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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재만 작성시간10.08.28 1) 태조 1년 임신(1392,홍무 25)/ 12월16일 (임술)/ 좌시중 조준이 전문을 올려 평양의 식읍과 도통사의 관직을 사양하다
여러 '왕씨(왕서방)'를 강화도(江華島)·거제도(巨濟島)에 안치(安置)하고는 관에서 미곡(米穀)을 급여하게 하였으니, 한(漢)나라·위(魏)나라 이후로 혁명(革命)한 군주로서는 미치지 못한 바입니다.
이렇게 보면, 북조선군과 중공군을 해당지역으로 몰아 넣은 이유가 나오는 군요... 포로 교환으로 다시 재북송되지 않은 엄청난 수의 포로들은 어떻게 된 것일까요? 특히 1만명이 넘는 엄청난 대병인 중공군들은...
이렇게 보면 서서히 '''6.25 전쟁의 목적'''이 나오는 것이죠... -
작성자 정덕영 작성시간10.08.29 명국의 태조 주원장 일데기를 지나인들이 만든 것을 보면 거지같은 어려운 삶속에서 차자 발전하여 왕이 된 이야기다 주 무대로는 양즈강에서 전투하면서 왕국을 세운 이야기로 원나라군을 무리치기 위하여 양즈강 북쪽으로 잠간 진출 한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만약 조선의 이성계가 머리숙이고 들어온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얼마나 큰 사건인가 대대적으로 자랑을 했을 것을 일언반구 조선과 이성계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없다 그러무로 왜놈의 식민지 백성으로 사는 것에 타당성을 부여 할여고 역사조작 한것이 사실이니
위화도는 양즈강으로 거기서 회군하여 조선왕조 세우고 명에 머리숙인것은 왜놈이 식민지백성 타당성을 꾸민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