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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리그에 진출한 장 피에르 파팽은 20골을 터뜨려, 리그 득점왕에 등극하며 옛 명성에 걸맞는 맹활약을 펼쳐 급기야 프랑스대표팀에도 선발되는 영광을 안았다.
이후 꾸준히 기량이 급상승하던 장 피에르 파팽은 1990년대 문턱에 들어서면서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 하는 계기를 맞게 됐다.
이 같은 뛰어난 활약으로 장 피에르 파팽은 총11골로(팀16강 탈락) 득점왕까지 차지했다.
한편 장 피에르 파팽은 1991년 국제축구연맹(FIFA) 올해의 선수 2위까지 기록하며, 당대 최정상급 스트라이커로 평가받았고 발롱도르(유럽최우수선수)를 수상하는 영예를 차지하기도 했다.
현재까지 프랑스리그 선수가 발롱도르에 선정된 경우는 장 피에르 파팽이 유일하다.
그러나 장 피에르 파팽은 펠레, 유세비오, 프란츠 베켄바우어, 디에고 마라도나, 미셸 플라티니 등과 같은 세계적인 선수로 인정 받을 수 없었다.
이유는 다름아닌 FIFA월드컵 무대에서 활약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장 피에르 파팽의 황금기였던 1990년 이탈리아 FIFA월드컵과, 1994년 미국 FIFA월드컵 유럽예선에서 연속 고배를 마셔 장 피에르 파팽은 FIFA월드컵 본선 무대에는 설 수 없었다.
프랑스의 1984년 유로우승, 1986년 멕시코 FIFA월드컵 3위는 장 피에르 파팽에게는, 21, 23세의 너무 어린 나이였고, 1998년 프랑스 FIFA월드컵 당시에는 장 피에르 파팽의 전성기가 지난 후였다.
특히 1986년 멕시코 FIFA월드컵에 출전한 장 피에르 파팽은 미셸 플라티니를 비롯한 기라성같은 스타로 이뤄진 스쿼드때문에 백업스트라이커로 주로 기용됐지만, 대 캐나다전과 3, 4위 전이었던 벨기에 전에서 골을 기록하며 그의 등장에 축구계에 알리는 계기는 마련했지만 장 피에르 파팽에게 더 이상의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장 피에르 파팽이 국제무대에 얼굴을 내밀기 시작한것은 아이러니컬 하게도 1986년 멕시코 FIFA월드컵 출전이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조국 프랑스에서 황금기를 보낸 장 피에르 파팽은 1992년 이탈리아의 명문 AC 밀란으로 이적 그의 녹슬지 않은 득점 감각을 뽑내며, AC 밀란을 세리에A 우승 2번과 또한 UEFA챔피언스리그 우승으로 이끌었다.
AC 밀란의 우승에 공헌한 장 피에르 파팽은 30이 넘어 독일의 분데스리가 바이에른 뮌헨에 둥지를 틀었으나, 부상으로 전성기 만큼의 활약을 펼치지 못한 채 한 차례 우에파컵 우승컵을 들어올린 후 조국 보르도팀에 안착, 1997~1998시즌까지 선수로서의 마지막 정열을 쏟고 장 피에르 파팽은 1999년 영원히 현역에서 은퇴했다.

▲장 피에르 파팽의 기록
그러나 장 피에르 파팽은 2009년 전격적으로 지도자에서 10부리그의 아마추어팀, AS 팍투르-비가노팀 선수로 그라운드로 복귀하여 자신의 축구인생에 마지막 열정을 불살랐다.
16년간 410경기에 나서 215골을 기록한 장 피에르 파팽은 1990년대 프랑스축구의 전설이었다.
▣선수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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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 |
소 속 |
비 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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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 ~ 1984 |
INF 비시 (프랑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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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 1985 |
발랑시엔 FC (프랑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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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 ~ 1986 |
클럽 브뤼헤(벨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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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 ~ 1992 |
올림피크 디 마르세이유(프랑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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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 ~ 1994 |
AC 밀란(이탈리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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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 ~ 1996 |
FC 바이에른 뮌헨(독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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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 ~ 1998 |
FC 지롱댕 보르도(프랑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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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 ~ |
앙나방 갱강(프랑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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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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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 |
소 속 |
비 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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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 2006 |
FC 바생 다르카숑(프랑스) |
감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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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 2007 |
RC 스트라스부르(프랑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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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8 ~ 2008 |
RC 랑스(프랑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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