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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

[답사기행문] 역사학과 20155943 이찬수- 수당고택과 추사고택 답사보고서

작성자이찬수|작성시간16.06.24|조회수44 목록 댓글 0

수당고택, 추사고택 답사기행문

-고택을 통한 양반의 정신과 문화를 중심으로
                                                                                                                                         20155943 역사학과 이찬수

1.답사를 출발하며
2.수당고택
3.추사고택
4.답사를 끝내며

 

1.답사를 출발하며

 

2016년 5월 28일 화창하고 맑은 날씨에 충청남도 예산으로 버스를 타고 일일답사를 떠났다. 현장 답사는 항상 설렘을 안고 가게 되는데, 답사지가 평소에 둘러본 적이 없는 고택이라 큰 흥미를 느끼고 느꼈다. 특히 “필드가 선생이다!” 라는 박경하 교수님의 말씀처럼 현장에서의 여러 경험과 가르침을 눈과 귀에 담아오고 싶었다. 이처럼 ‘조선시대 생활사’라는 과목명처럼 현장의 고택 탐방은 조선시대의 일상 사회에 대해 알아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본 적이 없었던 양반가옥에 대해 살펴볼 수 있어서 크게 기대가 되었다. 필자는 고택으로 떠나는 첫 답사이기 때문에 많은 것을 담고 와서 역사적인 지식이나 문화적인 영감을 얻고 싶었다. 수당고택에서는 양반들의 생활터인 고택이 어떻게 이루어져있고, 많은 소설들의 배경이었던 사랑채와 안채를 유심히 살펴보려했으며, 추사고택에서는 추사 감정희와 관련된 글귀나 장소를 탐색해보고 싶었다. 또 다른 기대로는 박경하 교수님께서 수당고택에서 조선시대에서 살고 있는 것과 같은 분을 만나볼 수 있다 한 것이었다. 조선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계시는 분이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을지 한껏 기대가 되었다.


2.수당고택


 

 

 

사진1 수당기념관 앞

 

예상보다 버스에서의  지연되어 도착한 수당고택에서 먼저 마주한 것은 수당 기념관이었다. 수당고택에 관련한 설명을 해주신 분은 중앙대 교육학과 교수를 하시다가 현재는 수당고택을 맡고 계신 이문원 교수님이셨다. 박경하 교수님의 말대로 조선시대의 모습이 많이 남아 있는 분이셨고, 사랑채에 같이 앉아서 말씀을 들을 때는 할아버지와 같은 친근함과 선비와 같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수당기념관은 수당 이남규 선생을 모신 곳이다. 수당 이남규 선생은 조선시대에 국가에 헌신하고, 일제에 끝까지 저항하면서 "선비는 죽일 수는 있으나 욕보일 수는 없다."(士可殺 不可辱)는 말을 남기고 순국하셨다. 이남규 선생의 고고한 절개와 지조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이남규 선생의 장남 이충구 선생도 일제에 저항하다가 같은 자리에서 돌아가신걸 알 수 있었다. 3대 이승복 선생 역시 일제 치하에서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하셨으며, 4대 이장원도 한국전쟁에 참전하셨다가 순국하셨다. 수당기념관에 대해 설명해주신 이문원 교수님이 바로 순국하신 이장원 선생의 동생이다. 이문원 교수님은 수당고택을 잘 보존해서 조상을 섬기는 유교정신을 보여주셨다. 수당고택에서 4대에 걸쳐 국가를 위해 희생한 훌륭한 위인들이 나온 것이 어쩌면 훌륭한 집의 터에서 어른들의 가르침과 행동을 본받아서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념관을 둘러보는 내내 수당가문의 자부심과 국가에 대한 헌신에 경의를 표할 수 있었다. 4대에 걸친 국가에 대한 헌신은 나를 숙연하게 해주었으며 국가에서  건국 훈장과 같은 물품들이 그 순절과 의지를 대신 말해주고 있었다.

 

 

 

사진2 수당고택의 모습                                                사진3 수당고택의 사랑채

 

 

수당기념관을 다 살펴본 후에 수당고택으로 이동하였다. 수당고택의 사랑채는 'ㅡ'자형으로 되어있어서 비교적 탁 트인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직접 사랑채에 앉아봤는데 바람이 잘 통해서 화창한 날씨에도 온 몸이 시원해졌다. 사랑채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문턱을 높인 것이었다. 공기운동을 활발하게 해서 해서 공기를 시원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자연의 원리를 파악해 자연을 훼손시키지 않고 시원함을 얻으려 했던 정신을 본받고 싶었다. 사랑채에 앉아서 박경하 교수님과 이문원 교수님의 말씀을 듣자니 조선시대에 가르침을 받던 손자의 모습이 이런 모습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채에 앉아서 음양오행(陰陽五行)의 수(水)에 해당하는 모양의 산이 눈 앞에 보였다. 역사적으로 도읍지나 뛰어난 인물들이 나온 곳은 풍수가 좋았다고 했는데 이 곳도 풍수에 부합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자연 안에서 조화로움을 찾다가 최적의 방안을 선택하고 고심끝에 고택을 조영한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자연을 훼손하지 않은 것이 인상적이었으며 자연과의 조화를 추구했으므로 가문에 영예로운 명예와 복이 뒤따라온 것 같다. 또, 가문의 가르침은 글귀를 현판에 작성하여 걸어놓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늘 사랑채를 드나들면서 그 글귀를 마음 속에 담고, 다짐했던 수당 이남규 선생의 모습이 눈 앞에 그려졌다.

 

 


사진4 수당고택의 안채                                                      사진5 지붕

 

사랑채를 둘러본 후 들어간 안채의 입구에는 월대가 있어서 여성들이 치마를 걷어 올리지 않아도 되었다. 성리학적 관념이 투철한 조선 시대에 여성 중심으로 만들어진 것이 인상적이었다. 안채는 사랑채와 달리 'ㄷ'자형으로 되어있어서 사랑채와는 확실히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여성의 거처 공간이라 그런지 사랑채보다는 폐쇄적인 느낌도 받을 수 있었다. 특이했던 점은 사랑채보다 안채가 고택 전체에서 보면 좀 더 앞으로 나와있다는 것이다. 남성위주의 사회에서 쉽게 납득이 되지 않아서 호기심을 자극하였다. 더 특이했던 것은 신주가 안채 안에 모셔져 있었다는 것이다. 안채 안에 모셔진 위패를 선뜻 보여주신 이문원 교수님을 통해 위패를 직접 볼 수 있었다. 위패를 직접 보는 것은 신기했으며, 양반의 가장 큰 덕목 중 하나인 봉제사(奉祭祀)를 열심히 행하고 계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예전의 조상을 모시는 고유한 정신이 때와 부정을 타지않고, 현재까지 잘 이어져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집에서도 1년에 5번의 제사를 지내지만 할아버지께서 직접 지방을 쓰고, 위패는 따로 쓰지 않아 생소했지만 조상을 모시는 또 다른 형태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수당고택은 양반의 여유로움은 물론 자연을 온 몸으로 맞이할 수 있었던 곳이었다. 기회가 되면 넓은 마루 위에 누워 잠을 청하고 싶었다. 정신이 맑아지고 몸이 가벼워질 것 같았다. 또한 신주, 사랑채, 안채 등에서 느낄 수 있었던 양반의 문화와 정신을 직접 보고 깨달을 수 있는 좋은 경험이 되었다. 특히 조심스럽고 안전하게 위패를 모시는 모습을 통해 봉제사의 정신을 느낄 수 있었으며 독립군을 숨겨주거나 언제라도 여러 손님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는 접빈객(接賓客)의 정신을 수당고택과 이문원 교수님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또 고택의 지붕 아래쪽을 바라 보았는데 짧은 나무들 여러개로 건물을 지탱하는 것이 신기했다. 고택의 지붕에는 무게를 지탱하기위해 큰 나무만을 쓸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중을 견디기 위해 여러개를 균일하게 놓는 방법이 이용된 것 같았다. 사찰의 건물들에서는 지붕을 비롯해서 건물을 유심히 살펴보았는데 가옥에 대해서는 관심이 부족해서 자세히 살펴본 적이 없었지만 가옥을 보는 시각이 넓어진 것 같아 기뻤다. 이처럼 평소에 보지 못하고, 관심이 없던 지붕 아래쪽을 쳐다보는 것은 필자에게 매우 흥미롭게 다가왔다. 수당고택을 다 둘러본 후에 답사를 함께 간 인원들과 교수님들을 모시고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수당고택을 둘러보며 허기진 배를 달래러 점심을 먹으러 버스로 이동했다.

 

 3.추사고택

 

사진6 추사고택의 사랑채                                              사진7 수구만천동(秀句滿天東) 현판

메기 매운탕을 점심으로 먹고 이동한 추사 고택은 ‘추사 김정희’의 고택이다. 먼저 들린 곳은 추사 기념관이었다. 추사 기념관에는 김정희의 여러 명필의 글씨체로 가득했다. 뿐만 아니라 추사의 초상화와 유명한 세한도, 불이선란 등의 그림이 남겨져 있었다. 세한도는 익히 봐와서 나무들을 통한 곧은 절개를 가진 선비의 모습이 그려졌다. 불이선란의 난초 역시 선비의 높은 절개와 곧은 마음을 대변하는 듯하였다. 추사가 쓴 글씨들은 일반 글씨와는 다른 감정들을 느낄 수 있었다. 때로는 시원하게 때로는 부드럽게 표현된 것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무량수(無量壽)라는 글씨에서 그의 온화함이 글씨 자체에서 느껴지기도 하였다. 추사 기념관을 살펴본 뒤에 추사 고택으로 이동했다.
추사고택은 교수님의 별다른 설명없이 자율적으로 움직였는데 날씨가 화창해서 기분마저 상쾌해졌다. 옛 가옥을 그대로 잘 본떠 놓은 것 같아서 필자의 기대감을 만족시킬 수 있었다. 추사 고택의 사랑채는 수당고택과는 다르게 ‘ㄱ’자형으로 되어 있었다. 개방감과 포근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구조였다. 추사고택 곳곳에는 한자 글귀가 써져있는 현판이 붙어있었다. 수당고택에서 보았던 현판보다 많은 현판들이 있어서 그 글귀를 읽어보는 것은 추사고택에서 찾은 새로운 재미였다. 선비의 고귀한 정신을 느끼며 여가 시간에 어떻게 시간을 보냈을지 상상을 하며 사랑채 옆에 앉아 골똘히 생각해보았다. 그러던 중 현판에서 ‘수구만천동(秀句滿天東)’이라는 구절을 보고 감명받았다. 빼어난 구절은 하늘 동쪽에 가득하다는 뜻이다. 즉, 빼어난 구절이 우리나라에 가득하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추사 김정희의 이유있는 자긍심이 느껴져서 좋았고, 나 역시 한시를 지어서 멋있게 읊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가만히 있는 것이 성격과 맞지 않았지만 고택에서의 얻은 그 여유로움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편안함과 행복을 주었다.

 

 

4.답사를 끝내며

 

수당고택과 추사고택으로의 일일 답사는 가옥과 양반 문화 등 조선시대의 문화에 대해 폭넓게 이해하고 경험해볼 수 있었던 기회가 되었다. 수당고택에서는 양반들의 정신과, 고택의 특징들에 대해 알아볼 수 있었다면 추사고택에서는 김정희의 여러 글과 그림들을 통해 양반문화에 대해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서로 다른 고택 구조를 유심히 살펴보고 비교해보는 것도 흥미로웠다. 현장에서 직접 모르는 것을 묻고 알면서 직접 눈으로 확인했던 경험들은 고택에서 배우고 느낀 것을 오랫동안 머릿속에 남도록 도와줄 것이다. 조선시대 생활사’라는 과목을 들으면서 조선시대의 생활사와 일상사에 대한 관심이 커졌는데 사진과 책만으로는 관심을 충족시킬 수 없어서 아쉬움이 남았다. 하지만 5월28일에 답사에서 고택들을 직접 체험해보면서 그러한 궁금증이 조금이나마 해소되고, 충족된 것 같아서 만족스러웠다. 또한 고택에 스며들어 있는 양반들 즉, 조상들의 정신들은 일상에 어떠한 의미를 주는지 다시금 생각해보는 계기로 작용했다. 처음 찾아가보았던 고택 답사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직접 느끼게 해준 경험이었으며 답사지에서의 교수님의 설명과 자율적인 관람인 조화롭게 어울려져서 ‘필드가 선생’이라는 교수님의 말씀을 여실히 느끼게 해주었다. 고택들에서 느낀 여유로움과 편안함을 기억에 오랫동안 남겨서 간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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