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쓴이: 관리자 | 方1里의 면적은?(2) | 조회수: 685 |
참고로 후한서에는 삼한의 크기가 合方4千里로 적혀 있고, 통전에는 方百里 70여국으로 적혀 있다. 合方4千里는 1변이 千里인 사각형 4개 넓이로 方百里 400개 넓이이고, 方百里 70여국은 삼한에 方百里인 제후국 70여개가 있었다는 뜻이다. 삼한 지역을 合方4千里로 본 것은 方4千里로 본 것보다는 오늘날의 측량면적에 조금 더 근접하였지만 이것 역시 정확한 면적이 아니다. 이는 삼국지 한전에 적혀 있는 삼한의 면적 方4千里가 현실과 너무 차이가 나자 合方4千里로 수정한 것이다. 그리고 통전에 나오는 70餘國 方百里는 한변 길이가 百里인 70여개 제후국이 있었다는 뜻이 아니고, 그냥 제후국이 70여개 있었다는 뜻이다. 方百里는 제후국을 뜻한다. 그런데 百里 단위는 소규모 제후국의 영역을 말하고(中國史書를 보면 百里 以下 諸侯國도 얼마든지 보인다), 千里 단위는 대규모 侯.王의 영역을 말하고, 萬里는 天子의 영역을 말한다. 이는 실제 면적이라기보다 관념상 면적이다. 중국의 사서를 보면 춘추시대 이전에는 方百里가 못되는 제후가 많이 있었다. 또 세력이 강한 侯.王의 영역이 실제 萬里가 넘어도 형식상이라도 섬기는 宗主國이 있을 경우는 9千 단위 이상을 칭하지 못하였다. 참고로 고려의 영역을 적은 내용 중에 輻員之廣幾於萬里는 문구가 나오는데, 이는 天子의 영역을 가졌다는 뜻이다. 면적을 나타낼 때의 폭원은 둘레(周) 개념으로 사용되었다(詩經 商頌 長發 4-6句 [禹敷下土方 外大國是疆 爆隕] 구절에 대하여 朱子는 詩經 注解書인 詩集傳에서 方 四方也 外大國 遠諸侯也라고 注解하였고, 鄭箋은 幅 猶言邊幅也. 隕 讀作員 謂周也라고 注解하였다,). 고려의 영역을 가리키는 위 輻員之廣幾於萬里 문구의 폭원은 둘레로 영역을 표시한 경우이다. 삼국지 문구를 보면 진수는 삼한의 면적에 대하여 거의 알고 있지 못하였던 것 같다. 그 때문에 진수는 사서를 지음에 있어 대방군 관리들이 倭人으로부터 전해들은 야마대국에서 대방군까지 적은 거리를 그대로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其戶數道里可得略載 其餘旁國遠絶 不可得詳). 따라서 진수가 적은 삼한의 면적 方4千里는 삼한의 면적을 정확히 알고 적은 것이 아니라 대방군 관리들이 왜인들로부터 전해들은 것을 기록한 것을 그대로 적은 것으로 보인다. 삼국지를 지은 진수가 삼한의 면적을 모르고 단지 전해들은 전문지식으로 삼한의 면적을 적었다는 것을 방증하는 자료를 살펴본다. 삼국지에 나오는 면적이나 거리는 역시 삼국지에 나오는 면적이나 거리로 대비해 보아야 하므로, 삼한의 면적을 알기 위하여 삼국지 왜전 문구를 살펴본다. 삼국지 왜전에는 대방군에서 야마대국까지 가는 여정이 적혀 있다. [倭人在帶方東南大海之中, 依山島爲國邑. 舊百餘國, 漢時有朝見者, 今使譯所通三十國. 從郡至倭, 循海岸水行, 歷韓國, 乍南乍東, 到其北岸狗邪韓國, 七千餘里, 始度一海, 千餘里至對馬國. 其大官曰卑狗, 副曰卑奴母離. 所居絶島, 方可四百餘里, 土地山險, 多深林, 道路如禽鹿徑. 有千餘戶, 無良田, 食海物自活, 乘船南北市 又南渡一海千餘里, 名曰瀚海, 至一大國, 官亦曰卑狗, 副曰卑奴母離. 方可三百里又渡一海, 千餘里至&;lt;;;;末盧國&;gt;;;;, 有四千餘戶,....自郡至&;lt;;;;女王國&;gt;;;;萬二千餘里.] 三國志 魏志 倭傳 위 倭傳 문구에는 황해도 방면의 대방군에서 김해 방면의 구야한국까지 가는데 7千里, 구야한국에서 대마도까지 1千里, 대마도에서 큰 섬까지 가는데 1千里, 큰 섬에서 북구주에 있는 말로국까지 가는데 1千里이다. 그리고 대방군에서 야마대국까지 거리는 1만2千里로 적혀 있다. 어느 것도 오늘날의 실측거리가 아니다. 이 거리관념에 의하면 대방군에서 목포 방면까지 대략 4千里 정도로 본 것 같고, 목포서 부산 동쪽 해안까지를 대략 4천리 정도로 보고, 목포서 김해 방면까지를 대략 3천리 정도로 본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대방군에서 김해 방면까지 거리가 7천리로 적혀 있다. 이는 진수가 전해 들은 전문지식으로 적은 삼한의 크기가 가로, 세로를 각 4천리로 보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경우 삼한의 면적은 대략 方4千里가 된다. 진수는 부정확한 자료인 전해들은 전문지식으로 삼한의 면적을 적었기 때문에 삼한의 면적을 方4千里로 적은 것이다. 合方4千里로 적을 것을 方4千里로 잘못 적은 것이 아니다. 그러면 삼국지보다 뒤에 지은 후한서는 왜 合方 4千里라고 적었을까? 이는 후한서를 지은 범엽이 후한에 관한 기초사료 외에 사서를 지을 당시 범엽이 알고 있던 지식을 사서에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방4천리는 문제가 있다고 보고 합방4천리로 고친 것으로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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