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기독교 상담학자들은 핵심감정에 대해 아물지 않은 어린 시절의 '상처'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그러나 이 용어가 피해적인 의미를 띠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부모와 자식 간의 심리역동이 일방적인 부모의 가해에 의하여 생긴 '상처'라는 시각은 심층심리를 객관적인 시각에서 바라보아야 하는 과학적 입장을 벗어나기 쉬우며, 이로 인하여 상담의 현장에서 심리적 갈등을 부모의 탓으로 돌리는 심각한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상처를 준다는 말보다는 상처를 받는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사실 상처라는 것은 받는 것보다 내가 나도 모르게 남에게 주는 것이 더 많다. 순전히 받기만 한 사람은 예수님 외에는 아무도 없다. 우리는 상처라는 말을 쓸 때 '상처받는다' 혹은 '내가 희생자다' 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그 자체가 성숙하지 못한 것이며, 나의 탓을 생각하는 회개에 이르지 못하도록 막아 버리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상처를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많으므로 회개해야 할 것이 많다. 그래서 우리는 '상처'라는 용어를 매우 신중히 사용할 필요가 있으며, 특히 핵심감정과 동일한 개념으로 사용할 경우 더욱 그렇다.
- 이만홍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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