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카페에서 한 순회감독자의 비행에 대해 설왕설래가 있었다.
우연찮게 필자도 안재성씨와 짧은 인연이 있다. 교리적 고민을 거듭하던 8년전 장로사임을 두고 당시 회중의 순회감독자였던
안재성씨와 독대를 했다. 이런 저런 의문점에 대해 대화를 나누던 중 의외로 대화가 통한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오 호 ..순회감독자도 제법 개방적이구먼, 출판물로 쉽사리 대답할 수 없는 의문점들에 오히려 그도 공감을 해주는 분위기였다.
문득 이 사람과 인간적인 대화를 좀 나누어도 되겠구나 싶어서 좀 걷자고 했다 회관3층에 숙소가 있던 그였기에 가볍게 회관 뒤 마을길로 산책을 동행했다. 나의 기억으로는 대략 이런 대화를 나눈 것 같다.
" 하느님이 왜 인간을 만들었을까요? 그분은 부족함이 없는 분인데 인간에게 행복을 주기 위해 인간을 만들었다는게 좀 이상하지
않나요? 수 많은 피조물을 만들면 사후관리의 문제들이 엄청나게 발생할것이라는 거, 누구보다 잘 알텐데. 인간들을 로보트처럼
원격조정하면 피조물을 희롱하는 잔인한 창조주가 될 것이고 자유의지로 풀어놓으면 죽고 죽이는 약육강식의 세상이 될것이 뻔한데..어떤 선택도 창조주에게는 비난이 돌아갈 것이고...사탄의 등장도 그래요, 사탄이 세상을 이렇게 만들어 놓았다?..그러면 그분의 예지력이 이 부분에서만 발휘되지 않았다? 지구와 인간을 만드는 엄청난 프로젝트에 그분의 예지력은 왜 하필 가동을 멈추었을까요...참 이상하지요. "
"글쎄요, 그런 부분의 의문은 그 누구도 대답해주기 어려워요. 오직 그분만이 대답할 수 있지요. 아니 대답을 듣는다해도 인간으로서는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르죠"
" 늘 우리는 그렇게 배웠죠. 그분의 길은 우리가 다 알 수 없다...인간을 만든 이유, 지구의 0.01%만 살아남아야 하는 이유, 그외 99.9%가 죽어야 세상이 신세계로 바뀌는 이유, 좋은 소식을 제대로 들을 수 없는 나라들의 영적불평등문제,사탄이 수천년간 인류를 유린하고 수백억이 죽어야 했던 역사, 모순과 번복을 반복하는 성경구절들...다 이해가 안돼도 이해해라, 언젠가 해결될 것이다. 낙원가면 알게 될 것이다....모호하고 애매한 논리에 우리는 인생을 온통 걸고 있는 거죠"
"참,,그렇네요. ..." (그는 이 부분에서 상당히 공감하는 표정이었다. 적어도 흔히들 하는 증인들의 반응 - 장로가 어떻게 그런 생각까지 하지? 라는 식 - 은 아니었다)
"우리는 가끔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과 향수가 생기곤 하죠. 아마 형제는 순회감독자이니 지금 왔던 길을 돌아간다는 것이 굉장히 어려울 거예요. 저도 매우 어렵지만 상대적으로는 쉬울 수 있어요. 제가 진리생활하면서 지금 가장 힘든 것은 애매한 안개논리들에 나와 가족들의 인생을 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까 말씀드린 출판물의 논리들(나는 좀 전에 회관에서 출판물의 모순들을 조목조목 지적한 터였다)이 쉽사리 대답할 수 없는 안개속의 논리라면 그것은 진리가 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진리는 단순하고 명확해야 하며 그렇지 못한 것은 가설이며 주장일 뿐입니다. 그렇지 않을까요?" - 이 부분에서 나는 대화의 수위를 의도적으로 높이며 내 자신의 장로사임과 탈퇴를 강하게 암시한 것이다.
이 즈음 우리는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고 있었다. 말없이 몇 분 동안.
순회방문이 끝나고도 한 동안 나의 사임에 대해 수리나 해임에 대한 얘기가 없었다. 내가 안재성씨에게 한 암시와 직선적인 발언들이 다른 장로들에게는 전달되지 않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사임에 대한 나의 거듭되는 의사표시가 계속되자 회중에서는 신권
전도학교감독자를 교체하고 나를 전도인으로 방류?시켜주었다.
안재성씨는 그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진정 그가 워치타워가 말하는 하느님을 믿고 있었다면, 과거의 자신의 행동이 용서
받지 못할 - 즉 그가 아무리 지금 순감으로 헌신해도 고백하고 처벌받지 않으면 속죄되지 않을 - 죄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아니 이런 저런 합리화나 변명이나 사정을 늘어 놓을지도 모른다. 으음...정말 말 못할 사정이나 상황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그는 지금의 순감으로서의 희생에 대해 행복하게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혹시 (상대적으로 발언이 자유로운)내가 부럽진 않았을까.
순감이라는 자리가 과연 희생일까.
많은 장로들이 대회때 연설하나 받으려고 머리를 조아리고 개인적인 선물공세를 하며 20여개 회중으로부터 환대를 받고 직책여탈권을 가지고 있고 ....소득세 한푼 안내는 돈을 이런저런 경로로 받아 챙기고...협회에 가서는 청빈서약을 했지만,겉으론 검소하고 겸손하게 생활만 하면 아무도 비난하지 않고, 한푼 두푼 큰 돈 모아 가끔 성지순례 핑계대고 해외나가고 스키타고 ...공짜표니 할인표니 받아서 쓰면 되고...이런 걸 희생이라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겠는가.
아, 있긴 있다. 자녀를 낳아서는 안된다는 압박감, 상시 피임을 해야 하고 귀여운 아이들 보고 부러워해야 하고 나이들어서 경제적으로 좀 압박이 된다는거...이것도 희생이라면 희생이겠다.
특파시절 뚫었던 치열한 경쟁률의 순감타이들로 또 다시 치열하게 경쟁하여 지감이나 벧엘로 가야한다는 인생목표가 생기는 것도 당연한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