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리노 알칸타라(Paulino Alcantara)는 세계 축구계에 명함도 제대로 내밀지 못하고 있는 필리핀의 위대한 축구 선수다.
필리핀의 축구 기반은 극히 취약하다.
국제축구연맹(FIFA)에 가맹한 211개국(2020년 현재) 중 랭킹이 180위권(2010년: 현재)이라는 사실이 이를 대변해 준다.
필리핀은 17세기 이래 스페인과 미국 식민지였고 1942년 이후, 일본의 점령 하에 있다가 1946년에 독립했지만 미국의 영향으로 농구가 최대 인기 스포츠다.
필리핀 축구의 현실은 몇 년 전 한 선수가 베트남 리그에 진출한 것을 두고, 축구 발전에 있어 큰 의미가 있다고 평가할 정도다.
하지만 20세기 초반 파울리노 알칸타라는 그런 의미를 무색하게 할 정도로 세계 최고 수준의 선수였다.
파울리노 알칸타라를 논외로 하더라도 필리핀은 20세기 초반 아시아의 축구 강국이었다.
그 시절의 필리핀은 아시아 최초로 축구 국가 대항전을 가졌던 나라로, 역사 기록에 남아 있는데 그 경기가 바로 1913년 2월1일에 열린 중국과의 경기였다.
한국축구가 경술국치와 3.1 운동의 과정을 거치면서, 일제 식민지의 질곡에서 신음했던 시절, 필리핀은 일본, 중국과 함께 아시아 축구를 대표하던 국가였다.
파울리노 알칸타라는 1896년 10월 7일 필리핀의 일로일로(Iloilo)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그 지역에 주둔했던 스페인 군인이었으며 어마니는 필리핀인이었다.
1910년에 그가 스페인 바로셀로나로 간 것은 학업을 위해서였다.
그러나 파울리노 알칸타라는 1910년 14살의 나이로 FC 바로셀로나(Futbol Club Barcelon
a)에 들어가 축구를 시작한 그는, 15세 4개월 18일의 나이로 카탈라(Catala)와의 경기에 출장하여 첫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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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경기에서 FC 바르셀로나는 파울리노 알칸타라의 해트트릭에 힘임어 9 : 0 승리를 거두었다.
리그 경기 첫 출장은 1912년 8월 14일의 사바델(Sabadell)과의 경기였는데, 이 경기에서도 파울리노 알칸타라는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FC 바르셀로나의 성인 팀에 화려하게 데뷔했다.
FC 바르셀로나가 8 : 2로 이긴 그 경기에서 FC 바르셀로나 회장은, 저 빼빼마른 선수가 도대체 누구냐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파울리노 알칸타라는 1916년부터 1918년까지는 필리핀, 보헤미안(Bohemian) 팀에서 뛰면서 필리핀 국가 대표로도 발탁되기도 했다.
스페인에게 돌아온 그에게 영국 출신 감독 그린웰(Jack Greenwell)은 수비수의 보직을 주었으나, FC 바르셀로나 클럽 멤버들의 요구로 다시 공격수로 복귀하였다.
1920년에는 스페인 올림픽 대표로 선발되었으나, 파울리노 알칸타라는 학업을 우선했기 때문에 팀 합류를 거부했다.
필리핀과 스페인의 이중 국적을 가졌던 그에게 있어 축구는 제2의 선택이었고, 축구보다 더 우선시된 것은 학업이었다.
그 때문에 그의 선수 생활 중 스페인 대표로 뛴 것은, 여섯 경기에 불과했으며 그 경기에서 그는 다섯 골을 기록했다.
스페인 대표 데뷔전이었던 벨기에와의 경기에서 팀이 기록한 두 골 모두를 파울리노 알칸타라가 기록하여 스페인의 2 : 0 승리의 수훈갑이 되었다.
그의 나이 25살 때였다.

파울리노 알칸타라가 선수 생활을 하는 동안 스페인 국가 대표팀은 스위스, 벨기에, 스웨덴과의 3경기 에서 1승 2무를 기록했다.
한편 파울리노 알칸타라는 그의 기념비적인 두 사건으로 인해 잊혀 질 수 없는 선수가 되었다.하나는 1922년 4월 30일 프랑스와의 경기에서 35 야드 거리에서 골을 넣었는데, 골네트가 찢어진 것이다.
그는 그 경기 후 '네트 파괴자'(romperedes: net breaker)라는 애칭을 얻었다.
두 번째는 같은 해 5월 20일 Les Corts stadium에서 또 네트를 찢는 강력한 슈팅을 시도했다.
파울리노 알칸타라는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는 두 가지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그 하나는 최연소 출장 기록이며 또 하나는 개인 최다 골 기록이다.
파울리노 알칸타라는 1927년 7월 5일 31살의 나이로 은퇴하기까지 12년간 줄곧 FC 바르셀로나 선수로 뛰면서, 개인 통산 357 경기 출장에 356 골을 기록하여 클럽 역사상 최다골 기록을 가지고 있다.
이 기록은 FC 바르셀로나(당시 FC 바르셀로나는 프리메라 리가가 아닌 카탈루냐 지역 리그 소속) 역사상 지금껏 깨지지 않고 있다.
스페인 국가 대표팀과 FC 바르셀로나는 그를 위해 은퇴 기념 경기를 마련하여 위대한 선수의 은퇴를 아쉬워하였다.
그는 FC 바로셀로나 소속팀으로 다섯 번의 스페인컵 우승과 10번의 카탈루니아 리그 챔피언에 올랐다.
그는 전공을 살려 의사가 되려 했지만, 스페인 축구계는 그를 놓아 주지 않았다.
1931년부터 3년간 클럽 이사로서 활동했고, 1951년에는 국가 대표팀의 코칭스태프로 참여했다.
파울리노 알칸타라는 1964년 2월 13일 바르셀로나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는 대부분의 축구 선수 경력을 스페인에서 이룩했지만 필리핀에서 태어난 필리핀의 국가 대표를 지낸 아시아 최초의 유럽 진출 선수다.
또한 비유럽 태생으로 스페인 국가 대표가 된 최초의 선수이기도 하다.
파울리노 알칸타라는 누구보다도 킬러 본능이 뛰어나 어떻게 하면 골이 되는지에 대해, 동물적 감각을 지니고 있었던 아시아 최초의 유럽파인데다 역대 최고의 레전드였다.
▣선수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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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 |
소 속 |
비 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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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 ~ 1915 |
FC 바르셀로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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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 ~ 1918 |
Los 보헤미안(필리핀) |
필리핀 국가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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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 ~ 1927 |
FC 바르셀로나 |
FC 바르셀로나: 357경기 / 356득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