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개월간 의정부 교도소에서 수 많은 인간군상을 만났다. 살인자,절도자,정치범,조폭,깡패,양아치,사기꾼들까지...그 중 가장 가까이서 본 사람들은 증인2세들이었다. 함께 잠자고 먹고 싸고 목욕을 했다. 내가 미출력방(일터가 정해지지 않는 기결수방)에서 며칠을 보낸 뒤 1상3방으로 옮겨진 것은 나의 인생 엄청난 행운(?ㅎㅎ)이었다. 그곳은 16명중 한명을 제외하고 모두 형제인 일명 여호와방이었던 것이다.
처음 그곳으로 간 날 비록 화장실옆에 가장 험한 위치였지만, 행복하고 행복했다. 이제 나와 같은 동류를 만나 나머지 징역을 보낼 수 있으리라 생각하니 감격스러울 정도였다. 그 곳은 70여명의 형제들이 가장 가고 싶어하는 방이기도 했고 정기적으로 집회를 보는 유일한 방이기도 했다. 나를 그 방으로 가도록 도와준 그 때의 친구들이 그립다.
처음 내가 일을 시작한 것은 사소(舍掃)직이었다. 사방소지의 준말이다. 사방은 교도소 내부감방 복도를 말하는 것이고 소지는 일본말로 청소를 말한다. 그러니까 감방복도를 청소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 일은 교도소 안에서 꽤 잘나가는 일이다. 사방을 거의 독보로 다니고 행동반경이 넓다보니 모두가 부러워 한다. 당시 의정부와 안양교도소에서는 사소가 거의 형제들 몫이었다. 그나마 증인들이 교도관들의 가장 신뢰를 받는 편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사소일을 하면 자연스럽게 교도관들과도 친해지고 여러 방에 있는 사람들과 얼굴을 익히게 마련이다. 이런 저런 잡담도 할 수 있어 시간도 잘 간다.
사소일을 하는 덕분에 비교적 빠른 시간에 교도소의 생리를 파악하게 되었다. 형제방에서 처음 놀랐던 것은 형제들이 상당히 개인연구를 많이 한다는 사실이었다. 폐방이 되고 자리에 앉으면 보통 6시전후, 자리에 이불을 깔자 마자 책을 펴고 새벽까지도 공부들을 했다. 감방안과 복도는 밤새도록 불이 꺼지지 않으니 맘만 먹으면 개인연구시간은 충분했다.(물론 교도관들의 취침독려는 있지만)
형제방에는 개인연구용 도서들이 많았다. 내가 중립전에 가지고 있던 책들보다 더 많은 책들이 비밀장소에 은닉되어 있었고 폐방이 되면 슬금슬금 책을 꺼내어 벽을 타고(바싹 기대어)연구를 시작했다. 연설준비며,영어공부며,..피곤한 몸을 눕히고도 여전히 책을 보는 형제들에게 눈치가 보여 나도 이것 저것 개인연구계획을 세워서 차근차근 공부를 시작했다.
그런데, 늘상 한쪽 구석에 혼자 있는 형제가 눈에 띄었다. 눕지 않으면 방에 있는 이방인(?)한 명과 바둑을 두거나 일반책을 읽기 일쑤였다. 나이는 나보다 한살위인데다 과묵하기만 해 말을 붙히기도 어려웠다. 3년 징역(당시에는 전두환정권초기에 3년형을 받은 형제들이 몇명 남아 있었다)을 받은 서울 구로쪽 출신이라 했다.하지만 집회때도 돌아 앉아 외면하고 협회출판물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이런, 중립을 지키러 와서 집회도 안 본다? 이런 경우도 있단 말인가. 어느날인가는 벽을 타고 이방인과 몰래 담배를 피우는 것이었다. 아, 충격이었다. 중립중에 일탈행위라, 형제들에게 물으니 모두 왕따인 상태. 내어 놓은 상황이었다.
이런 형제가 다른 방에도 한명 더 있었다. 구매(외부물건을 유상으로 판매하는 일,리어카에 물건을 실고 사방을 다니며 주문한 물건을 나누어 준다.대금은 영치금에서 차감한다.)쪽 일을 하는 형제였는데, 이방인 못지 않은 욕지거리며 행동거지가 영락 방잽이(교도소경험자를 부르는 속어)였다. 그 역시 3년을 받은 사람이었다.
대략 그들의 변절과정은 이랬다. 목숨을 걸고 중립을 지키러 들어 왔지만, 회중사람들의 예기치 않은 무관심에 실망을 하게 된다. 다들 먹고 살기 바쁜 이유도 있겠고 회중에서 인간관계에 결함이 있는 경우 교도소에 와도 회중의 따뜻한 돌봄을 받지 못할 수 있다. 항명을 하고 군대를 거부해야 하는 치열한 투쟁이 있는 군영창과 달리 교도소는 믿음을 타협시키려는 직접적인 요소가 없이 하루하루를 채우기만 하는 시간과의 전쟁이 이어진다. 일반 범죄자들간의 대화를 통해 불공평하고 부조리한 어둠의 세상들을 듣게 되면 어줍잖게 세상의 생리를 다 깨달은 듯한 착각이 든다. 문득 자신이 살아온 온실(종교조직)속의 세상은 유치한 소꼽놀이같은 생각이 들게 된다. 내가 조직에 있을 때는 이런 현상을 [무르익지 않은 영성으로 중립을 지킬 때의 부작용]이라는 말로 표현하곤 했다.
마치 태풍이 불 때는 완강히 벗지 않던 옷을 따뜻한 햇살에는 벗어 던져 버리는 우화같은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이전에는 하지 않았던 일탈행위에 호기심을 느끼게 된다. 담배도 피어보고,야화도 보고,욕설도 해 보고,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되리라.
또 하나의 이유도 의미있다. 이렇게 교도소안에서 일탈한 형제들과 대화를 해 보니 상당히 철학적이다. 주관이 뚜렷하다. 조직의 문제점들, 종교의 무상함을 툭툭 던진다. 자아 형성이 남 다른 듯 했다. 막 사는 듯 했지만, 자기관리에는 철저했다. 철학서에도 꽤 조예가 있었다. 증인2세의 유아적 순종기를 지나면 주관적 자아가 형성되는 시점이 있다. 내 경우에는 이것이 20대 후반 결혼 즈음이었던 것 같다.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대학입학을 전후해 이런 자아형성기를 거치는데, 증인2세들은 좀 늦는 편이다.
자아가 형성되면 남자의 경우 좀 더 논리적이 된다. 자신이 갖고 있던 관념에 대해 객관적이고 비판적인 관점이 생기게 된다. 증인들은 이런 시기를 거치면서도 워치타워 출판물 개인연구를 통해 조직에의 복종을 스스로에게 강제함으로 정신의 성장과정을 억누른다. 논리,철학,명상 같은 자아형성의 중요한 작업들은 일체 사탄의 영, 독립적인 영을 키우는 부정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항상 예외적인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이런 자아형성의 성숙기를 통해 고정관념의 파괴를 단행하는 사람들을 나는 그곳 교도소안 형제방에서 본 것이다. 그들은 지금 어떤 인생을 살고 있을까. 그들이 사회에 나가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공부였다. 대학공부.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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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지평선 너머 작성시간 10.08.04 매우 공감가는 글입니다. 바로 보시고 계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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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일점오 작성시간 10.08.05 '소지 3방~' '소지 5방~' '각 바앙~ 배식!' 지금도 귓가에 들리는 듯 합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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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평민이됩시다 작성시간 10.08.05 다음 편이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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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처음 처럼 작성시간 10.08.05 의정부출신은 저도 아는 형제가 있는데요, 형제방이 있었다고 하더라구요. 이 당시만 해도 출판물이 금지된 것로 아는데 고생이 많으셨네요. 금지당시때 더 개인연구를 많이 했답니다. 원래 궁하면 더 하죠^^ 개인연구 많이 하면 조직의 모순을 더 빨리 깨닫는데요. 누가 그러시더라구요. 머리가 좋아져서 그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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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하이스카이 작성시간 10.08.05 지금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얼마전 아들이 중립으로 들어 갔다 나온 경험담을 들으면 변한게 없네요 그러나 블루스카이님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