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조보감(國朝寶鑑)> 제1권(第一卷)
태조조(太祖朝)
태조 지인계운 응천조통 광훈영명 성문신무 정의광덕 고황제(太祖 至仁啓運 應天肇統 廣勳永命 聖文神武 正義光德 高皇帝)
휘(諱)는 단(旦), 자(字)는 군진(君晉)이며, 초휘(初諱)는 성계(成桂), 자(字)는 중결(仲潔)이다.
지원(至元) 을해년(乙亥年)[1335년(年), 충숙왕(忠肅王) 복위(復位) 4년(年)] 10월(月) 11일(日)[기미(己未)]에 영흥(永興) 흑석리(黑石里) 사저(私邸)에서 탄강(誕降)하였다.
재위(在位) 기간(期間)은 7년(年)이며, 상왕위(上王位)에는 10년(年) 동안 있었다.
영락(永樂) 무자년(戊子年)[1408년(年), 태종(太宗) 8년(年)] 5월(月) 24일(日)[임신(壬申)]에 승하(昇遐)하였다.
향년(享年)은 74세(歲)이고 건원릉(健元陵)[양주(楊州)에 있다]에 장사(葬事) 지냈다.
[출처=한국고전종합DB, http://db.itkc.or.kr/itkcdb/mainIndexIframe.jsp]
[출처=한국고전종합DB, http://db.itkc.or.kr/itkcdb/mainIndexIframe.jsp]
<국조보감(國朝寶鑑)>
이 책(冊)은 조선시대(朝鮮時代) 역대(歷代) 군주(君主)의 업적(業績) 가운데 선정(善政)만을 모아 편찬(編纂)한 편년체(編年體) 사서(史書)인 <국조보감(國朝寶鑑)>[규장각소장본(奎章閣所藏本), 90권(卷) 28책(冊), 임진활자본(壬辰活字本), 융희(隆熙) 3년(年) 1909년(年) 간행(刊行)]을 대본(臺本)으로 하여 8책(冊)으로 국역(國譯)하고, 이 국역(國譯)된 <국조보감(國朝寶鑑)>을 대상(對象)으로 1책(冊)의 색인(索引)을 편찬(編纂)하여 모두 9책(冊)으로 새롭게 엮은 것이다.
[출처=한국고전종합DB, http://db.itkc.or.kr/itkcdb/mainIndexIframe.jsp]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고종(高宗) 21년(1884년), 광서(光緖) 10년, 윤(閏) 5월 8일 1번째 기사(記事)
북원(北苑)에서 망배례(望拜禮)를 진행(進行)하도록 하다
승정원(承政院)에서 아뢰기를,
“태조고황제(太祖高皇帝)의 기신(忌辰)이 만약(萬若) 윤(閏) 5월(月)에 있게 되면 친(親)히 행(行)하는 망배례(望拜禮)를 윤(閏) 5월(月)에 취품(取稟)한다는 것으로 일찍이 규례(規例)를 정(定)하였습니다. 이번 10일(日) 친(親)히 행(行)하는 망배례(望拜禮)를 어떻게 합니까? 감(敢)히 여쭙니다” 하니,
전교(傳敎)하기를,
“북원(北苑)에서 망배례(望拜禮)를 친(親)히 행(行)하겠다” 하였다.
初八日。 承政院啓: “太祖高皇帝忌辰日, 若値閏五月, 則親行望拜禮, 以閏五月取稟事, 曾有定式矣。 今初十日, 親行望拜禮, 何以爲之? 敢稟。” 敎曰: “北苑望拜禮, 當親行矣。”
[출처=http://sillok.history.go.kr/main/main.jsp]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고종(高宗) 37년(1900년), 광무(光武) 4년, 11월 28일[양력(陽曆)] 1번째 기사(記事)
태조고황제(太祖高皇帝)의 탄신일(誕辰日)에 흥덕전(興德殿)에서 작헌례(酌獻禮)를 직접(直接) 진행(進行)할 것을 알리다
조령(詔令)을 내리기를,
“오는 음력(陰曆) 10월(月) 11일(日)은 곧 우리 태조고황제(太祖高皇帝)의 탄신일(誕辰日)이다. 진전(眞殿)에 영정(影幀)을 봉안(奉安)한 뒤에 불행(不幸)하게도 화재(火災)의 변고(變故)가 났으므로 인정(人情)과 예절(禮節)을 펴지 못한 짐(朕)의 슬픈 마음은 어찌 끝이 있겠는가? 그날에 흥덕전(興德殿)에 작헌례(酌獻禮)를 친행(親行)하겠으며 제문(祭文)도 직접(直接) 지어서 내려 보내겠다” 하였다.
二十八日。 詔曰: “今陰曆十月十一日, 卽我太祖高皇帝誕辰也。 影幀奉安眞殿後, 不幸有鬱攸之變, 情禮未伸, 朕心愴感, 曷有其已? 當於伊日, 親行酌獻禮于興德殿, 祭文親撰以下矣。”
[출처=http://sillok.history.go.kr/main/main.jsp]
※ 고종(高宗) 21년(1884년) 윤(閏) 5월 8일 1번째 기사(記事)에 나오는 “태조고황제”(太祖高皇帝)와 고종(高宗) 37년(1900년) 11월 28일[양력(陽曆)] 1번째 기사(記事)의 “태조고황제”(太祖高皇帝)는 서로 똑같은 인물(人物)일까요?
※ 명(明) 태조(太祖) 홍무제[洪武帝, 원(元) 천력(天暦) 원년(元年) 9월 18일(1328년 10월 21일) ~ 홍무(洪武) 31년 윤(閏) 5월 10일(1398년 6월 24일)]는 명(明) 나라를 건국(建國)한 초대(初代) 황제(皇帝)[재위(在位) 1368년 ~ 1398년]이다.
[출처=위키백과(한국어)]
바로 위의 자료(資料)에 따르면,
명(明) 태조(太祖) 주원장(朱元璋)의 기신일(忌辰日)은 음력(陰曆)으로 윤(閏) 5월(月) 10일(日)입니다.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필유니버최남석 작성시간 11.09.16 이셩계는 74년 동안 살다가 귀천 하였고 주원장은 70년 동안 살다가 귀천 하였군요 귀천한 달도 주원장은 윤 오월 이고 이성계는 그냥 오월 입니다 엇비슷 하다고 해서 둘중에 하나는 짝퉁이라고 보는 견해가 이 사이트에 있습니다 그러나 한반도 의 고종황제를 생각해 보면 이조는 틀림없는 사실이고 이조가 친명 했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한반도의 고종은 [태조 고황제]가 두분 이었군요 윤달 에 귀천한 주원장 기일에 북원에 나아가 망배를 했다니 망배는 명나라에 가지 않고 한반도에서 간단하게 올리는 제사 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홍진영 작성시간 11.09.18 고종의 계파가 남명(패망무굴) 일 지도 모른단 반증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