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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헌옥 칼럼

크로노스와 카이로스

작성자샬롬!|작성시간26.06.06|조회수6 목록 댓글 0

크로노스와 카이로스

천헌옥 목사

크로노스(Chronos)와 카이로스(Kairos)는 시간, 혹은 때를 의미한다. 그러나 크로노스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연속적으로 흐르는 시간’을 말한다. 즉 시계로 측정되는 시간(초, 분, 시, 연도)이다. 그것은 과거에서 현재와 미래로 계속 이어지는 물리적 시간을 이름이다.

그러나 카이로스는 어떤 일이 일어나기에 가장 적절한 때를 말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기회나 결정적인 순간, 하나님이 정하신 때와 같은 의미이다. 하나님이 우리의 일에 개입하여 들어온 때, 혹은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 인생을 바꾸는 기회를 말하는데, 성경에서 ‘때가 찼다’하는 표현도 이에 해당한다.

다른 말로 하면 크로노스는 양적인 시간이고 카이로스는 질적인 시간이다. 크로노스는 흐르는 시간에 있는 인생을 말한다면 카이로스는 어떤 사건을 만난 시간을 말한다고 할 것이다.

성경에서 우리는 그런 사람을 만나볼 수 있다. 모세는 80년 세월을 크로노스의 시간을 보냈다. 사람들에게 잊힌 사람으로 광야에서 양 떼나 몰면서 살았다. 그러나 그가 불타는 떨기나무를 찾아가 하나님을 만난 이후 40년은 카이로스의 시간을 보낸다.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나타나 양 떼를 몰던 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고, 맹수와 싸우던 그가 선민(성도)을 핍박하던 애굽의 왕(마귀)과 그 군대로 그 싸움의 대상을 바꾼다.

요셉은 어떠한가? 바로 왕 앞에 서기까지 그는 흐르는 세월 앞에 무명으로 살았다. 형들에게서 팔리고, 주인에게 배신당하고 13년의 세월을 억울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 쓰임 받는 카이로스의 시간을 맞는다. 장차 이스라엘 민족이 될 가족들을 흉년의 기근에서 생명을 구하는 구원자가 되었다.

다윗 역시 그랬다. 그도 장인 사울에게서 생명의 위협을 받아 쫓겨 다니는 신세가 되어 광야에서 13년의 크로노스의 세월을 보낸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를 세우시는 카이로스의 시간에서 그는 이스라엘을 굳건히 세울 뿐만 아니라 크로노스의 시간을 감사로 바꾸어 하나님을 찬송하는 시로 바꾸어 내는 대기록을 세운다.

그들에게 공통적인 부분이 발견된다. 그것은 그들이 크로노스의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필연적으로 보내야 하는 초, 중, 고 12년, 그리고 대학 4년, 16년의 세월이 있다. 크로노스의 시간이다. 그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은 사람은 사회가 꼭 필요로 하는 실력자가 되어 역사를 만들어 간다. 그리스도인은 더욱 그러하다. 크로노스의 시간이 무의미한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그런 때에 하나님을 붙잡고 최선을 다해 산 사람은 카이로스의 시간을 맞지만, 크로노스의 시간을 헛되이 보낸 사람에게는 카이로스의 시간은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난의 때를 지나야 하는 시간이 있다. 그 크로노스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카이로스의 시간이 올 수도 있고 아니 올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어떤 누구는 억울(?)하게 감옥에 갇혀서 3년의 세월을 지나게 되었다. 대부분은 억울해서 원망하고 복수의 칼을 가는 것으로, 출옥의 날만 기다리며 지나겠지만 그는 그 3년을 대학의 3년으로 생각하고 수천 권의 책을 읽었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 카이로스의 시간이 오자 그의 지혜는 빛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인고의 세월은 힘들다. 그리고 그 세월이 무척이나 길기도 하다. 그러나 카이로스의 시간을 맞기 위해서 꼭 필요한 과정이다. 완전 무저항 정신으로 맞섰던 삼일 운동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와 같았을 것이다. 그러나 교회를 중심으로 일어났던 삼일 운동은 마침내 카이로스의 시간을 맞았다. 한국교회는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타서 대부흥을 일으켰다. 그리고 수많은 선교사를 파송하는 나라가 되었다.

그런데 지금은 한국교회가 삼일 운동을 일으킨 정신을 잃고 있다. 나라가 잘 못할 때 선지자적 사명을 발휘하여야 하는데, 너무나 보신주의에 빠져버렸다. 모두가 남이 해 주기를 바라면서 자신은 편히 지내겠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크로노스의 시간을 보낼 뿐 카이로스의 기회를 스스로 잃어버리는 것이다. 품에 태극기(복음)를 품었다면 꺼내어 대한독립 만세를 부름으로 다시 한번 카이로스의 시간을 맞이하는 한국교회가 되어야 한다. 복음적 선지자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래야만 립서비스가 아닌 진짜 삼일 운동을 말할 자격을 가질 것이다.



출처 : 코람데오닷컴(http://www.kscoramde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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