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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청나라...두 개의 복식.

작성자홍진영|작성시간10.07.29|조회수7,020 목록 댓글 102

 밑의 강희제 사냥도엔...

청나라 관리들의 ..옷(평상복?)이 잘 그려져 있습니다.

 

연행록이나 사행록에 표현됀 달단의 복식관 많이 다릅니다.

 

청제국은 각 여진제족들의 연합제국이니...

몽골족과 달단족(타타르),키타이(금나라0복장이 애초부터 차이가 좀 있었다 보여지는 대목입니다.

 

 

어쨋거나,..

위의 강희제 수행관리들의 복식은...연행록에 나온 그 청나라인들의 복장관 차이가 많습니다.

전 저 복장이 원래 키타이(금나라)여진의 복장이 아닐지 싶습니다.

 

저 수행원들 두루마기여...

현재의 몽골인들 전통(일반)복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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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에,청나라 방문하는 조선인의 기록을 해석한 글중...청나라인들 복장에 관한 글을 보겠습니다.

 

 

중국(청나라)의 복식은 귀천에 따라 소박하고 화려함의 차이만 있지...

그 스타일이 모두 한가지라 했습니다.

 

다만, 모정과 관대(혁띠),보복(朝復)의 동물문양만 다르다 했습니다.

여름관모...겨울관모...?

 

밑 사진의 순친왕 재풍과 같은 마래기(태평관)태두리에...

신분에따라 동물들의 모피를 두르는게 겨울 ...그냥 홍모(빨간 모직실)로만 덮는게 여름 관모랍니다.

겨울모자라 김홍필선생께서 주장하시는...우리가 기록사진으로 본 그 강시모자가 아닙니다.

 

똑같은 모자(마래기,태평관)에...

겨울엔 모피로 장식...여름에 그냥 붉은실로 장식..이거만 차이가 나며...

 

황제나 귀족의 경우...그 홍모의 숫자나 두깨가 더 두껍고 층층이 겹치는 식이랍니다.

 

 

연행사들이 증언한 청나라 관모에 두르는 겨울철 모피둘레장식 디자인은여...

차리리 몽골이나 러시아의 전통방한모나...6.25때의 중공군들 방한모와 더 유사하다 하겠습니다.

 

 

청조의 관복은...

보복외에도 모정과 관대(혁띠)로 그 계급을 구분했다는데...

구한말의 강시모자 쓴 애들 중 하급 애들은 전혀 혁띠도 없는 복식이니 더 의심스럽고여...

 

청나라가 언제부터 관모와 복식을 대폭 개량했는지 의심스러우니...

1860년 북경이 프랑스에 도륙당한 연후엔...

연행사들이 목격했던 그 청나라 복식의 주인들은 북경황궁에 없었다 보는게 맞아 보입니다.

 

러시아쪽에서 치고 넘어온 타타르와...

서남아에서 양이들에 엎여 들어온...무굴의 잔당(고종세력?)들이 뒤섞여...

새로운 개량복이 필요했던 것은 아닐지 의심스럽고...그게 대원군의 복식개량 역사 아닐지 의심스럽습니다.

 

 

대륙조선 홍수전의 태평천국군들은...

연행사들이 목격한 그 청나라(키타이)인들을... 흥한멸만(興漢滅蠻)의 그 오랑케 만주족이라 했다기 보단...

밀려드는 러시아 타타르나 서남아 무굴의 잔당들을 멸하잔 의미의 그 만(蠻)이였을지 싶습니다...?

 

현 만주는...

진,청(친,)으로...무쿠리로도...안동(安東),요동(僚東)으로도 불리던 키타이(금나라)와 청구조선 지역였을 뿐인데...

구한말의 섬 원숭이들이...

대륙조선족들과...만족(蠻=무굴족)인 대원군파와 서방 달단족들을 다 짬뽈시켜 이 지역에 거수국을 건설했기에...

그 국명도...청(淸)과는 전혀 무관한...서역 몽골잔당들을 통칭하던 만(滿)이 돼지 않았을지 싶습니다.

명(明=멘=몽)과도 무관치 않은 국명이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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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복식 제도는 천자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검박하고 사치한 구별은 있지만 그 제도는 모두 한가지다. 작위와 품계의 고하(高下)는 오직 모정(帽頂: 모자의 끝 모양)과 보복(補服: 중국 청(淸)나라 때에 문무관(文武官)이 입던 예복)으로 구별한다.

모자
모자는 태평건(太平巾)이라고도 하는데, 우리나라의 ‘마래기’라고 하는 것으로서 겨울에는 우단(羽緞: 비단)으로 된 것을 썼다. 초피(貂皮: 담비가죽)로 그 가장자리를 꾸미고 붉은 실끈으로 그 위를 덮었다. 형편에 따라 호피(狐皮: 여우가죽), 달피(獺皮: 수달가죽) 같은 것을 섞어 쓰기도 하고, 전모(氈帽: 털모자)를 쓰기도 했다. 그 모양은 우리나라의 감투와 같으며 그 끝을 말아서 모자의 전을 만들었다.

조모와 조복제도


[청나라 문관의 복식]

조모(朝帽: 관복에 쓰이는 모자)에 쓰는 붉은 끈의 두께는 1치쯤 되고, 정자(頂子)에는 새기는 무늬가 있는데, 길이가 몇 치는 되며 위에는 품석(品石)을 달았다. 속옷은 망의(衣)를 쓰고 거기에다 보복(補服)을 더 입었다. 보복에는 각각 품상(品象)이 그려져 있다. 5품 이상의 문관이나 한원(翰苑)의 제관(諸官)들은 목에 구슬끈을 두르는데, 금패(金貝), 목난(木難: 황색 보석의 일종), 호박(琥珀) 등으로 장식했다.

1품 대신과 친왕(親王)의 세자, 군왕(郡王)의 장자(長子), 그리고 패륵(貝勒)과 패자(貝子) 벼슬은 홍보석 정자(紅寶石頂子)에 망포 옥대(袍玉帶)와 선학 보복(仙鶴補服)이며, 방석은 겨울은 이리 가죽[狼皮], 여름에는 홍전(紅氈)이다.
2품 및 보국 장군(補國將軍)은 산호 정자(珊瑚頂子)에 망포 금대(袍金帶)와 금계 보복(錦鷄補服)이었다. 방석은 겨울에 너구리 가죽[皮], 여름에는 홍전이다.
3품 및 봉국 장군(奉國將軍)은 남보석 정자(藍寶石頂子)에 망포 금대와 공작 보복(孔雀補服)이었다. 방석은 겨울에 초피(貂皮), 여름에는 홍전이다.
4품 및 봉은 장군(奉恩將軍)은 청금석 정자(靑金石頂子)에 망포 금대와 운안 보복(雲雲鴈補服)이었다. 방석은 겨울에는 산양 가죽[野羊皮], 여름은 홍전이다.
5품은 수정 정자(水晶頂子)에 망포 금대와 백한 보복(白補服)이었다. 방석은 겨울은 검은 양피[靑羊皮], 여름에는 백전(白氈)이다.
6품은 거거 정자(車頂子: 거거는 옥 이름)에 망포 대모대(袍玳瑁帶)와 노사 보복(鷺補服)이었다. 방석은 겨울은 염소 가죽[黑羊皮], 여름에는 백전이다.
7품은 소금 정자(素金頂子)에 망포 은대(袍銀帶)와 계척 보복(鸂鶒補服)이었다. 방석은 겨울은 녹비(鹿皮), 여름에는 백전이다.
8품은 상금 정자(常金頂子)에 망포 양각대(袍羊角帶)와 암순 보복(鵪鶉補服: 암순은 메추리)이었다. 방석은 겨울은 포피(?皮), 여름에 백전이다.
9품은 상은 정자(常銀頂子)에 망포 오각대(袍烏角帶)와 연작 보복(練雀補服)이었다. 방석은 모두 개 가죽[狗皮]이다.

진사(進士)와 거인(擧人)ㆍ공생(貢生)은 모두 금정(金頂)이고, 생원(生員)ㆍ감생(監生) 들은 모두 은정(銀頂)을 쓰며, 평상시의 모정(帽頂)도 이에 준하여 만든다.

노가재는 그의 『연행일기(燕行日記)』에서, “이와 같은 복색들은 비록 한족(漢族)들의 제도는 아니지만, 귀천(貴賤)의 품급(品級)만은 자못 분명하다”고 하여, 품급의 구별은 띠와 관자(貫子)에만 표시되어 있고, 문무와 귀천의 구별이 없는 조선의 보복(補服)에 대하여 탄식한 바 있다.

장옷은 길이가 복사뼈까지 내려가는데, 좁은 소매가 점차로 좁아지다가 부리는 말발굽처럼 생겨 가까스로 손이 들어갈 만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일이 없을 때는 이것을 말아올렸다가 공경할 일이 있을 때면 드리워서 손등을 덮었다. 색깔은 검은 것을 숭상하지만 혹 자줏빛을 쓰기도 했다. 넓은 띠는 비단 또는 가죽으로 만들며 빛깔은 역시 검은데 이것으로 몸을 조여 맸다.

남자들의 의복

[청나라 일반 남자의 복식]
남자들의 의복은 부자거나 사치한 사람이 아니면 모두 굵은 베를 쓰며, 귀천에 관계없이 모두 헝겊신을 신었다. 이 신은 모두 검은 비단으로 되어 있는데, 털을 싼 무명을 바닥에 깔아 놓아 부드럽고 질기다.

상하 의복에는 허리띠나 옷고름 같은 것이 없고 모두 홑단추를 썼다. 바지 역시 좁아서 겨우 다리통이 들어갈 정도인데, 허리 아래쪽은 꿰매지 않고 터놓아 마치 우리나라 어린이들이 입는 개구멍바지와 같다. 다만 단추만으로 양쪽을 연결하고 있어 용변(用便) 볼 때 편하게 되어 있다. 버선 길이는 가죽신과 같은데 무릎 아래쪽에다 잡아매어 놓았다. 그래서 앉을 때는 반드시 의자나 탁자에 걸터앉고 아주 부득이한 일이 아니면 잠시도 웅크리고 앉거나 꿇어앉지 않았다.

갖옷을 입을 때는 반드시 뒤를 터놓으니, 이는 말을 탈 때 편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종친(宗親)이나 각라(覺羅: 청나라의 황족)들은 양편을 한 자쯤 터놓아 스스로 구별이 되게 했다. 이 밖의 여러 가지 복식은 만(滿)ㆍ한(漢)의 구별이 없다.

여자들의 의복
여자는 만주인(滿洲人)ㆍ한인(漢人)을 막론하고 모두 비단으로 옷을 해 입고 분화장에 꽃을 꽂는다. 한인 여자들은 전족을 하기 때문에 얼핏 보면 꼭 나막신을 신은 것같이 보이고, 전족을 하지 않는 청족 여인들의 신발은 남자의 것과 같았다. 모두 채색 비단으로 만들어 사치스럽다.

부인의 복식은 아직도 화제(華制)를 쓰는데, 만ㆍ한이 대략 같다. 그 바지는 남복과 비슷하나 조금 넉넉하다. 어쩌다가 큰 소매에 긴 치마 입은 것을 보면 길이가 거의 땅바닥까지 끌리는데, 소매가 무척 넓고 아래에는 잔주름이 많은 치마를 입었다.

여자는 노소를 막론하고 모두 머리카락을 뒤로 넘겨 상투처럼 쪽을 찌는데, 속은 비게 하고 그 끝을 말아 올린 것이 3ㆍ4구비는 됨직하다. 검은 비단으로 이마를 두른 것은 우리나라의 망건(網巾)과 같은데 이름을 전두(纏頭)라 하며, 여기에 조그만 구슬을 꿰어 장식을 해 놓았다. 그리고 돌아가며 작은 비녀들을 꽂아서 상투를 버티게 했는데 이는 모두 금옥(金玉)과 산호(珊瑚) 같은 것으로 되어 있다.

좌우에 차는 물건은 아주 번다하다. 수놓은 주머니를 속명으로 하포(荷包) 또는 빙구자(憑口子)라 하는데, 거기에다 담배주머니ㆍ담배쌈지ㆍ빈랑(檳)ㆍ차(茶)ㆍ향(香) 등의 물건은 물론 반포(斑布: 베) 수건ㆍ부채ㆍ장도(粧刀)ㆍ부시 등의 물건도 모두 넣었다. 칼을 장식하는 데는 흔히 어피(魚皮)를 사용하고, 여기에다 상아(象牙) 뼈로 된 쌍 젓가락을 꽂기도 하고 또 혹은 쇠사슬을 매 놓기도 하였다. 이는 길을 가다가 도둑을 만나거나 할 때를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

학생의 복식
학생들로서 시구(詩句)를 배우는 이들은 모두 수진 시운(袖珍詩韻: 소매 속에 넣을 만한 작은 시운)을 차고 다녔다. 남녀를 물론하고 시계[時牌]를 차고 다니는 이들이 많았으며, 또 여름이 아니면 부채를 들고 다니지 않았다.

옷 동정에는 두꺼운 털을 달아 추위를 막고, 또 비단 조각을 붙이거나 혹은 털로 배접을 해서 귀를 가리는 도구로 하였다. 휘양[揮項: 머리에 쓰는 방한구의 한 종류]이라든가 풍차(風遮: 머리에 쓰는 방한구의 한 종류. 풍채)ㆍ이엄(耳掩: 관복을 입을 때 사모 밑에 쓰는 방한구) 따위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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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의 청나라 황제들 복식을 보자면...

관모형태가 내내 일정하다가...청조 말기에 급격히 바꿈을 알 수 있습니다.

 

부의는...청나라 복식도 아닌...

정체불명의 황제복을 입고있는 겁니다.

아마도 만주국 개국당시에...중앙아&중원의 제족들 복식 전부를 짬봉한 개량복식 아닐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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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 황제들| 중국 역사와 문화

syb6697 조회 120 | 2009.04.26. 03:28 http://cafe.daum.net/cz0603/69HS/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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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 황제들

 누얼하츠 (청나라 첫번째 황제)

 

 황타이지 (청나라 두번째 황제)

 

 쑨쯔 (청나라 세번째 황제)

 

 캉씨 (청나라 네번째 황제)

 

 융쩡 (다섯번째 황제)

  

 쟈칭 

 

 또우꽝

 

쌔앤펑 

 

 투웅쯔

 

꽝쒸이

 

 아이씬좨뤄 푸이(청나라 마지막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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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신:

 

 

밑의 글에 호랑이 가죽...이대목은 당연히 깔고 앉는 방성으로 알긴 알았었는데...

문제의 위엣글 독해에선...

 

모자는 태평건(太平巾)이라고도 하는데, 우리나라의 ‘마래기’라고 하는 것으로서 겨울에는 우단(羽緞: 비단)으로 된 것을 썼다. 초피(貂皮: 담비가죽)로 그 가장자리를 꾸미고 붉은 실끈으로 그 위를 덮었다. 형편에 따라 호피(狐皮: 여우가죽), 달피(獺皮: 수달가죽) 같은 것을 섞어 쓰기도 하고, 전모(氈帽: 털모자)를 쓰기도 했다. 그 모양은 우리나라의 감투와 같으며 그 끝을 말아서 모자의 전을 만들었다.

요...요  구절땜에...

 

관모와 조복 설명글의 동물모피 방석이란 문장을...모자 테두리 장식으로 ..제가 오인한듯 합니다.

이점 깔고 앉는 방석으로 수정하겠습니다.

 

연일 실수를 해 죄송합니다...제 무식이 날로 티가 납니다...ㅡ. .ㅡ

 

 

어쨋거나 중요한 건...

우리가 아는 청나라 복식인 삿갓형과 강시모자형...모두는...

 연행사들이 목격한 그 청나라인들의 관모가 아님이 중요함을 강조하는 바입니다.

 

김선생님의 말장난 꼬투리 잡기가...요 실수를 쑤시고 들어와...

또 한 층 가열차게 스피드를 받아...더 기고만장하실듯 하여...참으로 우려스럽습니다...ㅡ.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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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김홍필 | 작성시간 10.07.30 다시 강조합니다.
    제가 올려드린, "청조(淸朝) 백관관모(百官冠帽)" 자료는 문제 없습니다.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요...
    "삿갓"형이 여름용이고, "강시"형은 겨울용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김홍필 | 작성시간 10.07.30 단어 하나, 한자 하나에 꼬투리를 잡는 게 아니라고요... 그렇게 생각하시면 발전하기 어렵습니다.
    잘못된 분석이라고 제가 하나 하나 지적하는 겁니다.
  • 답댓글 작성자김홍필 | 작성시간 10.07.30 이런식의 댓글용 답글로 당 연구회의 게시판 수준을 떨어트리지 않으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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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말씀하셨는데요.... 착각하시네요...

    홍진영 선생님의 허무맹랑한 주장이 본 카페의 수준을 떨어뜨립니다.
  • 답댓글 작성자김홍필 | 작성시간 10.07.30 저는 홍진영 선생님이 제기하신 주장의 핵심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어요...
    그래서, 그 주장에 불리한 자료로써 제가 흔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무슨 뜻인지 아세요???
  • 작성자김홍필 | 작성시간 10.07.30 홍진영 선생님... 진심으로 충고합니다.
    자기 주장에 불리한 자료라고 해서 온몸으로 거부하시면 너무 티가 납니다.
    합리적으로, 객관적으로, 종합적으로 자료들을 분석하세요. "독해력" 향상 훈련도 좀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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