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감사절의 추억
1973년도 8월경 신학대학 1학년 때 거제 문동교회에 첫 사역을 나갔다. 거제지역 여전도회가 후원하는 개척교회였다. 부임해 보니 어른 성도 5명 정도에 중고등부 10여 명, 주일 학생 15명 정도가 전부였다. 교역자에게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가난하고 어려운 교회였다.
몇 달 지나 추수감사절이 되었다. 감사절 헌금을 하였다. 그런데 교인들의 헌금을 보니 2천 원, 3천 원이다. 추수 감사 헌금인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싶었다. 돈의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라 농사를 짓는 분들이 돈으로 감사를 할 수 있는가가 이해되지 않았다.
한 주간 동안 학교 수업하면서 기도를 많이 했다. 당시 열심히 충만했던 나는 폭탄을 준비했다. 다음 주일 설교하면서 “여러분 이게 추수 감사 헌금이 맞습니까? 추수는 어디 가고 현금으로 2천 원, 3천 원이 뭡니까? 추수하였으면 그 십 분 일을 감사예물로 드리는 것이 옳지 않습니까? 평소 십일조를 하지 않는 여러분들이 처음이자 마지막 추수를 하였다면 그 소득의 십분의 일은 하나님의 창고에 들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들이 이렇게 신앙생활을 하니 이 교회가 자립이 안 되는 겁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잘못 전한다고 생각하면 당회장 목사님께 말씀드려 쫓아내십시오. 그러나 성경적이라고 생각하면 추수 감사 헌금 다시 하십시오. 예배 마친 후 세례교인 이상은 사택으로 들어오세요.”
그야말로 폭탄 설교였다. 예배를 마치고 사택으로 돌아오는 나의 뒤통수에 대고 누군가가 이렇게 말한다. “전도사가 저런다고 뭐 되겠어?” 그들도 나에게 폭탄을 던진 것이다. 나는 내심 걱정이었다. 사택으로 와서 모두가 나에게 항의하면 어떡하지? 아니 저런 태세라면 보이콧하고 다들 집으로 가버릴 것만 같았다. 그러면 나는 끝이다. 가방 싸서 돌아가야 할 것이다.
그런데 나의 걱정을 뒤엎고 그들은 사택으로 들어왔다. 나는 그들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고 십일조에 대하여 차분히 설명하고 세례 교인이라면, 그래도 교회의 집사라면 그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냐고 물었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것은 긍정의 신호였다. 그래서 그래도 신앙이 제일 깊다고 생각되는 할머니 회계 집사에게 먼저 물었다. “집사님이 먼저 말씀해 주세요. 올해 추수가 몇 가마니이었습니까? 그러면 몇 가마니가 십일조입니까?” “네 전도사님 몇 가마니인데 도정을 하면 쌀 몇 말은 됩니다. 제가 바치겠습니다.”
첫발을 잘 떼었다. 그런데 그다음 사람이 문제였다. 하필이면 그는 교회에 나온 지 몇 달 안 되는 새 신자였기 때문이다. 그는 안 들어와도 되는데, 따라 들어온 것이다. 그래서 “누구는 건너뛰고 다음 분 말씀하세요.” 그랬는데 저만 왜 빼놓으려 하십니까? 하면서 그분이 나도 얼마간 하겠습니다. 하는 게 아닌가? 무슨 마음으로 그랬는지 나는 모르지만, 성령님은 아실 터이다.
이후로 헌금 작정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교역자에게 한 달에 쌀 한 말을 드릴 수 있는 헌물이 작정되었다. 나는 말했다. “보세요. 우리가 추수 감사 헌금만 제대로 한다면 교역자가 먹고살 양식이 나오지 않습니까? 이것이 자립이 되는 첫걸음입니다.”
성도들은 그 일로 자립에 대한 희망을 가지게 되었고 나도 이 교회에서 뭔가를 할 수 있는 교인이 되었다고 하는 자부심도 가지는 눈치였다. 교인들의 눈이 반짝이게 되었다. 청년들은 자신들은 무엇을 할까 연구하다가 산에 가서 겨울철 땔감을 준비하여 주었다. 학생들은 내가 자라면 반드시 이 교회를 섬기는 주인이 되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기도하는 것이다. 내가 던진 폭탄을 성령께서는 듀나미스의 폭탄으로 바꾸어 주셨다.
당시 나는 문동교회와 4km 정도 떨어져 있는 삼거리교회를 함께 섬기고 있었다. 문동교회에서 10시 30분에 예배를 드리고 11시 30분에 출발하여 자전거를 타고 산을 넘어 삼거리교회는 12시에 예배를 시작하는 것이다. 그날은 교인들과 회의하는 바람에 약 20여 분간 예배가 지체되었다.
그 사연을 설교 시간에 말씀을 드렸다. 그랬더니 광고 시간에 한 집사님이 손을 들고 자기도 교회에 말씀을 드려야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아차 내가 뭐 잘못한 일이 있나 하고 가슴이 뜨끔했다. 말씀하시라고 했더니 앞으로 나오더니 “오늘 전도사님 설교를 들으면서 내가 죄인임을 고백합니다. 저는 지금까지 추수 감사 헌금을 하면서 한 번도 십분 일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저는 성경적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오래 지나간 것은 다 못하더라도 지난해와 올해의 추수 감사 헌금은 성경대로 하겠습니다.” 모든 성도들이 아멘으로 받았다. 은혜가 넘치는 시간이었다.
그 교회도 한 달에 쌀 한 말씩을 설교하는 교역자에게 갖다주었다. 그 먼 10리 길을 문동교회까지 쌀을 이고 오신 분이 후일에 목사님이 되신 옥ㅇㅇ 목사님의 어머니셨다. 하나님은 작은 종의 가슴에 타오른 불씨를 두 교회에 폭탄으로 던져 심령에 큰 부흥을 주셨다.
출처 : 코람데오닷컴(http://www.kscoramde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