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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피에르 파팽

작성자chukkuk56|작성시간09.10.02|조회수888 목록 댓글 0
1963년 11월 5일 프랑스 볼로뉘쉬르메르에서 태어난 장 피에르 파팽(Jean-Pierre Papin)은 어린시절 골키퍼로 축구에 입문했다.
그러나 경기에서 무려 9실점을 내주며 골키퍼로서 굴욕적인 상황을 맞고난 후 장 피에르 파팽은 선수로서 일대 전환점의 기회를 맞게됐다.
장 피에르 파팽을 지도했던 감독은 다음 경기에 장 피에르 파팽을 골키퍼가 아닌 공격수로 기용했고, 장 피에르 파팽은 이 경기에서 공격수로서 재능을 선보여 골키퍼에서 공격수로 변신을 꾀했다.
공격수로 전환한 장 피에르 파팽은 19세의 나이로 발랑시엔 FC입단 프로선수로서의 첫 발을 내디뎠다. 프로에 진출하자마자 장 피에로 파팽은 타고난 소질, 재능을 유감없이 선보이며 기량이 '일취월장' 뛰어난 득점력을 과시 두 자리수 득점을 기록했다. 이를 발판으로 장 피에로 파팽은 발랑시엔 FC입단했지만  그러나 과거 명성과는 다른 부진으로 다음해인 1986년 벨기에리그에 진출하게 되었다.

벨기에리그에 진출한 장 피에르 파팽은 20골을 터뜨려, 리그 득점왕에 등극하며 옛 명성에 걸맞는   맹활약을 펼쳐 급기야 프랑스대표팀에도 선발되는 영광을 안았다.

젊음과 빼어난 득점력으로 무장한 장 피에르 파팽은 프랑스대표팀 일원으로 1986년 멕시코 국제축구연맹(FIFA)월드컵에 출전 주전같은 리저브로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며, 프랑스의 FIFA월드컵 3위 입상을 견인한 후 1986 ~ 1987시즌 마르세유(프랑스)로 이적 '부귀영화'를 누렸다.
마르세유 이적 첫 해 또 다시 두 자리수 득점을 올리며 공격수로서 자신의 가치를 보여준 장 피에르 파팽은, 1987 ~ 1988시즌 부터는 파죽지세의 골 퍼레이드를 펼치며 5시즌 연속 프랑스리그 득점왕에 올라 '고공폭격기'라는 애칭을 얻는 동시에 마르세유의 4연패 달성에 일등공신으로 우뚝섰다.
'일취월장' 고공비행을 계속한 장 피에르 파팽은 프랑스리그 뿐만 아니라,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도 2년 연속 득점왕을 차지하는 놀라운 득점 감각을 보여주었다.
장 피에르 파팽은 빠른 스피드, 동물적인 슈팅 감각, 정확한 타이밍으로 다양한 골을 기록했고, 특히 골문 오른쪽 45' 위치에서의 플레이는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장 피에르 파팽만의 전매특허로 예술적이기까지 했다. 

이후 꾸준히 기량이 급상승하던 장 피에르 파팽은 1990년대 문턱에 들어서면서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 하는 계기를 맞게 됐다.

당시 프랑스는 1992년 유럽축구선수권 이전까지 무패행진을 계속 했는데 이 당시 프랑스대표팀의 별명이 바로 "파팽의 프랑스"였다.
프랑스 대표팀은 1990년 이탈리아 FIFA월드컵 본선에 진출하지 못한 이후 장 피에르 파팽, 칸토나, 디디에 데샹등을 중심으로, 전력이 급격히 재구축되고 있던 시기였는데 장 피에르 파팽은 이 시기에 프랑스에게 기둥과도 같은 존재였다.
장 피에르 파팽은 '유로92' 예선 6경기에서 무려 9골을 퍼부으며 전승으로 팀을 본선에 진출시켰고, 본선에서도 팀은 부진했지만 자신은 3경기에서 2골을 기록하며 자신의 이름을 유럽 전역에 알리는 토대를 구축했다.

이 같은 뛰어난 활약으로 장 피에르 파팽은 총11골로(팀16강 탈락) 득점왕까지 차지했다.

한편 장 피에르 파팽은 1991년 국제축구연맹(FIFA) 올해의 선수 2위까지 기록하며, 당대 최정상급 스트라이커로 평가받았고 발롱도르(유럽최우수선수)를 수상하는 영예를 차지하기도 했다.

현재까지 프랑스리그 선수가 발롱도르에 선정된 경우는 장 피에르 파팽이 유일하다.

그러나 장 피에르 파팽은 펠레, 유세비오, 프란츠 베켄바우어, 디에고 마라도나, 미셸 플라티니 등과 같은 세계적인 선수로 인정 받을 수 없었다.

이유는 다름아닌 FIFA월드컵 무대에서 활약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장 피에르 파팽의 황금기였던 1990년 이탈리아 FIFA월드컵과, 1994년 미국 FIFA월드컵 유럽예선에서 연속 고배를 마셔 장 피에르 파팽은 FIFA월드컵 본선 무대에는 설 수 없었다.

프랑스의 1984년 유로우승, 1986년 멕시코 FIFA월드컵 3위는 장 피에르 파팽에게는, 21, 23세의 너무 어린 나이였고, 1998년 프랑스 FIFA월드컵 당시에는 장 피에르 파팽의 전성기가 지난 후였다.

특히 1986년 멕시코 FIFA월드컵에 출전한 장 피에르 파팽은 미셸 플라티니를 비롯한 기라성같은 스타로 이뤄진 스쿼드때문에 백업스트라이커로 주로 기용됐지만, 대 캐나다전과 3, 4위 전이었던 벨기에 전에서 골을 기록하며 그의 등장에 축구계에 알리는 계기는 마련했지만 장 피에르 파팽에게 더 이상의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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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피에르 파팽이 국제무대에 얼굴을 내밀기 시작한것은 아이러니컬 하게도 1986년 멕시코  FIFA월드컵 출전이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장 피에르 파팽은 대표팀에서 1986년부터 1995년까지 뛰며 54경기 출장에 30골을 기록했으나, 1980년대 중.후반 미셸 플라티니-알롱 지레스-장 티가나로 이어지는 예술적인 라인업과, 1990년초.중반 에릭 칸토나- 데이빗 지놀라- 지네딘 지단으로 이어지는 파괴적인 라인업으로 전설적인 미셸 플라티니 시대와 황금의 지네딘 지단 시대 사이에 있던 장 피에르 파팽으로서는 비운이 이 아닐 수 없다.

조국 프랑스에서 황금기를 보낸 장 피에르 파팽은 1992년 이탈리아의 명문 AC 밀란으로 이적 그의 녹슬지 않은 득점 감각을 뽑내며, AC 밀란을 세리에A 우승 2번과 또한 UEFA챔피언스리그 우승으로 이끌었다.

AC 밀란의 우승에 공헌한 장 피에르 파팽은 30이 넘어 독일의 분데스리가 바이에른 뮌헨에 둥지를 틀었으나, 부상으로 전성기 만큼의 활약을 펼치지 못한 채 한 차례 우에파컵 우승컵을 들어올린 후 조국 보르도팀에 안착, 1997~1998시즌까지 선수로서의 마지막 정열을 쏟고 장 피에르 파팽은 1999년 영원히 현역에서 은퇴했다.

                                             ▲장 피에르 파팽의  기록


그러나 장 피에르 파팽은 2009년 전격적으로 지도자에서 10부리그의 아마추어팀, AS 팍투르-비가노팀 선수로 그라운드로  복귀하여 자신의 축구인생에 마지막 열정을 불살랐다.

16년간 410경기에 나서 215골을 기록한 장 피에르 파팽은 1990년대 프랑스축구의 전설이었다.

 

                   ▣선수경력

소                          속

비            고

1983 ~ 1984

INF 비시 (프랑스)

 

1984 ~ 1985

발랑시엔 FC (프랑스)

 

1985 ~ 1986

클럽 브뤼헤(벨기에)

 

1986 ~ 1992

올림피크 디 마르세이유(프랑스)

 

1992 ~ 1994

AC 밀란(이탈리아)

 

1994 ~ 1996

FC 바이에른 뮌헨(독일)

 

1996 ~ 1998

FC 지롱댕 보르도(프랑스)

 

1998 ~

앙나방 갱강(프랑스)

 


 

                   ▣지도자경력

소                             속

비           고

2004 ~ 2006

FC 바생 다르카숑(프랑스)

감독 

2006 ~ 2007

RC 스트라스부르(프랑스)

,, 

2007.8 ~ 2008

RC 랑스(프랑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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