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筆者 註]
이른바 ‘有明朝鮮’(유명조선)이라는 표현(表現)의 진정(眞正)한 의미(意味)를 살펴보고자 <일성록(日省綠)>의 일부(一部)를 아래에 인용(引用)합니다.
<일성록(日省綠)>
정조 5년(1781년) 2월 20일(계해)
성정각(誠正閣)에서 봉조하(奉朝賀) 서명응(徐命膺)을 소견(召見)하였다.
〇 내가 이르기를,
“회전(會典)을 찬집(纂輯)하는 일에 대해 경은 들었는가?”
하니, 서명응이 아뢰기를,
“유의양(柳義養)에게서 들었는데, 이처럼 편찬한다면 좋겠으나 그 법례(法例)를 정한 뒤에야 일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하여, 내가 이르기를,
“《경국대전(經國大典)》, 《속대전(續大典)》,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를 합하여 엮는다면 과연 좋을 것이나, 인물고(人物考)가 빠지는 것이 흠이니,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하니, 서명응이 아뢰기를,
“인물고를 함께 붙이려 하여도 취사(取捨)하는 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육전(六典)과 인물을 두 책으로 기록한다면 좋을 듯합니다.”
하였다. 내가 이르기를,
“책명(冊名)을 ‘조선회전(朝鮮會典)’으로 정하려 하니 옛날에 기자조선(箕子朝鮮)과 위만조선(衛滿朝鮮)의 칭호가 있었기 때문에 혼칭(混稱)될 혐의가 있을 듯하다. ‘소대회전(昭代會典)’으로 이름을 지으면 어떻겠는가?”
하니, 서명응이 아뢰기를,
“만일 ‘소대’로 이름을 지으면 나라의 구별이 없을 듯합니다. ‘유명조선(有明朝鮮)’으로 이름을 짓게 되면 《춘추(春秋)》를 높이는 뜻을 붙일 수 있어 이름을 표정(表定)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여, 내가 이르기를,
“이 또한 세상이 멀리 떨어지고 시대가 다르다.”
하니, 서명응이 아뢰기를,
“ ‘해동(海東)’으로 명명한다면 혹 마땅할 듯합니다.”
하여, 내가 이르기를,
“이 또한 고금(古今)의 구별이 없다. 다만 지금 법례(法例)를 경이 잘 정해야 할 것이다.”
하니, 서명응이 아뢰기를,
“의당 육전으로 하는 법례를 따르되, 그 안에 각각 해사(該司)를 쓰고 사적(事蹟)을 싣는 것이 마땅할 듯합니다.”
하였다. 내가 이르기를,
“선조(先朝)의 전례(典禮)는 그 사적을 두루 실을 경우에는 혹 뒤섞여 분간할 수 없는 폐단이 있을 것이니, 이번에는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를 참고하여 조목(條目)을 나누어 상세히 기록하여 명색(名色)을 정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하니, 서명응이 아뢰기를,
“육조(六曹)에는 판당(判堂)을 처음에 쓰고, 각조(各曹)는 서료(庶僚)들을 그 아래에 열록(列錄)하고 해야 할 일로 그 조목을 싣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였다. 내가 이르기를,
“《전례통고(典禮通考)》를 경은 보았는가?”
하니, 서명응이 아뢰기를,
“아직 보지 못하였습니다.”
하여, 내가 이르기를,
“이것은 4전(典)과 《국조오례의》를 합하여 편찬한 것이니, 이 법례를 본떠서 완성하면 좋을 것이다.”
하였다. 서명응이 아뢰기를,
“정원(政院)은 육방(六房)을 총괄하니, 이 또한 육방으로 나누어서 체제를 정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하여, 내가 이르기를,
“《정원일기(政院日記)》는 이미 화재를 겪어서 또한 상고할 만한 것이 없다.”
하니, 서명응이 아뢰기를,
“《동국문헌비고》 또한 각각의 사람이 편찬하여 난잡한 부분이 많으니, 사실대로 상고하여 살피는 것이 마땅할 듯합니다.”
하여, 내가 이르기를,
“그렇다. 반드시 간략한 쪽으로 연역(演繹)하되, 과거의 수교(手敎)가 있는 것도 연역 속에 넣도록 하라. 《동국문헌비고》는 거의 유취(類聚)와 같으니 이것이 흠이다. 이 책은 《동국문헌비고》와 그 법례를 조금 다르게 하여 편찬하도록 하라.”
하였다. 서명응이 아뢰기를,
“우리 조정은 육관(六官) 이외에 또 다른 관사(官司)가 있는데, 어떻게 법례를 정합니까?”
하여, 내가 이르기를,
“각각의 절목(節目) 아래에 그에 해당되는 관사를 쓰면 구별하는 방도가 될 듯하다. 연역할 때에 현재의 전장(典章)을 빠뜨리는 일이 없게 하라.”
하였다. 서명응이 아뢰기를,
“신의 좁은 소견으로는 임의로 필삭(筆削)하고 취사(取捨)하기 어려운 점이 있으니, 상께서 헤아려 정하시는 것이 합당할 듯합니다.”
하여, 내가 이르기를,
“이것은 어려울 것이 없다. 재용(財用)은 모두 한 편(編)에 쓰고, 율문(律文) 또한 한 편에 싣는 것이 매우 좋을 듯하다.”
하니, 서명응이 아뢰기를,
“《대명률(大明律)》은 다 싣기 어렵습니다.”
하여, 내가 이르기를,
“지금 쓰여지는 것이 모두 《대명률》인데 어떻게 줄일 수 있겠는가.”
하니, 서명응이 아뢰기를,
“그렇지만 그 문장을 폭넓게 실으면 너무 번잡하게 되는 폐단이 생기게 됩니다.”
하여, 내가 이르기를,
“그중에서 너무 번잡한 것을 제외시키면 무방할 듯하다.”
하니, 서명응이 아뢰기를,
“율문을 편집하게 되면 문세(文勢)의 격이 떨어질 듯합니다.”
하여, 내가 이르기를,
“경은 노련한 사람이니 반드시 잘 편집할 것이다.”
하였다. 서명응이 아뢰기를,
“이것은 전고(典古)의 자료이니, 상세히 고찰하고 빠짐없이 기록하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하여, 내가 이르기를,
“전장(典章), 문물(文物), 예악(禮樂), 형정(刑政)이 모두 여기에 있으니, 반드시 빠짐없이 수록하되 《동국문헌비고》의 법례처럼 되지 않게 하라.”
하였다. 서명응이 아뢰기를,
“오늘날의 찬술(撰述)은 모두 옛날의 찬술보다 못합니다. 《주례(周禮)》는 육관(六官)으로 위차(位次)를 정하였으니 의당 이 예(例)에 따르되, 인물고는 쌍행(雙行)으로 싣는 것이 매우 합당할 듯합니다.”
하여, 내가 이르기를,
“경이 나가서 잘 하도록 하라.”
하였다.
[출처=한국고전종합DB, http://db.itkc.or.kr/itkcdb/mainIndexIframe.j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