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요한복음 5장 19-21절
5:19 ἀπεκρίνατο οὖν ὁ Ἰησοῦς καὶ ἔλεγεν αὐτοῖς ἀμὴν ἀμὴν λέγω ὑμῖν οὐ δύναται ὁ υἱὸς ποιεῖν ἀφ᾽ ἑαυτοῦ οὐδὲν ἐὰν μή τι βλέπῃ τὸν πατέρα ποιοῦντα ἃ γὰρ ἂν ἐκεῖνος ποιῇ ταῦτα καὶ ὁ υἱὸς ὁμοίως ποιεῖ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5:20 ὁ γὰρ πατὴρ φιλεῖ τὸν υἱὸν καὶ πάντα δείκνυσιν αὐτῷ ἃ αὐτὸς ποιεῖ καὶ μείζονα τούτων δείξει αὐτῷ ἔργα ἵνα ὑμεῖς θαυμάζητε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가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그에게] 보이사 너희로 놀랍게 여기게 하시리라 [경이로움에 존경하며 숭배하게]
5:21 ὥσπερ γὰρ ὁ πατὴρ ἐγείρει τοὺς νεκροὺς καὶ ζῳοποιεῖ οὕτως καὶ ὁ υἱὸς οὓς θέλει ζῳοποιεῖ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살릴 것이다]
* 묵상할 내용: "주님을 높이는 것과 주님을 이용하는 것 (1)"
- 자기의 이익을 위해 주님을 신격화하는 죄
사람들에게 종교를 믿는 이유를 들라고 하면 사람들은 자신들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물론 마음의 평안함이나 여러 다른 이유를 말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한 것임에는 다르지 않습니다. 이처럼 종교는 태생부터 인간의 불안을 해소하고 인간들이 원하는 것들을 이루기 위한 길을 선택했습니다. 사람들이 호응하고 환호하지 않으면 종교라는 조직 자체가 존재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종교는 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을 위한 것이 되었습니다. 그러지 않은 종교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명목상 신을 위한다는 종교적 모든 행위는 결국 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이익을 위한 것임이 자명합니다. 겉으로 소위 믿음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행위에 사람들이 열심을 내는 것은 그만큼 신에게 받아내려는 것이 더 많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위 ‘상’으로서의 ‘복’을 받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것이 뭐가 잘못되었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종교가 잘못된 전통과 관습에 따라 잘못된 길을 다지고 다지면서 내려온 결과일 뿐 신의 뜻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공인된 종교든 수십억 명이 그 종교를 믿든 그 종교로 인해 전쟁이 일어날 만큼 영향이 크다고 하더라도 사실상 신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오히려 부정적일 뿐입니다. 왜냐하면 종교라는 이름으로 움직이는 것들이 결국은 신의 뜻을 가리고 신의 나라를 방해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신을 섬긴다는 것의 의미를 모릅니다. 배운 적도 없습니다. 단순히 종교가 가르친 규칙을 따르고 있을 뿐입니다. 의심하지 않습니다. 의심하면 그 종교로부터 믿음이 없다는 판단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종교가 만든 그 규칙은 사실 신과는 상관없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가시적으로 신을 섬기는 것과 같은 장치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안정감을 주기 위한 것일 뿐 정작 신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우선 신을 섬긴다는 것은 특정 장소에 모여 일정한 예식을 하는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안정감을 주기 위한 장치일 뿐 신을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예식을 하기 위해서 장소가 필요하고 건물이 필요하고 목사든 사제가 필요하고 사람들을 관리할 직원들도 필요한 것입니다. 그들을 위해 월급을 주고 건물도 보수하고 공간도 확보해야 하니 또 그것을 위한 돈, 헌금이 필요한 것입니다. 결국 그 헌금은 구조상 신에게 바쳐지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그 돈을 받고 있는 사람들은 그 헌금이 신에게 바쳐지는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면서 합리화할 것입니다. 또한 그들은 자신들이 신의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러나 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십니다.
신을 섬긴다는 것은 신이 주인이 되시며 신의 뜻을 기준으로 신께 복종하는 세상을 넓혀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나 교단을 확장하는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각자 신의 피조물로서 자신이 있는 삶의 현장에서 신의 뜻을 이루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이 회개하라고 선포하신 것은 교회에 빠짐없이 출석하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삶을 돌이키라는 명령입니다. 더 가지려고 하고 안정을 추구하고 남보다 높아지려고 살아가는 모든 삶을 멈추고 돌이키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신의 피조물로서 그렇게 살면 안 된다는 명백한 기준을 말씀하셨습니다.
더군다나 신을 섬기고 높인다고 하면서 그것을 조건으로 당당하게 신을 이용하려 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성공을 신에게 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땅을 신이 다스리시는 공간으로 만들지도 않으면서 저세상에 있다고 믿는 천국으로 보내달라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삶을 돌이키지도 않으면서 죄를 용서해 달라고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말로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하지 말고 용서받을 삶을 삶의 현장 속에서 당장 직접 살아내라는 것입니다. 이런 명확하고 단순한 진리가 종교에서 파괴되어 버렸습니다.
신을 높인다는 말들도 노래들도 예식들도 그것이 정말 삶 속에서 신의 뜻을 이루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두려움으로 살펴야 할 것입니다. 주여! 주여! 하면서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고 병을 고치던 자들을 향한 주님의 판결은 ‘불법’이라는 ‘유죄 판결’이었습니다(마 7:21-23). 각자가 종교를 믿는다고 하면서 끊임없이 주님을 이용해 사적인 요구를 이루려고 하는 부분이 무엇이 있는지 생명을 걸고 잘 살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