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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 게시판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예한다는 것

작성자Thy John|작성시간17.11.14|조회수116 목록 댓글 1

(은혜 게시판에 쓰려고 했는데 글이 여기로 올라갔네요...)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베드로전서 4 : 13)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예할 자로라" (베드로전서 5 : 1)


예수님께서 이미 우리 죄를 위하여 고난을 당하셨는데 왜 우리도 고난을 당해야 하는 걸까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다 이루셨는데 왜 많은 제자들이 순교를 당해야 했을까요?


 저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런 의문을 가진 적이 있었고 이에 대해 나름대로 답변을 정리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왜 주님과 같은 고난의 십자가 길을 걸어야 할까요. 그것은 우리가 주님의 신부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과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머리신 예수님께서 고난을 당하신 즉, 교회의 몸인 우리들도 고난을 짊어짐이 당연한 것입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내가 너희더러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핍박하였은즉 너희도 핍박할 터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터이라" (요한복음 15 : 18-20)


 죄인이 죽임을 당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의인이 죽임을 당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닙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죽임을 당하신 것은 실로 엄청난 일임이 분명합니다. 또, 의인을 위하여 죽는 것이 쉽지 않고 선한 이를 위하여 죽는 일이 혹 있다고 했으나 주님은 죄인들을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로마서 5 : 7-8)


그렇기에 예수님께서는 자기의 영광을 버리고 고난으로 아버지께 순종하신즉 하늘의 모든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원래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의 피로 의롭다 함을 얻었고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죄인으로서 자기의 죄를 위한 십자가를 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다른 사람들의 죄를 위한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택하신 자를 위하여 모든 것을 참음은 저희로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얻게 하려 함이로라" (디모데후서 2 : 10)


죄인이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이 마땅한 일이지 않겠습니까. 그것은 다른 어떠한 효력이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십자가를 질 때에, 주님과 같은 길을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이 십자가를 짊어질 수 있겠습니까. 우리 힘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3년을 다니며 온갖 기적을 보고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듣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믿고 자기 목숨을 바쳐서라도 주님을 따르겠다고 한 베드로 사도도 두려움 앞에서 주님을 부인했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를 위하여 예수님께서 성령을 약속하신 것을 압니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데살로니가전서 5 : 23-24)


어떻게 죄인에게 성령님이 들어오실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죄인과 하나님의 생명이 함께 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죄인이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겠습니까. 악하고 음란한 세대에게 보여줄 표적은 요나의 표적밖에는 없습니다.


"그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몇 사람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 보여주시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마태복음 12 : 38-39)


그러나 우리들은 하나님의 영광과 위엄을 친히 본 자들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공교히 만든 이야기를 좇는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베드로후서 1 : 16)


이것이 하나님께서 죄인이었던 우리들을 온전하고 거룩하여 흠이 없는 하나님의 자녀로 세우신 증거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나 이것은 성령의 은사가 아닙니다. 성령님께서 직접 우리 안으로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에게 나타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야만이 의미가 있습니다. 죄인이 고난을 받는 것은 그의 죄를 깨닫게 하는 것 밖에는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 이 땅에 종의 모습으로 섬기로 오신 것 같이 우리들도 종의 모습으로 다른 사람들을 섬깁니다. 우리의 썩어질 영광과 의를 모두 버리고 아버지의 뜻에만 순종합니다. 이로써 우리들도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예할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똑같이 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합하여 하나가 되고 아버지로부터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아 공동으로 유업을 상속받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이름을 인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마태복음 5 : 11-12)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의 상속자로서 그리스도와 공동 상속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으려면 그분과 함께 고난도 받아야 합니다." (현대인의 성경, 로마서 8 : 17)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요한계시록 21 : 7)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예수님과 함께 영화롭게 하시기 원하십니다. 곧 우리를 예수님과 함께 아들 삼으시기 원하십니다. 곧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고난 받기를 원하십니다!


 혹시 지금 고난으로 힘들고 계십니까. 혹시 그러다 하나님께 원망하지는 않았는지요.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돌리라고 하셨습니다. 원망과 불평은 하나님의 것이 아닙니다. 모든 원망과 불평은 마귀에게로 돌립시다! 모든 기쁨과 감사는 하나님께로 돌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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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영맨 | 작성시간 17.11.15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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