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5686 역사학과 김경태
I. 서론
본 수업을 들을 때 교수님께서 “현장 답사는 의무가 아니라 가서 직접 배우는 체험의 현장” 이라는 말씀을 하셨다. 조선시대 사람들을 과연 생활상은 정말 어떠했을까? 최근에는 사극이나 영화 등에서 고증을 통해 현실감 있게 나타낸 것도 부분도 많이 있지만 직접 그 생활의 일부분이라고 느껴보고자 수원 화성을 답사하기로 하였다. 답사를 하면서는 화성이 지어지게된 배경이나 어떠한 목적에 집중하기보다 눈에 보이는 것에 중점을 두려고 하였다.
II. 본론
수원 화성은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연무동 190번지에 위치하며 면적 371,145㎡, 성곽 길이 약 5,744m, 높이 약 4.9∼6.2m의 면적을 가지고 있고 사적 제3호이다. 서울에 남아 있는 사대문과 같이 수원화성도 도심지에 위치를 하고 있어서 처음에 들어갈때는 이질감이 약간 들었따. 도로변에 길게 성곽이 늘어져 있는 것과 생각보다 큰 규모에 감탄했다. 화성에는 총 11개의 문이 있는데, 그중 장안문. 팔달문, 창룡문, 화서문 등이 화성을 4대문으로 꼽힌다. 화성의 각 문은 문마다 그 중 장안문은 북쪽 한양을 향해 세워진 화성의 정문으로 가장 크기가 크고 화려했다. 화성은 군사적 기능과 백성의 생활공간의 기능을 복합하기 위하여 자연지형에 지어졌기 때문에 곳곳에 군사적 목적을 위한 장치들이 많이 보여졌다.
<장안문과 옹성>
위에 언급한 장안문 역시 그러한 점이 있는데 장안문 바깥의 반원형 성벽인 옹성은 외부의 적으로부터 장안문을 보호하며 적이 장안문 앞까지 왔을때는 사방에서 포위할 수 있는 구조로 만들어진 것 같았다. 또한 옹성내부의 문도 철이 둘러진 형태였다.
<옹성 내부의 철문>
또한 성벽 가운데 낮은 담장들이 존재 했는데 그러한 사소한 장치들도 전쟁시에 엄폐가 용이하게 설계된 것 같았다. 이러한 구조들은 흔히 영화에서 보여지는 서양의 성벽과도 흡사하게 보였다.
수원 화성에는 화성에만 존재하는 특별한 건물이 있는데 바로 현존하고 있는 2개의 공심문이다. 서북공심돈과 동북공심돈으로 공심돈이랑 말 그대로 속이 빈 돈대이다. 공심돈은 벽돌로 사각을 두른 3개의 층으로 오르락 내리락 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또한 건물 외벽에 구멍이 뚫려 있었는데 이를 통해 외부를 살필 수 있고 동시에 공격까지 할 수 있게끔 해놓은 것이다. 처음에는 공심돈이 높게 지어져 있어 단순히 적을 보기만 하는 척후의 역할을 하는 건물이라고 생각하였지만 그에 더불어 공격까지 할 수 있게끔 해놓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 동북공심돈 >
또 팔달산 정상에는 화성 전체 뿐만 아니라 성 밖까지 멀리 보여 군사들을 지휘할 수 있도록 해놓은 서장대가 있었다. 서장대는 2층의 누각으로 아래층을 개방하고 위층은 사방으로 창을 내고 판자로 바닥을 깔아 두었다. 서장대를 보면 아래층에 비해 위층이 좁아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데 이것은 서장대의 목적대로 설계된 것으로 보여졌다. 위층은 지휘를 하기 위한 용도 이므로 많은 군사가 올라올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양쪽에 큰 깃대를 세워 깃발로 지휘를 하거나 특이한 사항을 알릴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서장대>
III. 결론
수원 화성에 직접 가보지 않았다면 수원 화성 또한 흔히 지나치는 사대문들처럼 감흥 없이 생각 했었을 것 이었지만 막상 직접 가서 접해보니 생각보다 정교하고 생활공간 이외에도 군사적인 요소들이 더욱 많이 보여서 다른 관점에서 수원화성을 보게 된 좋은 시간이었다. 화성을 위치가 도심지에 위치하고 있어서 생활상 같은 부분을 많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는데 직접 화성을 답사해보니 화성은 철저하게 계획된 군사적 요새처럼 느껴졌다. 이번 답사는 막연한 생각과 실제 답사를 통한 경험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다시한번 여실히 느낄수 있는 시간 이었다.
· 참고문헌
이종호, 『유네스코 선정 한국의 세계문화유산1』, 북카라반,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