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회사적과 3.1운동 인물 - 기억해야 할 믿음의 선진들 (3)
총회사적 제18호인 남전교회는 미남장로회 소속 전킨(W. M. Junkin) 선교사에게 복음을 받은 7명의 성도들이 기초가 되어 1901년 설립된 익산 지역 최초의 교회입니다.
익산 3.1운동은 4월 4일 솜리장터에서 일어났다 하여 소위 '4.4솜리만세운동'이라 일컫습니다. 운동의 주역들은 남전교회 교인인 김치옥, 문용기, 박성엽, 장경춘 그리고 교회에서 운영했던 도남학교 학생 박영문 등이었습니다. 거사 당일 남전교회 교인 150여 명은 교회 안마당에 모여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받아들고 3대로 나누어 솜리장터로 향했습니다. 장터 사람들과 합세한 시위대는 정오를 기해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일제의 쌀 수탈 상징이었던 대교농장으로 나아갔습니다. 이에 일본 헌병대는 총칼을 동원하여 잔학한 진압을 시작하였습니다. 이 가운데 도남학교 교사로서 학생들과 시위를 주도하던 문용기 집사, 장영춘 성도, 박영문 학생 등 6명의 기독교인이 현장에서 순국하였습니다.
당시 문용기 집사의 피 묻은 두루마기는 지금도 독립기념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를 거둔 사람은 그의 아내였는데 문용기 집사의 시신을 집으로 모셨을 때 이를 보고 놀란 그의 노모와 아홉 살 먹은 딸은 혼절해서 그 길로 숨을 거두었고, 이어 네 살짜리 딸도 시름시름 앓다가 죽고 말았습니다. 집안에 줄초상이 나자 사람들이 이 집안을 멀리하였습니다. 이런 연유로 문용기 집사의 대가 끊기게 되자 그의 순국 현장에 있던 천도교인 정홍근이라는 사람이 자신의 딸을 문용기 집사의 아들에게 시집보내어 다행히 대를 잇게 해 주었습니다.
- 3.1 운동 100주년 기념 주간 말씀묵상집, 셋째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