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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문명

초고대의 군환체 수학흔적

작성자유토피아|작성시간21.06.21|조회수494 목록 댓글 0

환단문명의 역학은 양자역학의 시조

 

인류사회의 모든 초기 문명은 문명 탄생의 기초로서 각각 셈법 체계를 형성하여 사용하였다.

황화문명이나 이집트문명은 물론이고 메소포타미아 수메르문명은 10진법이나 12진법과 60진법등의 다양한 진법을  사용하였다.

놀라운 것은 이미 수만년전부터 인류는 다양한 진법 즉 오늘날의 군론의 개념으로 규정되는 수학을 하였던 것이다. 

 

환웅의 시대와 고조선문명은 어떠한 셈법 체계를 형성하여 문명을 창조했을까?

이미 밝혀진대로 환단문명의 시원에서도 역시 원방각의 시원이 밝혀진 바가 있지만 아직도 우리전문가학자들마저  이를 정확하게 파학할 줄을 모르고 있다.

 

필자가 이미 밝힌대로

환단문명은 그 시원을 정확하게 알수는 없으나...

수만년전에 이미 피라미드의 기하학을 통하여 역학을 하면서 대형 건축을 짓기도 한 것입니다.

그러나 현대의 역사가들이나 고고학자들은 이를 무시하고...

 

겨우 기원전 5000년정도로 잡고 있습니다.

 

인류유적에서 수만년전의 유적들이 발굴되고 있습니다.

상상외로 거대한 건축들이 드러나고 있기도 하고 돌을 떡주므르듯이 한 경우가 증거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환단문명의 시조들은 수만년전부터 군환체의 수학을 통하여 천문학을 하고 있었던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의 경우에 사례를 한 번보시죠!

 

 2014년 6월 16일 남한강 유역인 충청북도 단양군(수양개) 하진리의 남한강변 구석기 유적 발굴작업 도중에 3개 층으로 구성된 구석기 유적의 최하층(제3문화층)에서 ‘줄새김 자갈돌’을 비롯하여 총 1만 5천여 점의 유물을 발굴했다고 발표하였다.

 

이 가운데 ‘줄새김 자갈돌’이 출토된 제3문화층(최하층)의 연대측정은 두 기관에서 39,930bp와 39,680bp(CAL)로 측정되었다. 즉 남한강 유역 단양 하진리에서 약 3만 9천년 전 옛 한반도 말기 구석기인의 ‘줄새김 자갈돌(눈금돌)’이 출토된 것이다(그림 1 참조).

 

이 ‘줄새김 자갈돌’에는 21개의 줄(lines)이 1개 눈금 평균 4.141±0.326mm의 간격을 두고 있다는 사실이 계측되었다.

 

이 유물을 발굴한 고고학팀은 이 ‘줄새김돌’을 말기 구석기인들이 분명히 의도적으로 동일한 길이를 계산하고 만든 눈금선이다.

자갈돌’을 구석기 말기~초기 신석기인들이 어떠한 용구로 사용했으며,자갈돌에 새겨진 숫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학계에서는 10진법의 눈끔으로 규정한다.

 

<그림 1> 하진리 출토 ‘줄새김 자갈돌’(출처: Institute ofKorean Prehistory)

 

<그림 2> 하진리 ‘줄새김 자갈돌’의 눈금 계측 (출처: Institute of Korean Prehistory

 

 

필자는 그 이상이라고 본다.

 

사실 이보다 더 일찍이 눈끔이 발견된 것들이 있다.

 

스와질랜드와 남아프리카연방 사이에 위치한 르봄보(Lebombo)산에서 약 4만 4천 2백년 전~4만 3천년 전의 원숭이 종아리뼈에 29개의 줄을 새긴 ‘르봄보 뼈’(Lebombo Bone)가 오스트레일리아 고고학자 보몽(Peter Beaumont)에 의해 1970년대에 발견되었다. 학계에서 이 눈금돌을 길이의 척도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림 3>참조).

<그림 2> 하진리 ‘줄새김 자갈돌’의 눈금 계측 (출처: Institute of Korean Prehistory)

<그림 3 > 4만년 전의 줄새김 뼈인 ‘르봄보뼈’

 

또한 1937년에 체코슬로바키아 모리비아 지방 베스트니츠 마을에서 발견된 어린 늑대의 약 3만 년 전의 7cm 크기의 정강이뼈에 새겨진 55개의 눈금은 5개씩 무리지어 배열되어 있어서 구석기인들이 약 3만 년 전에 셈법(counting)의 개념을 정립했었음을 알려 주었다.

 

또한 아프리카 나일강 상수원의 하나인 에드워드 호숫가의 이샹고(Ishango)에서 1960년에 벨기에의 브뤼셀 대학교수 지질학자 하인젤린(Jean de Heinzelin de Braucourt, 1920~1998)에 의하여 발견된 약 1만 9,500년 전의 짐승뼈인 ‘이샹고 뼈’(Ishango Bone)에 새겨진 세 행(<그림 6>의 a, b, c행)에 새겨진 눈금을 두고세계 학계가 아프리카의 말기 구석기인의 숫자개념 형성과 후일 이집트 문명의 ‘10진법’(decimal system)의 형성의 기원까지 논하는 것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그림 4> 이샹고 뼈(Ishango Bone)사진: Alexander Marschak, 1971

 

 

사실  초고대의 시절에 뼈에 새겨진 눈끔의 의미에 대하여 올바른 그리고 정확한  해석을 못하고 이쓴 실정이다.

 

어느학자는 29의 수가 월경주기나 달의 주기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그 의미를 해석하는데

그게 아닙니다.

 

사실 그 당시에도 인류는 초호화판의 건축을 한 것입니다.

 

인류는 이미 초고대시절에서도 단단한 돌을 떡주무르듯이 하면서 호사한 건축을 짓고 건물을 만든 것인데 무슨 방법으로 했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위 단위들이 일종의 상수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군환체의 수학개념이라는 것이고 이미 군환체수학적인 개념을 가지고 수학을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돌멩이에다가 우주의 별자리움직임을 새기면서 천문학을 하였는데...

 

이게 다 군환체론입니다.

환역이라고도 합니다.

 

환역의 기본수는 29입니다.

 

55의 수는 어떻게 하여 나온 것인가?

 

55의 수는 아주 중요한 상수입니다.

 

환 혹은 구슬체입니다.

 

1937년에 체코슬로바키아 모리비아 지방 베스트니츠 마을에서 발견된 어린 늑대의 약 3만 년 전의 7cm 크기의 정강이뼈에 새겨진 55개의 눈금은 5개씩 무리지어 배열되어 있어서 구석기인들이 약 3만 년 전에 셈법(counting)의 개념을 정립했었음을 알려 주었다.

 

지금까지 발견된 것 중에서 가장 오래된 숫자라고 한다.

 당시에 일, 이, 삼..., 등의 수 이름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뼈에 새겨진 금 중에서 30개는 5개씩 묶여 있었다는 점으로 미루어 이미 오진법이 쓰인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수의 발견은 이보다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으로부터 2만~3만 5천 년 전이라면 이른바 구석기 시대에 해당한다.

그 무렵은 농업이 시작되지 않았었던 수렵 시대인데 이러한 원시 공동 사회에서 수를 셈한다는 것이 어디에 소용 되었을 것인지 추측하면서 자연스럽게 단순한 수량의 계산을위 한 사칙연산을 염두해둔다.

즉 자연수의 덧셈 뺄셈이라고 간주한다.

 

그러나 사실 고동수학이라는 겆이다.

 

자연수라면 그러한 다발이 나올리가 없다.

 

이는 천문학에 사용되는 군론에  해당하는 숫자라는 점이다.

천문학의 수학은 자연수의 구구단과는 차이가 있다.

그래서 이러한 계산능력은 상당한 수학적인 지혜가 필요하고 정치적으로 지도자급에 해당하는 사회적인 위치를 가진다.

즉 제사장이라는 신분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의미가된다.

환단문명ㅇㅇ에서는 환웅이나 단군의 제사장들정도의 신분계일 것이다.

 

이들이 이미 천부경에서 제시하는 우주만물의 운행을 수로 계산한 것이라는 점을 증거하는 것이고 이미 그당시에 피라미드의 기하학적인 수학이론인 원방각이론을 공유하고 있었다는 의미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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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악기로 사용한 뼈

 

인류역사 700만년의 역사중심에 뼈가 있었으며 뼈는 인간이 불지 않아도 스스로 소리를 내고 있었으며 인간이 뼈를 통한 문화를 어떻게 이루어 현재에 이르게 된 것인지 추적해 보기로 한다.

 

인간은 50~1만년전 뼈피리의 용도에 의한 필요성으로 휴대할수 있게 되며 취구 반대편에 구멍을 내게 되었으며 그후 이전시기에 각기다른 음정의 소리를 내는 뼈 피리가 구멍을 내게된 후 하나의 뼈에서 각기 다른 소리를 낼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며  이후 구멍은 줄을 걸기위한 목적외 다른 소리를 내기위한 방법으로 발전하게 되어 하나에서 둘로 둘에서 셋으로 구멍의 수가 많아지게 된다.

 

 

 

이 시기에 하나의 뼈피리에서 나는 각기 다른 음정의 소리에 인간은 모방을 반복되게 시도하게 되며 그것이 인간의 언어 발달에 기초가 되었을 것이라 추정한다.

 

구멍의 수가 많아지게 됨에 따라 관의 길이는 길어지고 음량이 적어지게 되는데 뼈피리가 이와 같이 형태가 달라지게 됨은 이전 시기의 뼈피리의 용도가 달라지게 됨을 의미하며 이시기에 음악적 감각을 키울수 있게 되었고 또한 환경의 변화가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수백만년전 초기 인류는 가공 되지않고 의도 되지않는 취구 부분이 90도 각도의 뼈조각에서 약 1만년 전후 45도 각도에 이르기 까지 뼈피리는 점차적으로 취구의 각도를 달리하며 발전한 것을 알 수 있으며 동시에 인류의 두상 골격구조 또한 점차적으로 입이 들어가고 코가 앞으로 돌출 되었음을 확인 할 수 있다.

 

이 시기에 만들어졌다고 알려진  뼈 피리는 북미 인디언 독수리 뼈피리, 네안데르탈인 곰 뼈피리, 슬로베니아 뼈피리가 있으며 좀더 정확한 연구를 위해 고증이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외국에서 발견된 6만년 된 인디언들의 뼈피리, 5만3천년 된 네안데르탈인들의 뼈피리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3만5000년 전에 동물의 뼈를 이용해 피리를 만들어 불었다는 증거가 발굴됐다.

독일 남부 슈투트가르트 스와비아 주라 산악 동굴에서 발견된 이 피리는 독수리의 뼈를 이용해 제작됐으며 길이 22㎝, 직경 2.2㎝ 정도이다.

피리는 4개의 구멍으로 음계를 조절할 수 있도록 했으며 입으로 바람을 불어 넣을 수 있는 V자형 홈 2개가 뚫려 있다.

독일 튀빙겐 대학의 니콜라스 콘라드 박사는 네이처지(誌)를 통해 "이번 발굴로 3만5000년 전 인류가 유럽으로 이주했을 당시 음악의 역사가 이미 수립됐다는 점을 입증했다"고 전했다.

 

중국 허난성에 있는 신석기 유적지에서 발견한 것으로 최소 9,0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피리는, 입에 대는 입구를 비롯해 손으로 짚도록 7개의 구멍이 있어 총 7개의 음계를 낼 수 있습니다.

 

 

우리 상황에서는 어쨌든 ‘최고(最古)’ 피리가 있다.
1961년 함경북도 라선시 굴포리 서포항동에서 발견되었다. 서포항 유적 1호 무덤에서 북쪽으로 3m 지점인 청동기 시대 제1기층에서 출토되었다. 길이가 17.2cm인 원통형으로, 대체로 1cm 간격을 두고 열세 개의 구멍이 뚫려 있다. 정확하게 정렬되어 있지는 않지만 구멍의 간격이나 크기는 일정한 편이다.

이 피리가 어떤 뼈로 만들어졌는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조류의 다리뼈라는 분석도 있고 새의 날개뼈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외국에서는 곰뼈나 사슴뼈, 매뼈로 만든 피리가 발견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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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의 플룻

 

고대 피리 동물 뼈로 만든 또는 거대한 (멸종 된 코끼리) 상아로 조각 된 고대 음악과 현대 인간을위한 행동 현대의 키 인식 방법 중 하나를 사용의 초기 예 중입니다.

고대 피리의 초기 형태는 수직으로 개최되는 현대 레코더처럼 재생할 수 하였다. 그들은 대부분의 동물, 특히 조류 날개 뼈의 속이 빈 뼈로 구성되었다. 이미 중공 얇고 강한로 그들이 골절의 너무 많은 위험없이 천공 할 수 있도록 조류의 뼈는 매우, 피리를 만들기에 적합하다.

 

지금까지 발견 된 가장 오래된 가능한 뼈 피리는 슬로베니아에서 중동 구석기 사이트의 Divje 베이브 I 사이트와 네안데르탈 인 직업 사이트에서 제공 무스티에 문화 유물. 피리는 43,000 +/- 700 일자 층서 학적 수준에서 온 RCYBP , 그것은 청소년 동굴 곰 대퇴골에 만들어졌다.

 

즉 그것이 무엇인지의 경우 Divje 베이브 I “피리”는, 그것으로 구멍이 개 대략 원형 구멍, 3 개 이상의 손상된 가능성 구멍이 있습니다. 레이어는 다른 갉아 동굴 뼈 부담이 있고, 뼈의 taphonomy-말을하는 것입니다에 대한 몇 가지 세부적인 학술 연구는 뼈 리드의 마모 및 표시는 일부 학자들은 가능성이 육식으로 인한이 “플루트”갉아 먹는 것을 결론.Hohle 펠스 플루트

슈바 벤 쥐라는 생산에서 상아 인형과 파편에서 숫자로 확인 된 독일 지역 인 어퍼 구석기 시대 수준. 세 사이트-Hohle 펠스, Vogelherd 및 Geißenklösterle-한 생산 플루트 조각, 모든 약 30,000-40,000 년 전 사이에 일자.

2008 년 한 거의 완벽한 피리와 다른 두 피리 조각은 슈바 벤 쥐라에있는 Hohle 펠스 후기 구석기 시대 사이트에서 발견되었다. 이들 중 가장 긴은 날아 오르는 독수리 (의 날개 뼈에 만들어진 Gyps의 fulvus ). 12 개에서 발견 재조합 뼈는 길이 21.8 cm (8.6 인치) 직경 약 8mm (인치 ~ 1 / 3의)을 측정한다. Hohle 펠스 피리 다섯 개 손가락 구멍을 가지며 발포 단부 깊이 절결되었다.

Hohle 펠스에서 발견 다른 두 조각 피리 상아로 만들어집니다. 최장 단편은 11.7 mm (0.46)에서의 길이, 타원형 (4.2x1.7 mm, 또는 .17x.07)의 단면이고; 다른 단면이 21.1 mm (0.83)에서와 같은 타원형 (7.6 mm X 2.5 mm, 또는 .3x.1)이다.

다른 플루트

독일의 슈바 벤 쥐라에서 다른 두 사이트는 고대 피리를 생산했다. 두 피리 - 하나의 조류의 뼈와 상아로 구성된 하나의 조각 - 한 Vogelherd 사이트의 오리 냐크 문화 수준에서 회복되었다. Geißenklösterle 사이트 발굴 세 이상 피리, 백조의 날개 뼈에서 하나, 가능한 백조 날개 뼈에서 하나, 그리고 매머드 상아 하나를 회복했다.

22 개 뼈 피리의 총 프랑스 피레네 산맥에서 Isturitz 사이트에서 확인 된 20,000 년 BP 년경 이후 후기 구석기 시대의 proveniences에서 가장.

Jiahu의 사이트, 약 사이에 데이트 중국의 신석기 시대 페이 리강 문화 사이트 7000과 6000 BC는 여러 뼈 피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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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법체론

 

고조선의 역학은 기존의 환웅시대와와는 다릅니다.

 

환웅시대에서는 원방각의 기하학에 수리학에 근거하여 역학을 한 것인데 비하여

고조선에서는 성법체의 군환체의 수학으로 역학을 하였습니다.

이른바 성법체역학입니다.

 

성법체의 역학이 바로 오늘날 양자역학의 시조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성수란 사물의 성질이나 특성르 수로 환산 한 것입니다.

 

 천문학은 주로 성수의 환산법을 통하여 연구하였습니다.

즉 북극성을 중심으로 하는 은하의 주기운동이라든가 태양의 공전과 자전 달의 공전과 자전주기운과동 인간의 시간계산을 하는 데 사용한 수학이라는 것입니다.

 

법수는 성수와는 달리 인간이 실제 생활에서 필요한 집을  짓는다든지 수량을 계산하는 경우에 사용합니다.

 

그래서 이러한 수학을 방정식이라고 합니다.

 

실제의 형상이나 구조를 계산하는 데에는 성수와 법수가 혼합합니다.

 

이를테면 삼각형이나 원 그리고 다양체를 계산하는데에는 이른바 체수라고 하는 수학으로 계산합니다.

 

 

  아무튼  사물을 성질에 의하여 하나로 계산하는 방법을 성수계산법이라고 하고

 

오늘날 이른바 10진법이라는 개념은 법수의 일종입니다.

그리고 이른바 369라고 하는 수로 상징화되고 있는 각도는 체수의 수학이라고 한다.

사물을 360도의 각도를 최고 단위로 하는 각도 수를 기본으로 하는 것을 체수라고 하는데

이른바 60진법은 체수의 일종조다.

 

아무튼 오늘날 진법의 개념과는 차원이다르다.

그러므로  10진법은 법수에 속하지만 반드시 10진법만  있는 것이 아니라 5진법도 있고 60진법도 사용합니다.

 

 

아무튼 옛 한반도 남한강 유역 하진리 ‘줄새김돌’이 ‘길이의 척도’임은 다음의 사실에서 확인된다.

 

(1) 하진리 ‘줄새김돌’의 21개 줄의 ‘눈금’ ‘사이길이’가 평균 0.4141cm로 균일’하다.

 

(2) 하진리 ‘줄새김돌’의 자갈돌 전체 길이는 20.6cm인데, 중앙에 새겨진 눈금칸 20개’의 총 길이는 8.2816cm에 불과하고, 좌우(또는 상하)에 10cm 이상의 긴 여백이 남아 있다. 이것은 눈금을 30개 이상 새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20개 눈금칸’만을 새긴 것으로서, ‘20개 눈금칸’을 1단위로 한 8.2816cm의 자 ‘尺’(즉 1尺)을 사용했음을 사하는 것이다.

 

(3) 수양개 6지구 하진리 ‘줄새김돌’은 이 지역 구석기인들이 ‘표준척’을 채택하여 사용한증거로 해석할 수 있다. 길이의 단위를 정하고 공동으로 채택하여 사용하게 하기 위해서는 ‘표준척’을 확정해야 하는데, 나무나 뼈에 새긴 것이 아니라 단단한 자갈돌에 돌 끌로 비교적 깊이 명료하게 새긴 것은 이를 ‘표준척’으로 채택하여 사용한 것임을 알려 주는 것이다. 구석기인들은 이 ‘표준척’을 기준으로 ‘새끼줄 매듭’이나 나무가지’로 표준척에 일치하는 잣대를 만들어서 비교적 동일한 크기의 석기나 토기 등 구를 제작할 때 길이의 표준으로 사용했을 것이다.

 

수학적인 개념을 모르는 학자들은 여전히 학자들은 돌멩이를 근거로 하여  10진법을 특정하는데...

 

사실 진법이라는 개념보다는 군론이라는 개념으로 보아야한다.

 

그러나 물론 진법으로 규정해도 틀리지는 않는다

 30cm를 1자(一尺)로 규정한다고 가정면, 이것이 ‘30진법’이다..

마찬가지로 하진리 ‘눈금돌’의 눈금칸 20개를 1자로 가정할지라도 것이 ‘20진법’이다 .

20은 1 · 2 · 4 · 5 · 10 · 20으로 나누어지기 때문에 1을 제외하고 ‘2진법’, ‘4진법’, ‘5진법’, ‘10진법’, ‘20진법’이 모두 가능한 것이다.

 

아무튼 역사사회학자들과 문명사가들은 셈의 진법(進法)은 상징유물인 ‘언어’에 그 특징이 잘 보존되어 있다는 데 견해를 같이하고 있다.

 

셈법 언어(數詞)의 구조는 잘 변하지 않는 것인데, 구석기 · 신석기시대의 셈법 언어는 당시 용어로는 알 수 없고, 고대 · 중세 및 현대 한국어에 그것이 남아 있으므로, 이를 통하여 추적해 볼 수 있다.

즉 한국어(고대 · 중세 · 근대 · 현대 포함)의 셈법은, <표 1>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정확하게 ‘10진법’ 체계로 구성되어 있다.

1부터 10까지는 각각 숫자의 독립된 명칭을 갖고 있고, 11부터는 ‘위치’를 한 단계 격상해 옮겨서 1단계의 끝자리의 명칭에 다시 1~9까지의 명칭을 붙이어, 20이 되면 새로 독립된 명칭을 만든 후 또 위치를 한 단계 격상해 옮겨서 1~9까지의 명칭을 붙이는, 매우 정확하고 기계적인 ‘위치적 10진법(positional decimal system)’ 체계를 가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10진법’의 셈법 표시는 백(온, 百) · 천(즈믄, 千) · 만(만, 萬)을 넘어서 무한대로까지 10진법을 적용하는 과학적, 기계적, 논리적 체계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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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법체역학의  증거들

 

 

고조선문명의 첫 기반인 신석기시대 한강문화에서 수양개 ‘눈금돌’ 척도를 계승한  ‘척도’를 계속 사용했다는 증거는 한강문화 고고유물에서 증거를 확인할 수 있다.

 

(1) 농경생활 건축물제작에 사용: 충청북도 옥천군 남곡리에는 신석기시대 농업경작의 업적을 기린 기념선돌이 남아 있다.

 

남곡리 1호 선돌(남곡리 개미재 선돌)은 기념하는 업적 내용을 선돌 표면에 논밭 고랑 45개를 등간격의 줄로 새기어 표시하였다. 위의 직삼각형 부분을 제외하면 고랑줄의 길이는 약 41cm이고, 줄의 간격은 3~4cm이며, 줄의 깊이는 최대 1cm로서 모두 끌(돌끌)로 쪼아서 새긴 것이었다.

이 고랑줄의 길이 41cm는 수양개 하진리 눈금돌(0.4141cm)의 눈금을 100배한 것이며, 수양개 ‘눈금돌 척도’(8.2816cm 1척)를 5자(척尺)로 측정하여 조각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림 5> 옥천 남곡리 1호 신석기시대

농경기념 선돌

사진: 이융조, 2006

 

1. 청원아득이 출토 별자리 돌판 2. 별자리 이름(이융조 교수)

<그림 6> 한강문화의 신석기시대 고인돌에 새겨진 별자리(크기 부동) 사진: 이융조, 2006

 

신석기시대 한강문화에서 농업경작재배의 성과를 기리는 기념선돌에 기념내용을 논밭고랑줄로 그려 새길 경우, 고랑줄의 길이를 ‘눈금 척도’로 측정하여 새겼다는 사실은 실제 농업경작에서도 경작지의 길이와 면적에 대한 측정의 개념과 측정 방법이 실재했었고, 실제 농업경작 생활에서 수양개 하진리 출토 ‘눈금돌’과 동일유형의  척도를 사용했음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2) 별자리 새긴 돌판:

 

충청북도 청원의 아득이 고인돌 유적 가운데, 사암을 손질하여 편평한 네모꼴(32.4×25×5cm)로 돌판을 만들고 그 위에 크고 작은 금을 파서 북두칠성 · 용자리 · 곰자리 등의 별자리를 새긴 돌판이 발굴되었다.

 

이 별자리 돌판의 세로길이 약 32.4cm는 대체로 수양개 6지구 ‘하진리 눈금돌 척도’(0.41cm) 80눈을 사용하여 재단한 것이고, 가로 25cm는 하진리 눈금척도 60눈을 사용하여 제작한 것으로 해석된다.

 

별자리 돌판의 가로 · 세로 길이를 10진법 ‘눈금척도’로 측정하여 잘라 내어 수학적 · 과학적으로 돌판 작업을 한 것은 그 위에 새긴 별자리에 대한 천문학적 과학적 관찰과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고조선문명의 첫 기반인 신석기시대 한강문화에서 과학적 문명의 씨앗인 별자리 관측 기록의 돌판 제작에 10진법의 척도를 사용한 사실이 확인되는 것이다.

 

 

(3) 주요 토기 제작에서의 사용:

 

한강문화 지역에서는 중요한 토기(예: 의례용 토기, 붉은 간토기 등)의 제작에서는 하진리 ‘눈금돌 척도’와 같은 길이의 척도를 사용한 흔적이 보인다.

예컨대, 충주 조동리에서 발굴된 신석기시대 붉은 간토기(높이 25.0cm)는 0.41cm 눈금의 60눈을 사용한 것이고(<그림 8-1>), 조동리 굽잔토기(높이 16.5cm)는 0.41cm 눈금의 40눈을 사용한 것으로 해석된다(<그림 8-2>).

 

또한 제천 황석리 붉은 간토기(높이 27.0cm)는 0.41cm 눈금의 65개를 사용한 것이고(<그림 8-3>), 수양개 II지구에서 출토된 항아리형 단지(높이 41.0cm)는 0.41cm 눈금의 100개를 사용한 것으로 해석된다(<그림 8-4>).

<그림 7> 신석기시대 한강문화의 중요 붉은 간토기

 

 

(4) 돌검(石劍) 제작에서의 사용:

 

고조선문명의 첫 기반인 신석기시대 한강문화에서는 돌검(石劍) 등 무기의 제작에서도 남한강 유역 수양개 하진리 출토 ‘눈금돌 척도’와 동일한 ‘길이척도’가 사용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예컨대, 청원 아득이 유적 출토 마제 돌검(길이: 27.5cm)은 0.41cm 눈금의 66개를 적용하여 제작한 것이고(<그림 7-1>), 제천 황석리 출토 돌검은 0.41눈금 60개를 적용하여 제작한 것으로 해석된다(<그림 7-2>).

한편 보령 평라리 유적 출토 돌검(길이: 17.2cm)은 0.41cm의 42개를 적용하여 제작한 것이고(<그림 7-3>), 전남 승주 우산리 유적 출토 돌검(27.1cm)은 0.41cm 눈금의 66개를 적용하여 제작한 것으로 해석된다(<그림 7-4>).

 

<그림 8> 신석기시대 한강문화에서 출토된 돌검의 사례

 

또한 돌검 양날의 정확한 좌우 대칭은 한강문화의 돌검 등 무기 제작에 표준적 ‘길이척도’가 사용되었음을 명백히 보완해 증명해 주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그림 8>).

 

신석기시대 한강문화에서 돌검 제작에 돌멩이의  표준적 ‘길이척도’를 사용한 사실은 다른 무기 제작에도 표준적 ‘길이 척도’가 사용되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신석기시대 한강문화에서 돌검뿐 아니라, 돌창끝, 돌화살촉 등도 매우 규격있고 기하학적으로 아름답게 제작되어 있는 것은 그들의 10진법 척도를 사용한 사실과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5) 신석기시대

 

‘한’족의 한강문화 · 대동강문화와 ‘맥’족의 홍산문화와 ‘예’족의 신석기문화가 BC 30세기~BC 24세기 고조선 국가의 건국을 계기로 합류하고 통합되어 인류 최초 5대 독립문명의 하나인 ‘고조선문명’을 창조하는 단계에 들어서자, 고조선문명은 당연히 원방각을 성법체로 계승발전하여  한반도의 한강문화로 이어지며 환역과 부도역을 계승하는 금척의 역학이라는 한 단계 더 높은 문명을 창조하였다.

 

다음은 고고조선 시기에 제작된 피리인데 주목되는 것은 구멍수가 13개입니다.

 

 

 

북한준국보.  청동기시대.  길이17.2cm/지름1.4cm

 

조류의 다리뼈를 잘라서 만든 피리로, 현재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최고(最古)의 악기이다.

 

세장한 원통형으로, 가운데가 완전히 관통되어 있고 동체면에 한 줄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13개의 구멍이 뚫려져 있다.

 

구멍 사이의 간격은 대체로 1cm 내외다. 양끝의 한쪽은 제대로 남아 있고, 다른 한쪽은 좀 파손된 상태로 출토되었다.

 

함경북도 라선직할시(과거에는 웅기군,선봉군으로 불렸음) 굴포리 서포항동에서 1961년 발굴되었다.

 

서포항유적은 1960부터 1964년까지 5차에 걸쳐 실시된 발굴조사에서

 

구석기시대의 2개 문화층과 신석기시대의 5개 문화층, 그리고 청동기시대의 2개의 문화층 등 시기를 달리하는 9개의 문화층이 확인되었다.

 

뼈피리는 1호 무덤에서 북쪽으로 3m지점의 청동기시대 제1기층에서 출토되었다.

대체로 기원전 2000년기 후반으로 편년된다.

 

 

 

(6) 고조선문명의 역학

 

 옛 한반도에서 건국된 고조선 국가의 영역이 만주의 요동 · 요서 지역으로 확대되고, 그 이후 더욱 영역이 확대되는 데 비례하여 고조선문명권(圈)의 보편적 셈법으로 전파 확산되었다고 해석된다.

 

고조선사람들이 국경을 넘어 산동반도와 황하 및 회수 사이의 옛 중국 동해안에 이주하여 정착하고, 일본 열도의 규슈지방 등에 이주하여 정착하자, 고조선문명의 역학은 이 지역에도 고조선 이주민들과 함께 전파 확산되었음을 추정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중국고대학자들이 약 6천~5천 800년 전에 동방 진(震·辰)국으로부터 황하유역으로 이주해와서 문명을 가르쳐주었다고 기록한 고조선 이주민 태호(太?)의 족장 부부의 문장으로 태양 아래 족장 머리 위에는 ‘자(尺)’를, 족장 부인의 머리 위에는 ‘가위’를 그렸다. (<그림 9>)

<그림 9> ‘자(尺)’를 들고 있는 고조선 이주민 족장 복희의 상징 초상

 

태호족 족장이 고(古)한반도 고조선 진(辰)국 지역에서 갖고 이주한 상징 그림 머리위의 ‘자(尺)’가 古한반도 수양개 하진리 출토 ‘눈금돌 자’의 연속선 상에 있음은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산동지역에 처음 고조선 이주민들이 세운 고대국가 가운데 박(?, 박, 밝)국은 점차 발전하여 상(商)국이 되었고, 상(商)국은 성법체역학을 사용하였다.

 

그런데 화족들은 부도역에 반하는 역학을 하였다.

 

 자세한 것으 부도지 참조

 

 

 

현재 세계 학계의 인류문명사 연구는  이집트 문명에서 형성되어 세계에 전파된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환단 문명사의 역사는 역학의 내용이 무엇인가를 중심으로 평가하여야 한다.

 

인류문명의 역학중에서 가장 과학적인 것이 환단문명의 역학이다.

 

환단 문명의 역학이야ㅑ말로 오늘날의 양자역학의 시조가된다.

 

 

<그림 10> 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

대한민국 국보 228호로 지정되어 있는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는 고구려의 석각 탁본을 이성계의 명으로 돌에 새긴 전통시대 세계 최고의 정밀한 성좌도이다.

이 유물은 1467개의 별을 ‘북극성’을 중심으로 3개의 원 울타리와 28개의 분야로 구획하여 별자리를 정확히 그린 별자리 지도이다.

 

현대 천문학은 북극성으로부터의 거리와 각도만 있으면 별자리의 연대를 정확히 알아내는 ‘공식’을 정립하였다. 자연과학자들이 『천상열차분야지도』의 별자리를 이 공식에 그대로 대입해본 결과, 이 별자리는 BC511년의 하늘을 그린 것이었다.

즉 고조선 시대 고인돌 뚜껑 등 돌에 새긴 별자리를 고구려가 탁본 뜬 것을 이성계가 다시 비석에 새긴 것이었다.

 

서양 고대의 별자리 관찰은 점성술로 정립되었는데 고조선의 천문학은 해와 달과 별자리 운행의 규칙성을 장기간 관찰하여 1년 365일 주기와 24절기를 정립하고 ‘달력’을 작성하여 농업 등 과학적 생활에 응용하는 과학으로 크게 발전했었다.

 

강화도 마니산의 고조선 유적 참성단은 제천과 함께 해·달·별을 관측하는 천문대 유적이었다.

고중국에서 ‘은역’(殷曆), ‘상역’(商曆)이라고 말하던 ‘태양력’이 ‘고조선 달력’이었다.

중국 고문헌 『삼국지』 예(濊)전은 “(예족은) 별자리 움직임을 보고 농사의 풍흉을 예견하였다”고 기록했다.

 

고조선의 금속 과학기술은 당시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고조선 문명의 청동기는 B.C. 31세기부터 자연동·주석·아연의 합금이었는데, 강도를 높이어 섬세한 청동실까지 뽑아내었다.

 

이것은 동시대 수메르·메소포타미아 문명이 만든 자연동·비소·니켈의 합금 청동기와 다른 유형의 청동기였다. 고조선 문명의 합금 과학기술은 매우 일찍 아말감법을 발명하여 순동 또는 청동에 도금한 B.C. 25세기~B.C. 24세기의 금동 장식품들이 다수 출토되어 있다.

 

철광석이 풍부했던 고조선 유적에서 B.C. 12세기의 철기와, B.C. 7세기의 것으로 측정된 강철 도구들이 출토되었다.

강철의 품질은 첨가되는 탄소의 비율에 주로 좌우되는데, 고조선의 강철도끼와 철검들은 이미 탄소가 0.8% 내외로 정확하게 포함된 고품질의 강철 용구들이었다.

 

고조선 후국 부여 유적인 유수로하심유적 2기층 96호무덤 출토 철창과 105무덤 출토 환도대도(고리자루 긴 철검)은 칼날·창날은 고탄소강을 사용하고 다른 부분은 꺾이지 않고 휘도록 저탄소강을 사용하여 탄소함유량이 서로 다른 두 강철을 단접시켜 날은 예리하면서도 부러지지 않게 만든 당시 세계 최고 철공 기술 수준의 철창·철장검이었다.

 

자연과학자들이 정밀하게 밝혀내겠지만, 고조선 문명은 성법체의 부도역학을 통하여  당시 스스로 확고하게 정립한 과학과 기술에 기초하여 성립된 인류 초기 5대 문명의 동방 최초 독립 문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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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남긴 최초의 수학적 기록

 

 

 

인류가 30,000년 전부터 수를 계산했다는 흔적이 남아 있다.

<인류의 발상지 아프리카, 스와질랜드 르봄보 뼈 (약 35,000년 전)와 콩고 이상고의 뼈 (약 20,000년 전)에 새긴 눈금>

 

수학의 추상화 (기호화)

물고기 3마리 + 염소 3마리 = 6

 

'계산하다'라는 뜻의 영어 'calculate'의 유래

 

<수천년 전 작은 돌 하나에 물건 하나씩 대응시켜서 개수를 셈하는 방법>이란 슈사 지역에서 출토된 칼쿨리 (calculi) : 칼쿨리는 가축의 수를 세기 위해 썼던 돌멩이다. 칼쿨리를 담은 항아리 겉에는 안의 돌의 개수와 같은 구멍이 있다.

 

 

수와 숫자의 구별

 

· 수를 문자(숫자)로 표시 - 일대일 대응을 벗어남· 문제 ) 2529에서 가장 작은 수와 가장 작은 숫자· 가장 작은 수(9)와 숫자 (크기가 모두 같다)· 수 : 많고 적음을 비교하거나 잴 수 있는 크기의 정도인 양, 범위, 순서를 나타내는 것· 20은 수, 2 숫자 , 0은 숫자, 9와 2에서 2가 큰 숫자· 숫자 : 수를 표시하기 위한 기호 또는 문자

<고대 이집트의 숫자>, <고대 문명의 수 표기 체계>

 

 

2.  아메스 파피루스

 

<린드(영국수집가) 파피루스 또는 아메스(작성자 서기관) 파피루스>

· BC 1650년 경 이집트 람세스 2세 무덤 출처· 파피루스 길이 5.5m 폭 0.33m, 파피루스 (paper 어원) 갈대· 영국 런던 대영박물관 소장. 항상 천으로 덮어 빛으로부터 보호· 내용 : 분수를 나열한 표와 도형 넓이, 피라미드 부피 구하는 법 등 87문항 수학문제 → 견습생 교육을 위한 기출문제집 필사

 

사람은 모두 개의 손가락을 가지고 있으므로 초기에 2, 3진법을 사용하다가 10진법으로 점차 바뀌었다 손가락을 사용해서 수를 표기했다는 이론은 로마 숫자에서 살펴 볼 수 있는데, Ⅴ는 한 손을 완전히 다 편 모양을 나타내는 것이고, Ⅹ는 두 손을 펴서 서로 위 아래로 마주 대고 있는 모습을 나타낸다고 한다.

 

로마는 이와 같이 5진법을 사용하였고, 메소포타미아는 60진법을 사용하였다.

 

 

원시인들은 신체의 적절한 부분을 짚어나감으로써, 몸의 군론을 전개하였다.

 

뉴기니 파퓨아족은 이러한 방법으로 수를 나타내었다.

숫자가 없던 아주 먼 옛날, 사람들은 손가락을 펴 보이거나 양의 다리만큼(4)이라는 말로 간단한 수를 나타냈습니다. 그러다가 신체의 각 부분을 수 대신으로 이용하기도 했는데, 뉴기니아 파푸스 족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런 방법으로 수를 세었다고 합니다.

 

군론으로 수를 셈한 겁니다.

 

그러니까 9라는 수를 나타낼 때에는 오른쪽 귀를 가리키면 되었답니다. 그 후, 사람들은 사람의 몸을 이용하는 데서 한 걸을 나아가 노끈의 매듭이나 돌멩이, 진흙 등의 물건을 이용하여 더욱 큰 수를 나타낼 수 있게 되었답니다.

오래 전, 남아메리카의 잉카 족은 끈으로 다양하게 매듭을 지어 여러 가지 수를 표혔하였습니다.

 

기원전 3500년 경, 페르시아 만 근처의 수메르 인과 엘람 인들은 각각의 수를 나타내는 '칼쿨리'라는 여러 가지 모양의 돌을 만들어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원시적인 상태에서 벗어나 수의 크기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최초의 숫자는 메소포타미아의 바빌라로니아 숫자입니다.

이 숫자는 진흙으로 만든 판자 위에 쐐기 모양의 문자를 새겨서 보통 '쐐기 문자' 또는 '설형문자'라고 부릅니다. 그 후, 고대 문명이 발달한 나라들에서는 제각기 다음과 같은 숫자를 만들어 사용했습니다.

 

 

기원전 3500년경 페르시아 만 근처의 수메르 인과 엘람 인들의 각각의 수를 나타내는 '칼쿨리'라는 여러 가지 모양의 돌을 만들어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그러나 원시적인 상태에서 벗어나 수의 크기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최초의 숫자는 메소포타미아의 바빌로니아 숫자입니다.

이 숫자는 진흙으로 만든 판자 위에 쐐기 모양의 문자를 새겨서 보통 '쐐기 문자' 또는 '설형 문자'라고 부릅니다. 그 후, 고대 문명이 발달한 나라들에서는 제각기 다음과 같은 숫자를 만들어 사용했습니다.

바코드의 비밀

슈퍼마켓에 진열되어 있는 상품이나 서점의 책을 들여다보면 다음 그림과 같은 표식을 쉽게 보게 된다. 가늘고 굵은 검은 막대와 흰 막대들의 그래프가 있고 그 밑에 숫자들이 쓰여져 있다. 이것을 바코드라 부른다. 이 바코드의 발명은 일의 편리성은 물론 삶의 한 단계 UPGRADE 시킨 결과로 볼 수 있다.

막대의 굵기에 따라 문자나 숫자를 나타내는 특정한 배열이 마치 상품의 신분증과 같은 역할을 한다. 바코드의 판독 원리는 바코드의 검은 막대와 흰 막대의 반사율 차이를 스캐너가 전기 신호로 바꾼다. 전기 신호의 폭을 디지털 1과 0으로 나타내어 그 조합에 해당되는 숫자를 구별한다.바코드에 나타난 수자는 보통 13자리 (30개의 줄무늬)로 되어 있다. 이것은 표준형이다. 8가지 숫자 (22개의 줄무늬)로 단 단축형도 있다. 앞의 숫자 3자리는 국가 번호, 그 다음 4자리는 제조업체 번호, 다음 5자리는 각 회사의 상품 번호, 마지막 한자리는 입력이 제대로 되었는지 확인하는 검사 숫자를 나타낸다. 우리나라는 지난 88년 국제 상품 코드 관리 기관에 회원국으로 가입하여 880을 국가 번호로 취득하였다.바코드에는 상품 코드 번호만 들어있지 가격, 크기, 무게 등의 정보가 들어 있지는 않다. 그러면 계산대에서 찍히는 가격은 어떻게 된 걸까? 붉은 색의 레이저 광선을 이용하는 스캐너로 바코드를 읽으면 상품의 가격이 즉시 입력되도록 만들어 놓은 프로그램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바코드를 이용하면 팔린 물건의 종류와 수량들을 컴퓨터로 바르고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또 키보드로 숫자를 입력하면서 걸리는 시간도 줄이고 오타도 방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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