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재 심사정(玄齋 沈師正 1707~1769) 春景山水
梅義遊?人生
H28 W43 紙本墨書
우리 역사상 가장 먼 유배길, 1384년 척약재 김구용(惕若齋 金九容)
검하객 2014. 12. 9. 14:02
1384년 1월 15일 金九容(1338~1384)은 行禮使로 개성을 떠났다.
말 5천 필을 요구할 정도로 신흥 명나라의 고려에 대한 압박이 드셀 때이다.
전해에 다녀온 義州千戶 曺桂龍이 도지휘 梅義 등이 선물을 요구한다고 보고했기 때문에 이런저런 선물을 준비해갔다. 그런데 도리어 사사로이 외교를 한다는 죄목을 뒤집어쓰고 체포되어 남경으로 압송되었다.
명 조정에서는 김구용을 大理衛(지금의 雲南省)로 유배보냈다.
아마 김구용은 100명 정도 되는 죄인과 함께 떠났던 것으로 보인다. 양자강을 거슬러 가는 뱃길이었다.
김구용은 유배지에 도착하지 못하고 사천성 서남쪽 경계인 永寧縣(지금의 瀘州市)에서 죽고 말았다. 때는 7월 11일,
김구용의 나이 47세 때의 일이다.
이 유배 길에 지은 시 35수가 "척약재집"에 실려 있는데, 어떤 경로로 수습되고 입수되었는지는 확인해 볼 일이다.
그의 마지막 지은 시는 <望歸州城>인데, 歸州는 오늘날 호북성 宜昌市 秭歸縣이다.
저 앞 멀리 귀주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김구용은 자꾸 그 성을 보며 마음속 가느다란 희망의 끈을 잡고 싶어진다.
돌아갈 '歸' 자 때문이다. 귀주성에 다다르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그의 마음은 그 한 글자에 매달리고 싶었다. 아마도 죽기 며칠 전날일 것이다.
630여년 전 장강 위에서 유배지가 아닌, 삶의 끝 지점을 향해 가며 희망을 놓지 못하던 그 마음이 애잔하다.
눈에 걸리는대로 대충 뜻만 옮겨본다.
杳杳孤城壓水湄 저 멀리 외론 성이 물가에 우뚝하니
層巒一畫女墻輝 층층 산은 그림이요 여장은 빛나누나
愁中偶得新詩句 시름 속 새 시구를 우연히 얻었지만
客裏難逢濁酒杯 나그네 사정이란 탁주 한잔 어렵도다
谷鳥有知方更響 새도 내 맘 아는지 골짝서 슬피 울고
舟人欲遞苦相催 사공은 교대하러 괴로이 재촉하네
往來消長非虛事 오가며 보내 날들 헛된 것 아닐지니
行到歸州耐可歸 귀주에 도착하면 돌아가지 않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