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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

<영어영문학과 20040127 이경원> 김귀석「운영전 연구 : 궁주(宮主)안평대군을 중심으로」를 읽고

작성자영문04이경원|작성시간10.04.06|조회수408 목록 댓글 0

「『운영전』연구 -궁주(宮主) 안평대군을 중심으로」를 읽고

 

 

영어영문학과

20040127

이 경 원

 

 

1. 들어가며

 

『운영전』은 작자, 연대 미상의 고대소설로서 우리에게는 『춘향전』과 더불어 매우 친숙한 대표적인 조선시대 염정소설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작년에 이 작품으로 디지털 콘텐츠 화시키기 위해 여러 논문을 참조하던 중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던 운영전의 내용과는 약간 상이한 내용을 다루는 논문이 하나 있어 읽고 소개해보고자 한다. 그때 당시에는 내가 다룰 내용과 어긋나 있었기에 그다지 큰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지금 와서 다시 읽어보니 꽤 흥미롭다. 바로 소설 『운영전』에서 유일한 실제 인물인 안평대군 이용을 중심으로 그와 운영의 역학관계를 다시 살피는 데 논의의 초점을 둔 논문이다. 비단『운영전』안에 드러난 것 뿐 아니라 실제 그의 존재와 위상, 그가 가지고 있던 전통 윤리의 추구와 한계, 왜곡된 대리인으로서의 삶까지 조명하고 있다.

 

 

2. 소설 속 안평대군과 실제 안평대군

 

『운영전』은 기본적으로 운영과 김진사의 비극적인 사랑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실제로 운영이 김진사 만큼이나 비중 있게 생각하는 인물이 안평대군이다. 그녀에게 있어서 안평대군은 경외의 대상일 뿐 아니라 작품 내내 김진사 보다 많은 심중의 갈등을 야기하는 인물이라고 한다.

 

소설『운영전』에서 운영은 유영에게 안평대군을 8대군 가운데 가장 영리하고 뛰어났으며 자처하여 밤에는 독서를 하고 낮에는 시를 짓거나 예서를 쓰는 등 일찍이 짧은 시간도 헛되이 보내지 않았고 필법에도 뛰어나 온 나라에서 명성이 자자했다고 설명한다. 또한 성현의『용재총화』에서 묘사된 안평대군은 그 성격이 호방하여 경치 좋은 호숫가에 무이정사와 담담정을 지어놓고 시문과 풍류를 즐겨하여 명유로서 교분을 맺지 않은 이가 없고 심지어는 무뢰배, 잡인까지도 그의 글을 구하러 모여들었다고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처럼 학문과 예술을 사랑하며 풍류를 벗했던 그는 문종 사후 왕실의 정권투쟁에 휘말려 계유정난 때 강화도로 유배되어 형인 수양대군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비운의 인물이다.

 

조선은 근본적으로 왕을 중심으로 한 왕도 정치를 표방하고 있는 나라였기 때문에 대의명분을 얻기 위해서는 정치 세력은 항상 왕족을 등에 업거나 전면에 내세워야 했다. 특히 단종 시대는 왕이 너무 어려 왕권 자체가 유명무실했고 왕을 대신할 실질적인 궁중 어른이 존재하지 않아 대신들은 자신들의 정치적인 대의명분을 얻기 위해 반드시 왕족 중 한 사람을 전면에 내세워야 했고 그래서 선택된 사람이 안평대군이다. 고명대신들이 안평대군을 선택한 까닭은 한마디로 수양대군을 견제하기 위함이었다. 왕권이 유명무실해지자 신권이 강해지는 한편, 왕위를 노리는 왕족들의 힘도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에 대신들은 왕족들의 힘을 분산시킬 필요성을 느끼게 되고, 비교적 힘이 약한 안평 쪽을 끌어들였다. 이에 단종을 보필하는 임무를 맡고 있던 수양대군은 1453년 계유정난을 일으켜 안평대군을 강화도에 유배시켰다가 사사한다.

 

이런 사실들로 미루어 보아 우리는 안평대군이 그의 정치적 이상을 한 번도 펴보지 못한 채 오히려 왕권 다툼의 희생양이 되고 마는 비운의 인물임을 감지할 수 있다.

 

소설 속의 안평대군이나 실제 안평대군을 묘사한 대목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시문과 담론, 그리고 풍류를 무척 즐겨한 인물이다. 소설 속에서 그는 자신이 거처한 수성궁은 물론 학업을 위해 지은 비해당까지 많은 시인과 문장가들이 밤낮으로 끊이지 않았다. 이러한 그의 학문적인 열정은 급기야 자신의 궁녀에게까지 미쳐 문장을 읽고 쓰게 한다.

 

“하늘이 재주를 내릴 때 어찌 유독 남자에게만 많이 내리고 여자에게는 적게 내렸겠느냐? 오늘날 문장가로 자처하는 사람들이 적은 것은 아니나, 대개 서로가 엇비슷하여 특별히 뛰어난 자가 없으니, 너희들도 힘쓰도록 해라.”

 

여성, 그것도 궁녀라는 제한적인 신분을 가진 여성에게 교육을 시키고자 했고 남녀의 재능에 있어 그 차별을 인정하지 않은 안평대군의 이러한 생각은 당시 중세 봉건사회의 현실로서는 극히 이례적인 진보적 사고가 아닐 수 없다. 자신 밑에 있는 10명의 젊고 어여쁜 궁녀를 선택하여 문장의 고하에 따라 상벌을 내리는 가르침 아래 5년 만에 궁녀들은 당대의 문장가라고 할 수 있는 성삼문과도 그 문장이 버금갈 재녀가 된 것이다. 안평대군은 그녀들의 관리 또한 엄격히 하여 궁녀들로 하여금 궁 밖 세계와의 출입을 철저히 단절시켜 외부인들이 그들의 존재조차 알지 못하도록 하였다.

 

자신이 지은 비해당에 성삼문이나 최홍효 등 당대에 뛰어난 문장가와 서예가들을 초청하여 그 재주를 겨루었으나 그들 모두 자신의 재주에 미치지 못하였기 때문에 불만스러웠던 안평대군은 어리고 자색이 빼어난 10명의 궁녀를 뽑아 성당 시인에 못지않은 재자가인으로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궁문을 나가면 그 죄는 죽어 마땅할 것이요, 궁궐 밖의 사람이 궁녀의 이름을 알기만 해도 또한 죽일 것이라는 엄명은 ‘조선시대에 일반적으로 통용되던 대군으로서의 중세적인 절대권력을 구현하거나 그 위엄을 고수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자신만의 독특한 의도와 목적을 이루기 위한 하나의 수단’ 이었던 것이다. 또한 실제 인물 안평대군이 『운영전』에 형상화 된 안평대군과 그 모습이 흡사하다는 점에서 ‘수성궁에서 이루어진 이 은밀한 재녀들의 육성은 정치적, 사회적인 활동이 차단되거나 견제 받았던 안평대군의 정치적 욕망이 왜곡된 형태로 표출되었던 것’ 이라는 의견은 당시 실제 인물인 안평대군이 처했던 정치적 상황과 맞물려 상당한 설득력을 가진다고 한다.

 

 

3. 안평대군에게 있어서 운영의 존재는 무엇인가?

 

이러한 목적으로 길러진 궁녀들이기에 안평대군은 궁녀를 단순한 색욕의 대상이나 풍류의 도구로 치부하지 않았다고 보는 게 맞다. 흔히 논자에 따라서『운영전』을 운영과 안평대군, 그리고 김진사의 관계를 애정에 의한 삼각관계로 작품을 이해하려는 경향도 있으나 필자는 이 점에 대해 좀 더 정확히, 다른 측면에서 접근한다.

 

안평대군은 중세적 윤리를 제외한 일체의 인간적 감정을 혼탁한 욕정으로 여겼고 궁녀들에게서 그러한 감정을 인위적으로 제거하기 위해 궁녀들을 궁 밖 세계와 절연시켰던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또한 궁녀들에게 『소학인해』, 『사서삼경』등을 가르친 것은 단순히 글을 가르치기 위함 뿐 아니라 유가적 성정의 도야를 위한 것이기도 했다. 이런 유가적 성정의 도야는 정치현실을 등지고 산림으로 들어갔던 조선 중기의 사림적 사대부들의 의식지향과도 맞닿아 있고 이러한 유교적인 질서는 그가 만든 수성궁에도 부여됐을 것이다. 이러한 그가 운영에게 다른 궁녀와는 다른 각별한 애정을 두고 있다는 것은 스스로의 모순을 드러낸 것으로서 이는 안평대군을 모순에 가득 찬 부정적인 인물로 해석할 때에 가능한 것이라고 필자는 얘기한다.

 

이러한 안평대군의 유교적 질서를 위협하는 것이 바로 운영과 김진사의 우연한 만남 이후 운영이 쓴 시 한편이다.

 

저 멀리 보이는 푸른 구름 고우니,

아름다운 이는 김 짜기를 마치었구나.

바람을 맞으며 홀로 슬퍼하더니.

날아가 무산에 떨어졌도다.

 

이 시에 나타나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내용은 결국 이성을 그리워하는 것이고 이것은 사춘기의 당시 17살이었던 운영으로서는 얼마든지 가질 수 있는 기본적이고 본능적인 욕구이다. 여성에게 글을 가르치고 남성과 여성의 배움의 차이가 없다고까지 생각한 진보적인 안평대군이지만 그도 역시 전형적인 조선 중기 유림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운영의-운영 뿐 아니라 궁녀 모두의-가장 깊은 인간적 욕구를 이해하려 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인욕이 제거된 탈속의 상태를 최고로 여겼던 안평대군에게는 하나의 도발적 행위이자 운영의 사랑이 순탄치 않음을 예고하는 것이라고 필자는 말한다.

 

운영은 자란과 무녀 등의 도움으로 김진사와 몰래 운우의 정을 나누며 수성궁을 탈출할 계획까지 세우지만 결국 포기되고 만다. 자란의 반대의 이유도 있겠지만 거기에는 중요한 다른 이유도 있었다. 그녀는 안평대군의 은혜를 저버릴 수 없었던 것이다. 운영이 대군에게 올린 초사를 보자.

 

'주군의 은혜는 산과 같고 바다와 같습니다. 그런데도 능히 정절을 고수하지 못한 것이 저의 첫 번째 죄입니다. 지난 날 제가 지은 시가 주군에 의심을 받게 되었는데도 끝내 사실대로 아뢰지 못한 것이 저의 두 번째 죄입니다. 죄 없는 서궁 사람들이 저 때문에 함께 죄를 입게 된 것이 저의 세 번째 죄입니다. 이처럼 세 가지 큰 죄를 짓고서 무슨 면목으로 살겠습니까? 만약 죽음을 늦춰 주실지라도 저는 마땅히 자결할 것입니다. 처분만 기다립니다. '

 

운영은 자신의 죄를 언급하면서 산과 바다 같은 대군의 은혜를 입고 정절을 지키지 못한 것과 또한 대군의 의심을 받고도 작고하지 못한 점을 크게 들고 있다. 여기서 주목 되는 것이 운영이 정절을 운운한 사실이다. 이것은 평생을 목숨 바쳐 모셔야 할 궁주로서의 주군, 부모와 스승 같은 대군의 뜻을 저버렸기 때문이다. 운영은 13살 어린 나이에 수성궁에 들어와 안평대군과 그 부인으로부터 마치 친자식처럼 각별한 사랑을 받아왔다. 또한 몸소 대군 스스로 궁녀를 가르쳐 학문과 시문에 능한 재녀로 만든 것을 들 때 운영에게 있어 대군은 단순히 궁주만이 아닌 부모와 같은 존재요 스승과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사실 안평대군은 운영의 불온한 애정행각을 몇 번이나 눈치 채면서도 그녀에 대한 각별한 마음으로 이를 번번이 용서하였는데 이를 운영을 향한 애정 때문이라고 쉽사리 단정지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위의 내용 때문이다. 그것은 비록 궁녀이나 인간의 재능을 키우는데 귀천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안평대군의 진보적인 사고와, 13살 어린 나이로 궁궐에 들어온 운영을 지금껏 자식처럼 돌보아 온 안평대군의 부성인 것이다. 따라서 안평대군의 운영에 대한 이 각별한 마음을 흔히 있는 남녀 간의 애정으로 해석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고 필자는 말한다.

 

 

 

4. 읽고 나서

 

안평대군의 운영에 대한 사랑과 정이 연인으로서의 그것이 아닌 부정(父情)이라는 주장이 독특했다. 그런 주장을 이끌어 내기 위해 실제 안평대군 생전의 조선시대 정치적 상황과 그의 행적등을 소설 속에 언급된 그의 모습과 운영의 대사나 초사와 결부시켜 그 정당성을 입증하려고 전개시킨 것 또한 흥미로웠다.

 

『운영전』이 비록 운영과 김진사의 비극적인 사랑이야기를 담고 있으나 사실 여주인공인 궁녀 운영에게 있어 가장 경외스런 존재는 안평대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운영에게 있어 안평대군은 어떤 존재인까? 단지 궁주로서 대군과 궁녀의 사이? 아니면 안평대군의 짝사랑 여인? 이도 저도 아니라면 흔히 고소설에 등장하는 혼사 장애의 상징적 인물? 이러한 질문을 통해 인물 간 명확한 관계 정립의 선행이 올바른 소설의 구도 이해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필자는 안평대군과 그의 아내가 운영을 어렸을 적부터 친자식처럼 길러왔다는 점, 대군 스스로가 남녀의 재능에 있어 그 차별을 인정하지 아니한 진보적 사고방식을 가졌다는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형적인 조선 중기 유림적 가치관으로 인해 그녀의 본능적인 측면을 인정하지 않아 궁녀들을 쾌락이나 풍류의 대상으로 보지 않았다는 것 등을 들어 그와 운영과의 관계를 남녀 간의 보편적인 애정 관계가 아닌 지고 지엄한 궁주와 그를 성심성의껏 모시는 궁녀, 그 이상 그 이하의 관계도 아니라고 정의내리고 있다.

 

『운영전』에서 형상화되는 안평대군은 사람마다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여전히 안평대군은 운영을 짝사랑 했다고 보는 것이 소설적 흥미의 측면에서 더 옳다고 생각한다. 누군지 알려지지 않은 이 소설의 작가가 실제 인물인 안평대군을 의도적으로 등장시켜 당시 정치적 상황과 결부시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것을 폭로하고자 했을 수도 있지만 일단 전제로 깔아야 할 것은,『운영전』이 소설이라는 것이다. 그것도 고대 염정소설 중 유일하게 비극으로 끝나는 소설인 것이다.

 

소설의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재미’ 이다. 그 재미를 위해서 김진사와 운영의 비극적인 관계에 필수로 첨가되어야 하는 것이 삼각관계의 한 축을 이룸과 동시에 그 관계를 파국으로 몰아넣어갈 수 있는 인물로서의 안평대군이지, 단순한 궁주나 혹은 아버지로서의 안평대군은 아닐 것이다.

 

물론 운영전이 지향하는 비극성이 결코 운영과 김진사 사이의 스토리적인 비극 뿐 아니라 계유정란으로 인해 실제 정치적 이상과 꿈을 상실한 안평대군의 실제 비극과 무관하지 않다고 보는 관점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소설은 소설 그 자체로서 스토리 구조와 플롯에 충실하게 해석해야 진정한 재미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 내 견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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