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모 교회 일지]
2024-8-1
* 찬양 : “ 98. 그리 많이 남지 않은 우리의 삶 ”
사람들은 누군가가 젊어서 세상을 떠나면 혀를 차며 안타까워하고, 백 세 가까이 살다 떠나면 호상이라 말합니다. 그러나 삶의 길이가 짧든 길든, 이 땅에서 마지막 숨을 내쉬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반드시 찾아옵니다. 중요한 것은 삶의 길이가 아니라, 그 일생 속에서 얼마나 많은 호흡을 신의 숨으로 살아왔는가 하는 점입니다. 그래서 짧게 살았다고 해서 불행한 것도 아니고, 오래 살았다고 해서 다행인 것도 아닙니다. 삶의 참된 가치는 길이가 아니라, 살아온 호흡에 있습니다.
우리는 신께서 불어넣으신 호흡으로 살아가야 하는 신의 피조물입니다. ‘살아 있다는 것’은 곧 ‘신의 호흡으로 산다’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살아 있음’ 자체가 ‘신의 뜻과 나라를 위해 존재함’을 의미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 속에서 신의 뜻과 나라를 이루기 위해 내쉰 호흡만이 진정한 삶의 호흡이고 그 시간만이 참으로 살아 있는 시간입니다. 단순히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을 신께 드리는 것이 삶의 참된 의미입니다. 그리 많이 남지 않은 우리의 삶. 신을 위해, 신을 향해, 신의 뜻과 나라를 위해 살아갈 수 있길 바랍니다.
* 말씀 : 요한복음 6:8-15
“ 주님을 사람들의 욕망을 만족시키는 도구로 만드는 사탄의 제자 ”
주님의 계시는 사람들 가운데 들어와 전달되는 과정 속에서 인간의 욕망을 드러내고, 그것이 죄임을 깨닫게 합니다. 그리고 그 욕망을 돌이켜 신의 나라를 위해 복종하게 하며, 마침내 자신의 삶을 주님께 드리도록 이끕니다. 이 땅에서 남겨진 시간이 많지 않은 우리로 하여금 그 시간을 온전히 그분께 드리게 하는 것, 이것이 계시의 본래적인 의미입니다. 참된 계시는 오직 이 기능만을 수행합니다. 그런데 만일 어떤 말이 전해졌을 때 오히려 사람의 욕심이 더 커지고, 신에게 무언가를 더 많이 구하려는 마음만 생긴다면, 그것은 잘못 전해진 계시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인간의 죄를 드러내기보다 오히려 인간의 욕망을 극대화하는, 잘못 기록되고 잘못 전해진 내용입니다.
오병이어는 주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 천명을 먹이시고도 열두 바구니가 남았다는 이야기입니다. 흔히 한 아이가 이 떡과 물고기를 바쳤다는 이미지가 떠오르지만, 마태, 마가, 누가복음에서는 아이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제자들이 가지고 있던 떡과 물고기였지 아이의 것은 아니었습니다(막 6:38, 마 14:17, 눅 9:13). 요한복음에서만 한 아이가 등장하며, 아이가 가진 것을 주님께 가져오는 것으로 서술됩니다. 이는 후대에 기록된 요한복음에서 추가된 요소로 볼 수 있으며, 이러한 차이는 단순한 덧붙임이 아니라 이야기의 본질을 왜곡시키는 요소 중 하나입니다.
요한복음 6:9에서는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아이가 자발적으로 바쳤다는 내용은 없습니다. 아이는 단지 자신이 먹을 것을 준비해 온 것뿐입니다. 반면, 주님을 모셔야 할 제자들은 부끄럽게도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아이의 것을 가져가는 것에 대해 아무런 부담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오늘날의 기독교에서도 이와 유사한 구조가 반복됩니다. 신에게 드린다는 명목하에 사람들의 시간과 노동, 금전, 재능을 착취하면서 아무런 책임이나 부담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것은 신께 드려지는 것이 아니라 강탈이고, 이용입니다.
요한복음 6:11에는 주님께서 축사하시고 그들의 원대로 나누어 주셨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주님은 인간의 욕망을 채워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이를 그렇게 기록한 것은 주님을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도구로 삼아도 된다는 잘못된 관점을 심어주는 왜곡된 내용입니다. 기록상에는 사람들이 모두 배불리 먹고, 열두 바구니가 남았다고 했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사라지고 그냥 먹고 끝난 것입니다. 고작 한 끼 배불리 먹고 끝나는 허망한 기적입니다. 고작 한 끼를 위해 존재하는 주님, 반나절도 못 가는 기적을 위해 사람들의 뒤치다꺼리를 하는 주님으로 만들어 버린 이 내용은, 주님을 모욕하는 사악한 기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요한복음 6:12에는 주님께서 “남은 조각을 거두어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는 말은 단순히 남김없이 수거하라는 의미를 넘어, ‘손해가 없게 하라’는 뜻입니다. 제자들은 떡 부스러기 하나까지도 남김없이 거두어야 한다는 식으로 기록하며, 마치 주님을 물질적인 손해조차 용납하지 않는 분으로 묘사하지만 주님께 있어서 진정한 손해는 사람입니다. 배만 부른 채 아무 변화 없이 돌아가 버린 사람들, 그리고 신의 나라와 뜻이 아니라 무엇을 먹을까에만 관심을 두었던 제자들과 무리들이야말로 진정한 ‘손해’이고 ‘손실’이었습니다. 주님께서 그토록 간절히 전하신 것은 신의 나라와 뜻이었지만, 사람들은 그것에는 관심이 없었고 오직 자신의 필요와 욕망에만 머물러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배불리 먹고 남은 열두 바구니를 보며 주님을 ‘선지자’로 규정하고, 더 나아가 ‘임금’으로 세우려 했습니다(요 6:14-15). 그들이 기대한 존재는 자신의 필요를 채워주는 존재였습니다. 그들은 한 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매 끼를 계속해서 채워줄 선지자와 임금을 원했습니다. “억지로 붙들어”라는 표현은 단순한 요청이 아니라, 붙잡아 강제로 세우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는 어떤 방식으로든 주님을 자신들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도구로 삼으려는 그들의 태도를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오병이어 이야기 속에는 주님의 가르침은 사라지고, 결국 한 끼를 해결하는 장면만 남아 있습니다. 그 결과, 주님은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분이 아니라, 잠시 배고픔을 해결해 주는 존재로 축소되고 맙니다. 한나절도 지나지 않아 다시 배고파질 문제를 처리하는 존재로 전락해 버린 것입니다. 사람들은 아이의 것을 취하고, 나아가 주님까지도 자신의 욕망을 위한 존재로 만들려 합니다. 이 사건은 기적이라기보다 욕망과 약탈의 구조를 드러내는 내용입니다. 결국 이 이야기의 끝에서 주님께서는 다시 혼자가 되셨습니다. 함께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아무도 주님과 함께하지 않았기 때문에 혼자이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구조는 현재 기독교의 신앙 형태 속에서도 반복됩니다. 사람들은 주님을 억지로 붙들어 세우려 합니다. 주님이 원하지 않으심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필요를 위해 붙잡고, 압제하고, 결국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존재로 삼으려 합니다. 많은 설교와 기도 속에서 “주님은 사랑이 많으시다, 풍요로우시다”라고 표현하지만 실제로는 주님을 끊임없이 요구의 대상으로 만들고,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대상으로 전환시키는 방식으로만 작동합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라는 말조차, 결국 나를 만족시켜 주는 조건 아래에서만 이루어지는 조건적인 태도에 불과합니다. 제자들에 의해 왜곡된 오병이어의 만행이 현재에도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주님은 정말 주(主)님이신가, 아니면 나의 필요를 위해 사용되는 종의 이름일 뿐인가. 주님의 뜻과 상관없이 잘못 기록된 오병이어의 욕망을 투영해 “아이가 바친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신 주님, 우리들이 지금 바친 이 제물에 축복하셔서 수만 배로 다시 부어주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이렇게 기도하고 구하는 순간 우리는 독약을 마시는 것과 같습니다. 신과의 관계성이 끊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을 주(主)님으로 섬기며, 우리의 욕망과 요구를 주님께 강요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의 것을 약탈하지 않고, 주님을 섬기는 기적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이 바로 그 기적이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 예식
1. 찬양(입례) - “ 98. 그리 많이 남지 않은 우리의 삶 ”
2. 묵상
3. 찬양(결단) - “ 98. 그리 많이 남지 않은 우리의 삶 ”
4. 파송
* 알림
1. 집회 후 학생청년부의 미래 식량 연구 관련하여 대체 식량 중 하나인 애벌레를 시식했습니다.
2. 집회 후 학생청년부의 견학(240801 ‘coex 건축 fair’) 보고가 있었습니다.
3. 천모 교회 예식에 모든 천모 카페 회원을 초대합니다. 진리의 빛을 함께 나누고 주님의 뜻과 다스림에 복종하는 길을 향해 나아갈 수 있길 간절히 바랍니다. (2021년 9월 3일)
① 천모 예식은 매 주일 10:40 네이버 라이브 밴드를 통해 진행됩니다.
(저장된 예식 영상은 4주간 보관됩니다.)
② 네이버 밴드, ‘천모교회’에 가입 신청 후 자신의 소개(실명과 소속)를 해주세요.
③ 가입 완료 후 예식에 참여하실 때 질문은 대화창에 바로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④ 예식 참여 후 천모 카페-천모 교회 참여 후기에 후기를 꼭 남겨주세요.
** '천모 교회' 밴드로 초대합니다.
밴드에 들어오셔서 ‘천모 교회’를 찾아 회원 가입 신청을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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