有名)한 아즈텍(Aztec) 문명(文明)과 마야(Maya) 문명(文明)이 존재(存在)하였던 곳입니다. ‘부상’(扶桑)이라는 낱말이 어울리는 지역(地域)이라고 생각됩니다.
마지막으로, ‘동왜’(東倭)는 무엇일까요?
이것은 일반적(一般的)으로 알려진 왜(倭)를 가리킵니다.
다시 말하면, 임진왜란(壬辰倭亂)을 일으킨 왜(倭)라는 뜻입니다.
<대륙사관(大陸史觀)>에 따르면, 동왜(東倭)는 대개(大槪) 중원대륙(中原大陸)의 동(東)쪽과 동남(東南)쪽에서 활동(活動)하였던 왜(倭)를 말합니다.
참고(參考)로 부언(附言)하면, 강항(姜沆, 1567년~1618년)이 저술(著述)한 <간양록(看羊錄)>의 ‘적중봉소’(賊中封疏)에는 아래와 같은 문구(文句)가 나옵니다.
“경서(京西)의 여러 왜(倭)가 이미 우리나라(=朝鮮)에 와서 지치게 되자, 수길(秀吉; 豊臣 秀吉; とよとみ ひでよし; 토요토미 히데요시; 풍신 수길)은 또 경동(京東)의 여러 왜(倭)를 지치게 하고자 하여 동왜(東倭)의 병졸(兵卒)들을 산성주(山城州) 복견리(伏見里) 우치하(宇治河) 가에다가 모두 집합(集合)시키고, 왕경(王京)과의 10리쯤의 거리(距離)에 새로 성(城)을 쌓고 고산(高山)의 마루턱을 무너뜨려서 궁실(宮室)을 지었었다.”
[출처=한국고전종합DB, http://db.itkc.or.kr/itkcdb/mainIndexIframe.jsp]
여기서 경서(京西)는 왜경(倭京)의 서(西)쪽을 말하며, 경동(京東)은 왜경(倭京)의 동(東)쪽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산성주(山城州) 복견리(伏見里) 우치하(宇治河)는 왜국(倭國)의 지명(地名)입니다.
따라서 경서(京西)의 왜(倭)는 곧 서왜(西倭)이고, 경동(京東)의 왜(倭)는 곧 동왜(東倭)입니다.
<간양록(看羊錄)>의 동왜(東倭)는 왜국(倭國)의 왕경(王京)을 기준(基準)으로 만들어진 낱말입니다. 그래서 각종(各種) 역사(歷史) 문헌(文獻)을 해석(解釋)할 때에는 동서남북(東西南北)의 기준(基準)은 무엇인지를 먼저 파악(把握)하여야 합니다.
필자(筆者)는 지금까지 동왜(東倭), 서왜(西倭), 남왜(南倭), 북왜(北倭)라는 낱말들이 어떠한 연유(緣由)로 나오게 되었는지를 정리(整理)하였습니다.
결론적(結論的)으로, ‘왜’(倭)를 어떻게 정의(定義)하는가에 따라 동왜(東倭), 서왜(西倭), 남왜(南倭), 북왜(北倭)라는 표현(表現)의 타당성(妥當性)이 확보(確保)된다고 보입니다.
천자(天子)가 통치(統治)하지 않는 국가(國家)들 또는 중국(中國)의 통치(統治)를 받지 않는 종족(種族)들을 모두 ‘왜’(倭)라고 넓게 정의(定義)한다면,
동이(東夷), 서융(西戎), 남만(南蠻), 북적(北狄) 또는 동이(東夷), 서이(西夷), 남이(南夷), 북이(北夷)는 동왜(東倭), 서왜(西倭), 남왜(南倭), 북왜(北倭)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다만, ‘동왜’(東倭)가 존재(存在)하니까 그 반대(反對) 개념(槪念)의 ‘서왜’(西倭)도 당연(當然)히 존재(存在)하여야 한다는 논리(論理)는 타당(妥當)하지 않습니다.
동서남북(東西南北)이라는 지리적(地理的) 방향(方向)만을 감안(勘案)하면 그것이 타당(妥當)하지만, 역사(歷史)와 인간(人間)이라는 문제(問題)가 제기(提起)되므로 반드시 그렇다고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필자(筆者)의 생각으로는, 사이(四夷) 곧 동이(東夷), 서이(西夷), 남이(南夷), 북이(北夷)는 고대(古代)에 태양신(太陽神)을 숭배(崇拜)하였던 집단(集團)의 후예(後裔)이었고 ‘천문’(天文)을 중시(重視)하였다고 보이며, 고대(古代) 샤머니즘(Shamanism)의 몰락(沒落)으로 인(因)하여 후세(後世)에는 ‘경문’(經文) 중심(中心)의 유교(儒敎) 사상(思想) 때문에 중국(中國)의 천자(天子)는 그들을 모두 ‘오랑캐’로 취급(取扱)하게 되었다고 보입니다.
왜냐하면 중화(中華)는 유학(儒學)의 중용사상(中庸思想)을 바탕으로 소화(小華)가 모여 이루어지는 것이었고 ‘오랑캐’는 소화(小華)의 자격(資格)을 인정(認定)받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역사(歷史)의 진실(眞實)을 제대로 규명(糾明)하기 위해서는, 연구자(硏究者)들이 무작정(無酌定) 동조(同調)하는 행위(行爲)보다는 관련(關聯) 근거(根據) 자료(資料)들을 충분(充分)히 확보(確保)하여 “동왜(東倭), 서왜(西倭), 남왜(南倭), 북왜(北倭)”라는 키워드(Keyword)를 앞으로 철저(徹底)히 검증(檢證)하여야 한다고 필자(筆者)는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