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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7년 vs 607년에 대한 제 나름대로의 연구결과물>

작성자푸르름|작성시간07.09.21|조회수1,374 목록 댓글 0

<587년 vs 607년에 대한  제 나름대로의 연구결과물>

 

*예전에 토론했던 자료였는데요, 이번에 잊었다가 찾았기에 참고하시라고 올려놓고 갑니다

  그당시 제 나름대로의 부족한 연구결과물^^ 


이글을 쓸당시에 연대에 대한 여러사람들과의 열띤 토론이 진행되고 있었고

저도 궁금해서 찾아보게되었었죠. 그리고 그때는 아마 제기억에 크레용님이

여증에 속해 계실 즈음이라 제가  이런저런 언급된 내용들이 좀 있을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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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까진 너무 바빠서,지금에서야 글을 올립니다.

좀 뒤처진 글이될지도 모르겠지만...

저도 무척 며칠을 두고,여기 글 못쓰는동안  정말 열심히 알아내고 공부한것이라 올려봅니다.


아랫글들을 보니, 그사이에 여러글들이 오고갔군요.

저는 저도 이해할수있는 범위안에서 이해하도록,

모두영어원문인글등은 참고하지 못했습니다. ^-^


그럼 좀 길지만, 시작해볼까요-


나는 BC587년(586년)인지, BC607년인지를 확인하기위한

다른방법은 없을까하고 생각하다가, 스룹바벨성전의 건축연대에서

거슬러가보자라는 시점으로해서 연도를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스룹바벨성전에 대해서 찾아보느라 많은 시간을 투자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유대멸망역사를 안 찾아볼수가 없게되고 역사를 살펴보다보니,

아래 크레용님이 여증자료로나온제시한글- 607년으로 보는 근거 - 즉,

고레스가 바벨론을 패배시킨날을 기준에 70년포로생활을 더한다는

내용들을 읽은게 기억나던데-

그것에 관한 공부를 예기치 않게 하게되더군요.


크레용님이 여증자료중 제시하신 아래글 중에,

고레스가 바벨론을 패배시킨 날을 기준으로 삼아,


BC539년도,

“이스라엘이 70년의 포로 생활을 마쳐갈 즈음 세계사의

주요한 변화가 이루어졌다. 페르시아의 고레스가 바벨론을

패배시키고 고대 근동의 패권을 장악하게 된 것이다(B.C. 539년).

이에 따라 이스라엘의 1차 귀환은 B.C.538년 고레스의 온건한

식민지 외교정책의 결과라고도 이해될 수 있다.“ (다른 역사서에서 발취)


라는 역사적 근거는 다른어떤 역사서를 봐도 실제 사실입니다.

단지, 거기에 70년을 더한날짜 BC 607년이 유대멸망일이냐, 아니면,

그 이후의 BC 586년/587년이 멸망일이냐를 가려야 하는 건데,


그렇다면, 일단 그 날짜가 오기전까지의 일들을 역사순서대로 나열을 해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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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721년/722년, 이스라엘 북왕국이 앗수르에 포로로 잡혀갔을때,

앗수르는 세계의 대부분을 다스렸죠.

그러나, 불과 몇십년이 지나자 앗수르제국은 바벨론에 정복당하게 되고,

느부갓네살치세로 됩니다,

느부갓넷살왕은 새로운주인들에게 대항할 경우 잔인한 보복을 했고,

열왕기하 24장 맨끝절처럼 시드기야가 배반한다는 글을 읽어보시면

알듯이, 그래서 시드기야를 치게되고 유대의마지막왕으로 기록되죠.


BC 607년이든지, 아니면 BC587년도이든지

(일단 이연도는, 아래에서 구분하여 보겠습니다.)

위 둘중 어느해에 분명히, 유대는 멸망하였습니다.


B.C 562년 바벨론에서의 느부갓네살의 강건한 통치가 끝이 나고,


그후, 바벨론은,


Amil-Marduk (열.하 25:27)이 2년정도 통치했고,그후 그의 외사촌인

Neriglissar이 4년정도 통치, 그후 그의아들

Labashi-Murduk이 9개월후 퇴위, 그후 사제당의 지도자

Nabonidus 가 BC 555년- BC539년까지 16년간 통치, 그후

아라비아의 에이마오아시스에서 보내게되고,

Nabonidus 아들인 ‘벨사살’에게 통치로 이어지더군요.

그러는 가운데, 그들의 타락한 국가에 대한 혐오감이 백성들에게까지 품게되고,


이때, 페르시아만의 동쪽과 남쪽에 있던 두나라가 힘을 굳혀가고 있었죠.

‘메대와 바사’였는데, 후에 고레스가 이 베대와 바사의 동맹국을

지휘하여, 위국가인 바벨론을 공격하게 됩니다.


고레스는 세계역사에 지대한 영향을준 인물로 되는데,


고레스는 BC 559년 메디아의 정남쪽, 자그로스산맥의 동쪽에 있는 북서 엘람지역

작은 안산성의 통치자로 역사에 출현하고,

그의 메디아의 대군주 Astyages에 대하여 반란을 일으키고,

메디아의 군대가 고레스에게 합세하고,

Astyages의군대들이 자발적으로 항복 포로가 되고,

고래스가 왕이 됩니다.


그후, 10년안에 현대의 페르시아, 북부앗시리아, 아르메니아, 그리고 서족으로

헬라스까지 소아시아를 포함한 메디아제국의 주인이 됩니다.


2년여에 걸쳐 제국을 편성한 고레스는 새로운 영토를 정복하기로 결심하고 서족으로 이동,

메소포타미아를 정복, 헬리스강(터키)에서 에게해(그리스)까지 뻗은 리디아나라의

왕이였던 eroesus를 공격하여 승리하게 됩니다.


그리고, BC539년에 귀국한 고레스는, 바벨론을 향해서 진격하게 되고,

바벨론은 (다니엘서 5장에 보면, 벨사살이 고레스입성전날 밤에 그에게

바벨론의 종말을 알리는 글이 벽에 손으로 쓰여지는 것을 봤었죠.)전혀

대항하지 않고 순수히 문을 열어주고, 몰락하게 되죠.

(엘머 W.K모울드, 성경사요해, 348-49페이지)


이당시 고레스가 바벨론에 진입하였을 때,

유대인들이 아직도 그곳에 유배중에있었는데,


역대하 36:22-23, 에스라1:1-11절의 기록처럼, 고레스는 포로생활을 하고 있는

유대백성중 원하는 사람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라는 명을 내리게 되죠.

그들이 후에 스룹바벨성전이라고 불리우는 두 번째 성전을 재건하게됩니다.

다음은 그 두 번째 성전이라는 스룹바벨성전 건축과정을 순서대로 나열한것입니다.


<스룹바벨 성전의 재건과정>

(1) 포로에서 귀환함(스 2:1-64; 느 7:5-7)

  ㄱ. 바사 왕 고레스의 칙령이 내림

      a. B.C.538년 바벨론의 모든 유대인 포로들을 본토로 귀환토록

         허가하는 고레스 왕의 칙령이 떨어짐.

      b. 그 본토에 종교적 성전의 재건이 허락됨.

  ㄴ. 바사 왕 고레스에 의해 예루살렘 현지 총독으로 임명받음.

  ㄷ. 일단의 유대인들을 대제사장 예수아와 함께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옴.




(2) 제1차 성전 건축(스 3:1-4:24)

ㄱ.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함께 활동하면서 행정 의장으로서 제단을

    쌓고 예배를 부흥시킴(스 3:1-9)

ㄴ. 예루살렘에 이른 지 이년 이월에 하나님의 전 역사에 들어감.

ㄷ. 성전 건축에 두 가지 문제가 생김.

    a. 여러 노인들이 옛적의 솔로몬의 성전을 기억하고 지금 성전의 왜소함에 통곡함.

    b. 이스라엘의 대적이 성전 건축의 소문을 듣고 공사를 방해함.

ㄹ. 성전 건축의 방해자들이 고레스왕의 뒤를 이은 아닥사스다 왕에게

    이스라엘의 성전 건축을 반역 행위로 고소함.

ㅁ. 아닥사스왕의 조서로, (약 B.C.520년까지) 약 14-17년간 공사를 중단함.


(3) 제2차 성전 건축(스 5:1-6:15)

ㄱ. 일반적 상황

    a. B.C.522-486년경의 다리오 왕의 치세 때부터 바사제국의 영토는

       완전히 안정된 상태로 커짐.

    b. 유다 지방은 바사 왕의 인가에 따라 정치적인 성격의 지역으로서보다는

       종교적 성격의 지역으로서 그 기능을 담당함.

    c. 학개와 스가랴 두 선지자들이 성전 재건의 일에 대하여

       유대인들의 이기심과 무관심과 태만을 비난함.

    d. 유대인들에게 성전 건축에 대한 도덕적.영적인 충동과 열심을 호소함.

ㄴ. 학개와 스가랴의 격려로 절망에서 일어남.

ㄷ. 여호수아와 함께 백성들을 일으켜 성전 건축을 재개함.

ㄹ. 다리오 왕이 성전 재건을 허락하는 조서를 내림.

    a. 유다 백성의 성전 재건을 허락하는 조서를 내림.

    b. 이 사실을 확인한 다리오가 막대한 국고 보조금과 함께 성전 재건을 후원함.

ㅁ. 다리오왕 6년 3월 3일에 재건 헌납되었다.

   (그 년도수를 헤알리면, B.C.515년 초 또는, 516년에 재건된 것 이라고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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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역사들을 나열해보았는데, 여기서,

두 번째 성전인 스룹바벨성전이 건축된 것을,

보통의 경우, 이스라엘멸망 70년만에 재건되었다고 보는 것이

여러역사가들의 일반적인 견해더군요.


그렇다면 성전재건의 70년을 거슬러올라가면,

건축된 515년/516년에 70년을 더하면, 586년 전후가 나오죠.

이렇게 보면 586년 또는 587년이라는 유대의 멸망날짜가 나오는데,


그것도 무시한다치고,

그 외에, 증인들의 주장에 따라,

고레스가 바벨론에 끌려간 유대인들을 포로귀환하는 해는,

538년정도이니, 여기에 70년을 더하면, 608년 전후가 나오는데,

이때가 또 유대멸망날짜인가 생각해 볼 수도 있는데,


그렇다면, 유대인들은 포로로 잡혀간 것이,


BC 607 년이라고 주장하는 유대멸망 전에 이미, 잡혀간것인지,

아니면,

BC 607 년이라고 주장하는 유대멸망때에 잡혀갔는것인지를 밝히면,


연도수에 대한 답이 나오겠다라는 제나름대로의

유추를 하게되어 다시 그 조사를 하여보았습니다.

짧게 정리해본다면,


일단 첫 번째 이스라엘의 큰 분산이라면, 당연히

BC722년인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정복당하면서겠죠.


그 후의 유대인까지의 분산/포로로 잡혀간 것을 본다면,

약 BC, 605년과 597년,586년 예루살렘에서 차례로 끌려간 포로들은 결박돼

끌려갔으며, 그들 속에 있던 다니엘은 느부갓네살왕에게 발탁돼 다년간

총리의 자리에 있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느브갓네살 왕 때에

바벨론으로 유수시켰다는 내용들을 역사서에서도 수없이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유대를 멸망시킨 후 데려갔느냐 아니면,

멸망시키기 전에도 포로들을 데려갈수 있었느냐라는 역사적 근거를

찾아봐야함도 질문이 생기죠.

그런데, 이것은 역사적인것으로만 찾을께 아니라,

성경에서, 성서를 읽어보는 사람이 초보자라해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즉, 열왕기하와 역대하를 같이 살펴보시면 되는데,


그중 “열왕기하 24:1”을 보면 여호야김때 느부갓네살왕이 쳐들어왔고,

우리의 위대한 신앙의 선조인 다니엘, 사드락, 메삭,아벳느고등이 그당시

포로들중 일원이였죠.

그리고, “열왕기하 24:10”절을 보면, 여호야긴이라는 왕이 다른사람들과

함께 잡혀간후 그 왕-여호야긴-은 아예 잡혀가서 죽죠.


그리고 열왕기하 24장끝부분과 25장에서, 시드기야왕때 멸망함을 읽어볼수 있습니다.


여기서 좀 더 쉽게, 유대왕 들을 성경에서 찾아봐서 순서대로 나열해보자면,

중간쯤에서부터 적어본다면,


  ...- 히스기야- 므낫세- 아몬- 요시야- 아하스-여호야김,엘리야김-여호야긴-시드기야

이런 순서대로 왕이 이어지다가, 유대멸망은 ‘시드기야왕’에서 끝나게 되죠.


그렇다면, 성경에 적힌대로,

분명히 유대멸망이라함은 시드기야왕때라는 사실은 변경할 수 없는것이니까요-

그렇다면 아까 여호야김,여호야긴이라는 왕때 잡혀간 포로들은

유대멸망전에 이미 포로로 잡혀간게 시작되었다는 것이죠.


시드기야왕에서 멸망하는 ‘유대멸망’이라고 말하는게, 즉, BC 607년 이였다면,

70년의 포로생활이라는 말은 맞지 않게 됩니다.


이미 시드기야왕전인, 약20여년 전에 포로로 잡혀간

다니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그 외 여러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이 다 포로가 아니라는 말도 아닐테고,

그들이 포로였다고 인정한다면, 한 90년의 포로생활을 했다거나 말해야겠죠-


그런데 그건 또 다른 거짓이 되니, 그럴수는 없는거죠.


거기에 유대멸망 후, 70년후에 재건되었다는

두 번재성전건립이라는 해인 BC516년전후에, 70년을 더하면,

BC 586년전후로 추정되고,


포로들의 1차 귀환일인 BC538년이라는 공식적인 날짜에,

70년 포로생활이라는 말을 더하면, 약 607년정도가 나오고,

그 때를 포로들이 잡혀간 것이라 날짜계산하는 것은 맞지만,

그 날짜가 유대 멸망날짜가 아니라,

위에 언급한 성경상의(열왕기하, 역대하) 기록으로 근거하여보건데,

이미 시드기야왕의 멸망 오래전에,즉, 여호야김, 여호야긴왕때등등

느부갓네살에게 포로들이 잡혀갔다는 -포로로 잡혀갔던 다니엘을

비롯한 수많은 여러사람들 - 근거가 맞게 되는거죠.


결국, 성경상의 간단한 년도수 계산으로만 보아도,

유대멸망의 해가, 포로들의 70년도의 계산근거로 보건데,

포로로 잡혀간 시점에서 약 20여년후의 일임을 알수 있습니다.

연도수를 헤알려보면, 결국 586년이나 587년이라는 게 맞는거죠.


이런저런 결정을 제외하고, 제일 중요한것은,

아래질문이 아닐까해요-


예수그리스도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았던 바울을 비롯한

많은 이들조차, 사람들에게

"그날을 알려하지말라"라는 것을'


1914년이 오기전에, 이미 1914년을 계산하고 말했다는 것에 있어서,

도데체, 영감도,은사도, 계시도 없다하는 여증에서,

그 날을 계산하라거나, 알아야한다는 영감을 받은것도 아닐테고,


지금 어떠한 권능으로, 어떠한 권한으로,

또, 성서의 어느구절에서 그렇게 계산하라고 했는지,

그날을 예언/말 하라고 했는가에 대한 근거로써,

어느 구절을 근거하여,

계산하고, 예언하고,


예수님께 직접 사사받은 사람들조차도 하지말라던 그 일을

예수님오기전 세대의 1914년전의 증인분들이

무슨 권능으로 그렇게 할수 있는가하는 질문이 아닌가합니다.


참고로, 바벨론에서의 BC538년의 1차포로귀환후에,

수차례 더 포로들이 귀환하게 되는데, 성경상에서

에스라, 느헤미야서에서의 근거를 볼수 있는데,

1차귀환후 약 3세대의 차이가 남을 보게될것입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의 분산/포로로 가게되어, 타국에서 살게되는 이스라엘인들이

이교도인들과의 결혼, 생활의 정착,의식의 변경등등에 관한것들은

생략하겟습니다.


참고: 여증의 주장에서 2520년을 더한다는 말에서 2520년이라는 근거는,

느브갓네살에게 칠년으로 계산하는 관점에서, 적용될 일곱때를

칠년을 날수로 환산해 2520일이 나왔는데 이때 하루를 일년으로 적용시켰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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