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하필기 제3권/ 금해석묵편(金薤石墨編)금해석묵편(金薤石墨編)금해(金薤)는 전서(篆書)의 일종인 도해서(倒薤書)의 미칭인데, 뛰어나게 아름다운 문자를 비유해서 쓰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 편(編)에서 저자는 옛날의 기물(器物) 등에 새겨진 문자를 금해로, 비석류 등에 쓰여 있는 문자를 석묵(石墨)으로 구분해서 사용하였다. 이 편의 내용은, 제3권은 대부분 《금석색(金石索)》에서, 제4권은 《금석색》, 《예석(隸釋)》, 《예속(隸續)》 등의 책에서 뽑아 요약정리해 놓은 것이다./ 천도지속(泉刀之屬)
태호 복희씨(太昊伏羲氏)의 금폐(金幣)는, 살펴보건대 처음으로 구극(九棘)의 화폐를 만들었는데, 방패와 같은 형태에다 용(龍)으로 장식하였다.
○ 갈천씨(葛天氏)의 화폐는, 고문(古文)을 살펴보면 갈(葛) 자는 토(土)를 따랐다. 풍운붕(馮雲鵬)이 또 역하(歷下)에서 한 본을 얻었는데, 갈(堨) 자의 토방(土旁)에 한 획이 적었다.
○ 헌원씨(軒轅氏)의 화폐는, 살펴보건대 헌원은 고제(古帝)의 이름이며 황제(黃帝)가 아니다. 전(錢)에 네 종류가 있다.
○ 신농씨(神農氏)의 화폐는 모양이 반냥전(半兩錢)과 같고 중간에 ‘신(神)’ 자가 있다. 속명은 쇄자전(鏁子錢)이다.
○ 소호씨(少昊氏)의 화폐는 문양에 ‘소호(少昊)’라는 두 글자가 있고 뒷면에는 하나의 곧은 선이 있다.
○ 고양씨(高陽氏)의 화폐는, 무릇 ‘양(陽)’ 자가 있는 것은 모두 고양씨의 화폐이다. 지금 어떤 사람이 평양(平陽)에서 가지고 온 것에는 ‘안양(安陽)’이라는 두 글자가 쓰여 있는 것도 있고, ‘무평(武平)’이라는 두 글자가 쓰여 있는 것도 있으며, 또 ‘양(陽)’이라는 글자가 거꾸로 쓰여 있는 것도 있었다.
○ 요(堯) 임금의 화폐는, 요 임금은 도폐(刀幣)를 통용하였으며 금(金)으로 세 등급을 만들었다.
○ 순(舜) 임금의 화폐는, 순에게는 오폐(五幣)가 있고 또 당금폐(當金幣)와 책마폐(策馬幣)가 있었다.
○ 하(夏)나라 우(禹) 임금의 화폐는 ‘안읍화이금(安邑貨二金)’이라는 다섯 글자가 쓰여 있고, 한 본은 위와 같은 글자가 거꾸로 쓰여 있으며, 또 ‘안읍화일금(安邑貨一金)’이라는 다섯 글자가 거꾸로 쓰여 있는 것이 있다.
○ 상(商)나라 탕(湯) 임금의 화폐는 본래 ‘탕금(湯金)’이라는 두 글자를 왼쪽부터 읽게 되어 있다.
○ 고포폐(古布幣) 대소육품(大小六品)은 포폐 면의 문양이 ‘문(門)’ 자 속에 ‘협(夾)’ 자가 있는 것, ‘대일금(大一金)’이라는 글자가 있는 것, ‘임우일석(林禺一石)’이라는 글자가 있는 것, ‘무안(武安)’이라는 글자가 있는 것, ‘십이(十二)’ 혹은 ‘십사(十四)’라는 글자가 있는 것이 그것이다. 또, 고포(古布) 팔품(八品)이 있는데 포폐 면의 문양이 ‘자금(玆金)’이라는 두 글자를 왼쪽으로 읽게 되어 있는 것, 갈천씨의 화폐인 듯하나 확실하지 않은 것, 두 개의 ‘산(山)’ 자가 가로로 쓰인 것, ‘전지(田至)’라는 두 글자가 있는 것, 왼쪽 편의 ‘지(至)’ 자만을 알아볼 수 있는 것, ‘소금화(小金貨)’라는 세 글자가 거꾸로 쓰인 것, ‘자오금(子午金)’이라는 세 글자가 한 글자는 바르게, 두 글자는 거꾸로 쓰인 것이 그것이다.
○ 고산폐(古鏟幣)는 예전 사람들은 폐(幣)와 같이 보았으나 지금 소장하고 있는 고가(古家)에서는 따로 산폐(鏟幣)로 분류하였다. 그 아래는 단층(單層)이고 위는 협층(夾層)이며 입구가 있다.
○ 주(周)나라의 전(錢)은, 살펴보건대 태공(太公)이 주나라를 위해 구부환법(九府圜法)을 세우고 처음으로 전(錢)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경왕(景王)이 다시 대전(大錢)을 만들고는 ‘보화(寶貨)’라는 글자를 집어 넣었다. 공홍곡(孔葒谷)의 집에 있는 본에는 ‘보육화(寶六貨)’라는 문양이 들어 있고, 계미곡(桂未谷)의 집에 있는 본에는 ‘보사화(寶四貨)’라는 문양이 들어 있다.
○ 제(齊)나라의 도(刀)는, 살펴보건대 제보화(齊寶貨)를 장구(章邱)와 임치(臨淄) 사이에서 왕왕 얻게 되는데, 제길화(齊吉化)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이다. 그 머리에 고리가 있으니 바로 환법(圜法)이다. 고시(古詩)에 “어느 날에나 돌아올 것인가.[何日大刀頭]”라고 하였으니, 대개 도의 머리에 고리가 있기 때문이다. 또 함통(咸通) 연간에 연해(兗海) 백성이 땅을 파다가 무게가 4955근이나 되는 옛날 구리를 얻었는데, 위에 ‘제귀화(濟歸化)’라는 세 글자가 있었으니, 역시 고포(古布)의 종류이다. 지금 그 위에 ‘제(亝)’라는 글자가 있는 것을 인하여 제나라의 도 끝에 붙인다.
○ 즉묵도(卽墨刀)는 그 문양에 ‘즉묵지보화(卽墨之寶貨)’라는 글자가 있다.
○ 거도(莒刀)는 또한 제(齊)나라의 기물로 34종(種)이 있다.
○ 진(秦)나라 전은 ‘반냥(半兩)’이라는 글자가 있다.
○ 한(漢)나라 전은, 살펴보건대 여후(呂后)와 문제(文帝) 때는 모두 반냥전을 사용하였고, 무제(武帝)는 삼수전(三銖錢)과 오수전(五銖錢)을 사용하였으며 또 용폐(龍幣), 마폐(馬幣), 귀폐(龜幣)가 있었다.
○ 왕망(王莽)의 천도포(泉刀布)에는 대천오십(大泉五十)이 있고 보화(寶貨)에 오물(五物), 육명(六名), 이십팔품(二十八品), 금착도(金錯刀)가 있다. 살펴보건대, 금착도에는 황금으로 ‘일도치오천(一刀直五千)’이라는 문양을 아로새겼다.
○ 동한(東漢)의 전은, 살펴보건대 광무제(光武帝)가 중흥하여 오수전(五銖錢)을 다시 사용하였고, 영제(靈帝)는 각전(角錢)을 만들었는데 뒷면의 문양이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형태이며, 헌제(獻帝)의 소전(小錢)에는 윤곽(輪郭)과 문양이 없다.
○ 후한(後漢)의 전은, 살펴보건대 소열황제(昭烈皇帝) 때 사용한 전에는 ‘치백오수(直百五銖)’라는 글자가 있다.
○ 오(吳)나라 전은, 살펴보건대 오나라 대제(大帝)가 ‘대천오백(大泉五百)’을 주조하였고 또 ‘대천당천(大泉當千)’을 주조하였다.
○ 위(魏)나라 전은, 살펴보건대 문제(文帝) 초에 오수전을 다시 사용하였다가 곧 혁파하였으며, 명제(明帝) 때 다시 오수전을 사용하였다.
○ 진(晉)나라 전은, 살펴보건대 태원화천(太元貨泉)은 진 효무제(孝武帝)가 주조한 것인데, ‘태원(太元)’은 진서(眞書)로, ‘화천(貨泉)’은 전서(篆書)로 되어 있으니, 전(錢)에 연호를 사용하는 것이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 송(宋)나라 전은, 살펴보건대 송 문제 때 사수전(四銖錢)을 주조하였고 폐제(廢帝) 때 이수전(二銖錢)을 주조하였다.
○ 남량(南梁)의 전은, 살펴보건대 무제 때 오수전을 사용하였으며, 또 평일백전(平一百錢)이 있었다.
○ 진(陳)나라 전은, 살펴보건대 문제 때 오수전을 고쳐 주조하였는데 하나가 아안전(鵝眼錢)의 열 배 값을 지닌 것이었다. 또 계안목오수전(鷄眼目五銖錢)을 고쳐 주조하였는데, 북위(北魏)의 선제(宣帝)나 서위(西魏)의 문제(文帝) 때 사용한 계목오수전(鷄目五銖錢)과 서로 유사한 것이다. 선제가 또 육수전(六銖錢)을 주조하였는데, 하나가 오수전의 열 배 값을 지닌 것이다.
○ 북위(北魏)의 전에는 태화오수전(太和五銖錢)이 있다.
○ 북제(北齊)의 전에는 상평오수전(常平五銖錢)이 있다.
○ 북주(北周)의 전은, 살펴보건대 무제가 포천(布泉) 일당오(一當五)를 주조하고 또 오행대포(五行大布)를 주조하였다. 선제(宣帝)가 일당십(一當十)을 주조하였는데 ‘영통만국(永通萬國)’이라는 글자가 있고, 또 영통천화(永通泉貨)를 주조하였는데 뒷면에 용과 봉황이 있는 것이 남당(南唐)의 원종(元宗) 때 만든 전과 서로 유사하다.
○ 수(隋)나라 전은 문제가 오수백전(五銖白錢)을 주조하였다.
○ 후조(後趙)의 전은, 살펴보건대 동진(東晉) 때 후조의 석륵(石勒)이 사용한 전에 ‘풍화(豐貨)’라는 글자가 있다.
○ 촉한(蜀漢)의 전은, 살펴보건대 이도(李燾)가 한(漢)을 참칭하여 한흥전(漢興錢)을 주조하였으니, 한 고조 때 주조한 것이 아니다. 또 한흥원보전(漢興元寶錢)이 있다.
○ 당(唐)나라 전은, 살펴보건대 그 문양에 ‘개원통보(開元通寶)’라 쓰인 것이 있다. 고종(高宗)은 건봉천보(乾封泉寶)를 주조하였고, 숙종(肅宗)은 건원중보(乾元重寶)를 주조하였고, 대종(代宗)은 대력원보(大歷元寶)를 주조하였고, 덕종(德宗)은 건중통보(建中通寶)를 주조하였다.
○ 당송(唐宋) 이후로는 통보전(通寶錢)과 원보전(元寶錢)이 날로 많이 쓰였으므로 택하여서 기록한다. 《구보(舊譜)》에, “양주 절도사(楊州節度使) 이신(李紳)이 개원신전(開元新錢)의 뒷면에 ‘창(昌)’ 자를 집어넣어 연호를 표시하여 올렸다. 이에 칙서를 내리니, 마침내 주전소(鑄錢所)에 신칙하여 각각 본주(本州)의 고을 이름을 뒷면 문양에 집어넣도록 하였다. 이에 경조(京兆)는 경(京)으로 표시하였다.” 하였다. 의종(懿宗)은 함통원보(咸通元寶)를 주조하였고, 소종(昭宗)과 애종(哀宗)은 천우통보(天祐通寶)를 주조하였다. 사사명(史思明)은 동도(東都)를 차지하고서 득일전(得一錢)과 순천전(順天錢)이라는 두 위전(僞錢)을 주조하였다.
○ 오대 십국(五代十國)의 전은, 살펴보건대 후당(後唐)의 명종(明宗)은 천성원보(天成元寶)를 주조하였고, 후진(後晉)의 고종(高宗)은 천복원보(天福元寶)를 주조하였고, 후한(後漢)의 고조(高祖)는 한원통보(漢元通寶)를 주조하였다. 후주(後周)의 시 세종(柴世宗 시영(柴榮))은 천하의 동불상(銅佛像)을 부수어서 주원통보(周元通寶)를 주조하였고, 남당(南唐)의 원종(元宗) 이경(李璟)은 당국통보(唐國通寶)와 영통천보(永通泉寶)를 주조하였다. 전촉(前蜀)의 왕건(王建)은 영평원보(永平元寶)를 주조하였고, 왕건의 아들 연(衍)은 함강원보(咸康元寶)를 주조하였으며, 후촉(後蜀)의 맹창(孟昶)은 광정통보(廣政通寶)를 주조하였다. 남한(南漢)의 유공(劉龔)은 건형중보(乾亨重寶)를 주조하였고, 연(燕)의 유수광(劉守光)은 응천원보(應天元寶)를 주조하였다. 초(楚)의 마은(馬殷)은 건봉천보(乾封泉寶)를 주조하고 또 천책부보(天策府寶)를 주조하였다. 민(閩)의 왕심지(王審知)는 개원통보(開元通寶)를 주조하였고, 민의 왕연희(王延羲)는 영륭통보(永隆通寶)를 주조하였고, 민의 왕연정(王延政)은 천덕통보(天德通寶) 일당백(一當百)을 주조하였다.
○ 송(宋)나라 전은, 살펴보건대 송 태조는 송원통보(宋元通寶)를 주조하였고, 태종은 태평통보(太平通寶), 순화원보(淳化元寶), 지도원보(至道元寶)를 주조하였고, 진종(眞宗)은 함평원보(咸平元寶), 경덕원보(景德元寶), 상부원보(祥符元寶), 천희통보(天禧通寶)를 주조하였다. 인종(仁宗)은 천성원보(天聖元寶), 명도원보(明道元寶), 경우원보(景祐元寶), 황송통보(皇宋通寶), 강정통보(康定通寶), 황우원보(皇祐元寶), 지화원보(至和元寶), 가우원보(嘉祐元寶)를 주조하였고, 영종(英宗)은 치평원보(治平元寶)를 주조하였고, 철종(哲宗)은 원우통보(元祐通寶), 소성원보(紹聖元寶), 원부통보(元符通寶)를 주조하였다. 휘종(徽宗)은 성송원보(聖宋元寶), 숭녕통보(崇寧通寶), 대관통보(大觀通寶), 정화통보(政和通寶), 선화통보(宣化通寶)를 주조하였고, 흠종(欽宗)은 정강통보(靖康通寶)를 주조하였다.
남송(南宋)의 고종(高宗)은 건염통보(建炎通寶)와 소흥원보(紹興元寶)를 주조하였고, 효종(孝宗)은 융흥원보(隆興元寶), 건도원보(乾道元寶), 순희원보(淳煕元寶)를 주조하였고, 영종(寧宗)은 경원통보(慶元通寶), 가태통보(嘉泰通寶), 개희통보(開禧通寶), 가정통보(嘉定通寶)를 주조하였다. 이종(理宗)은 소정통보(紹定通寶), 단평통보(端平通寶), 가희통보(嘉煕通寶), 순우원보(淳祐元寶), 순우통보(淳祐通寶) 일당백(一當百)을 주조하였고, 도종(度宗)은 함순원보(咸淳元寶)를 주조하였다.
○ 송나라 동과패(銅銙牌)는, 살펴보건대 그 문양에 ‘준오백문성(準伍佰文省)’, ‘임안부행용(臨安府行用)’이라 하였다.
○ 수가양표동패(隨駕養豹銅牌)는 당송 시대의 기물이다. 그 표면에 적힌 글에, “수가ㆍ양표하는 관군과 용사는 이 패를 찬다. 패가 없는 자는 법률에 따라 논죄하고, 빌린 자 및 빌려 준 자는 죄가 같다.[隨駕養豹 官軍勇士 懸帶此牌 無牌者依律論罪 借者及借與者罪同]” 하였다.
○ 어마감동패(御馬監銅牌)는 어느 시대의 기물인지 알 수 없다. 그 표면에 적힌 글에, “무릇 관의 장수(長隨)는 이 패를 차며, 빌리거나 잃어버리거나 위조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승진한 자는 고쳐 써서 바꾸어 주고 사고가 있는 자는 조사한다. 패가 없는 자는 멋대로 궁금에 들어가지 못하며, 어기는 자는 죄를 다스린다.[凡官長隨懸帶此牌 不許借失僞造 陞遷者改寫兌換 事故者繳監 無牌不許擅入宮禁 違者治罪]” 하였다.
○ 요(遼)나라 전은, 살펴보건대 요 태조는 천찬통보(天贊通寶)를 주조하였고, 경종(景宗)은 건형원보(乾亨元寶)를 주조하였고, 성종(聖宗)은 통화원보(統和元寶)와 태평흥보(太平興寶)를 주조하였고, 흥종(興宗)은 중희통보(重煕通寶)를 주조하였고, 도종(道宗)은 청녕통보(淸寧通寶), 대강통보(大康通寶), 함옹통보(咸雍通寶), 대안원보(大安元寶), 수륭원보(壽隆元寶)를 주조하였고, 말주(末主)인 천조제(天祚帝)는 건통원보(乾統元寶)와 천경원보(天慶元寶)를 주조하였다. 서요(西遼)의 천우제(天祐帝) 소신(蕭臣)은 천감원보(天感元寶)를 주조하였다. 요나라의 소전(小錢)에는 ‘천추만세(千秋萬歲)’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요나라와 송(宋)나라 사이에 사행(使行)이 왕래할 때에 요나라 사람들이 이 돈을 꽤 많이 가지고 중국으로 들어갔다.
○ 금(金)나라 전은, 살펴보건대 해릉왕(海陵王)은 정륭원보(正隆元寶)를 주조하였고, 세종(世宗)은 대정통보(大定通寶)를 주조하였고, 장종(章宗)은 태화중보(泰和重寶)를 주조하였고, 선종(宣宗)은 정우통보(貞祐通寶)를 주조하였다.
○ 원(元)나라 전은, 살펴보건대 무종(武宗)은 지대통보(至大通寶)와 대원통보(大元通寶)를 주조하였고, 인종(仁宗)은 황경통보(皇慶通寶)를 주조하였고, 영종(英宗)은 지치통보(至治通寶)를 주조하였고, 순제(順帝)는 지정통보(至正通寶)를 주조하였다.
○ 고압승전(古壓勝錢) 33품(品), 성관전(星官錢) 7품, 태상기문전(太上器文錢), 호부전(虎符錢), 부인전(符印錢), 천강전(天罡錢), 복덕전(福德錢), 북두전(北斗錢), 신불전(神佛錢) 2품, 범패전(梵唄錢), 범자전(梵字錢) 등은 그 제도가 같지 않다.
○ 외국의 전인 계빈국(罽貧國)의 금전(金錢)과 은전(銀錢), 오익산리국(烏弋山離國)의 전, 안식국(安息國)의 은전, 대월지국(大月氏國)의 은전, 이파라국(泥婆羅國)의 은전, 하국(何國)의 은전, 강국(康國)의 은전, 발한국(拔汗國)의 금전, 조지국(條支國)의 전, 불림국(拂菻國)의 금전과 은전에는 모두 사람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
○ 대식국(大食國)의 금전에는 코끼리가 그려져 있다.
○ 인지국(因墀國)의 옥전(玉錢)에는 ‘천수영길(天壽永吉)’이라는 문양이 들어 있다.
○ 일본국(日本國)의 전 5품에는 ‘화동개진(龢同開珍)’, ‘신공개진(神功開珍)’, ‘만년통보(萬年通寶)’, ‘융평영보(隆平永寶)’, ‘건문보(乾文寶)’라는 문양이 들어 있다.
○ 고려국(高麗國)의 전 4품에는 ‘해동통보(海東通寶)’, ‘해동중보(海東重寶)’, ‘삼한통보(三韓通寶)’, ‘동국중보(東國重寶)’라고 하였다.
○ 고려에 따로 조선통보(朝鮮通寶)가 있고, 일본에 따로 연희통보(延喜通寶)가 있다.
○ 옥태국(屋馱國)의 전은 글자가 범서(梵書)와 같아서 식별할 수가 없다.
○ 토번국(吐蕃國)의 전은 그 문양이 모두 호서(胡書)여서 식별할 수가 없다.
○ 유구국(琉球國)의 전은 ‘선대통보(仙臺通寶)’, ‘관영통보(寬永通寶)’라는 문양이 들어 있다.
○ 도파국(闍婆國)의 전은 글자가 범서이다.
○ 안남국(安南國)의 여준전(黎濬錢)은 ‘대화통보(大和通寶)’라는 문양이 들어 있다.
○ 교지국(交趾國)의 전에는 ‘여(黎)’ 자가 들어 있다.
○ 쇄엽국(碎葉國)의 철전(鐵錢)은 형태가 두 개의 고리를 연결해 놓은 것 같다.
○ 표국(驃國)의 금전과 은전은 형태가 반달과 같다.
○ 헌거국(軒渠國)의 금폐(金幣)와 삼동국(三童國)의 금폐에는 모두 사람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
○ 외국의 전 7종은 모두 구멍이 없고 인물(人物)이 그려져 있으니, 이것은 서양 사람들의 전이다.
[주D-002]개원신전(開元新錢)의 …… 올렸다 : 개원신전이 당나라 무종(武宗) 회창(會昌) 5년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창(昌)’ 자를 넣은 것이라 한다.《金石索 金索 卷4 唐錢》
[주D-003]수가양표동패(隨駕養豹銅牌)는 …… 기물이다 : 수가양표동패는 명나라 무종(武宗) 연간에 표방(豹房)의 수위 군사(守衛軍士)들이 차던 표방패(豹房牌)를 말한다. 《骨董續記 豹字牌》 당송 시대의 기물이라고 한 것은 저자의 착오인 듯하다.
[주D-004]어마감동패(御馬監銅牌)는 …… 없다 : 어마감(御馬監)은 명청 시대 환관 아문(宦官衙門)의 하나이고, 여기에 소속된 직명 가운데 ‘장수(長隨)’가 있었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면 이 패는 명청 시대 어마감의 ‘장수’가 찼던 패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