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답사 기행문 > 관리들의 발자취와 아름다운 관동팔경
역사학과 20115516 천진영
답사를 시작하면서
이번 답사는 강원도 일대를 중심으로 한 답사였다. 답사 여정 동안 과거 관리들이 한양과 지방을 오가며
지나갔던 대로와 그들이 머무르고 업무를 보던 관아나 감영을 직접 보게되어 좋았고 무엇보다도 관동팔경
중 경포대나 죽서루 망양정 같은 명소는 아름다운 경치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또한
오죽헌과 같은 명소는 평소에 가보고 싶었던 곳인데 이번 기회로 다녀올 수 있게 되어 좋았다.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을 거란 생각을 가지고 갔던 답사였고 책으로만 보던 곳을 직접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기
때문에 기대감을 가지고 출발했다.
1) 강원감영
처음 간 곳은 조선시대 강원도 감찰사가 업무를 보던 강원감영이다. 관찰사의 업무 장소라고 하니 건물을
보면서 청백리이자 명재상으로 잘 알려진 인물인 황희가 이곳에서 직접 업무를 보는 상상을 해 보기도 했다.
또한 현대적인 건물 속에 자리잡은 이곳을 보며 과거와의 시간적인 간극이 느껴졌다. 강원 감영은 선화당을
비롯하여 포정루 보선고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1395년부터 1895년까지 500년 동안 강원도의 중심적인
역할을 했으나 1895년 조선 8도를 23부로 개편함에 따라 그 기능을 상실하였다고 한다. 선화당은 임금의
덕을 선양하고 백성을 교화한다는 의미가 있다. 관찰사는 이곳에서 각 지역의 행정 농정 조세 민원 군사훈련
재판 등에 대한 업무를 수행했다.
2) 원주향교
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원주향교였다. 고려시대 때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임진왜란 때 대부분 소실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이후 오랜 시간에 걸쳐 중수 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현재 원주향교에는 대성전, 동서무,
내삼문, 명륜당, 동서재, 외삼문 등이 남아 있다. 향교에서는 교육과 더불어 성현에 대한 제사도 함께 지낸다고
한다. 원주 향교에는 대성전에 5성과 송조2현, 해동 18현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고 있다. 원주 향교에
도착하자 마자 쉽게 경험할 수 없는 기회를 얻게 되었는데 이곳에서의 문묘고유에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사진에서만 보던 우리의 전통전례 행사를 직접 참여하고 봉행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어 좋았다.
3) 경포대
둘째 날 아침, 관동팔경의 하나인 경포대에 도착했다. 탁 트인 전경에 가슴이 시원해지는 느낌이었다. 정철이
관동별곡에서 경포대의 경치가 강원 영동지방 팔경 중에서 제 일경으로 꼽았다는 극찬이 이해가 되었다.
경포대는 풍류를 즐기는 곳이기도 하지만 사람들이 달, 호수, 바다, 송림을 조망함으로써 심성을 가다듬고
수양하던 곳이라고 한다.. 강릉 지역 사람들은 평온함의 상징으로 경포대를 인식하였고 방문자들은 심성을
수양하던 마음의 안식처로 생각했다고 한다. 경포대는 고려 충숙왕 때 방해정 뒷산 인월사 터에 건립되었으며
조선 중종 때 현재 위치로 옮겨져 지어졌다고 한다.
4) 오죽헌
얼마 안 되는 화폐 속 인물 2명을 배출해낸 오죽헌 이다. 구도장원을 했고 시대의 흐름을 꿰뚫는 통찰력을
지닌 인물로 평가 받는 율곡 이이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신사임당과 율곡이이와 같은 위인들이 태어난
곳으로 평소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기에 답사지역을 처음 보고 굉장히 흥미가 갔던 곳이기도 하다.
붕당정치의 중심에 있다는 오해를 받기도 했지만 조제보합 논리로 그것을 깨나가고 본인은 유학자이면서
불교에 심취하기도 했던 이이의 생활방식이 이곳에 녹아있다는 생각을 하니 더욱 인상 깊게 보았던 것 같다.
이이가 태어났고 신사임당이 태어났다는 이곳은 원래 신사임당의 외할아버지 최응현의 집이었다고 한다.
그것이 이이의 아버지 이원수에게 물려주었고 그 이후 이이는 어린 시절을 이곳에서 보냈다고 한다.
풍수지리학적으로도 흥미로운 부분이 있었다. 산맥의 좌측을 좌청룡 우측을 우백호 라고 부르는데 오죽헌의
배치가 풍수지리학적으로 좌청룡 우백호의 균형 잡혀있으므로 이이 가문의 성공이 풍수지리학 적으로도
설득력 있다고 한다. 게다가 현존하는 주택건축 중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에 속하고 이것 때문에 조선의
상류사회를 파악하는데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료로 쓰일 수 있다고 한다. 이번 답사를 계기로 성리학의
커다란 한줄기를 형성한 이이의 생가를 방문하게 되어 뜻 깊었다.
5) 강릉 굴산사지
위의 두 사진은 굴산사지 당간지주 이고 아래 두 사진은 각각 굴산사지 석불좌상과 승탑이다. 현재는 폐사되어
터만 남아 있지만 당시에는 강릉일대에서 가장 큰 사찰이었다고 하는 굴산사지 터를 찾아갔다. 굴산사는 학산
마을에 위치하였고 신라 말 문성왕 때 범일국사가 창건하였다고 한다. 한 때 일대에서 가장 큰 사찰이었지만
그 일대가 모두 논과 밭만 남아 있었는데 그 가운데 우뚝 솟은 당간지주가 눈에 띄었다. 당간지주란 절에 행사가
있을 때 절 입구에 걸어놓는 깃발인 당을 달아두는 장대 간을 지탱하는 돌기둥을 말한다. 보통 이런 돌기둥은
매끈하게 다듬는다거나 어떤 무늬라도 새기는 것이 반적인데 굴산사지 당간지주는 그렇지 않고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살려 멋스러움을 더했다는 교수님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또한 당간지주 아랫부분이 땅에 묻혀 있어
기단석의 구조를 알 수 없다고 한다. 다음으로는 굴산사지 석불좌상을 보았는데 만들어진지 너무 오래 되어 그
형태로만 불상임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자체로 온화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굴산사지 승탑은 범일 국사의
사리를 봉안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승탑은 매우 세련되게 조각이 되어 있었는데 아랫부분은 사자를 돋을새김
했다. 바닥돌 윗면은 8각형으로 만들고 그 위에는 구름무늬를 돋을새김 하였고 또 천상의 사람이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이 매우 세련되게 조각되어 있었다. 굴산사를 창건한 범일국사를 모실만한 세련되고 아름다운 승탑이라는 생각을 했다.
6) 불영사
불영사는 신라 진덕여왕 5년 의상이 세웠다고 전해지는데 당시 이곳의 연못 위에 다섯 부처님의 형상이 떠오르는
모습을 보고 거기 살던 용을 쫓아낸 뒤 절을 지었다는 전설이 전한다. 부처님의 모습에 대해 말하자면 세번째
사진에 산 위의 바위로 그늘이 생기는데 이 그늘이 연못 위에 비춰져서 부처님의 형상이 된다고 한다. 또한 네번째
사진이 원래 연못이 있던 자리였는데 지금은 보수 공사 때문에 물을 없앤 모습이다. 조선 태조 5년 나한전을 제외
하고는 화재로 모두 불에 타 버리고 임진왜란 때도 영산전만 남기고 모두 불 타 버렸던 것을 훗날 다시 짓고 많은
수리를 거쳐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고 한다. 지금의 모습을 유지하기까지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하니 이런
선조들의 노력을 헛되이 하지 않게 하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더불어 이런 문화재를
소중히 하는 의식을 더 길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답사를 마치며
답사 여정 동안 지금까지 잘 보존 되어온 역사적 유물이나 문화재들을 직접 보고 생각할 기회를 얻게 되어 좋았다.
또한 경포대나 죽서루 망양정 같은 관동팔경은 가슴이 탁 트일 정도로 아름다웠고 이것을 보고 옛 선조들이 남긴
시를 보며 자연을 벗삼아 풍류를 즐기는 선조들의 모습이 눈 앞에 보이는 듯 했다. 3박4일의 시간 동안 바쁜 여정
이었지만 많은 곳을 폭 넓게 보게 되어 좋았고 다음에 기회가 되면 또 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것을 보고
느낀 답사였다.
참고자료.
1. 중앙대학교 역사학과 춘계정기답사지
2. 문화재청 홈페이지
3. 원주향교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