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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홍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1.09.14 현재의 대륙사와 조선사는 어디까지나 현재의 중공대륙과 한반도에 끼워 맞춰진 역사에 불과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간행된 사서가 중국역사지명대사전,고금지명대사전 등입니다.
현재의 왜곡된 사관에 맞춰진 중국역사지명대사전,고금지명대사전 등을 금과옥조 처럼 철저히 신봉하는 사람들은 좁은 틀에 갖힌 편협된 역사관으로 인해 넓게 사고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중공의 향달(向達)이라는 사람의 역사인식,역사관은 어디까지나 현재의 역사관으로 굳어진 과거 서세동점기 사관의 답습에 불과합니다. 이 사람과 같은 역사인식을 하는 사서가 바로 중국역사지명대사전,고금지명대사전 등과 같은 서책입니다. -
작성자 김홍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1.09.14 위 본문에서 천상희 선생님이 인용하신 <동사일기 곤(東槎日記 坤)> 강관필담(江關筆談) 서(序)에는...
"미장주(尾張州) 열전궁(熱田宮)은 공들께서 거쳐 온 곳입니다만, 이 궁 안에도 죽간(竹簡)에다 칠서(漆書)한 것이 두서너 책 있는데, 대개가 과두문자(蝌蚪文字)라 합니다"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천상희 선생님은 "미장주"(尾張州)라는 지명(地名)을 어디로 비정하실까요??? 무척 궁금합니다.
오늘날 일본(日本)에서는 "尾張"을 "오와리"(おわり)라고 훈독(訓讀)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 김홍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1.09.14 <동사일기(東槎日記)>는 숙종(肅宗) 37년(1711년) 통신부사(通信副使)로 일본(日本)에 다녀온 임수간(任守幹, 1665년~1721년)의 기행록(紀行錄)이다.
본(本) 대본(臺本)은 원래(元來) 판본(版本)으로 전(傳)해지는 것이 없고, 오직 수사본(手寫本) 2책(冊)이 현(現) 국립도서관(國立圖書館)에 소장(所藏)되어 지금(只今)까지 유일본(惟一本)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이를 쓴 사람이나 연대(年代) 등(等)의 서지(書誌)는 일체(一切) 고증(考證)되지 않는다.
[출처=한국고전종합DB, http://db.itkc.or.kr/itkcdb/mainIndexIframe.jsp] -
답댓글 작성자 김홍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1.09.14 미술사학자 박용숙 씨의 저서(著書) <샤먼 제국>(p.354)에 따르면, 공자(孔子)는 그의 책(冊)들을 페르시아 문자(文字) 즉 올챙이 문자(文字), 쐐기 문자(文字), 과두(蝌蚪) 문자(文字)로 기록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페르시아 제국(帝國)은 공용(公用) 문자(文字)로서 쐐기 문자(cuneiform), 설형(楔形) 문자(文字)를 사용하였으며, 공자(孔子) 역시 이 문자(文字)로 책(冊)을 썼다고 합니다.
중국(中國)의 가장 오래된 문헌(文獻)인 <이아(爾雅)>에 따르면, <춘추(春秋)>, <논어(論語)>, <효경(孝經)>이라는 책(冊)들은 모두 과두(蝌蚪) 문자(文字)로 쓰였다고 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 김홍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1.09.14 <네이버 백과사전>에 따르면, 과두(蝌蚪) 문자(文字)는 고체(古體) 전자(篆字)인데, 중국(中國) 고대(古代)에 필묵(筆墨)이 아직 쓰이지 않았을 때 죽간(竹簡)에 옻을 묻혀서 글을 썼는데, 대나무는 딱딱하고 옻은 끈적끈적하기 때문에 글자의 획이 머리는 굵고 끝은 가늘게 되어 마치 과두(蝌蚪, 올챙이) 모양으로 보였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이른바 쐐기 문자(cuneiform)는 찰흙(점토; 粘土)에 썼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대나무(죽간; 竹簡)에 썼던 문자(文字)와 똑같은 것일까요???
<이아(爾雅)>에서 언급된 과두(蝌蚪) 문자(文字)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