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 방모

작성자35 청운|작성시간26.06.11|조회수17 목록 댓글 0

1987년 1월 14일, 남영동 고문실에서 박종철을 죽인 경찰은 '책상을 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고 발표했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진실을 폭로했고, 항쟁이 시작되었다. 

6월 9일 시위 중에 연세대생 이한열이 경찰이 쏜 직격 최루탄에 맞아 사망했다. 6월 10일부터 전국적 항쟁이 시작되었고 뜨거운 6월이 계속되었다. 

 

그 시절 나는 인천의 공장에 다니고 있었다. 주야 막교대였다. 야간 근무인 주에는 아침에 퇴근해 서울로 진출했다. 

서울시내 곳곳이 전장을 방불케 했다. 

 

내 담당 형사를 만난 날, 나는 청계천 1가 근처에서 체포되었다. 

종로에서 경찰과 일진일퇴를 거듭하며 대치하던 시위대가 청계천으로 이동하여 기습전을 펼치던 중이었다. 뒤늦게 출동한 백골단이 떼지어 달려들었다. 시위대가 물러서자 백골단도 물러섰다. 그런데 백골단 한 명이 끝까지 쫓아와 뒤처진 학생 한 명을 잡아 끌고갔다. 

 

살펴보니 백골단은 그 한 명 뿐이었다. 나는 달려가 이단옆차기를 날렸다. 학생의 머리채를 잡고 끌고 가던 백골단이 쓰러졌다. 나는 얼른 몸을 돌려그 학생과 도망치려는데, 아뿔사, 옆 골목에서 백골단들이 쏟아져나왔다. 꼼짝 없이 잡혀 닭장차로 끌려갔다. 호송버스 안에는 먼저 잡혀온 시위대가 머리를 처박고 있었다. 머리를 들면 백골단의 곤봉이 사정없이 날아들었다. 

 

나를 태운 닭장차가 도착한 곳은 서초경찰서였다. 하도 많은 학생과 시민들이 잡혀오다 보니 사대문 인근 경찰서는 유치장이 다 차서 먼 경찰서로 분산수용하는 모양이었다. 

 

서초경찰서 정보과와 대공과 형사들이 내려와서 잡혀온 시위대를 인수받아 조사실로 데려갔다. 나는 형사가 인수하러 올 때까지 뭐라고 둘러대며 잡아뗄까 궁리했다. 워낙 많은 시위대를 잡아오느라 각자 뭘 하다가 어떻게 잡혀왔는지 인수인계가제대로 되는 것 같지 않았다. 전산화도 되어 있지 않던 시절이라 바로 신원확인도 쉽지가 않았다. 

 

그런데, 젠장, 재수가 없었다. 인수하러온 형사 하나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키도 크고 덩치도 좋은 대학시절 내 전담 형사였다. 나를 찍어 대공과로 데리고 간 그가 물었다.

"아직도 그렇게 사냐?"

 자포자기 하고 천정만 바라보는 내 팔을 그가 잡아 끌었다. 

"따라와라."

나를 옥상으로 데리고 간 그가 내 팔을 잡았던 손을 털며 말했다. 

"아휴, 이 최루탄 냄새. 옷부터 벗어서 좀 털어라."

 

내가 옷을 벗어 한참 털고 나자 그가 담배 한 대를 내밀었다. 담배를 피우며 내가 물었다. 

"박카스는 없어요?"

그가 칼칼 웃었다. 내 전담 형사인 그는 내가 경찰서에 끌려가 당할 때는 나타나지 않았다. 죽도록 다 얻어터진 다음에 그는 박카스와 안티프라민을 들고 나타나 담배를 권했다. 내가 담배를 피우는 동안 안티프라민을 발라주며 그는 말했다. 

"아, 무식한 새끼들. 사람을 어떻게 이렇게까지 패냐."

한통속인 줄 잘 알면서도 희한하게 그 말이 위로가 되었다. 자칫하면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 어금니를 깨물기도 했다. 그러면 그는 박카스를 따서 내게 내밀었다. 

 

서초경찰서 옥상에서 내려가면서 그가 물었다.

"어디서 잡혔냐?"

"청계천요."

"거기 몇 번 버스 지나다니냐?"

"542번 지나가는데, 왜요?"

고등학교 시절 종로서적에 책 사러갈 때 타고가던 542번 버스가 청계천을 지나갔다. 

"542번 버스타고 가다가 데모로 차가 막혀서 내렸고, 길가에 서서 데모 구경하다가 잡혀온 것으로 하자."

 

훈방으로 경찰서를 나서는 나에게 그가 물었다. 

"세상이 어떻게 될 거 같으냐?"

"민주화가 되겠죠. 언제일진 모르지만."

"야, 나 너하고 감정 없는 거 알지."

 

그는 나에게 주먹을 날리며 조롱하던 다른 형사들과 조금 달랐다. 

"야 이새끼야, 민주화? 그게 될 거 같아. 그래 이 새끼야. 민주화가 되면 내가 니들한테 당해줄께."

그들에게 당하면서 나는 내 담당형사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곤 했다. 그가 박카스와 안티프라민을 들고 나타나면 조사가 끝났다는 신호였기 때문이었다. 

 

그해 6월, 서초경찰서 옥상에서 내 옷을 함께 털어주었던 내 담당형사는 이 6월, 어떻게 살고 있을까. 만난다면 막걸리 한 잔 사주고 싶다.

 

나에게 민주화 따위는 결코 오지 않을 거라며, 그런 날이 오면 나에게 당해주겠다던 그 형사들은 또 어떻게 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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