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틀란티스문명이 미노아문명을 의미한다는 가설에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1977년에 피힐러와 시링크라는 두 독일 과학자는 화산 분출물을 세심하게
조사한 결과 산토리니 섬은 크레타가 멸망한 1450년보다 훨씬 오래 전에 폭발했다고 주장했다. 화산은 기원전 1477년이 아니라 기원전
1650년에 폭발했다는 것이다. 이뿐 아니라 황소 숭배는 고대 지중해 전역에 널리 퍼진 풍습이었으며 희생으로 바치는 짐승을 잡을 때 희생물에
손상을 입힐 수 있는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 풍습 또한 일반적이었다고 설명했다. 몸에 흠집이 없는 짐승만을 신에게 바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수께끼에 매달리는 학자들의 집념 또한 대단했다. 만약 화산 폭발로 미노아문명에 치명타를 입혔다면 흔적이 남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플로이드 맥코이 박사는 우선 화산 폭발 규모가 어느 정도로 컸을지를 분석했고 드라고슬라브 닌코비치는 산토리니 섬의
화산 규모를 추측했다.
그들은 우선 1883년 8월 인도네시아 크라카타우 섬의 화산 폭발과 산토리니 섬의 화산 폭발을 비교했다.
크라카타우 섬 화산 폭발은 약 4,800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오스트레일리아 동부 주민들의 귀에 들릴 정도로 엄청났다. 폭발력은 100메가톤에서
150메가톤 규모였는데 이는 초창기 핵폭탄 6만 개에서 9만 개를 동시에 터뜨릴 때 발생하는 폭발력과 같다.
산토리니 섬의 화산 폭발은 크라카타우 섬의 화산 폭발보다 열 배나 큰 규모였다. 산토리니 섬의 폭발로
지름 13킬로미터, 깊이 2킬로미터인 분화구가 생겼으며 높이 200미터가 넘는 해일이 인근을 강타했다. 크라카타우 섬 화산이 만든 해일의 높이가
35미터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만 봐도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알 수 있다.
크라카타우 섬 화산이 폭발하면서 약 3만 6,000명이
사망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산토리니 섬의 폭발에 따른 여파는 대단했을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산토리니 섬 화산이 폭발하면서 전 지구적인 여파를
줬다는 점이다. 당시 이집트에서는 한 사제가 “나흘 동안 옆에 있는 사람도 보이지 않고 낮과 밤이 구별되지 않을 정도로 흐렸다”라고 적었다.
중국에서는 오곡이 시드는 등 농사가 엉망이 됐다는 기록도 있다. 하나라가 상나라에 멸망시키는데 그 연유가 산토리니 섬의 폭발로 농사를 망쳤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화산 폭발은 남극 빙하에도 흔적을 남겼다. 기원전 1628년부터 7년 동안 재가 내렸다는 흔적이 빙하에서
발견된 것이다. 7년이나 재가 내렸다는 것은 7년이나 전 세계적으로 농사에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에서도 흔적이 발견됐다. 수령이
5,000년인 브리스톤 나무의 나이테를 살펴보니 그 당시 나무 성장이 비정상적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학자들은 유럽에서 일어난 화산 폭발 중
산토리니 섬의 화산 폭발이 가장 강력했던 것으로 추정한다.
안드리센 박사는 화산 폭발과 미노아문명의 멸망을 연계하면서 매우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다. 크레타에서
둘째로 큰 도시였던 팔라이카스트로에서 갑자기 건물의 반이 날아간 것이다. 당시 이 도시에는 5,000명이 살고 있었는데 갑자기 도시 전체가
사라진 것이다. 이뿐이 아니다. 당시 셋째로 큰 도시인 말리아인에서도 똑같은 재난이 일어났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거대한 재난이
일어났을까? 우선 화산이 폭발하고 며칠 동안 밤낮이 구별되지 않았다고 해도 이처럼 갑작스러운 재난은 불가능하다. 놀랍게도 퇴적층에서 유공충은
물론 산호말류도 발견됐다. 이들은 바다에서만 발견되는 생물이다. 게다가 퇴적층에서 자갈과 함께 있는 토기도 발견됐다. 바다에서 거대한 힘이
몰려왔음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상상할 수 없는 해일이 밀어닥쳤다는 뜻인데 당시 해일은 높이 31.36미터, 속도는 시속 16킬로미터에서
32킬로미터 정도로 몰려왔다.
해일은 거의 30분, 40분 간격으로 연속해서 도시를 강타했는데 이 때문에 피해는 더욱 심해졌다. 첫
해일을 피해 높은 고지로 올라간 사람들이 내려왔다가 희생됐을 가능성이 높다. 2004년 인도네시아 아체 주 해안을 강타한 해일로 해안에 살던
사람의 80퍼센트가 사망했는데 산토리니 섬 화산 폭발의 여파도 유사했을 것으로 보인다. 크레타 섬 해안에 정박한 함선들은 물론 도시 인구의
80퍼센트 정도가 피해를 봤을 것이다.
거대한 해일은 미노아인들의 사기를 완전히 꺾어버렸다. 미노아인들은 강력한 함대를 갖고 있는
데다 신들이 미노아를 보호한다고 믿었으므로 해안에 성벽도 건설하지 않았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재난이 일어났으니 신들이 미노아에 등을 돌렸다는
뜻으로 인식했을 것이다. 그들은 이런 대재앙을 신들의 저주로 받아들였다.
물론 크레타 섬의 제1도시인 크노소스는 피해를 보지
않았다. 크노소스는 내륙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화산이 폭발하고 거의 200년이 지나 미노아문명이 멸망한 이유는 따로 있어야 했다.
학자들은 내부 봉기 또는 외부 침략을 붕괴 원인으로 꼽았는데 근래에는 주로 후자가 우세하다.
우선 크노소스에 방화 흔적이 남아 있고 크노소스 인근인 체냐에서 대규모 무덤이 발견됐는데 미노아식 무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크노소스에서 그리스인들이 사용하는 긴 칼도 발견됐다. 학자들은 당시 지중해에서는 미노아문명과 미케네문명이 강력한
함대를 거느리고 있었는데 산토리니 섬 화산 폭발은 미케네문명, 즉 그리스 문명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고 추정한다. 그래서 지중해를 주름잡던
미노아문명이 갑작스럽게 쇠퇴하자 그리스인들이 크레타를 공격해 멸망시켰다는 설명이다.
매우 중요한 정황을 알려주는 유물도 발견됐다.
크노소스 도로에서 어린아이 시체가 무더기로 발견됐는데 이는 미노아인이 인육을 먹은 흔적으로 보인다. 학자들은 이 사실이 그리스신화의 미노타우로스
전설을 만들었다고 추정한다. 즉 미케네문명은 크레타에서 인육 먹는 것을 크게 비난했는데 갑자기 해군력이 보이지 않자 충분한 준비를 한 다음
크레타를 공격했다는 것이다. 특히 미노타우로스 전설은 그리스인들이 크레타를 공격하기 위한 명분으로 만들었을 개연성이 높다. 그리스 반도
펠로폰네소스의 아카이아인들은 종교, 글, 예술을 크레타에서 배웠지만 무기만큼은 크레타인보다 우월했다.
천재지변이 미노아문명을 멸망시켰다는 시나리오는 산토리니 섬 화산 폭발 외에도 크레타 섬에서 계속 발생한
강력한 지진을 염두에 둔다. 즉 여러 번에 걸친 천재지변으로 크레타의 지배력이 약해졌을 때 아카이아인들이 크레타를 침입해 점령했다는 것이다.
종합해보면 미노아문명은 자연재해와 외부 공격으로 멸망했는데 이런 사실들이 복합적으로 연계돼 아틀란티스 전설이 시작됐다는 것이 현대 과학으로 보는
아틀란티스의 진실이다.
지금까지 전 세계적으로 무려 5,000여 권이나 되는 책이 아틀란티스 대륙을 소재로 삼았다고 한다. 이
책들은 모두 플라톤이 설명한 아틀란티스가 실존한 대륙이거나 상상으로 만든 대륙이라는 것을 증명하려고 애썼지만 명쾌한 결론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아틀란티스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매력적이란 건 2005년에 아틀란티스 학회가 개최된 것으로도 알 수 있다. 많은 학자가
그리스 밀로 섬에 모여 사라진 문명의 위치를 추정하는 수십 가지 가설을 제시하며 토론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아틀란티스 대륙이 실존했을 가능성이
없다고 확신하는 과학자조차 심정적으로는 아틀란티스 대륙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리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전문가조차 모순적인 견해를
보일 만큼 아틀란티스 대륙에 대한 인간들의 호기심은 대단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학자들은 다음과 같은 답변을 준비하고
있다. 우선 대륙이 완전히 사라졌다면 그 대륙에서 살고 있던 사람들은 어떻게 됐을까? 더 나아가 속물적이긴 하지만 그들이 갖고 있었을 보물은
어디에 있을까? 만약에 내가 보물을 발견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라진 대륙의 문명이란 바로 이런 공상을 수없이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이 매력을 느끼는 게 아닐까? 여기에 아틀란티스처럼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전설이 인간에겐 꼭 필요하다는 설명도 큰 지지를
받는다.
사람들이 아틀란티스 대륙에 흥미를 느끼는 또 다른 이유는 인류의 미래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다. 과거에 아틀란티스 대륙이
침몰했다면 미래에도 그런 사건이 생기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대륙 침몰이라는 재난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 알 수 있다면
비슷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 더 잘 대처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라진 아틀란티스 대륙은 찾을 수 없어서 외려 더 매력 있는지도 모른다. 아틀란티스 대륙의 전설이
2000년 이상을 내려오면서 끊임없이 인구에 회자됐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사람에게 꿈과 희망을 줬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아틀란티스의 진실을 밝히는 작업은 얄궂게도 꿈을 잃어버리는 작업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당장에 해답을 얻는 것보다 설득력이 있는 해답을 누군가가
제시해주기를 기대하는 게 아닐까? 적어도 아틀란티스 대륙과 함께 사라진 각종 보물은 아직도 바닷 속에 묻혀 있을 것이기 때문에 아직도 많은
사람이 아틀란티스 대륙을 찾기 위한 모험을 계속하고 있다. 그들의 목표가 과학적 조사든 가라앉은 보물을 찾기 위해서든, 아틀란티스는 우리에게
영원한 매력을 지닌 이상향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