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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 김홍필 작성시간11.09.14 만주국(滿洲國)
1931년 9월 만주를 침략한 일본 관동군은 1932년 1월 장쉐량[張學良]의 반만항일의 거점인 진저우[錦州]를 점령한 후, 2월 '신국가건설막료회의'를 개최해 만주국 건국 구상을 구체화했다.
이어서 관동군은 구(舊)봉천 군벌계 장성들을 앞세워 청조의 폐제인 선통제(宣統帝) 푸이[溥儀]를 집정이라는 자리에 앉힌 후, 국제연맹이 중국의 제소를 받고 파견한 리튼 조사단이 만주에 도착하기 전인 1932년 3월 1일 만주국의 수립을 내외에 선언했다.
만주국의 수도는 신징[新京 : 지금의 창춘(長春)]으로 하고, 연호는 대동(大同)이라 했다.
[출처=다음 백과사전] -
작성자 이순주 작성시간11.09.14 탈아입구(脫亞入歐)를 외치던 일본이 갑자기 대동아 공영권(大東亞 共榮圈)으로 방향을 선회한 까닭은 무엇일까요?
이미 탈아입구를 완성한 일본의 말장난이겠죠? 중국의 변방에 있던 일본이 이미 중국의 주인이 되었기 때문에 대동아공영권이란 립 서비스가 나왔다고 봅니다. 대동아 공영권이란 말은 현 일본열도와 한반도 대만 만주 따위를 차지하고선 내뱉을 수 있는 말이 아닐 것입니다. 명(復明=무굴)과 청(淸=puritan)을 전한과 新을 통일한 후한처럼 재통일 한 후에 내뱉은 축사 같은 것일 겁니다. 중.일전쟁은 일본의 통일에 반대한 원조 이슬람인 수피즘 세력의 일방적인 도피작전이고요. 국.공내전(國共內戰)은 이이제이였을 겁니다 -
답댓글 작성자 이순주 작성시간11.09.14 오삼계가 명의 잔당들을 최후까지 쫓았던 것처럼 장개석은 모택동이를 그렇게 쫓았던 겁니다. 물론 청(淸=puritan=英日동맹)이 오삼계에게 명의 토벌전권을 주었듯이, 일본도 장개석에게 모택동의 토벌전권을 주었던 겁니다. 장개석이가 모택동을 쫒은 사건은 영.일동맹(英日同盟)의 파기이기도 하며,그렇게 때문에 모택동은 일본의 중심 세력권인 복건.강서의 핵우산을 떠나 영국의 세력권인 서남으로 국경선을 빙빙돌아 튀었다고 봅니다.
장개석이는 일본의 견제와 지원을 동시에 받았던 까닭은 과거의 오삼계의 역할과 비슷했기 때문이라 봅니다.
영일동맹시절 중공을 키우다가, 영일동맹을 깨자 중공을 버리고 장개석을 사냥개로 이용한. -
작성자 이순주 작성시간11.09.15 영.일동맹이 청의 잔존군벌(원세개 사후)의 도움으로 복명(復明)을 견제하다가, 청(淸)을 완전히 접수하자 복명(復明)의 잔당인 사냥개 장개석을 통해 친영파이자 친소파인 중공(中共)을 몰아낸 사건이 대장정(大長征)이라 봅니다.
흑룡회는 일본열도에 있던 자들이 아니라 대륙에서 활동하던 세력이라 봅니다. 그들의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꿔 부르지만, 그렇게 따지면 안중근도 야쓰이(安) 아무개가 될 것입니다. 만주국을 만들기 위해 열도에서 상륙한 것이 아니라, 청(淸)의 최후영토인 만주를 만주국이란 칭호로 점령했다고 보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