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원 사원(Candi Pawon)
파원 사원은 기단 위에 당사가 있고 그 위에 옥개가 있는 찬디형 사당의 전형적인 양식을 하고 있다.
옥개에는 종 모양 스투파가 세워졌기에 불교사원임을 알 수가 있다.
이 사원은 샤일렌드라 왕조가 세운 대표적 불교유적인 보로부두르 사원의 동쪽에 있어 보로부두르 사원 순례 전 명상하기 위한 사원이라고도 하고 사일렌드라 왕조(750-850)의 유골을 봉안한 영묘(靈廟)로 추정하는 설이 있다.
따라서 이 사원의 조성 연대는 8세기 후반 - 9전반이라고 볼 수 있다.
파원 사원의 정면
파원사원 후면
정면 계단의 마카라
날개벽 바깥쪽의 부조(천계수, 항아리, 보살상 등)
주실 입구의 카라
입구 오른쪽 벽의 보살상
정면은 서북을 향하고 있는데 S자형 날개벽 계단 위 출입문이 있고 카라와 그 좌우에 마카라가 있다.
마카라는 계단 오른쪽 전면에도 있다. 문 오른쪽 벽에는 보살상이 새겨져 있다. 날개벽 바깥쪽에는 天界樹(칼파타루), 앵무새, 항아리 등과 합장하여 기도하는 보살상과 시종의 부조가 있다.
보살상의 얼굴 부분이 결손 되었지만 석가의 전생 이야기인 본생담(자타카)을 주제로 하고 있다.
전실(前室) 입구의 카라 · 마카라 장식은 파손이 심하여 복원된 것 같다. 링가와 요니가 있어야 할 주실은 텅 비어 있다
텅 빈 주실
정면 이외 다른 3면은 각각 중앙에 돌출부를 들어 전체적으로 십자형을 하고 있다.
당사 측벽 중앙 돌출부 벽면에는 작은 창문 2개가 만들어져 있고 그 아래에는 아름다운 천계수(칼파타루) 부조가 새겨져 있다. 그 좌우 平枋(기둥사이 벽면)로 아름다운 다라보살상이 새겨져 있다.
다라보살(多羅菩薩)은 관음보살에 여성성을 부여한 보살이기에 청색, 또는 백색의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을 한다.
손에는 연꽃가지를 잡고 있다. 다라보살은 특히 밀교에서 존숭되기에 우리에게는 생소하다. 티베트에 가면 많이 볼 수 있다.
파원 사원의 작은 창문은 매우 이례적인데 그렇다면 이는 장식용이 아니라 실제 채광 역할을 했다고 생각된다. 옥개는 종모양 스투파가 세워져 있다.
측벽 중앙 돌출부와 좌우 평방의 아름다운 다라보살들
다라보살 세부상
중앙 돌출부의 천계수 세부
외벽의 천계수는 부조 조각의 걸작이다. 자바인들은 보석으로 장식한 나무를 새겨 하늘나라(天界)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나무 밑에는 보석 항아리가 놓여있고 그 좌우로 천상계에 사는 半人半鳥인 킨나라 킨나리(Kinnara Kinnari)의 모습이 보인다. 킨나라 킨나리는 인도 신화에서 음악의 신인데 킨나라는 남성, 킨나리는 여성의 모습이라고 한다. 불교의 팔부중 중 긴나라에 해당된다. 비천상의 모습도 우아하다. 자바인들은 천인(天人)이나 천계수를 보는 것만으로도 사후 천상계로 갈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찬디 파원은 19세기말에 거의 붕괴되었던 것을 네델란드 고고학자가 복원했다. 하지만 석재와 기술과 자료 부족으로 원형이 많이 손상되었다.
다음은 믄듯 사원인데 길이 좁아 대형버스로는 못 가서 오지에서 이용했던 미니버스를 탔다. 10시 40분 믄듯 사원 도착.
믄듯 사원(Candi Mendut)
믄듯 사원 역시 파원사원과 마찬가지로 사일렌드라 왕조 때인 8세기 중반 무렵에 건립되었다. ‘믄듯’은 ‘대나무 숲이 있는 절’ 곧 ‘죽림정사(竹林精舍)’라는 뜻이라고 한다. 보로부두르에서 3km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남은 터와 석재로 미루어 지금은 석조 사당 1동만 남아있지만 창건 당시에는 목조 건물과 벽돌제 스투파가 모여 규모가 큰 사원군이었다고 한다.
중부 자바의 찬디는 대부분 향서(向面), 더러는 향동(向東)을 하고 있지만 파원사원과 믄듯 사원은 남서쪽에 입구가 있다. 이는 파원사원과 믄듯 사원이 보로부두르 사원과 일직선상에 두기 위함이다.
왕조의 소멸과 함께 캐두 분지의 대부분의 유적이 화산재에 묻혀있었는데 1834년 지방 행정관에 의해 발굴 조사되었다.
현재 상태의 복원은 1908년에 이루어진 것인데 자료와 기술 부복으로 옥개와 전실은 복원되지 못한 상태이다.
믄듯 사원 주전
날개벽 계단 위에 주실 입구가 있는 것은 여타 사당형 찬디와 같다. 그런데 날개벽 바깥쪽에는 액자로 둘러싸여진 6개의 직사각형 평방(平枋), 4개의 3각형 평방이 4단으로 배치되어 있다. 이들 평방 부조는 본생담의 유명한 내용을 골라서 새겨놓은 것이다. 이러한 본생담 부조는 프람바난 지구 찬디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전실입구
날개벽 계단의 양쪽 마카라
날개벽 외벽의 부조
입구를 통해 주실에 들어가면 인도네시아 불상 중 제일의 걸작이라고 하는 삼존불상이 안치되어 있다. 얇은 대의와 당당한 체구(높이 3m, 보살 2.4m)로 양감과 박력이 있는 모습이다. 본존은 석가여래. 양 협시는 관세음보살과 금강수보살. 균형 있는 체구에 힘이 실렸다. 중앙의 석가여래는 초전법륜인을 하고 있는데 석가가 성도(成道)를 한 뒤 처음으로 녹야원에서 5비구에게 설법한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인도불상의 흉내를 내어 의좌상을 하고 있으나 인도불상처럼 육감적이지 않고 명상에 잠긴 모습이다.
협시보살은 둘 다 한쪽 다리를 내린 유희좌의 자세로 경주남산 신선암 마애관음보살의 자세이다. 머리위에 화불이 있음으로도 알 수 있다. 오른손 수인(手印)은 모든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여원인(與願印)이고 왼손으로 연꽃을 들고 있다.
본존 오른쪽은 금강수 보살이다. 오른손에는 금강저를 들고 왼손은 지면을 가리키고 있다.
석가본존불
금강수 보살
관음보살
남아있는 전실 안 양쪽 측벽에도 뛰어난 부조가 새겨져 있다. 전실 입구를 들어가면 우선 양측벽에 중부 자바기 특유의 천계수가 있다. 이 문양은 그대로 천국의 나무를 표현한 것으로 꽃과 잎이 무성한 수목을 중심으로 그 밑에 보석을 넣은 항아리가 놓여 있다.
전실 측벽의 천계수 부조
천계수 안쪽의 양 측벽에도 부조가 있다. 좌측에 귀자모신(鬼子母神)과, 오른쪽에 비사문천이 있다.
귀자모신 일명 하리티(Hariti)는 부(富)의 신 구베라의 배우자로 예전에 사람이나 아이를 잡아먹는 무서운 귀신이었지만 석가의 교화로 말미암아 아이를 보호하는 수호신이 된다. 무릎 위에 아이를 앉힌 인자한 어머니 모습이다. 그래서 불교가 쇠퇴한 13세기 이후에도 이런 신앙이 계속되어 祈子, 順産, 육아, 부부 화합의 신으로 추앙되고 있다. 어머니 귀자모신 위에는 앵무새가 날아가고 아이들은 나무에 기어오르는 평화로운 모습이다.
많은 아이들을 거느린 귀자모신 하리티 상
비사문천(毘沙門天)은 수미산 중턱의 북쪽에 있다고 하는, 사천왕 중 多聞天의 다른 이름이다. 일명 구베라(Kubera).
비사문천 상
당사 정면 이외의 측벽은 중앙부를 약간 돌출시켜 전체를 3개의 큰 평방으로 분할하고 있다. 이중 중앙 3면의 큰 평방인데, 동북면 중앙에는 八臂(팔비) 多羅菩薩(다라보살)과 협시상, 서남면 중앙에는 四臂 다라보살, 후면 중앙에는 4비 관음상이 새겨져 있다. 당사 네 측면 좌우 8면의 평방에는 8대보살이 부조되었는데 지금은 1-2개를 제외하고는 파손이 되어 식별할 수 없다. 옥개는 3층 계단식 피라미드로 정상에는 큰 종형 스투파가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사비 다라보살과 주위 협시상들
팔비 다라보살과 주위 협시상들
천인비상도
좌우 팔면의 보살상 일부
1시 20분 응아웬 사원 도착.
응아웬 사원(Candi Ngawen)
찬디 응아웬 역시 보로부두루에서 약 7km 떨어진 곳에 있는 불교 사원이다. 이 사원은 동쪽을 정면으로 하여 5동의 사당이 약 4-5m 간격으로 세워졌는데 현대 대부분의 사당은 무너졌고 이 중 둘째 사당이 옥개를 제외하고 복원되어 있고 넷째가 기단만이라도 남아있다.
이 사원은 한적한 농촌 마을 안에 남아있는데 여기서 발견된 비문에 의하여 사일렌드라 왕조가 8세기 후반에 세운 사원임을 알 수 있다. 원래 5동의 사원에 모두 불상이 안치되었으리라 추정하지만 모두 없어지고 지금은 2동과 4동에 불상이 남아있다.
복원된 제2동과 기단만 남은 제4동
복원된 제2동 건물 동편 정면에 아래쪽에 있는 날개벽 계단을 오르면 전실로 이어진다. 주실에는 목 없는 불상이 않아 있다. 기단 면석에는 석가의 본생담이 새겨져 있다. 이 찬디 역시 모두 무너진 것을 1927년에 복원됐다.
복원된 제2사당
날개 계단의 마카라
모퉁이 사자상
모퉁이 사자상들
대형 카라상
11시 50분 오전 답사 일정은 끝. 식당으로 이동하는 시간이 이외로 1시간 이상이 걸리다보니 점심시간은 30분으로 단축했다. 이후 일정을 감안해서다. 무엇보다 발리로 가는 항공 시간에 맞추기 위해서인데 항공 시간은 항상 여유를 두지 않을 수 없다.
이동하면서 가이드는 세계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인도네시아의 전통의상 바틱(Batik)을 두고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지아가 서로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는 등 사이가 아주 나쁘다고 한다. 마치 우리나라와 일본과 같이 바로 이웃하면서도 가장 적대적인 관계라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와 트로이, 영국과 프랑스도 이와 같다. 그래서 중국 전국시대에는 멀리 있는 나라와 손을 잡고 가까이 있는 나라를 제압하는 이른바 원교근공책(遠交近攻策)이 나왔다. 나당연합국이 그랬고 한미동맹은 어떤가?
오후 2시 10분-3시 발마사지. 서둘러 족 자카르타 아디스팁토 공항에 가서 3시 40분 에어 아시아 OZ 5449기로 발리 향발. 5시 20분 도착. 그런데 발리는 자바섬보다 1시간이 늦어 6시 20분이다. (한국시간은 7시 20분)
공항을 나오니 발리 전통복장을 한 현지가이드 데와 디카가 표지판을 들고 우리를 마중했다. 바틱이라는 웃옷, 사롱이라는 치마, 그리고 모자를 썼는데 이것이 발리 가이드의 유니폼이라고 한다. 조수 한 사람을 대동한 그는 가이드 생활 16년인데도 한국에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고 한다. 한국어는 어학원에서 1년 간 배웠다고 한다.
일단 식당으로 가서 식사. 원래 오늘 예정된 경락 전신 마시지를 받았다. 오늘 족 자카르타에서 발마사지를 했기에 하루에 두 번 마사지를 받는 유일한 해외여행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별로 깨끗하지도 않은 실내 환경에서 나이 든 마사지사의 추레한 모습에, 받고 나서도 그렇게 개운한 느낌은 들지 않는다. 1시간 30분이나 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