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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

[독후감] 20051776 김정연/조선통신사와 일본

작성자김정연|작성시간08.12.02|조회수141 목록 댓글 0

서지사항

서명: 조선통신사와 일본

저자: 미야케 히데토시, 역자: 김세민, 강대덕, 유재춘, 엄찬호

출판사: 지성의 샘

 

 


저자소개

1925년 일본 후쿠오카현에서 출생하여 규슈대학 문학부 사학과를 졸업(문학박사)하고 제외연구원으로서 서울대․고려대에서 유학했다. 북규슈대학 명예교수이며 현재 규슈공립대학의 교수로 재직중이다. 저서로는 《근세일조관계사의 연구》, 《아시아 속의 일본사Ⅴ-자의식과 상호이해》, 《쇄국인본과 국제교류》등이 있다.

 

 


들어가며

 이 책은 조선의 통신사가 성립되는 과정을 시작으로 어떻게 두절되었는지를 조선과 도쿠가와 정권의 정세 속에서 풀어내가고 있다. 비단 통신사의 내용뿐만 아니라 조선과 쓰시마번의 무역을 통해 은(銀)의 흐름을 파악하고 이 은이 조선의 상인을 매개로 하여 중국의 북경까지 닿고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 또한 수십 번의 통신사가 가게 되면서 조선인은 일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반면 일본인은 조선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실제 인물의 서적을 통해 살펴보고 있다.

 

 

내용 정리 및 요약

 

 통신사는 이미 고려시대에 무로마치막부에게 왜구금지를 요청하기 위하여 관리 나흥유가 파견된 점을 볼 때 조선에서 처음 시작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의 사절은 회례사(回禮使), 회례관(回禮官), 보빙사(報聘使), 경차관(敬差官), 통신사(通信使), 통신관(通信官) 등 많은 명칭으로 지칭되었지만, 1413년(태종 13)에 처음 통신사의 명칭이 등장한다. 조선 전기의 3회의 통신사는 일본의 무로마치 시대에 파견된 것으로 계속되던 왜구의 침입을 금지시키고자 하는데 목적이 있었다. 4회 통신사부터는 장군의 취임을 축하하는 성격을 띠게 되면서 점차 시간이 지날수록 장군이 새로 취임하게 되면 조선에 통신사를 요청하는 것으로 항례화된다. 하지만 전국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을 침략한 것을 계기로 통신사는 두절된다. 두 차례에 걸친 조선 침략으로 이 시기에 일본은 동아시아 사회로부터 고립되기 때문에 중국․조선과의 국교회복이 시급하였다. 국교회복은 단순히 무역에 의한 재정의 강화라는 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 세계로의 복귀를 의미하였다. 이에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조선과의 국교를 재개하기 위해 노력하였고 조선은 일본의 침략에 의해 받은 피해에도 불구하고 이에 응하였으며 쓰시마번의 무역도 허락하였다. 물론 여기에는 정치적인 이해가 얽혀 있는데 조선은 통신사 파견으로 일본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음으로써 재침략의 위험을 없애고 그에 의하여 내외정의 개선을 도모하는 것이 가능해지며, 나아가서는 일본의 수도를 왕래하여 그 정세와 일본의 실정으로 파악할 수 있는 기회로 삼으려 하였다. 다시 재개된 통신사는 양국의 평화를 증진시켜 나갔고 처음의 정치적․군사적 성격을 띠었던 것이 점차 문화적인 성격으로 변하게 되었다. 이는 동아시아 세계의 안정과 조선과 일본 사이의 평화가 지속되자 초기의 긴장감이 완화되어 문화성이 심화되고 점차 형식적으로 되어가는 것이었다. 막부의 자세는 서서히 교만한 태도로 변하였고 조선측도 조선국왕이 일본의 신하인 도쿠가와 장군과 대등례를 나누는 것에 대한 비판 의식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농촌의 불황과 더불어 경제적 부담 때문에 결국 통신사는 중지되었고 이후에 장군이 바뀌었어도 통신사의 내빙은 없게 되었다. 이 사이 양국은 유럽열강이라는 새로운 세계의 외압을 접하게 되면서 동아시아 사회의 안정만으로는 국가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게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긴장된 전환기에 전통적인 통신사의 의의가 없어지게 되면서 통신사의 두절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쓰시마 번은 경지(耕地)가 적기 때문에 도민들의 생활은 무역을 통해 가능하였고 이에 조선과의 무역재개를 추구하였다. 무역은 기유약조가 성립되면서 재개되었고 진상, 공무역, 사무역의 형태로 진행되었다. 진상은 쓰시마 번주가 조선국왕께 헌상하는 것으로 이에 조선은 회사(回賜)라고 칭하는 반례품이 증정되었다. 공무역은 쓰시마에서 조선국으로 진귀한 동(銅), 주석, 동남아시아산 단목(丹木), 흑각(물소뿔) 등을 수출하고 조선측에서는 질좋은 공목(公木)을 사들이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쓰시마에서 보내는 주석과 물소뿔이 은으로 바뀌었고 조선에서 주는 목면도 일부가 쌀로 교체되었다. 사무역은 사신, 관리, 상인과 조선 상인이 거래하는 것으로 거래품목과 수량에 제한이 있었던 공무역과는 달리 제한이 없었기에 이익이 높았다. 특히 거래물품 중 조선인삼은 일본 내에서 만병통치약으로 알려져 있었기에 쓰시마 번 무역에서 가장 갈망되는 물품이었다. 일본은(日本銀)은 쓰시마번의 무역을 발전시킨 주요인으로, 은의 대량 수출로 인해 은화의 은의 함량을 줄여 품질을 낮추게 되었다. 이로 인해 조선에게 비난을 받게 되자 쓰시마번은 조선인삼을 구입하기 위해 은의 품질을 되돌렸다. 이와 같이 조선으로 유입된 은은 한번 더 주조하여 양질의 은화로 만든 다음 중국에 보내는 사절이 이 은화를 휴대하여 북경에 가서 중국 상품과 교환하였다. 이와 같이 일본은은 일본에서 조선을 거쳐 중국까지 흘러들어가게 되는데 저자는 이를 실버로드라고 부르고 있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 통신사가 왕래하고 정부 간의 교류가 이루어지는 가운데 일본인의 조선관은 고대사회로부터 형성된 한국에 대한 멸시감이 여전히 지속되었다. 이와 같은 대립감과 소외감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한 두 차례의 침략으로 더욱더 굳건해져갔다. 하지만 하야시 라잔과 같이 주자학자들은 동문동학의 공통성에서 간접적으로 중국문화를 경모하고 직접적으로 조선 문화에 대한 존경을 나타내기도 한다. 조선인은 일본에 대해 초창기 양국간의 긴장을 반영하여 대립적이고 엄한 비판이 이루어졌고 군사국가의 면을 강조하여 문화적으로 열등한 면을 비판하였다. 하지만 사행이 거듭되면서 일본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나타나기도 하는데 실학자 이익이나 정약용은 그동안의 감정적인 일본관을 비판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동아시아 세계 속에서 통신사가 가지는 의미

 

  이 책은 통신사를 주된 내용을 삼고 있지만 내부에는 동아시아 세계에서 그 당시 살았던 사람들의 세계관이나 인식이 어떠한지 살피고 있다는 점이 가장 인상깊은 점이다. 오랜 시간동안 동아시아 세계를 지배하였던 중국 중심의 화이질서는 동시대의 서양에 비해 전쟁이 적고 동아시아를 안정되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러한 화이질서를 주변 국가들은 그 당시의 중국의 율령을 받아들임과 동시에 화이질서의 이념도 받아들임으로써 자신의 나라를 중심으로 자의적인 세계질서를 구축해나간다. 물론 이는 중국의 것이 그 당시 나라들이 인식하기에는 자신들의 나라를 보호하는데 가장 이상적이고 선진화된 국가체제라고 생각했기에 받아들인 것이고, 이에 따라 주변국들은 자신들의 나라가 중심이고 그 주위는 미개한 것들로 인식하는 세계관을 형성한다. 조선도 마찬가지로 조선형 화이질서의 이념을 전개하여 일본에 대해서는 대등(對等)․호례(互禮)의 교린을 정하고 쓰시마 번에 대해서는 진상과 같이 조공형식의 무역을 채택하고 있다. 이와 같이 중국적 세계관과 주변국이 율령을 받아들임에 따라 생긴 자의적인 세계관은 분명 차이점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 당시의 화이질서는 그 당시 자민족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이념이면서 동시에 동아시아 사회에서 채택된 대외이론으로 그 당시의 사람들이 세계관을 어떻게 구축해나가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서양에 비해 비교적 동아시아 세계에 평화가 지속될 수 있었던데에 일본과 조선의 통신사가 하나의 역할을 해내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통신사는 조선과 일본이 자국의 이해와 필요에 의해 형성된 것이지만 동아시아 세계 평화에 기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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