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인류의 불의 이용은 인간 문화 적인 면에서 전환점이다
진화호모 에렉투스 가 살았던 142만 년 전으로 거슬러간다.
그 증거를 보여주는 아프리카의 유적은 최소한 열세 군데가 있다.
그 가운데 시대가 가장 이른 케냐의 체소완자에서는 짐승의 뼈가 올도완 석기, 불에 탄 진흙과 함께 나왔다.
고생물학자들은 50여 개의 불탄 진흙 조각들의 배열로 미루어 화로가 아니었을까 하고 추측한다.
[1] 이제 인간은 불을 겁내지 않고 이용하게 되면서 날것보다는 익힌 것[2] 이 더 좋다는 사실을 깨달았다.[2]
또한 불은 따뜻함과 외부로부터의 안전을 가져다 주었다.
또, 불은 추운 밤 시간대에도 인간이 활동할 수 있도록 확장해 주었으며 포식자나 곤충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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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사용으로 인하여 음식을 익혀먹을 수 있게 되었고 이것이 사람이 동물과 결정적으로 달라지게 만든 요인이다.
인류가 불을 사용한 시점이야 말로 인류 문명의 시작이 아닐까?
불에 대한 신화와 전설은 전 세계적으로 수없이 많이 존재 하지만, 가장 대표적인 신화는 아무래도 그리스 신화의 ‘불의 신’ 프로메테우스 신화일 것이다.
프로메테우스 신화를 살펴보면 제우스가 몰래 숨겨둔 불을 훔쳐 인간에게 내준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의 노여움을 받아 이브로 상징되는 호기심이 많은 처녀 ‘판도라’와 결혼하게 되고,(이 판도라는 나중에 ‘인류 불행의 씨앗’이 되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게 되는 장본인이다.) 코카서스의 바위에 쇠사슬로 묶여 날마다 독수리에게 간을 쪼여 먹히는 영원한 고통의 형벌을 받게 된다. 결과론적으로 인간은 ‘불’과 ‘판도라의 상자’를 맞바꾼 꼴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러한 신화의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고대인들이 신에게서 ‘질병, 가난, 불행’의 씨앗인 판도라의 상자와 맞바꾸었다고 표현할 정도로, 불은 도구의 사용과 함께 인류 문명의 발전에 엄청난 역할을 하게 된다.
불을 사용한 가장 오래된 증거가 바로 북경원인이 발견되었던 중국 저우커우뎬(周口店)지방이라고 한다.
바로 구석기 시대부터 인류는 불을 사용하였던 것이다. 불을 사용하게 됨으로써 인류는 음식을 익혀 먹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천적과 매서운 추위를 이겨낼 수 있게 됨으로써 수명이 점차적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그리고 불을 조명으로 이용하여 밤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점토를 불로 구워 토기를 만들고 음식물을 건조 · 저장하게 됨으로써 정착 생활이 가능해졌고, 두뇌도 점점 발전되었다. 그리하여 금속과 쇠를 불에 녹이는 방법을 터득하게 됨에 따라 인류가 구석기와 신석기의 석기 시대에서 청동기와 철기의 금속기 시대로 나아가게 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발전은 ‘불’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리고 19세기 영국의 산업혁명의 핵심인 증기기관의 발명 역시 불이 없었더라면 결코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불은 서서히 양면성을 나타내면서 ‘판도라의 상자’의 역할을 하기 시작하였다.
인류는 불을 이용해 청동기 · 철기 무기를 생산해 본격적인 살육과 전쟁을 시작하였고, 화약의 발명으로 총과 대포로 대표되는 화기(火器)의 발전으로 전쟁의 규모가 더욱 커지고 더욱 많은 사람들이 고통과 희생을 당하게 되는 불행의 씨앗으로서의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인간은 불을 사용하여 엄청난 발전을 이룩하였지만, 이와 반대로 불을 이용하여 농기구보다 전쟁 무기를 먼저 만들어 내는 아이러니한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또한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사회의 화재는 더욱 대형화되고 폭발력이 커짐으로써 수많은 인류에게 큰 위협과 재앙이 되고 있다.
불의 사용은 인류가 동물과 다르게 발전할 수 있는 근본적인 토대가 되었고, 인류 문명이 발전하는데 가장 큰 밑거름이 되었다. 요컨대, 음식을 익혀먹게 됨으로써 신체적인 발달과 질병에 대한 면역력을 가지게 되었고, 추위와 천적으로부터의 보호를 통하여 수명 연장도 이루어졌다. 거기에 더해 생각과 사고의 틀을 넓힘으로써 불을 이용하여 도구를 만들어 냈으며, 청동기 · 철기 등 금속에 대한 지식을 터득함으로써 새로운 문명을 이룩하였다.
당연히 수천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문명도 ‘불’이 없이는 불가능 했을 것이다. 그러나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불이 가진 위협과 재앙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큰 것이다. 이러한 ‘양면의 날’과 같은 불을 옛 인류와 선조가 그러하였듯이 잘 사용하여 더 나은 문명과 사회로 발전시키는 것이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책무가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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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30만년 전에 베이징인이 이미 불을 사용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불의 사용으로 인류의 과학기술의 역사는 개발되기 시작하였고,
이러한 발달의 자취를 136년 크리스챤 톰센(덴마크 고고학자)은 3가지 과정으로 나누어
(석기시대-청동기시대-철기시대)연구하였다.
맨 처음의 석기시대는 다시 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로 나누는데,
구석기 시대의 가장 중요한 자취는 '인간이 돌로 연모를 만들고 불을 이용했던 사실'이다
인간이 불을 사용했다는 사실은 숯이나 재의 유존으로 증명된다.
처음에는 화산지대의 것이나 벼락으로 일어난 자연적인 불,또는 나무의 마찰로 인한 산불 등을 이용한 것이었으나, 곧 그들은 돌을 서로 부딪히거나 나무 토막을 서로 비벼 불을 얻을 수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것이다.
그 이후 그들이 불을 다시 끄거나 운반하고,또 지피는 기술을 알아낸 것은 인류의 역사상 매우 크고 위대한 혁명이라고 힘주어 말할 수 있다.
또한 그들은 돌을 불에 달구었다가 갑자기 찬물에 넣으면 잘 부숴진다는 사실도 알아내어 아주 날카로운 돌 조각을 만들어내는 방법도 사용하게 되었다.이것이 바로 여러가지 돌그릇(석기)를 만들게 된 시초의 방법이다.
당시 원시인들은 불은 얻기도 어렵고, 보관하거나 운반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자 불을 지배하려고 했던 그들이 오히려 불의 지배를 받게 되고 말았다.
즉,그들이 보관하여 둔 불로부터 너무 먼 곳으로 이동할 수 없게 되었고 결국 불이 있는 근처에 정착하여 생활하지 않으면 않 되었다.
그들이 일정한 장소에 정착하여 식량확보를 위한 노력으로 농경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등 생활의 큰 변화를 가져왔다.
우리나라의 원시사회 농경은 신석기 시대 후기에 들어가면서 화북(華北)으로 부터의 영향으로 시작되었다고 추정되는데 현재 농경의 증거로는 황해도 지탑리에서 발견된 탄화(炭化)된 곡식과 석골각제(石骨角製)의 농구(農具)들이다.
우리나라 신석기 시대의 사람들은 흩어져 살던 움집, 귀틀집, 동굴의 생활에서 발전하여 군집주거(群集住居)를 만들었고 화덕을 사용하여 불을 지펴서 거처를 따뜻하게 하였으며 야수의 접근을 막아 신변의 안전도 도모하였단 사실은 그들의 주거유적을 통하여 입증되었다.
또한 불의 일상적인 사용은 원시인들의 식생활을 생식(生食)에서 화식(火食)으로 바꾸어 놓았다.
밀림지대의 나무와 나무의 마찰 또는 가연성 물질의 자연발화로 인한 산불로 말미암아 구워진 산짐승 등의 고기를 먹게된 그들은 평상시에도 불을 이용하여 새나 짐승,어패류나 야채등에 이르기까지 화식을 하게 되었다.
돌칼이나 나무매등을 사용하였던 그 옛시절의 화식은 고기를 나뭇가지에 꿰어 불에 빠싹대고 굽거나 찰흙을 섞어으긴 나뭇잎에 싸서 뜨거운 잿속에 묻거나 구덩이어ㅔ 묻고 그위에서 불을 때거나 하는 등 모두가 굽는 방법 이외는 없었을 것으로 생각된다.(인간의 식생활에 필요한 조리기술의 발달의 계기가 됨)
불을 사용하였던 원시문화의 또 하나의 획기적인 발달은 곧 토기라는 기구의 제작이다.
우리나라 신석기 시대의 여러유적지에서 볼수 있는 원시무문토기나 즐문토기가 바로 그것으로서 이것은원시인들이 불을 이용할줄 알게된 이후 얻어진 커다란 문명의 이기가 아닐수 없다.
이처럼 원시인들에게 유용하였던 불은 오늘날까지도 없어지지 아니하고 갖가지의 수단과 방법을 보존되고 이용되어 왔으며 앞으로도 불을 통한 물질문명(의시주, 농경, 교통, 통신, 에너지와 자원 환경, 가공생산, 과학기술 등 )의 개발은 더 차원 높고 더 편리하게 계속 되어질 것이다
호모 에렉투스는 불초기 인류의 불의 이용) 불의 이용 방법 획득으로 질병, 추위, 맹수 로부터의 위협이 감소되었다. 대략 150만 년 전 이전에 호모 에렉투스는 불을 직접 일으켜 사용하였으며
중국의 저우커우뎬, 중국 윈난 성 위안머우 현, 남아프리카의 스와르트크란스 동굴 등에서는 호모 에렉투스(각각 베이징 원인, 위안머우 원인)가 이용한 화덕과 부싯돌 불에 탄 재가 발견되었다
저우 커우뎬 에서는 불에 탄 사슴뼈와 영양뼈 20, 30여 점이 발견되기도 했다
화재로 불에 탄 고기가 연하다는 것을 터득했거나, 짐승들이 불을 두려워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으로 추정된다. 불에 익혀서 섭취하여 육질이 연화되었으며 질병에 감염될 확률이 감소하였다. 보다 연한 음식을 섭취하게 되면서 불을 사용한 이후의 호모에렉투스의 아래턱은 이전의 같은 종에 비해 작고 유연하게 변화되었다.
중국 베이징, 시베리아의 바이칼 호수 에서는 추위를 이기기 위해 짐승의 가죽을 걸쳐서 옷을 해입은 흔적도 발굴되었다. 조잡한 형태였으나 짐승의 가죽을 걸쳐서 추위에 적응, 방어하기 위한 수단, 맹수로부터 신체를 보호하는 수단으로서 짐승의 가죽을 걸친 것으로 추정된다.
F. 바이덴라이히에 의하면 호모 에렉투스의 평균 수명은 30~40대인 것으로 추정된다. 베이징에서 발견된 뼈화석 주인들의 연령대는 30~40대였으며 50대를 넘긴 인골화석도 있었다 한다.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는 신생대 제4기 홍적세(플라이스토세)에 살던 멸종된 화석인류[1] 이다.
170만 년 전에서 10만 년 전에 아프리카, 아시아, 시베리아, 인도네시아 등에 걸쳐서 생존하였다
조지아의 드마니시호모 게오르기쿠스) [1] 대략 150만 년 전 이전에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아시아
까지 진출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호모 에렉투스는 뗀석기로 매머드 와 같은 큰 짐승을 사냥하거나 가죽을 벗기고 살점을 잘라 냈던 것으로 보인다.
언어를 사용하기 시작했을 것이고, 고기를 불로 익혀 먹음으로써 단백질을 풍부하게 섭취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여러 변화는 그들의 두뇌가 발달할 수 있는 좋은 조건으로 작용하였을 것이며, 그들의 두개골 용적이 1,000cc 전후로 커진 점은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한 증거라고 할 것이다.
찰스 다윈의 진화론에 감명받은 네덜란드의 해부학자 외젠 뒤부아는 암스테르담 대학 강사직을 사퇴하고 군의관을 자원하여 네덜란드령 동인도자바 섬을 발굴하다가 솔로 강변에서 피테칸트로푸스 에렉투스 를 발견하였다
뒤부아는 학회에 미싱 링크의 발견을 알리고 에른스트 헤겔 이 명명한 가상의 인간 피테칸트로푸스 알랄루스에서 이름을 따서 피테칸트로푸스 에렉투스라 종명을 지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인정받지 못하고 거대한 긴팔원숭이, 소두증에 걸린 기형인간이라 비판받아오다가 동일 종의 화석이 계속 발견되면서 1920년대에 와서 정당성을 인정받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