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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

최초의 역사서 <신지비사神誌秘詞>를 찾아서

작성자유토피아|작성시간19.12.06|조회수107 목록 댓글 0

질문을 하나 하겠습니다.

Q. 삼국유사에 인용된 <위서>나 <고기>를 제외하고, 고조선사가 기록된 우리 사서史書는 없을까요?


놀랍게도.. 있습니다!

바로 고조선때 쓰여진 최초의 역사서 <신지비사>가 그것입니다. 처음 들어본다고요? 지금부터 <신지비사>의 비밀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삼국유사에 전하는 신지비사
일연이 쓴 <삼국유사>에는 <신지비사神誌秘詞> 서문이 인용되어 있습니다.

'고구려 정벌에 실패한 수양제의 신하 양명이 고구려에 복수하려고 다음 생生에 고구려의 막리지 개금으로 환생했다는 전설'을 담은 기사에 <신지비사> 서문을 인용한 것입니다.


<삼국유사> 출처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신지비사神誌秘詞>의 서문에는 “소문(蘇文) 대영홍(大英弘)이 서문과 아울러 주석하다”고 했으니, 즉, 소문이 곧 직명인 것은 문헌으로 증명되지만..  <삼국유사>


고려사에서 전하는 신지비사


<고려사>에도 <신지비사> 내용이 일부 남아 있습니다.

고려 숙종때(1095년~1105년) 김위제(金謂磾)남경 천도를 건의하는 상소를 올리면서 신지비사(神誌秘詞)를 인용한 것입니다.

고려사, 김위제 신지비사, 출처 <한국사데이터베이스>


또,「신지비사(神誌秘詞)」에서 말하기를, ‘저울추[秤錘]와 저울접시[極器]에 비유하자면 저울대[秤幹]는 부소(扶疎)이며, 저울추는 오덕(五德)을 갖춘 땅이고, 저울머리는 백아강(百牙岡)이다. 이곳에 도읍을 정하면 70개 나라가 항복하여 조공을 바칠 것이며 땅의 덕에 힘입어 신기(神氣)를 수호할 수 있을 것이다.

저울의 머리와 꼬리를 정밀하게 하여 수평을 잘 잡을 수만 있다면 나라를 융성하게 하고 태평성대를 보장받을 것이고, 만약 비유로 들은 세 곳의 땅을 버린다면 왕업은 쇠퇴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저울을 가지고 3경(三京)을 비유한 것입니다. - 『고려사』 卷一百二十二, 列傳 卷第三十五, 方技, 김위제




단재 신채호의 <조선상고사>


신채호 선생도 <조선상고사>에 신지비사에 대한 설명을 써놓았습니다.

신지(神誌)는 이름이 아니라 단군때의 사관史官 호칭이란 것입니다.

상고시대 이래로 우리말과 역사는 이두문으로 기록되었다가 한문으로 번역하는 과정을 거쳤으므로 ‘이두문’을 제대로 읽지 못하면 원래의 우리말을 바르게 알기 어렵다. 
 
옛 역사서에서 단군 때에 ‘신지(神誌)’라는 사관이 있다고 했는데, 신지는 ‘신치, 신크치’를 한문으로 번역한 것이다.

신크치는 ‘신가’의 별칭이며 오가(다섯 장관)의 수석대신으로서, ‘신수두’의 제삿날에 우주창조의 신화와 영웅이야기, 예언과 경고를 노래했다. 후세의 문사들이 그 노래를 한권의 책으로 만든 것이 ‘신지(神誌)’이다.  
 
<고려사> 김위제전(金謂磾傳)에 고조선의 중심축인 삼경(三京)을 설명하는 <신지> ‘비사’의 일부가 한시 1구(句) 5글자씩 10줄이 적혀 있는데, 원래는 ‘이두문’으로 기록되어 전해오던 것을 한학이 흥성하던 삼국말엽에 한문으로 번역한 것이다.

신지가 고조선때의 사관이었다는 것은 조선시대 기록에도 남아있습니다.

“신지는 단군 때의 사람으로 세상에서 부르는 신지선인이다” - <용비어천가> 

"신지비사는 누가 지은 것인지 분명하지 않으나, 우리나라 조선의 문명지치(文明之治)를 거슬러 볼 수 있으니 기이하다” - 이익 <성호사설>

“세상에 전하기를 신지는 단군 때의 사람이다” - 안정복의 『동사강목(東史綱目)』

이것을 통해서 볼때 신지神誌는 단군조선때의 사람(?)이고 실제로는 단군조선때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의 직책명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기록할 지)




신지비사는 언제 사라졌을까?


<삼국유사>나 <고려사>에 <신지비사>가 인용된 것을 보면, 적어도 고려때까지는 남아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조선으로 넘어가면서 <신지비사>를 직접 인용한 기록이 안보입니다. 신지비사는 도대체 언제, 어떻게 사라지게 된 것일까요?

그 해답은 놀랍게도 <조선왕조실록>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바로  태종때의 기록입니다.

<조선왕조실록> 태종실록중에서

사관(史官) 김상직(金尙直)에게 명하여 충주(忠州) 사고(史庫)의 서적을 가져다 바치게 하였는데..《신당서(新唐書)》·《신비집(神祕集)》·《책부원귀(冊府元龜)》 등의 책이었다.
- 태종실록 태종12년

태종이 충주 사고에 보관된 서적을 바치게 하는데 목록에 <신비집>이 보입니다. <신지비사>로 보이는데요. 태종은 이렇게 명합니다.

"《신비집(神祕集)》은 펴보지 못하게하고 따로 봉하여 올리라" 임금이 그 책을 보고 말하기를, "이 책에 실린 것은 모두 괴탄(怪誕)하고 불경(不經)한 설(說)들이다." 하고, 대언(代言) 유사눌(柳思訥)에게 명하여 이를 불사르게 하고, 그 나머지는 춘추관(春秋館)에 내려 간직하게 하였다.
- 태종실록 태종12년

"<신비집神祕集>은 펴보지 못하게 하고 따로 봉하여 올리라"는 대목에서 <신지비사>를 없앨 목적으로 충주사고의 책들을 옮겨오게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태종은 <신지비사>를 없앤 것일까요? 아래 대목 때문이 아닐까 추측됩니다.

"70개의 나라에서 조공을 바쳤다" 기자가 조선으로 오셔서 마침내 문명국이 되었다는 성리학의 나라 조선에서, 그것도 위화도 회군으로 정권을 찬탈한 상황에서, 정도전의 요동정벌을 무력으로 막아낸 태종의 입장에서, 명明에게 전쟁의 빌미가 될 수 있는 (위대한) 고조선의 역사는 "허황되다"고 여길 수 밖에 없었고 이로인해 최초의 역사서 <신지비사>는 깊은 어둠 속으로 빠질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환단고기에 남아있는 신지비사 


그러면, 신지비사는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요? 

조선시대때 사라진 신지비사는 다행스럽게도 그 전문全文이환단고기』 단군세기에 남아있습니다.

환단고기』 단군세기를 보면, 단군조선 6세 달문단군때 역사와 왕명을 기록하는 신지 발리發理가 왕명을 받들어서 삼신상제님께 올리는 제천문으로 <서효사誓効詞>라 이름하여 썼습니다.

戊寅元年 壬子 三十五年 會諸汗于常春 祭三神于九月山 使神誌發理 作誓效詞 其詞 曰
재위 35년 임자(BCE 2049)년에 여러 왕(諸汗)을 상춘常春에 모아 구월산에서 삼신께 제사지내실 때, 신지神誌 발리發理로 하여금 <서효사誓効詞>를 짓게 하시니 그 가사는 이러하다.

朝光先受地 三神赫世臨 아침 햇빛 먼저 받는 이땅에 삼신께서 빛게 세상에 임하셨고
桓因出象先 樹德宏且深 환인천제 먼저 법을 내셔서 덕을 심음에 크고도 깊사옵니다.
諸神議遣雄 承詔始開天 모든 신이 의논하여 환웅을 보내셔서 환인천제 조칙 받들어 처음으로 나라 여셨사옵니다.

蚩尤起靑丘 萬古振武聲 치우천황 청구에서 일어나 만고에 무용을 떨치셔서
淮岱皆歸王 天下莫能侵 모두 천황께 귀순하니 천하의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었사옵니다. 
王儉受大命 歡聲動九桓 단군왕검 하늘의 명을 받으시니 기쁨의 소리 구환에 울려 퍼졌사옵니다.

魚水民其蘇 草風德化新 물고기 만난 듯 백성들이 소생하고 
怨者先解怨 病者先去病 원한 맺힌 자 원한 먼저 풀어주고 병든 자 먼저 낫게 하셨사옵니다.
一心存仁孝 四海盡光明 일심으로 인과 효를 행하시니 사해에 광명이 넘치옵니다.

眞韓鎭國中 治道咸維新 진한이 나라를 진정시키니 정치의 도는 모두 새로워졌사옵니다.
慕韓保其左 番韓控其南 모한은 왼쪽을 지키고 번한은 남쪽을 제압하옵니다.
巉岩圍四壁 聖主幸新京 깍아지른 바위가 사방 벽으로 둘러쌌는데 거룩하신 임금께서 새서울에 행차하셨사옵니다.

如秤錘極器 極器白牙罔 삼한형세 저울대 저울추 저울판 같으 저울판은 백아강이요
秤榦蘇密浪 錘者安德鄕 저울대는 소밀랑이요 저울추는 안덕향이더라.
首尾均平位 賴德護神精 머리와 꼬리가 서로 균형이루니 그덕에 힘입어 삼신정기 보호하옵니다.

興邦保太平 朝降七十國 나라를 흥성케하여 태평세월 보전하니 일흔나라 조공하며 복종하였사옵니다.
永保三韓義 王業有興隆 길이 삼한관경제 보전해야 왕업이 흥하고 번성할 것이옵니다.
興廢莫爲說 誠在事天神 나라의 흥망을 말하지 말지니 천신(삼신상제)님 섬기는데 정성을 다하겠사옵니다. *주: 색칠한 부분이 고려사에 전해진다.


서효사가 전하는 단군조선의 국가경영제도 


고려사를 보면, 김위제가 상소한 내용은 '도선(道詵記)이 전한 고려 삼경설과 신지비사에서 전한 (옛조선의) 삼한관경제를 본따서 고려도 삼경三京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려 삼경

즉,  저울로 3경(三京)을 비유하면 머리인 저울접시는 서경(평양)이고, 균형을 잡는 저울대는 중경(송악)인데, 꼬리가 되는 저울추 남경이 없으니 목멱으로 남경을 정해서 천도해야한다는 것입니다.

김위제가 인용한 <신지비사>를 보면 옛조선은 삼한관경제로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저울판 마한(머리-서경-백아강 평양)
저울대 진한(몸통-중경-하얼빈 소밀랑)
저울추 번한(꼬리-남경-안덕향 당산)

대단군이 다스리는 진한이 균형을 잡고, 부단군이 다스리는 서쪽 마한과 남쪽 번한이 머리와 꼬리로 균형을 이루게하는 삼한관경제가 옛조선의 국가경영제도였던 것입니다.




삼한관경제의 뜻
옛조선이 삼한으로 나라를 다스린 이유는 무엇일까요?

<서효사>의 첫 머리와 말미에 그 해답이 있습니다.

朝光先受地 三神赫世臨 아침 햇빛 먼저 받는 이 땅에 삼신이 밝게 임하시도다.
興廢莫爲說 誠在事天神 나라의 흥망을 말하지 말지니 천신(삼신상제)님 섬기는데 정성을 다하겠사옵니다.

삼신상제님을 모시고 나라를 세워서 그 뜻을 이루는 것이 옛조선의 국가이념이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늘의 삼신三神(조화-교화-치화)을 본받아 땅에 삼한三韓(마한-진한-번한)을 세우고, 사람에게 있는 삼진三眞(성-명-정)을 닦아서 천지와 하나된 광명인간, 태일太一 인간이 되는 것이 우리 상고시대에 국가와 사람의 존재이유이자 목적이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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太白逸史 弟五 蘇塗經典本訓




 


神誌秘詞는 檀君達門時人神誌發理의 所作也니

『신지비사』는 (6세) 달문단군때 사람인 신지 發理가 지은 것이다.

 


三神古祭誓願之文也라

이것은 본래 옛적에 삼신께 제사 지낼 때 서원하던 글이다.

 


夫上古祭天之義는 要在爲民祈福하고 祝神興邦也어늘

무릇 상고 사대에 하늘에 제사 지낸 근본 뜻은 백성을 위해 복을 빌고 나라가 잘 되도록 신에게 축원하는 것이었다.

 


今好事之人이 將神誌秘詞하야 與圖讖星占으로 相出入하고

그런데 오늘날 일을 벌이기 좋아하는 자들이 『신지비사』가 도참.성점과 서로 같은 곳도 있고 다른 곳도 있음을 가지고,

 


推數敷衍하야 言其震檀九變之圖하고

사리를 추측하고 설명을 덧붙여서 진단구변도라 하고

 


又作鑑訣豫言之先河하니 亦謬矣哉로다.

또 감결과 예언의 처음이라 하는데 모두 잘못된 것이다.

 

 


 


其曰扶蘇樑者는 是謂辰韓古都니

『신지비사』에서 저울대 부소량이라 한 것은 진한의 옛 수도를 말한다.

 


亦卽檀君朝鮮所都阿斯達이 是也오

그곳은 바로 단군조선이 도읍한 아사달이며,

 


亦卽今松花江哈爾濱也라.

지금의 송화강 하얼빈이다.

 


其曰者五德地者는 是謂番韓古都니

저울추 오덕지라 한 것은 번한의 옛 수도를 말한다.

 


今開平府東北七十里所在의 湯池堡가 是也며

지금의 개평부 동북쪽 70리에 있는 탕지보이다.

 


其曰極器白牙岡者는 是謂馬韓古都로 今大同江也니

저울판 백아강이라 한 것은 마한의 옛 수도를 말한다. 지금의 대동강으로,

 


乃馬韓熊伯多의 祭天馬韓山이 卽此라.

마한의 웅백다가 하늘에 제사 지내던 마한산이 바로 그곳이다.

 


?以三韓地勢로 譬諸衡石則扶蘇樑은 如國之秤幹하고

가만히 삼한의 지세를 저울에 비유해 보면 부소량은 ‘나라의 저울대’와 같고,

 

 

五德地는 如國之者하고 白牙岡은  如國之極器하니

오덕지는 ‘나라의 저울추’와 같고, 백아강은 ‘나라의 저울판’과 같다.

 


三者缺一하면 衡不稱物하고 國不保民也니라.

이 셋 가운데 하나라도 없으면, 저울이 물건을 달 수 없듯이 나라가 백성을 보호할 수 없다.

 

 

  


三神古祭之誓願이 惟在三韓管境과 允悅民衆之義也니

옛날 삼신상제님께 제사 지낼 때 서원한 곳은 오직 삼한으로 나눈 영토를 잘 다스리는 것과 백성을 진실로 기쁘게 하는 것이었다.

 


神誌秘詞所傳이 亦不外乎是焉이오

『신지비사』가 전하는 바도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則爲國一念이 幷?忠義하야

나라를 위하는 일념으로 충과 의를 함께 장려하고,

 


祭以悅神하며 願以受福하면 神必降衷하시며

제사를 지내 신을 기쁘게 하고 복을 내려 주기를 기원하면, 신은 반드시 ‘참된 마음[衷]’을 내려 주시고,

 


福必興邦하리니 直實以行이니라.

복은 반드시 나라를 흥하게 할 것이다. 그러므로 제사를 올바르고 참되게 행해야 한다.

 


事不徵實하고 行不求是하면

만일 삼신상제님을 섬기되, 진실되게 행하지 아니하고, 실천하되 바른 길을 구하지 않는다면,

 

則所徵所求者從何得功乎아.

행동하고 구하는 바가 무엇을 좇아 공덕을 이룰 수 있겠는가?

 







아래에서 부터 위로 보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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