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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문명

수천 년간 땅속에 묻혔던 바빌로니아의 점토판 세계지도

작성자유토피아|작성시간21.06.29|조회수831 목록 댓글 0

인류 4대 문명의 하나인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 문명은 지금의 이라크 땅인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일어난 인류 최초의 고대문명이다. 메소포타미아란 그리스어로 ‘두 강의 사이’란 뜻으로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사이에 형성된 넓은 평야지대를 말한다. 티그리스강은 터키 동쪽의 타우루스산맥에서 발원해 남동쪽으로 이라크를 관통해 흐르고, 유프라테스강은 그보다 더 북쪽인 아르메니아고원으로부터 시리아를 가로질러 역시 남동쪽으로 흐른다. 이 두 강은 이라크 남단에서 합류해 알아랍(al-Arab)강이 되어 페르시아만으로 유입된다.

강의 하류는 강물에 운반된 흙과 모래가 쌓이면서 델타(delta, 삼각주)지대를 이루어, 두 강에서 갈라지는 수많은 지류와 소택지(沼澤地), 개펄이 넓게 발달되어 있다. 이곳에서는 산출되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으나, 지속적인 물과 토사의 공급으로 기름진 땅이 유지되어 구석기 시대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하면서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일어날 수 있었다.

 

▲ 고대 바빌로니아의 점토판 세계지도.

 

메소포타미아는 지리적인 여건으로 이민족의 침입이 잦아 국가의 흥망과 민족의  교체가 거듭된 곳이었지만, 문명의 역사는 기원전 3500년경 10여 개의 독립된 도시국가의 출현에서부터 기원전 330년경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 점령당할 때까지 3,000여 년간이나 이어졌다.

 

당시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바그다드를 중심으로 북쪽을 아시리아(Assyria), 남쪽을 바빌로니아(Babylonia)라 했고, 바빌로니아는 다시 북부 바빌로니아를 아카드(Akkad), 하류지역의 남부 바빌로니아를 수메르(Sumer)라 불렀다. 기원전 3500년부터 수메르 지방에 살기 시작한 수메르 인들은 설형문자(楔形文字, 쐐기문자라고도 함)를 만들면서 인류 문명의 근원을 이루게 되었다.

 

메소포타미아 지방에는 질이 좋은 점토를 쉽게 구할 수 있어, 그것으로 만든 점토판(粘土板, clay tablet)은 수천 년에 걸쳐 기록의 매체는 물론 정보 전달의 수단이 되었다. 발굴로 확인된 점토판 기록물만 보아도 법전을 비롯해 각종 문서·학술서·서사시·지도 등 그야말로 다양하여 수메르 학의 권위자인 새뮤얼 크레이머(Samuel N. Kramer)의 표현대로 역사는 수메르에서 시작된 듯하다.

 

점토판 문서를 만드는 방법은 점토를 물에 잘 씻어 불순물을 제거한 다음 적당한 크기와 두께로 점토판을 만들어 굳기 전에 갈대나 뼈 조각으로 만든 뾰족한 펜으로 글자와 그림을 써넣는 것이다. 대개는 햇볕에 말려 보관했지만 중요한 문서는 불에 구워 내구성을 높였기 때문에 몇 천 년을 땅속에 묻혔어도 그 원형이 보존될 수 있었다.
 
지도가 처음 발굴된 것은 기원전 3000~2000년경 수메르의 도시국가였던 니푸르(Nippur)에서 1899년 미국의 펜실베이니아대학 조사단에 의해서인데, 이것이 ‘니푸르의 시가도’로 알려진 점토판 지도이다. 지도의 크기는 가로 21cm, 세로 18cm로 엔릴(Enlil) 신전을 비롯해 건물, 성벽, 강과 수로 등이 그려져 있고 20개가 넘는 구체적인 수치가 적혀 있다. 당시 니푸르의 동부에서는 수메르의 점토판이 무려 3만~4만 매나 출토되어 이곳을 ‘필사(筆寫)의 구역’이라고 불렀다 한다.

 

이밖에 여러 지역에서 토지대장과 같은 지적도나 영토를 표시한 소령도(所領圖)가 출토되었으나 이 가운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점토판 세계지도가 출토되었다. 영국의 작가 마이클 케리간(M. Kerrigan)에 따르면 이 지도는 기원전 600년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유프라테스 강 동쪽에 위치한 바빌론에서 북쪽으로 97km 떨어진 시파르(Sippar, 현재의 텔 아부 하바)의 유적에서 발견되었으며, 1899년 페이저(F. E. Peiser) 박사에 의해 세상에 처음 알려졌다.

 

이 지도는 기원전 2350년경 메소포타미아를 최초로 통일한 아카드 왕국의 사르곤(Sargon) 대왕의 원정 이야기를 기록한 것이라고 하나, 일설에는 기원전 700년경 아시리아의 투르타누(Turtanu) 왕이 스스로 사르곤 2세라 칭하며 정복한 광대한 땅과 아시리아 왕국의 세계관을 담은 것이라고도 한다.

 

현재 영국 런던 대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이 지도는 크기가 가로 8.2cm, 세로 12.2cm이고, 가장자리 부분이 떨어져 나가고 조각이 나 있는 등 일부가 훼손된 상태이지만 다행히 원형은 유지하고 있다. 점토판에 기록된 내용은 위쪽에 지도에 대한 설명문이 적혀 있고, 그 아래쪽에 지도가 새겨져 있다.

 

지도에는 두 개의 원이 그려져 있는데, 원의 중심부에는 원을 그릴 때 사용했던 컴퍼스 자국이 남아 있다. 바깥 원과 안쪽 원의 사이는 ‘짠물의 강’, 즉 바다이고, 안쪽 원의 내부는 육지이며, 바깥 원의 외부는 상상의 땅이라 한다. 내부 위쪽의 가로로 된 직사각형은 바빌론이고, 중앙에 남북으로 그려진 두 개의 선은 왼쪽이 유프라테스강, 오른쪽이 티그리스강이라고 한다. 그러나 실제 바빌론에는 티그리스강이 흐르지 않기 때문에 두 개의 선은 유프라테스강의 양안(兩岸)을 나타낸 것이라고도 한다.

 

강 상류의 반원형은 산을 나타낸 것이고, 강 하류의 초승달 모양은 페르시아만에 해당되며, 가로로 된 두 줄은 습지대라고 한다. 일곱 개의 작은 원은 당시의 도시국가를 나타낸 것이고, 원 바깥쪽으로 돌출한 네 개의 삼각형은 가상의 섬을 나타낸 것이라고 한다. 원래 삼각형의 섬은 일곱 개가 있었는데, 남아 있는 것은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여섯 번째이고 세 번째 삼각형은 일부만 남아 있다.

 

이 바빌로니아의 점토판 세계지도는 도저히 지도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형태의 개념도 같은 것이지만 당시 고대인들이 인지하고 상상했던 세계를 충분히 지도로서 표현해 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지도의 내용과 같이 당시의 세계관은 세계의 육지는 평탄하고 둥근 쟁반과 같고, 육지를 에워싸고 있는 바다 위에 떠 있다고 생각했으며, 바다의 바깥쪽은 가상의 공간이 존재하는 세계로 인식했다.

 

손바닥 크기만 한 이 점토판 지도 하나로 수천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고대 메소포타미아를 중심으로 한 바빌로니아 인들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은 수메르 인들이 만든 쐐기문자와 그들이 이룩한 문명의 결과였으며, 무엇보다 몇 천 년을 지나도 옛 모습을 유지할 수 있는 썩지 않는 점토판 덕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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