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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말씀

2024년 3월 10일 (요 5:14-18) "병 나음과 믿음 (4)"

작성자천국의작은모퉁이|작성시간26.06.06|조회수23 목록 댓글 0

 

 

* 본문:  요한복음 5장 14-18절

 

5:14 μεττατα ερίσκει ατν ὁ Ἰησος ν τῷ ἱερκαεπεν ατῷ ἴδε γις γέγονας μηκέτι μάρτανε να μχερόν σοί τι γένηται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

5:15 ἀπλθεν ὁ ἄνθρωπος καὶ ἀνήγγειλεν τος ουδαίοις τι ησος στιν ποιήσας ατν γι

그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가서 자기를 고친 이는 예수라 하니라

5:16 καδιτοτο δίωκον οἱ Ἰουδαοι τν ησον τι τατα ποίει ν σαββάτ

그러므로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 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박해하게 된지라

5:17 ὁ δὲ Ἰησος πεκρίνατο ατος πατήρ μου ως ρτι ργάζεται κγὼ ἐργάζομαι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5:18 διτοτο ον μλλον ζήτουν ατν οἱ Ἰουδαοι ποκτεναι τι ομόνον λυεν τσάββατον λλκαπατέρα διον λεγεν τν θεόν σον αυτν ποιν τθε

유대인들이 이로 말미암아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을 범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 묵상할 내용:   "병 나음과 믿음 (4)"

                         -  병 나은 후 자기 이익을 위해 예수를 고발하고 버림

                        

 

 

  이 땅에서 얼마 살지도 못하는 존재들은 끊임없이 자기 이익을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자기에서 손해가 된다고 여기는 것을 극단적으로 싫어하며 제거하려고 합니다. 그런 대상은 특정한 일이나 사람, 집단, 또는 어떤 구조나 사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사람들은 그런 식으로 살아가는 삶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결국 그런 삶이 자신에게 이익이 되지 못하며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조차 하지 못합니다. 주변에서 거의 모든 사람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적자생존과 자본주의 구조를 진리처럼 여기는 사람들에게 다른 가치와 진리는 용납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밟고 위에 서서 부리는 권력을 추구합니다.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돈을 가지길 원하면서 온갖 방법들을 다 씁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위해 합법적인 투자를 하는 것은 당연하며 권장할 일이라고 여깁니다. 불법적인 사기만 아니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실 구조에 있어서는 합법적인 투자나 불법적인 사기나 동일합니다. ‘합법이라고 정당성을 부여한 것도 사실 신의 법에 따른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부자는 천국에 갈 수 없다”(19:24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라고 말씀하신 것이 무슨 의미이겠습니까? 물론 기독교인들이든 아니든 이 구절을 자기 삶에 적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교회에 나와서도 신에게 무언가를 달라고 끊임없이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이 구절은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오히려 사탄의 말처럼 여깁니다. 자본주의에 찌든 사람들은 돈이 있든 없든 더 많이 가지기 위해 모든 시간과 노력을 다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가치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입니다. 교회에서도 주님의 가치관과 법으로 사람들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교회 자체가 더 커지고 부해지길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마치 신이 주신 이라고 주저하지 않고 선포하는 것에는 주님의 말씀이 영향을 미칠 공간은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선포에 대한 어떤 합리화도 주님께는 용납될 수 없습니다. 물론 교인들은 그런 선포에 대해 아멘하고 받아들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욕심과 하나 되는 설교와 선포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이런 집단과 사람들에게 회개를 명령하셨습니다. 인간이라는 존재들이 자기의 필요와 욕망을 신에게 구하며 그것을 이루기 위해 세상 속에서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주어진 시간을 낭비하는 삶의 방식을 당장 멈추고 돌이키라는 명령을 주님은 계속하셨습니다. 물론 사람들은 그런 명령을 극도로 혐오했습니다. 그래서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주님을 처형해 버렸습니다. 자기의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고 해가 되는 존재를 살려둘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께 도움을 받았다는 사람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설사 주님 덕분에 병에서 고침을 받고 죽음에서 다시 살아났다고 하더라도 별다르지 않습니다. 한순간 주님으로 인해 피해를 볼 것 같으면 주님을 떠납니다. 주님의 메시지가 주위 사람들에게 불편한 느낌을 줄 것 같으면 입을 닫습니다. 주님을 알지 못하는 듯 그렇게 살아갑니다. 그렇게 죽어갑니다. 결국 다시는 살 수 없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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