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또....입니다.. ^^;;
역시.. 제겐 새로운 것을 제시해 준 글이였구요..
좀 깁니다..
끝까지 읽으시려면.. 인내심이.. ^^
제가 개인적으로 느낀 거는요..
글쎄..
하나님 말귀를 알아듣는 자가 되고 싶네요..
제 일상 생활 가운데 곳곳에서 함께하시고...나타내시는 그 분의 손길을 알아볼 수 있는 자가 되고 싶구요..
정말.. 맨날맨날 하루조~~옹일 하나님과 동행하고 싶은데.. 하면서도.. 막상 곁에 이미 오셔서 제게 말씀하고 계신 그 분을 알아채지도 못하고 무슨 소리 하시는지 알아듣지도 못하고..'혼자' 이리저리 머리 굴려보며 용쓰고 있는 미련한 저의 모습이..
으~~~~~~~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켄 가이어의 {영혼의 창} 의 일부분 입니다.
내용이 좋아서 한번 보내드립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감수성훈련을 위한 글이라고 하네요..
시스틴 성당 천장에 그려진 미켈란젤로의 그림은 인간 역사를 통틀어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손을 내미신다. 아직 손가락이 맞닿아 있지는 않다. 손가락이 맞닿을 때 마아다 그 계시의 한순간, 하늘과 땅 사이에 창이 열린다.
그 계시의 순간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은 터어키 과자보다 달콤한 것이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진다. 은혜와 사랑의 말씀, 인도와 교정의 말씀, 지혜와 깨달음의 말씀, 용서와 확신의 말씀,
우리 영혼에 갈급한 말씀.
말씀은 우리 영혼에 일용할 양식이다. 하지만 그 말씀이란 무엇인가?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하나님은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서 단서를 주신다.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서는 다시는 그리로 가지 않고 토지를 적시어서 싹이 나게 하며 열매가 맺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 하늘에서 내리는 비와 눈에 비유되고 있다. 비나 눈은 땅에 떨어져 시내로 흘러들고 호수에 고이며 지하수 수맥에 스며든다. 호수에 손을 담가 보라, 거기 산자락에서 흘러내린 빗물과 산꼭대기에서 녹아내린 눈이 있다. 우물을 파 보라. 거기도 빗물이 흐른다. 나무 덩굴의 줄기를 가만히 살펴보라. 비가 흘린 눈물이 즙으로 배어 있다. 나뭇잎을 살짝 눌러보라, 한때 비였던 물방울이 새어 나온다. 복숭아를 한 입 배어보라. 겨울철의 눈과 봄날 소나기가 한데 섞인 과즙이 송알송알 맺힌다.
하나님의 말씀도 비나 눈처럼 온 땅에 가득차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특정 장소, 예컨데 성경에서만 찾을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사실상 빗물을 가장 눈에 잘 띄는 호수에서만 찾을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나 같다.
어디를 보아도 하나님의 말씀의 흔적이 있다. 역사속에, 우리의 삶의 상황 속에, 인간 세상 구석구석에.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을 입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기에 그리스도의 삶의 모든 언행은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언어가 되었고, 지금도 그렇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안에 거하신다면 아무리 모호할지라도 하나님은 우리 삶의 언어를 통해 다른이에게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면 그 응답을 이루는 삶의 상황은 그대로 그분의 말씀의 메아리가 된다. 대부분 그 응답은 사자를 통해 이루어진다. 그 사자는 천사나 예술 작품일수도 있고, 선지자나, 함께 점심을 먹는 사람일 수도 있고, 성경 말씀이나 노래일 수도 있고, 환상이나 꿈일수도 있고, 자연이나 영화의 한 장면일 수도 있다. 비와 눈이 이 땅에서 맡은 바 소임을 이루기 전에는 다시 하늘로 올라가지 않는 것처럼 이 사자들도 보냄받은 사명을 성취하기 전에는 그냥 빈손으로 하나님에게 돌아가지 않는다.
예수님은 비유로 말씀하신 때도 있다. 비유야 말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 하실 때 가장 자주 사용하시는 방법이 아닐까. 그분은 자연을 통해 비유로 말씀하시며 역사와 꿈과 삶의 상황 속에서 비유의 언어를 사용하신다. 때로는 신기한 우연의 연속처럼 여러 상황이 퍼즐 조각처럼 우리 앞에 다가온다. 개개의 조각을 오래오래 처다볼수록 연결이 분명해진다. 색깔이 이어지고 모양이 들어맞아, 머잖아 하나의 그림이 나타난다. 퍼즐 게임과 똑같이. 한순간 뒤죽박죽이던 초록빛 조각들이 다음 순간 잔디밭으로 바뀐다.
말콤 머거리지는 말했다.
"크고 작은 모든 사건은 하나님께서 들려주시는 비유이다. 거기서 메시지를 읽어내는 것이 삶의 예술이다."
영혼의 창에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모든 것을 보는 것, 그리고 손 내밀어 그것을 받는 것, 그것이 삶의 예술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위험이 따른다. 은혜의 순간을 분석하여 그 순간을 재현시킬수 있는 원리를 만들고 그 원리를 신앙의 척도와 행동 규범으로 율법화하는 것이 우리의 본능적 성향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의 자연스러움을 놓칠 뿐 아니라 생명마저 잃고 만다.
그러나 하나님은 잠자코 램프의 요정으로 갇혀 계시는 분이 아니다. 요정처럼 통제받지도 않으신다. 램프를 다루는 비결만 알면 누구나 자기 뜻대로 부를수 있는 것은 요정이다.
창을 여는 쪽은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할수 있는 일은 거기서 그분이 주시는 것을 받거나 받지 않는 것 뿐이다..
은혜를 구하는 기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창을 여시고
말씀을 주사
제 영혼의 굶주림을 채워 주시던
그 순간들로 인해.
떡으로만 아니라
바로 그 말씀으로 살아감을
깨달을수 있는 은혜를 주소서
그 떡이 어떤 모양으로 오든
묵상할 뿐 아니라 수용하며 사는 은혜를 주소서
그리하여 창이 열리 때 알아볼 뿐 아니라
그 주시는 것을 받게 하소서
그 주시는 것이
제 영혼의 일용할 양식임을 깨닫게 하소서.
주님. 감상은 커녕 주목 받지도 못한 채
외경은 커녕 묵상도 거치지 못한 채,
감사는 커녕 생각도 제대로 못한 채
그냥 스쳐 가는 것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사랑하는 하나님
신을 벗도 서도록 은혜를 주소서
조듬이라도 하나님의 영광이 베어있는 모든 것 앞에.
모세의 가시떨기 나무를 기억하십니까? 가시떨기에 임하신 하나님을 보고 신을 벗은 사람은 모세였습니다.
일상에서 이것을 보지 못한다면
늘 그 곁에서 야생 딸기나 따면서 일생을 마치게 되겠지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과. 만나는 사람들 안에서 주님께서 일하심을. 주님안에 있는 영광을 발견할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축복합니다...
또....입니다.. ^^;;
역시.. 제겐 새로운 것을 제시해 준 글이였구요..
좀 깁니다..
끝까지 읽으시려면.. 인내심이.. ^^
제가 개인적으로 느낀 거는요..
글쎄..
하나님 말귀를 알아듣는 자가 되고 싶네요..
제 일상 생활 가운데 곳곳에서 함께하시고...나타내시는 그 분의 손길을 알아볼 수 있는 자가 되고 싶구요..
정말.. 맨날맨날 하루조~~옹일 하나님과 동행하고 싶은데.. 하면서도.. 막상 곁에 이미 오셔서 제게 말씀하고 계신 그 분을 알아채지도 못하고 무슨 소리 하시는지 알아듣지도 못하고..'혼자' 이리저리 머리 굴려보며 용쓰고 있는 미련한 저의 모습이..
으~~~~~~~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켄 가이어의 {영혼의 창} 의 일부분 입니다.
내용이 좋아서 한번 보내드립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감수성훈련을 위한 글이라고 하네요..
시스틴 성당 천장에 그려진 미켈란젤로의 그림은 인간 역사를 통틀어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손을 내미신다. 아직 손가락이 맞닿아 있지는 않다. 손가락이 맞닿을 때 마아다 그 계시의 한순간, 하늘과 땅 사이에 창이 열린다.
그 계시의 순간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은 터어키 과자보다 달콤한 것이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진다. 은혜와 사랑의 말씀, 인도와 교정의 말씀, 지혜와 깨달음의 말씀, 용서와 확신의 말씀,
우리 영혼에 갈급한 말씀.
말씀은 우리 영혼에 일용할 양식이다. 하지만 그 말씀이란 무엇인가?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하나님은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서 단서를 주신다.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서는 다시는 그리로 가지 않고 토지를 적시어서 싹이 나게 하며 열매가 맺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 하늘에서 내리는 비와 눈에 비유되고 있다. 비나 눈은 땅에 떨어져 시내로 흘러들고 호수에 고이며 지하수 수맥에 스며든다. 호수에 손을 담가 보라, 거기 산자락에서 흘러내린 빗물과 산꼭대기에서 녹아내린 눈이 있다. 우물을 파 보라. 거기도 빗물이 흐른다. 나무 덩굴의 줄기를 가만히 살펴보라. 비가 흘린 눈물이 즙으로 배어 있다. 나뭇잎을 살짝 눌러보라, 한때 비였던 물방울이 새어 나온다. 복숭아를 한 입 배어보라. 겨울철의 눈과 봄날 소나기가 한데 섞인 과즙이 송알송알 맺힌다.
하나님의 말씀도 비나 눈처럼 온 땅에 가득차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특정 장소, 예컨데 성경에서만 찾을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사실상 빗물을 가장 눈에 잘 띄는 호수에서만 찾을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나 같다.
어디를 보아도 하나님의 말씀의 흔적이 있다. 역사속에, 우리의 삶의 상황 속에, 인간 세상 구석구석에.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을 입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기에 그리스도의 삶의 모든 언행은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언어가 되었고, 지금도 그렇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안에 거하신다면 아무리 모호할지라도 하나님은 우리 삶의 언어를 통해 다른이에게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면 그 응답을 이루는 삶의 상황은 그대로 그분의 말씀의 메아리가 된다. 대부분 그 응답은 사자를 통해 이루어진다. 그 사자는 천사나 예술 작품일수도 있고, 선지자나, 함께 점심을 먹는 사람일 수도 있고, 성경 말씀이나 노래일 수도 있고, 환상이나 꿈일수도 있고, 자연이나 영화의 한 장면일 수도 있다. 비와 눈이 이 땅에서 맡은 바 소임을 이루기 전에는 다시 하늘로 올라가지 않는 것처럼 이 사자들도 보냄받은 사명을 성취하기 전에는 그냥 빈손으로 하나님에게 돌아가지 않는다.
예수님은 비유로 말씀하신 때도 있다. 비유야 말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 하실 때 가장 자주 사용하시는 방법이 아닐까. 그분은 자연을 통해 비유로 말씀하시며 역사와 꿈과 삶의 상황 속에서 비유의 언어를 사용하신다. 때로는 신기한 우연의 연속처럼 여러 상황이 퍼즐 조각처럼 우리 앞에 다가온다. 개개의 조각을 오래오래 처다볼수록 연결이 분명해진다. 색깔이 이어지고 모양이 들어맞아, 머잖아 하나의 그림이 나타난다. 퍼즐 게임과 똑같이. 한순간 뒤죽박죽이던 초록빛 조각들이 다음 순간 잔디밭으로 바뀐다.
말콤 머거리지는 말했다.
"크고 작은 모든 사건은 하나님께서 들려주시는 비유이다. 거기서 메시지를 읽어내는 것이 삶의 예술이다."
영혼의 창에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모든 것을 보는 것, 그리고 손 내밀어 그것을 받는 것, 그것이 삶의 예술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위험이 따른다. 은혜의 순간을 분석하여 그 순간을 재현시킬수 있는 원리를 만들고 그 원리를 신앙의 척도와 행동 규범으로 율법화하는 것이 우리의 본능적 성향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의 자연스러움을 놓칠 뿐 아니라 생명마저 잃고 만다.
그러나 하나님은 잠자코 램프의 요정으로 갇혀 계시는 분이 아니다. 요정처럼 통제받지도 않으신다. 램프를 다루는 비결만 알면 누구나 자기 뜻대로 부를수 있는 것은 요정이다.
창을 여는 쪽은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할수 있는 일은 거기서 그분이 주시는 것을 받거나 받지 않는 것 뿐이다..
은혜를 구하는 기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창을 여시고
말씀을 주사
제 영혼의 굶주림을 채워 주시던
그 순간들로 인해.
떡으로만 아니라
바로 그 말씀으로 살아감을
깨달을수 있는 은혜를 주소서
그 떡이 어떤 모양으로 오든
묵상할 뿐 아니라 수용하며 사는 은혜를 주소서
그리하여 창이 열리 때 알아볼 뿐 아니라
그 주시는 것을 받게 하소서
그 주시는 것이
제 영혼의 일용할 양식임을 깨닫게 하소서.
주님. 감상은 커녕 주목 받지도 못한 채
외경은 커녕 묵상도 거치지 못한 채,
감사는 커녕 생각도 제대로 못한 채
그냥 스쳐 가는 것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사랑하는 하나님
신을 벗도 서도록 은혜를 주소서
조듬이라도 하나님의 영광이 베어있는 모든 것 앞에.
모세의 가시떨기 나무를 기억하십니까? 가시떨기에 임하신 하나님을 보고 신을 벗은 사람은 모세였습니다.
일상에서 이것을 보지 못한다면
늘 그 곁에서 야생 딸기나 따면서 일생을 마치게 되겠지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과. 만나는 사람들 안에서 주님께서 일하심을. 주님안에 있는 영광을 발견할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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