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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이 초대교회 여성들에게 베일을 쓰라고 했던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이 질문은 오랫동안 교회 안에서 불편한 침묵 속에 묻혀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이 구절을 여성 억압이나 복종의 근거로 오해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1세기 로마의 식민 도시였던 고린도의 역사적 맥락을 들여다보면, 성경의 문자는 전혀 다른 의미가 숨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고린도에서 베일은 단순한 옷가지가 아니라 권력과 신분의 상징이었습니다. 로마 황제는 제사장의 위엄을 뽐낼 때 머리를 가렸고 공적인 자리에서 베일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시민권을 가진 상류층 여성뿐이었습니다. 반면 머리를 짧게 깎인 노예 여성들은 법적 보호도 받지 못한채 살아야 했습니다. 즉 베일은 사회적 특권층의 전유물이었습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바울은 놀라운 명령을 내립니다. 고린도 교회 안의 모든 여성에게 베일을 쓰라고 권면한 것입니다. 이것은 귀족이든 노예이든 이 예배당 안에 있는 모든 여성은 하나님 앞에서 동등하게 존엄한 존재라는 선언이었습니다. 세상에서는 머리 깎인 채 수치와 차별을 겪던 노예 여성이 교회에 들어와 베일을 쓰는 순간 그녀는 당당한 인격체로 서게 되었습니다. 반면 종교적 권위를 과시하기 위해 머리를 가리던 고위층 남성들에게는 머리를 가리지 말라고 제한했습니다. 세상의 기득권을 교회 문 앞에 내려놓으라는 시각적 혁명이었습니다.
개신교의 위대한 유산인 오직 성경의 정신은 문자를 시대와 맥락 없이 반복하는 고착화가 아닙니다. 본문이 쓰인 삶의 자리를 정직하게 탐구하여 그 안에 담긴 복음의 본질을 현실 속에서 되살리는 역동성이야 말로 개신교의 특징입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라는 갈라디아서의 선언이 고린도 교회 안에서는 베일이라는 목회적 방식을 통해 평등과 존엄을 구현한 것입니다.
오늘날 베일은 사라졌지만 그 베일이 담아내려 했던 본질적인 질문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학벌과 직업, 경제력과 성별이라는 세상의 신분 질서가 여전히 교회 안에서 누군가를 차별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문자주의에서 벗어나 텍스트가 품은 평등과 사랑의 불꽃을 오늘의 현실 속에 다시 일으키는 일, 그것이 바로 항상 개혁되어야 하는 교회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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