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大韓帝國) 순종(純宗) 황제(皇帝)의 마산(馬山) 행차(行次)
[출처=http://cafe.naver.com/golpo.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475]
[筆者 註]
관련(關聯) 기록(記錄)에 따르면, 순종(純宗)은 1909년 1월 7일 오전(午前) 특별궁정열차(特別宮廷列車)를 타고 남대문역(南大門驛)을 출발(出發)하여 대구(大邱)와 부산(釜山)을 거쳐 10일 오전(午前) 11시 25분 마산역(馬山驛)에 도착(到着)하였습니다.
위에 인용(引用)된 그림을 살펴보면, 행렬(行列)이 지나가는 방향(方向)의 도로(道路) 오른쪽(右側)에는 일본식(日本式) 건물(建物)들이 잘 보입니다.
청계천(淸溪川) 책방(冊房)에서 옛날 사진(寫眞)들을 모아서 만든 <1백(一百) 년전(年前) 사진첩(寫眞帖)>이라는 자료(資料)에도 부산(釜山), 마산(馬山), 진해(鎭海), 대구(大邱), 평양(平壤) 등(等)의 인구(人口)가 많은 곳에 일본인(日本人) 상가(商街)가 즐비(櫛比)한 사진(寫眞)들이 있다고 합니다.
다음검색
댓글
댓글 리스트-
답댓글 작성자김재만 작성시간 10.09.01 이에 대하여 집권한 수구파는 전제군주제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왜냐하면, 의회를 개설하여 입헌대의군주제를 만드는 것은 민권을 신장시키고 군권(君權)을 감소시켜 황제의 지위를 약화시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작성자김재만 작성시간 10.09.03 위키백과/정조편: 정조(正祖, 1752년 음력 9월 22일 ~ 1800년 음력 6월 28일)는 조선의 제22대 임금이다.
휘는 성(祘)[1], 자는 형운(亨運), 호는 홍재(弘齋). 사후 시호는 정종문성무열성인장효대왕(正宗文成武烈聖仁莊孝大王)이며 이후 묘호가 정종에서 정조로 바뀌고
'''대한제국 때 선황제(宣皇帝)로 추존'''하고 존호를 더하여 정식 시호는 정조경천명도홍덕현모문성무열성인장효선황제(正祖敬天明道洪德顯謨文成武烈聖仁莊孝宣皇帝)이다.
즉=> 대한제국과 정조는 관련이 있었다라는 이야기 인데요.... -
답댓글 작성자김재만 작성시간 10.09.03 개인적인 시각입니다만, 조선의 마지막 왕은 고종이나 순종보다는 '정조'로 보는 것이 더 적합할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그 이후의 갈등은 그 왕권을 끝가지 유지하려했던 세력과 이미 그것을 버린 세력간의 갈등으로 해석이 가능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
답댓글 작성자김재만 작성시간 10.09.03 대한제국의 한계는 정조이후 왕권에 집착했던 세력의 그룹이 대한제국의 중심세력으로 재 등장했다는 데에 있지 않을런지요?...
-
작성자홍진영 작성시간 10.09.04 조선반도는 동학전쟁 실패후...청일전쟁후... 아니,애저녁의 프랑스의 북경침략 때 부터... 이미 청조의 영향권에서 양이들과 왜노들의 영향권으로 넘어갔다 보이니...
당연 조선반도 남녘 도시들에 섬 원숭이들의 판자집 잡상인 상가가 난립했을 가능성 많다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