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써야 할 초고대 문명
인간이 살아가면서 얻게 되는 지혜는 하나의 의식으로 기억되며 세계관으로 축적된다.
그리고 문화와 생활습관으로 후대에게 교육되고, 또는 학습되며 대를 이어서 전승된다.
그런데 이처럼 인간이 지혜를 얻는 과정에 매우 신기한 현상이 있다.
분명, 시간과 공간적으로는 별개의 존재이지만 마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하여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있으며, 함께 산소와 에너지를 공유하고 있는 것과 같이 단일성으로 모아지고 있다.
지구촌의 인간들은 각기 저마다의 자신의 독특한 개성과 정신세계를 구축하고, 혈연과 지연의 울타리를 만들어 사회적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마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하여 조절되는 것처럼 지혜의 공유현상이 생기면서 이른바 문명의 단일성을 이루고 있다. 이를테면 다양한 삶이 이루어지 다양한 환경속에서 단일한 달력을 마련하고 단일한 문화와 문명을 형성하며 단일한 사삶의 법률을 마련하여 공평한 삶을 정의이며 진리라고 생각하고 공유하게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수억의 인간들의 생김새는 다양하다. 또한 삶의 화녕과 저겅도 다양하도 유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일한 법칙과 단일함을 지향하고 이를 정의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실 역사에서 등장하는 모든 문명들은, 지구행성의 거대한 울타리 내에서 지구가 움직이는 주기에 의하여 그 운명이 규정되고 있다.
지구행성은 그자체가 거대한 유기체이며 일종의 생명활동이요 신진대사와 같다.
그래서 이속에서 사는 모든 사람들의 삶과, 그의 바탕을 이루는 지혜의 수준과 사물에 대한 인식, 세계관은 비슷한 양상을 띠고 공통의 문화와 문명을 이룬다.
거시적으로 보자면 모든 문명은 마치 유기체처럼 그 행로와 운명이 규정되고 있다.
예를 들면, 지구행성은 소태양계의 주기적 움직임과 긴밀한 상호영향을 주고받고 있으며 소 태양계는 전체 태양계의 움직임에 의하여 그 행로가 규정되게 된다.
더나가서는 태양계는 더 거대한 은하계의 행로에 의하여 갈 길이 정해진다.
지구촌의 모든 생명체는 세포막이라고 하는 단단한 경계를 형성한 무수한 세포들이 하나의 거대한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다. 보통 인간도 무려 70조개의 엄청난 세포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이 모든 것이 하나의 생명체로서 상호 결합하여 단일성을 이루고 있다.
또 하나의 세포를 관찰하게 되면 놀라운 현상이 생기는데, 사람 1명의 세포에 들어 있는 모든 DNA를 이으면 길이가 200억㎞가 되는데, 지구 둘레 약 4만㎞, 지구-달 거리 38만4,000㎞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마치 인간은 그 자체가 물리학적으로 지구를 응축한 것이라고도 할 수가 있으며, 그래서 우주의 축소판이라고도 하는 생물학적 근거가 된다.
문명도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하나의 경계를 이루고, 내적으로는 거대한 네트워크를 이루어 보이지 않는 그물망을 이루고 있다.
또한 이 그물망 속에서 다양한 문명들이 다양한 풍속을 이루어 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특정한 지혜라고 하는 것이 시공간을 초월하여 마치 텔레파시처럼 소통되고 전달된다. 너무도 먼 거리이어서 시공간적으로 접촉할 기회가 없는데도, 의사전달이 이루어지는 현상이 생기고 있다.
분명히 마음이라고 하는 묘한 수단을 통하여 수많은 사람들에 의하여 공유되고 공명되는 기묘한 일이 생긴다.
이른바 “원숭이신드롬”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보통 동물들은 흙이 묻은 먹이를 그냥 먹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일본의 한 섬에 사는 원숭이들이 고구마에 흙이 묻은 것을 보고는 먹는 것을 주저했다.
그런데 한 원숭이가 고구마를 씻어서 다른 원숭이들에게 깨끗하게 먹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고, 백여 마리에 이르는 원숭이들이 모두 그 방법을 알고 나니 놀라운 결과가 일어났다.
그들과 전혀 만난 적이 없던 다른 섬에 살던 원숭이도 같은 행동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원숭이들은 먼저 고구마를 씻는 것을 알아낸 원숭이 무리와는 전혀 접촉한 일이 없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그 행동이 계속 퍼져 나갔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을까?
우리의 몸과 마음은 물질적인 접촉을 하는 것 이외에도 비물질적인 측면에서도 수시로 접촉하고 있다.
호숫가에 던진 돌이 동심원을 이루듯이 우리도 자신만의 동심원을 그리며, 그것이 다른 사람이 그린 동심원과 조화롭게 연결되어 하나의 큰 동심원을 그려 나간다.
이 큰 동심원은 다른 사람의 것이면서도 바로 나의 동심원이기도 하다.
이처럼 멀리 떨어진 지식을 즉시 공유할 수 있는 이런 현상을 영국의 생화학자인 루퍼트 쉘드레이크는 ‘형태공명’(Morphic Resonance)이라고 이름 붙였다.
생명체의 놀랍고 신비로운 메카니즘의 또 한 사례를 살펴보자.
마음은 묘한 존재라고 한다. 이 존재의 탄생과 죽음의 과정, 그 자체가 놀랍고 신비롭다고 하여 현묘한 존재라고 하였다. 마음이란 작은 두뇌에서 구축되는 무한대의 세상에 해당한다.
그래서 오늘날 마음의 신비를 알고자 두뇌경쟁을 하고 있고, 두뇌시스템의 비밀을 밝히고자 모든 과학자들이 불철주야로 탐구하고 있다.
그런데 두뇌과학자들은 최근까지도 두뇌활동이란, 그 속의 각 영역들이 개별적으로 분업화된 방식으로만 기능한다고 생각하였다.
예를 들면, 하나의 기억이란 하나의 두뇌세포에 저장되는 것으로 생각했다. 기억이란 마치 컴퓨터의 메모리와 같이 저장용량이 수량으로 정해져 있듯이 유전적으로 규정된 공간에 차곡차곡 축적되는 것처럼 작동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니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는가에 자신의 두뇌는 쓰는 부분과 안 쓰는 부분이 확연하게 규정되고 정해지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대체로 사람은 평생 자신의 뇌를 1~2%정도, 즉 다 사용하지 못하고 죽는다고 생각하였다.
반면에 천재란, 평범한 사람들보다 많은 두뇌세포를 사용하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두뇌활동은 아주 간단한 일을 하는데도, 두뇌 세포는 전체로 가동하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인간이 그저 사물을 바라보는 일에서조차 그 두뇌는 전체의 세포가 100% 가까이 가동하면서 자기역할을 하는 것이다.
실제로 실험한 결과, 전자파로 뇌를 찍었을 때 조금이라도 사용한 부분은 노란색이 되는데, 피실험한 사람의 뇌는 거의 뇌 전체가 노란색이었다고 한다.
알려진 것과 다르게 단순한 작업에서도 두뇌세포의 전체가 가동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인간의 두뇌세포는 수천억 개인데, 이 세포들의 전체가 하나의 테두리 안에서 일사분란하게 자기역할을 하므로 인간은 저기에 있는 물건이 무엇인지를 인지하게 된다.
최고의 복잡한 수학문제를 풀어내는 과정에서 사용되는 두뇌세포나 사물을 한번 쳐다보는데 가동되는 두뇌세포나 별 차이가 없다는 의미가 된다.
이처럼 두뇌세포가 전체로 가동되니 이에 필요한 에너지소비가 많이 들어간다.
두뇌는 몸무게의 2%밖에 차지하지 않지만 사용하는 산소와 에너지의 양은 몸 전체의 20%에 달한다.
또 수십억 개의 두뇌의 신경세포들이 함께 활성화되는 과정에서 신기한 모습들이 발견된다고 한다. 뇌가 정보를 처리할 때마다 신경세포 1개당 수천 개의 가지들이 다른 신경세포의 가지들과 네트워크를 이루고 이것들이 무한한 네트워크 파동을 형성하는 것이다.
이 결과 두뇌가 담아낼 수 있는 정보의 양은 순식간에 무한급수로 늘어날 수가 있다.
쉽게 표현하자면, 두뇌활동의 능력은 마치 우주와 같이 무한하다고 할 수가 있다.
미국의 신경생물학자들인 프랜시스 크릭과 크리스토프 코흐는 이를 일종의 「네트워크 파동」이라고 부른다.
한편 기존의 태양계에 대한 설명은 단지 행성들이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는 사실만을 보았다.
즉 회전운동으로만 본다. 하지만 이것은 너무 단조로울 뿐만 아니라, 정확하지도 않다.
사실 태양계는 그 자체가 우주공간을 70,000km/h의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
태양은 궤도를 따라 움직이면서 행성들을 끌고 움직이는 혜성과 비슷하다.
이것을 환(環)운동이고 하는데 이를 영어로 ‘볼텍스’라고 표현할 수 있다.
따라서 환운동은 회전운동과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회전이란 단지 순환운동인데 비하여 환운동이란 일종의 소용돌이나 회오리바람과 같다.
태양계는 물론이고 인간의 몸 또한 우주의 일부분이다. 그래서 인간의 세포 또한 우주의 볼텍스 운동과 같은 생명의 소용돌이, 볼텍스로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놀라운 사실은 인간구성의 가장 기초 단위, 생명의 기초단위인 DNA유전자가 볼텍스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류의 문명도 또한 볼텍스로 상호교류하고, 상호 협력해야 인간 삶의 생명력을 유지시킬 수 있다. 공존은 인간 생존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며 너무도 당연한 공리이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환운동은 그저 무질서하게 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정확히 규칙적으로 운동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이 운동을 수학의 수치로 계산 가능하다.
지금까지 인류의 문명은 지구 곳곳에서 별개이면서도 서로 어우러지는 각기의 다양한 문명들이 상호협력의 네트워크를 이루며 자기의 기능을 하는 것으로 이루어졌다.
마치 두뇌의 무한대의 능력은 세포간의 경쟁의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협력과 분업의 네트워크를 통하여 극대화된다.
고대인들은 서로 왕래하고 소통한 거래관계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아주 가까이 지내는 사이와 같이 마음의 공유를 하고 있었다.
각국의 창세신화의 내용을 보게 되면 그 소재의 다양함속에서 줄거리는 매우 유사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또 매우 유사한 피라미드와 같은 고탑과 층대가 세계의 각 지역, 도처에서 발견된다.
또 피타고라스의 공식으로 널리 알려진 3:4:5의 황금비가 사실 피타고라스의 발견이전에 이미 세상 사람들에게 널리 공유되고 응용되어 있음을 알 수가 있다.
한편 고대인들은 서로 다른 지역에서 살고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다양한 문명을 구축하며 살아가면서 신기하게도 동일한 견해와 일치되는 관점을 공유하고 있는 경우가 너무도 많이 발견된다.
이를테면 당시에는 누구나 마음이란 뇌의 기능이 아니라 심장의 기능에 속한다고 생각하였다.
또 각기 다양한 문화와 생활 속에서도 사용되는 숫자의 구조와 사용방법, 그리고 그 계산법 등은 너무도 유사하며 일치되는 패턴을 보이고 있다.
신기하게도 다양한 문명세계에서 각자가 사용되는 숫자가 어쩌면 동일한 구조로 만들어졌으며, 진법에서도 10진법의 계산을 한다.
특히 오늘날까지 지구촌에는 다양한 문명세계가 구축되어 왔지만, 모든 문명은 놀랍게도 세상을 보는 관점에서의 편견을 갖는 데서도 동일한 패턴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이를테면 일상생활에서 왼쪽 손에 대한 혐오감을 갖고 있다. 반대로 오른쪽 손에 대한 선호도를 지니고 있다. 대체로 우측통행의 습관이 자리 잡고 있다. 누구나가 시계의 방향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정하고 있다.
이외 무수히 많은 일들이 공유되고 있다. 태양이 지구주위를 돌고 있다는 잘못된 상식이 모두가 진실인 것처럼 공유하고 있었다. 인간의 마음이 심장에 있다는 비과학적인 견해를 모든 문명이 하나같이 진실로 공유하고 받아들였다.
이처럼 착오와 착각이나 환상과 상상, 혹은 오류라고 판명된 생각이나 사고방식조차도 공유하고 있는 공감현상이 있다. 객관적인 실체가 없는 허구와 상상마저도 공유한다는 사실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그렇다면 왜 경험과 실천 그리고 행위로서 바로 판명될 오류가 객관적인 진실로 공유되는 것일까? 이러한 현상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는 내 마음의 주인은 바로 나 자신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이 마음먹기에 정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알게 모르게 마치 조물주가 이미 정한 틀에 의하여 작동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한편, 인류가 자기의 독특한 문화와 문명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극소수의 창조적인 역할이 매우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어쩌면 세상의 만물은 모두가 유일한 창조물이라고도 할 수가 있는데, 이 창조의 과정에서는 언제나 천부적인 개인의 특별한 역할이 매우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세상사의 처음이 있는 것이며, 그 처음이란 바로 새로움이고 창조이다.
그 처음의 경계가 어디인지를 모를 뿐이고, 그 주체를 알 수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분명한 것은 그 처음은 아주 극소수만의 일이 된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면, 성경의 경우에 처음 구약에서 모세의 특출한 역할에 의하여 ‘모세5경’이 가능한 것이었다. 신약에서는 예수의 부활로 인하여 성경이 완성되고 또 석가모니의 창조적인 역할이 있어서 불교의 시원이 열렸으며, 인도교에서도 1인의 역할에 의하여 ‘베다5경’이 가능한 것이다. 대표적인 동양철학인 유교도 ‘태호복희’의 특별한 혜안에 의하여 그 시원이 열렸다.
1인의 창조는 철학이나 과학 문학예술 등의 다방면에 걸쳐서 이루어졌다.
한사람의 탁월한 영감으로 그 당시의 보편적인 공유를 깨고 나타나는 특출함과 범인으로서의 접하기 어려운 새로움의 창조가 일어나는 사례는 너무도 많이 목격되지만, 이 작업은 마치 번개처럼 시작과 끝이 어디인지 그 경계를 알 수가 없는 순식간의 사이에 이루어지며 창조와 전승이 마치 빛과 그림자처럼 항상 함께하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대부분의 고대인들이 두뇌보다는 심장을 영혼의 보금자리와 안식처로 더 중요시하는 가운데, 뇌의 역할을 인식한 선구적인 천재가 있었다. 그는 세상 사람들의 다수가 공유하는 사고방식에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의 갈 길을 가고 있었다.
사실 인류의 역사에서 널리 공유한다는 것만으로 그것이 곧, 사실이고 진리이고 정의라고는 할 수가 없다는 사례들이 너무도 많다.
모든 사람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땅덩어리가 평평하다고 생각하지만, 사고의 폭이 깊은 극소수이 사람들만이 원의 형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천재가 바보로 되는 셈이다.
결국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찾자는 미명하에서 일인의 창조로 이루어진 열매를 땅에 묻어버리고 그 천재를 바보로 취급한다면, 이러한 일이야말로 우상숭배의 또 다른 모습이 아닐까?
인류문명의 역사는 어떻게 흘러왔을까?
인류는 언제부터 문명을 건설하여을까
세계 각지에서 발견되는
-기존의 가장 오래된 문명인...
메소포타미아 문명 보다 오래된 유적들....
-이런 유적은 무슨 불가사의... 미스테리...기묘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냥 발견된 유적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인류사는 새로 써야 한다.
-다만 아직 연계고리를 가진... 유적의 연계를 설명할 가설이 불충분한 상태...
-특히나...
인도의 캠베이만 수중도시 유적은
상당한 수준을 보여준다.
상당하기보다 절정의 조각 모습이다...
동양(오리엔트)문명의 재발견
오리엔트의 의미는 ?
오늘날 널리 쓰여지고 있는 <오리엔트>Orient라는 말은,보통 원동(또는 극동)을 포함한 전 아시아라는 뜻의 <동양>을 의미하는 말이 돼 있다.
<오리엔트>라는 말은 본래는 고대 로마인이 자기 나라 이탈리아 반도를 기준으로 해서 서쪽을 <오키덴스>Occideus라고 부른데 반해서 동쪽을 막연히 <오리엔트>Orient)라고 브른데서 시작됐다.
<오리엔트>는 라틴어의 동사 오리올 Orior(일어나다,나타나다의 뜻)의 명사형 오리엔스Oriens에 유래하는 것이며, 오리엔스는 <해가 뜬다>는 의미에서 <해가 뜨는쪽,지방><동방>이라는 뜻을 갖게 된 것이다.
<오리엔스>와 대조적으로 사용되는 <오키덴스>(서쪽의 뜻)는 라틴어의 동사 오키도 Occido(떨어지다,넘어지다.해가 지다의 뜻)의 명사형이다.
<빛은 동방으로부터>라는 라틴어 격언이 있다.
이 말은 원래 그리스 문화에서 많은 것을 배워 개화한 고대 로마인이 이탈리아 반도의 동방에 있는 그리스가 로마에 빛을 가져왔다는 의미로 사용한 것이 시작이며, 엄밀한 의미에서 중국이나 극동을 가리키는 말은 아니다. 즉 빛이라는 것과 같은 것이다.
지역적으로 보자면 동양에서도 오하강이고 요하강에서도 한반도의 동해를 의미하는 것이다.
한반도에서도 경주를 의미한다.
초고대의 태양숭배에서 ㅂ롯한 오리엔트에대한 존경심과 숭배의식이 이후 로마인의 지리적 지식의 증대와 동방과의 비단 교역의 발달과 함께 오리엔트가 가리키는 지역은 점점 동방으로 확대되고 그 범위는 시대에 따라서 차이가 있다.
오늘날 우리가 역사적 명사로 사용하고 있는 <고대 오리엔트>의 지리적 범위의 중심은 근대 미국의 이집트 학자 J.H.브레스테드(1865-1935)가 명명한 이른바 <비옥한 초생달(지대)> The Fertile Crescent이다.
고대 오리엔트의 지리적 범위는 개강 북쪽은 흑해,카프리카스 산맥,카스피 해 및 이란의 북쪽 기슭을 경계로 하고, 남쪽은 사하라 사막과 인도양으로 제한 되고,서쪽은 보스포로스 해혁과 나일강 협곡, 동쪽은 인더스 강 하구에 이르는 지역을 가리키며,거의 북위 10도에서 40도 정도의 사이이고, 북해도에서 대만을 조금 남하한 지역이다.
즉 오른쪽 끝을 페르샤 만의 충적층 평야에서 시작해서 이란 고원 및 재크로스 산맥의 서쪽을 티그리스.유프라테스 양강을 따라 북상하여 그 수원지대인 아르메니아 고원에서 소아시아의 토로스 산맥의 동쪽을 동부 지중해 연안을 따라 시리아.팔레스타인으로 남하하는 초생달형의 이른바 흑토지대에 나일강 하류의 충적층 평야를 보탠 지역이다.
지리적으로는 대강 다음 일곱 지방으로 나뉘어 있다. 즉 소아시아,시리아,팔레스타인,이집트,아르메니아,메스포타미아,아라비아,이란의 여러 지방이다.
이들 여러 지방은 대부분 불모의 사막이나 황야이지만,그 중심을 이루는 것은 강유역의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이며, 두 큰 강의 유역에서는 대규모의 인공 관계에 의하여 정주 농경생활이 영위되고,거기에 양지역을 연결하는 시리아, 팔레스타인의 해안 평야를 보태서 전체적으로는 사막 속의 녹지대를 형성하여 <비옥한 초생달(지대)>를 이루고 있다.
초고대 문명은 언제 탄생했는가?
인류의 역사는, 학문적으로 문자 기록의 유무에 따라서 대강 200만년에 걸친 긴 선사시대와 약 5000년의 역사시대로 답변한다.
역사를 협의로 해석하면 그것은 글자에 의한 기록과 함께 시작한다.
그리고 선사시대는 석기시대이며 역사시대는 금속시대이다.
구석기시대, 중석기 문화에 이어 신석기시대락 시작되는 것은 인류가 자기 손으로 식량 생산을 시작한 때부터이며, 그것은 오리엔트에서이고 가장 오랜 농경 정주 집락이 형성된 것도 오리엔트이다.
지금으로 부터 약 1만년 전에 인류가 오리엔트에서 농경과 목축을 시작했다.
이것은 불의 발견에 이은 중요한 단계이다.
그것이 사방으로 전반되어 유럽으로 인도로, 그리고 중앙 아시아를 넘어 화북에까지 농경 문화가 전해진 것이 밝혀지고 있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약 5천년전에는 오리엔트에 인류 최고의 도시 문명이 일어나고 그들은 글자를 발명하고 금속기를 사용하고 통일적인 정부 조직을 형성하여 여기에 인류 최고의 문명이 발생했다.
영국의 역사가 A.J.토인비(1889-1975)는 그의 대저<역사의 연구>에서, 세계의 문명 사회를 29가지로 구분하고 각 문명 사이의 관계를 연구하였으며, 그 중에서 다른 문명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자기의 문명을 창조한 것은 이집트와 슈메르 문명 뿐이라고 했다.
사실 이 이집트와 슈메르 문명만은 그들이 영향을 받을 앞선 문명을 갖지 못했다고 했는데
이분은 동양의 홍산문화 요하문명의 유물과 유적을 알지 못한 분이고...
그러므로 요하문명이 발굴되기 전까지는 인류의 역사가 문명이라고 부를 수 있는 단계에 도달한 역사시대가 시작된 시기는 메스포타미아 및 이집트에서는 기원전 3000년 전후라고 추정되고 있다.
이보다 조금 늦게 인더스와 크레타 문명이 시작되고, 동아시아에서는 더 늦은 은인이 문명 단계에 들어간 것이 기원전 1500년전 경이다.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문명 이전의 약 1천년간, 즉 기원전 제4천년기.이른바 금석기 병용 시대라고 부르는 시기에 오리엔트에서는 문명 개시의 준비가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최고의 문명 사회에 공통적인 점을 들자면, 그것은 어느 것이나 도시 문명이었다는 것이다. 영국의 고고학자 V.G차일드(1892-1957)는 식량 생산의 개시를 인류사의 제1차 혁명(<신석기 혁명>)이라고 하며, 문명의 개시를 제2차 혁명(<도시 혁명>)이라고 한다.
인류사의 제1차 혁명은 그 후 세계 각지에 일어난 제 민족의 전형이 됐으며, 18세기 후반에 시작되는 산업 혁명까지 인류의 생활은 실질적으로 큰 차이가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이 물질 상의 혁명인 산업 혁명과 거의 동시에 사상상에는 계몽사상이, 정치적으로는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으며, 이 세가지 혁명에 의하여 계속 일어난 여러가지 사태는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인류 최고의 문명이,왜 오리엔트에서 발생했는가?
북반구의 대부분은 지금으로부터 약 100만년 전의 홍적세시대에 전후 4번에 걸쳐서 빙하의 전진과 후퇴에 의하여 두꺼운 빙하에 덮혀 있었다.
빙하기에는 간빙기라고 하는 온난한 시기가 끼어 있었고, 인류는 그 온난한 기후 조건 아래서 나타났다고 하나, 언제 어디서 나타났는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기존까지는 인류의 역사시대는 기원전 3000년경의 오리엔트의 도시 문명의 성립으로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
<메소포타미아나 이집트의 충적층 평야는 강의 정기적인 범람으로 매년 비옥한 흙이 퇴적하는 혜택 받은 땅이었기 때문에 그 땅에 인류 최고의 문명이 발생하였다>고 했는데, 과연 그랬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실은 그 반대였다.
역사시대 이후의 지구에는 기후, 풍토 상의 변화는 국부적인 것이었고, 큰 역사적 현상을 설명할 만한 것이 없다는 사실이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와는 반대로 선사시대에는 현대의 우리에게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심한 변화가 있었던 것이 밝혀졌다.
예를 들자면 지중해가 아직 없었거나, 사하라 사막이 대밀림이었던 것이 그것이다.
지금의 중근동지방은 구세계의 서남에서 동북에 걸친 대건조시대가 돼있으나 페르샤만 입구에서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을 따라 북상하여, 다시 동부 지중해 연안에서 나일강에 이르는 지역은 지금으로부터 약 2만년 전까지는 우량이 풍부하여 초목이나 동물이 번식하고 그 전역은 원시림에 뒤덮인 습윤지대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빙하의 후퇴와 함께 북극 고기압이 수축해서 이 지대에 비를 몰아오고 있던 온대성 저기압이 차츰 북방으로 이동을 개시했다.
그 결과 오리엔트 전역에 이상 건조가 시작된 것이다. 따라서 인류는 물론 그들과 생활을 함께 하고 있던 동식물도 이 기후의 격심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 어떤 자는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어떤 자는 종래의 생활을 계속하다가 사멸하고, 어떤 자는 기후의 변화에 대응한 수렵 채집의 생활을 계속하여 생존하고, 또 어떤 자는 목축과 농경의 새로운 생활로 들어간 것이다. 약 1만년 전의 일이다.
그후, 오리엔트 여러 지역에서의 생활의 기본 조건과 생활의 실체는 모두 지금까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그러고 건조가 시작된 시기의 여러 큰 강의 유역은 늪이나 큰 숲이었고 그곳에는 맹수나 독사가 살고 강이 범람할 때마다 홍수가 일어나 당시 사람들에게는 아주 살기 어려운 환경이었다는 것이 최근의 연구에 의하여 밝혀지고 있다.
이렇게 해서 문명에 이르는 길은 이 최대의 역경에 도전하여 이것을 극복한 사람들의 노력의 결과로 이룬 것이며, 좋은 환경은 인력으로 만든 것이다. 그러므로 신석기시대의 사람들에게 이런 어려운 환경을 개척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의 지혜와 힘의 결집을 필요로 했던 것이다.
이렇기 해서 티그리스.유프라테스 양강 유역 및 나일강 유역이 비로소 좋은 옥토가 되고, 여기에 인류 최고의 문명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특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이 바로 동양의 동북아지역의 요하지역의 1만년전의 기후와 지리적인 조건에 관한 것이다.
이 당시의 요하지역은 과연 문명을 이룩할 만한 것일까하는데, 우실하교수의 놀라운 연구결과는 매우 주목할만하다.
아래의 그림은 기원전 18,000년~12,000년경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빙하 및 대륙의 사진자료이다.
위의 자료는 영국의 새턴대학에서 작성한 자료이다.
이 당시의 문명을 이룩할 만한 지역은 동아시아 뿐임을 증거한다.
아래의 자료에서 보듯이 한반도 황해는 초원지대고 아래 그림의 좌측하단 그림과 같이 큰강이 흘렀다.
또한 위측 그림 중앙부분의 하늘색 부분은 빙하(얼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구석기 시대 한반도 중심의 상황을 고려할 때 고조선의 건국지라고 보여지는 만주쪽은 당시 사막지대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한반도 주변 문명의 발생은 마고문화로 알려 진 난생설화 중심의 모계사회가 농경문화를 중심으로 황해대평원이라고 부르는 광범위한 지역에 산재하여 살았을 것이고(그렇다고 현재처럼 인구가 수억명은 아니고 잘 해야 수만~수십만 정도로 생각된다.
오리엔트 역사는 어떻게 구분되는가?
동남아시아, 서남아시아 동북아시아의 지역은 역사적으로도 유구한 옛날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완결된 독자적인 역사 세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이러한 전제에 서서 오리엔트가 제민족 제국가의 항쟁과 경함과 협력 가운데 만들어진 하나의 역사 세계를 형성하고 있었다면,거기에는 오리엔트 독자의 시기 구분이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결코 고대 세계의 한 영역이라는 개념이 아니라, 거기에는 그 나름의 고대도 중세도 근세도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개념과 파악 방법은 학자에 따라서 다르다.
오늘날 일반적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는 시기 구분의 원형은 이른바 3구분법이라고 해서 그 착상은 르네상스기에 이미 나왔으며 유럽사를 기준으로 해서 형성된 것이다.
오리엔트사의 경우는 중국사처럼 통일 왕조의 교체로 시기 구분의 기준으로 삼을 수 없다.
그리고 생산 양시개의 관점에서, 고대 = 노예제 사회, 중세=봉건제 사회, 근세 = 자본제 사회라는 식의 이른바 사회발전 단계설을 그대로 적용할 수도 없다.
보통은 7세기의 이스람 발흥을 중심으로 해서 전후 두 시기로 대별된다.
즉,이스람 이전은 고대라 불리고, 다시 기원전 331년의 페르시아 제국의 멸망으로 그 고대가 둘로 나뉘어 전기는 고대 오리엔트 시대, 후기는 헬레니즘 시대라 하고, 전기는 편의상 다시 기원전 제30세기까지를 동 20세기,동 10세기의 세 시기로 대별한다. 이스람 이후는 다시 19세기 이후의 근현대와 그 이전의 중세로 나눈다.
어떤 학자는 오리엔트사를 고대.중세.근세의 세기로 대별하는 사람도 있다.
먼저 고대는 가장 오랜 시대에서부터 기원전 331년의 페르샤 제국 멸망까지의 시대이며, 세계 최고의 고도한 문명이 발생하고 오리엔트적인 전개가 일단락되기까지의 말하자면 오리엔트적인 고유한 문명의 성립 발전의 시대를 말한다.
이어서 중세는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 정복으로 오리엔트의 통일 제국이 멸망하고 여러 소국으로 분립하게 되는데, 동시에 그리스.로마와 정치적 경제적으로 밀접한 관계가 맺어지고 지중해 세계와 떨어질 수 없는 관계가 되어 서방의 영향 아래 새로운 오리엔트 지방 문화가 발생한 약 1000년간을 가리킨다.
즉 이 시대의 오리엔트 세계의 서반부는 그리스.로마적 세계이고 그 동반부는 이스라니즘,다시 말해서 고대의 전통을 계승한 팔티아, 사산조 페르시아 등의 오리엔탈즘의 전통적 세계이며, 이것은 마치 서양중세에 있어서의 로마적 게르만적 세계의 성립 발전과 유사한 것이다.
근세는 7세기에 이슬람교의 성립과 이슬람 제국의 발생등의 획기적인 사건이 일어나고 오리엔트 세계가 새로운 의미에서 고유한 문화를 형성한 시대이며, 그후 바그다드와 카이로가 동서로 확대되는 이스람 세계의 중심이 되어 이스람계의 제 왕조가 흥망하였다.
오리엔트문명은 어떻게 변했는가?
기원전 제30세기까지는 고대 오리엔트의 2대 문명권,즉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는 각각 독자적인 생활을 영위하며 발전해 오면서 양자의 교류는 주로 경제적 문화적인 면에 한정되고 정치적인 지배에까지는 이르지 않았다.
그러나 기원전 제20세기 초에 북방에서 고대 오리엔트 지방으로 스테프 민족의 대이동의 물결이 밀려들어 기원전 1600년경까지의 오리엔트 세계는 제민족의 대이동과 충돌이 일어나는 대혼란이 계속됐다.
이것은 많은 경우 인도.유럽어족계의 지배층을 내포한 푸르리인(슈메르인도 셈어족도 아니다)의 민족 이동에 의한 것이었고,그 결과 소아시아의 선주민 하티를 정복하고 힛타이트 왕국과 유프라테스강 종류에서 시리아 북부까지를 지배한 미탄니 왕국, 그리고 바빌론 제1왕국을 쓰러뜨린 카시드 왕국 등이 발흉했다.
이 대이동에 의하여 시리아.팔레스타인 지방도 그 여파를 받아 종래의 셈어족계 유목인은 서쪽으로 이동해 갔다.
이집트 중왕국 시대의 쇠퇴에 따라 기원전 18세기 종반부터 아시아에서 이집트에 침입해 와서 1세기 이상이나 나라 태반을 지배한 힉소스는 풀르리인을 기간으로 하고 거기에다 고래로부터 고대 오리엔트 지방에 세력을 뻗치고 있던 셈어족을 포함한 혼성 민족군이었다.
이 민족 대이동에 의하여 오리엔트 세게는 교란 되고 옛 문명의 중심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는 이민족의 지배 아래서 침체하였다.
그러나 이제까지 이 큰 강 유역 지방에만 한정돼 있던 두 문명은 반대로 주변 지역으로 확산되어 오리엔트 세계의 일체화가 진행되어 갔다.
이집트 제 18왕조 에서 비롯되는 신왕국의 대외 정책에서 나타난 이른바 고립주의에서 국제주의로의 정책 전환은 이런 국제 정세가 배경이 되어 있다.
이어서 기원전 15.14세기에 이집트,힛타이트,미탄니등의 대국의 쟁탈의 표적이 된 것은 시리아. 팔레스타인 지방이다.
그리고 이제까지 선진 오리엔트의 여러 영향을 받기만 했던 크레타가 동부 지중해의 해상 무역을 지배하는 새로운 세력으로 등장한 것이다.
그리고 이들 오리엔트의 대국들이 쇠퇴한 뒤에 시리아. 팔레스타인 지방에는 폐니키아의 여러 도시 국가나 이스라엘인의 왕국 등의 소국가가 대두했다.
그 결과 오리엔트 세계 제국의 모든 정책은 제20왕조 이래 나일강 유역으로 후퇴한 이집트를 대신해서 앗시리아가 계승하고, 앗시리아는 기원전 7세기에는 서아시아 및 이집트를 포함한 데제국이 된다. 앗시리아 제국이 멸망한 후 칼디아(신바빌로니아).이집트 소아시아의 리디아,이란의 메디아 등의 네 나라가 분립했으나 곧 메디아에게 복속하고 있던 이란 고원의 페르시아가 나타나서 퀴로스 2세,감뷰세스 등에 의해서 이들 나라들은 차례로 멸망하고, 다류스왕(BC 522-486)에 이르러 인더스강에 이르는 고대 오리엔트 세계를 통일한 전무한 대제국으로 세웠다. 그리고 정치적으로 통일된 동방 오리엔트 세계와 서방과의 관계가 경제적 문화적으로 더욱 긴장하게 되어 알렉산드르 대왕의 정복에 의하여 오리엔트는 지중해 세계와 떨어질 수 없는 관계가 되어 헬레니즘 시대로 들어간다.
우리가 주목해야하는 것은 바로 동아시아에서의 화하문명과 요하문명과의 관계이다.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하여 과학적인 탐구결과를 내놓아야 할 것이다.
이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문명사회를 이끌었던 사회문화적인 것 그리고 정치경제의 시스템에관한 것이고 특히, 그 문명을 구축한 고 이끌어간 철학과 과학 그리고 각종의 지혜와 세계관에 대한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천부경이나 각종의 환단고서들 뿐만아니라 유물유적에 대한 철학적인 접근과 과학기술적인 해석이 필요한 것이다.
동양은 창조 서양은 모방
서구 유럽의 역사왜곡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책이 『블랙아테나』이다.
유럽에서는 원래 유럽문명의 기원은 이집트였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독일학자들이 19세기 후반 같은 아리안인종의 고대 그리스를 적극 발굴하여 유럽과의 연계성은 강화하고 이집트와의 연계성을 축소하였다.
그리고 이집트문명과는 별도로 성장해온 독창적인 문명으로 그리스를 부각시켜 그 때부터 서양문명의 기원이 되었다.
많은 서구학자들은 『블랙 아테나』를 읽고서 그리스의 역사와 서양사, 그리고 세계사를 왜곡했을 가능성은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라는 반성을 했다.
그리스문명이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문명보다 2000~2500년 늦게 시작돤 문명이었으니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나 페니키아 문명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고 발전시켜왔으리라는 것이 순리다.
그리스 신화에서도 약소국인 아테나의 왕자 테세우스가 제물이 될 사람들과 함께 크레타로 간다.
이미 많은 연구들이 축적되어 그리스신화는 이집트신화와 터키지역의 히타이트신화에서 많은 부분을 차용했다는 것이 알려졌다.
또한 탈레스, 피타고라스, 아르키메데스, 솔론, 유클리드, 플라톤 등 그리스의 유명학자들이 이집트를 갔다.
피타고라스 정리는 피타고라스보다 1500년전의 메소포타미아 점토판에서 찾아냈다.
소크라테스는 그리스 철학의 기원은 이집트라고 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리스 수학의 기원도 이집트라고 했다.
또한 헤로도토스는 많은 그리스신들이 이집트에서 왔다고 말했다.<출처: 전북대 이정덕교수님 글 요약>
볼프강 작스가 『반자본 발전사전』12쪽에서 이야기한대로 2차 세계대전 이후 현재까지도 세계사, 사상, 학문은 서구중심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서구학자들이 수많은 역사왜곡으로 서구에 편향된 세계관을 만들어왔고 우리는 지금도 따르고 있다.
“서구중심의 탈식민화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리오리엔트』는 일찍부터 서구가 앞섰다는 주장을 모두 부정한다.
영국이 벵골을 식민지화하면서 인도경제가 무너지기 시작했고,
중국과의 무역적자를 해결하기 위해 중국에 아편을 팔고 아편전쟁을 일으켰다.
유럽은 중남미의 은을 착취하여 부를 이루고 인구와 자원이 부족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기술투자가 증가하면서 산업혁명이 일어났다.
산업혁명을 성공시킨 다음에야 겨우 아시아을 앞섰다는 것이다. 아시아를 추월한 것이 150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오리엔탈리즘』은 유럽이 동양을 비이성적이고 야만적인 곳으로 낙인을 찍고
자신들은 이성적이고 문명적인 곳으로 서양은 긍정적인 것으로 동양은 부정적인 이미지로 만들었다.
자신들이 만든 동양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근거로 식민지 침략을 정당화하였다.
자신들이 야만적인 세계를 문명화시키려고 식민지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프랑크는 동양과 서양의 경제적 현실 자체를 유럽학자들이 왜곡하여 거짓말을 했고
영국의 산업혁명이 이루어진 1820년대까지 유럽이 아시아에 뒤쳐져 있었다는 것이다.
그 동안 서구가 세계사를 가장 발전시켜왔다고 배워왔고 따라서 근대를 서구를 중심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유럽의 중세는 동양의 중세보다 뒤쳐진 암흑중세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그런데 칼 맑스나 막스 베버 같은 학자들은 왜 이런 거짓말을 했을까?
그들은 서양이 우월하다는 관점에서 자료들을 해석하고 이론화 했기 때문이다.
<출처: 전북대 이정덕교수님 글 요약>
서양사는 아시아 문명이 모태
20세기 초중반 미 컬럼비아 대학의 유명 철학자였던 윌 듀런트(1885∼1981)는 1930∼50년대 지식인들에게는 중요한 스승으로 알려져 있다.
현대 지식인들은 그를 통해 철학과 역사의 교류에 눈을 떴다고 평자들은 풀이한다.
그는 유럽과 미국은 아시아 문명의 응석받이이자 손자라고 지적한다.
그래서 조상인 동양의 풍요로운 유산을 이해할 수 없었다고 꼬집는다.
종래 서양사 중심의 서술 행태를 지적한 것이다.
듀런트는 “서양의 이야기는 동양에서 시작된다.
아시아가 가장 유서 깊은 문명의 장으로 유명해서가 아니다.
동양의 문명들이 서양의 시작인 그리스 로마문화의 배경과 토대를 형성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이어 “그리스와 로마가 현대 지성의 모든 원천은 아니다”면서
“서양 문명에 절대 없어서는 안 될 발명품들,
예컨대 서양의 정치 기구 및 경제 과학 문학 철학 종교의 뿌리가 이집트와 동방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놀라울 따름”이라고 했다.
출처: 세계일보 2011년7월15일
서양 중심의 세계사는 가짜다.
리 오리엔트 = 다시 동방으로 !!
저자 프랑크는 유럽중심주의의 잘못된 시각을 수정하고 세계사에 관한 사고의 틀을 완전히 재정립할 것을 요구한다.
2000년 미국사회학회로부터 ‘올해의 책’으로 선정 된 바 있는 이 책은 서구의 발전과 세계체제의 기원에 관하여
근본적인 재인식의 기회를 제공하는 혁신적이고 흥미진진한 프랑크의 역작이다.
" 오리엔트" "빛은 동양에서".
세계 문명의 근원은 동양이었고 동양 역사의 시작이 곧 세계 역사의 시작 이었다.
군더 프랑크의 [리오리엔트]는 이러한 "엄연한 사실"을 강조하며 유럽 중심주의에 빠져있는 역사관과 세계사를 수정 하기를 요구한다.
우선 프랑크는 유럽 중심주의에 대해 거세게 비판한다. 그에 따르면 유럽이 세계를 지배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200년 남짓이다. 그 이전, 그러니까 1800년 이전까지는 아시아가 세계를 주도 하고 있었다.
1800년 이전 변변한 자원도, 풍부한 자본도 없었던 유럽은...
자원과 자본뿐만 아니라 기술 역시 1800년 이전 유럽은 아시아의 기술에 미치지 못했다.
유럽이 세계를 지배하기 시작한 계기는 산업혁명기를 거치면서 급속도로 발전한 기술 때문이었다.
출처: 경향신문 2003년 3월 07일
서구문명은 동양에서 시작되었다.
존 M. 홉슨 저 / 정경옥 역 / 에코리브르 / 2005년 1월/ 18,000원
동도서기(東道西器)가 아니라 동도동기(東道東器)
동양과 서양의 문명적 특징을 축약해 흔히 동도서기(東道西器)란 말을 쓴다.
그러나 이 책을 보고 나면 이 말은 동도동기(東道東器)로 바꾸어야만 할 것 같다.
정신문명은 물론이고 기계문명마저도 그 발원지는 동양이라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동양이 서양과의 문명발달 경쟁에서 근소한 시간적 우위를 점했다는 정도가 아니라
역사의 전 과정을 통틀어 ‘숙련된’ 동양에서 ‘미숙한’ 서양으로 ‘모든’ 인문적 지식이 ‘전수’가 되었다는 의미이다.
아울러 이 전수목록에는 원천기술뿐만 아니라 거의 완제품 수준까지 아우르고 있다.
저자가 참조하고 인용하는 사료와 자료들은 충분히 치밀하고 방대하다.
따라서 구태여 저자가 존 M.홉슨이라는 전형적인 서양인 혈통이란 걸 내세우지 않아도 된다.
이 책의 진정한 목적은 그러한 문명발달의 원조 논쟁에 있지 않고,
인류문명에 있어서 동양의 명백하고 압도적이었던 문명사적 역할이 얼마나 축소되고 은폐되어 왔는지를 밝히려는데 있다. 그 과정에서 서양이 자기기만적인 행동을 하기 시작한 것은 극히 최근부터임도 알게 된다.
동양은 ‘창조’ 서양은 ‘모방’
“서양 사람들은 독일의 발명가 구텐베르크가 문명에 혁신을 가져온 인쇄기를 최초로 세상에 소개했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그림자 뒤에 숨은 진실은 이동형 인쇄기에 사용하는 최초의 금속활자가 구텐베르크의 것보다 적어도 50년은 먼저 한국에서 발명되었다는 것이다.” (저자의 서문 중)
흔히 인류의 3대 발명을 화약, 나침반, 인쇄술이라고 한다. 이 발명품들은 모조리 동양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서양으로 전수되었다.
앞서 저자의 서문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구텐베르크는 인쇄기술을 독자적으로 연구해낸 것이 아니라 동양에서 입수하였던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또 하나의 고정관념의 먼지를 털어 내어야 한다.
그것은 동양과 서양은 훨씬 오래 전부터, 아니 역사의 전 과정에서 무차별적인 교류를 지속해왔다는 것이다.
또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그 교류는 일방통행이었다는 점이다. 즉 서양은 늘 문명의 수혜자였다.
동양은 ‘창조’하고 서양은 ‘모방’했다.
사실상 근대까지도 유럽인들의 기술수준은 모든 분야에서 동양에 비해 아주 조악했다.
한 유럽 지식인은 그의 저서 『위대한 우(禹)임금과 공자(Yu le Grand et Confucius)』에서 ‘유럽이 17세기에 이르러 마치 ‘유전자 대혁명’을 겪는 것처럼 일대 변신을 하기 시작하는데, 바로 뉴턴 등을 비롯한 대과학자들의 세기가 열린 것이다.
이와 동시에 동양은 더 이상의 ‘창조적 지식’의 출현이 없는 까닭 모를 정체기로 빠져들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