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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신화 2 - 삼황오제(三皇五帝

작성자유토피아|작성시간19.04.10|조회수446 목록 댓글 0

삼황오제(三皇五帝)에 대해서는

이설이 많답니다.

 

신비하고 괴이한 전설과

신화에 속하는 것은 배제했다는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서는

천황(天皇), 지황(地皇), 태왕(泰皇)을

삼황(三皇)이라 한답니다.

 

예문유취(藝文類聚)에서는

천황(天皇), 지황(地皇), 인황(人皇)을

삼황이라 한다는군요.

 

 

 

삼황도(三皇圖)

 

 

풍속통의(風俗通義)라는 책에서는

복희(伏羲), 여와(女媧), 신농(神農)을 들었고

또 다른 책에서는 여와 대신

공공(共工) 또는 축융(祝融), 수인(燧人)을

거론하기도 한답니다.

 

제왕세기(帝王世紀)에서는

복희, 신농, 황제를 들고 있으며 

십팔사략(十八史略)에서도 제왕세기와 같답니다.

 

산해경에서는

중제(衆帝) 혹은 군제(群帝)라 하여

상제가 한명이 아니라 다수인 것으로 나온답니다.

 

황제(黃帝), 여와(女媧), 염제(炎帝),

태호(太皞), 소호(小昊), 전욱(顓頊),

제준(帝俊), 제요(帝堯), 제곡(帝嚳),

제순(帝舜), 제단주(帝丹朱), 제대(帝臺) 등을

상제라 일컫는다는군요.

 

 

 

 

산해경의 역주에 실린 삼황오제의 계보

제왕세기가 아닌 제왕세계(帝王世系)로

나와 있군요.

 

 

제왕세기는 원전은 소실되었고 지금은

인용으로만 남아 부분적으로 전해지고 있다는군요.

 

십팔사략은

만화가 고우영씨가 책으로 낸 바 있어

매우 익숙한 책이름일 것 같습니다.

 

십팔사략의 원래 이름은

고금역대 십팔사략(古今歷代十八史略)이며

원(元)의 한족 학자 증선지가 처음 지었다고 하는데
그 뒤 명(明) 초기의 학자 진은(陳殷)이

음과 해석을 달아 2권이었던 것을

7권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십팔사략은 우리나라에도

조선조 초기에 전해져서

초보용 역사 교과서로 사용되었다네요.

 

 

 

이십사사(二十四史)와 십팔사략(十八史略)

 

이십사사(二十四史)는

청나라의 건륭제에 의해 결정되었다고 하며

중국에서 정사(正史)로 인정받는 역사서

24종의 통칭입니다.

 

1.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는

중국 전한 왕조의 무제 시대에

사마천이 저술한 중국의 역사서이며

황제(기원전 22세기)에서

기원전 2세기 말의 전한 무제까지를 다루고 있다.

 

2. 한서(漢書)는 반고(班固)가 편찬한

전한의 역사를 서술한 역사서로

한 고조 유방이 전한을 창건한

기원전 206년부터 왕망의 신나라가 망한 24년까지이다.

 

3. 후한서(後漢書)는 후한의 역사를

남북조 시대 송나라의 범엽(398년 ~ 445년)이 정리한 책이다.

다루는 시대는 25년(건무(建武) 원년)부터

220년(건안(建安) 25년)까지의 역사이다

 

4. 삼국지(三國志)는

서진의 진수가 쓴

중국 삼국시대의 사찬(私撰) 역사서이다.

후한 말기부터 서진 초까지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사기, 한서, 후한서와 함께

중국 전사사(前四史)로 불린다.

 

5. 진서(晉書)는

중국 진나라(晉)의 기록을 담은 역사서이다.

648년 당나라 태종 때에

방현령(房玄齡), 이연수(李延壽) 등

20여명의 학자가 편찬한 책으로,

서진(265년 ~ 316년)과 동진(317년 ~ 418년)의

역사가 수록되어 있다.

 

진서 이후

사서(史書) 편찬이 국가 사업으로 행해지고

새 왕조에서 전왕조(前王朝)의 역사를 쓰는 것이

나라의 임무가 되었다.

 

6. 송서(宋書)는

488년에 남제(南濟) 무제(武帝)의 명을 받아

심약이 편찬한 기전체 역사서로, 동진의 뒤를 이은

남조의 왕조인 유송(劉宋, 420년~479년)의

역사를 담았다.

 

7. 남제서(南齊書)는

남조 양나라 때인 537년에 소자현이 편찬한 것으로,

남조 제나라(479년~502년)의 역사를 담았다.

 

8. 양서(梁書)는

중국 남조 양나라(梁, 502년 ~ 557년) 시대의

기록을 한 역사서이다

 

9. 진서(陳書)는 당나라의 사학가인 요사렴이

636년에 편찬한 사서이며

중국 남북조 시대(439년 - 589년)의

남조 마지막 왕조인 진나라(陳)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10. 위서(魏書)란

중국 북제의 위수(魏收)가 편찬한 북위의 정사이다.

 

11. 북제서(北齊書)는

당나라 이백약이 쓴 기전체 역사서로

동위, 북제의 역사를 기록한 정사이다.

 

12. 주서(周書)는

당나라의 영호덕분 등이

당나라 당 태종의 칙명에 의해서 저술한

기전체의 단대사로

서위와 북주의 역사를 기록한 정사이다.

 

13. 수서(隋書)는

수나라의 역사서로

총 85권의 수나라 역사 통사이다

 

14. 남사(南史)는

중국의 남조에 대해 쓰여진 역사서이다.

남북조 시대(439년 ~ 589년)의

남조에 해당하는 나라인

송나라, 제나라, 양나라, 진나라의 역사를 담고 있다.

 

15. 북사(北史)는

중국 북조의 역사서로

남북조 시대(439년 – 589년)의

북조에 해당하는 왕조인

북위, 서위, 동위, 북제, 수나라의 역사를 담고 있다.

 

16. 구당서 (舊唐書), 17. 신당서(新唐書),

18. 구오대사(舊五代史), 19. 신오대사(新五代史),

20. 송사(宋史), 21. 요사(遼史),

22. 금사(金史), 23. 원사(元史), 24. 명사(明史)

 

이상이 이십사사(二十四史)이고

청나라의 건륭제에 결정된 것이라 하니

당연히 청사(淸史)는 없는 거겠지요.

 

 

십팔사략(十八史略)은

원(元)의 한족 학자 증선지(曾先之)가 지었다고 하며
그 뒤 명(明) 초기의 학자

진은(陳殷)이 증보 개편하였답니다.

 

정사에 속하는 이십사사중에서

열일곱의 역사서와

이희의 /속송편년자치통감/과

유시거의 /속송중흥편년자치통감/을 하나로 하여

총 열여덟의 역사서에서 유명한 이야기를 뽑아

태고(太古) 때부터 송나라 말까지를

다룬 책이라고 합니다.

 

 

 

 

중국의 신화 이야기 중에

삼황오제 이야기를 가장 먼저 꺼내는 것은

저 혼자의 생각일 뿐입니다만

신화와 역사의 경계에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중국신화의 거목이라 하는

위안커(袁珂)에 의하면 역사서에도

신화는 있다고 합니다.

물론 신화에 대한

그의 개념을 살펴봐야 하겠지만.

 

사실 우리가 쓰는 신화(神話)라는 용어는

서구로부터 일본으로 번역되어 들어온 후

일본에서 중국과 우리나라로 건너온 것이며

원래 신화라는 말 자체도

개념도 없었다고 합니다.

 

중국적인 표현이라 한다면

괴(怪), 이(異), 신(神), 해(諧) 등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군요.

 

신화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것은

신민총보(新民叢報)에 발표한

장관운(蔣觀雲)이라는 사람의

/신화와 역사가 길러내는 인물/이라는

글에서 라고 합니다.

그때가 1903년이니

신화라는 말이 중국에는 없었다, 라고 해도

틀림이 없는 것 같습니다.

 

물론 신화라는 용어가 없었을 뿐

신화적인 내용이 없었던 게 아니겠지요.

다만 그리스의 호메로스(hHomeros)나

후대의 3대 비극작가처럼

신화를 노래한 시인들이 없었기에

단편적인 신화조각들로만 남았다는 것입니다.

 

위안커(袁珂)에 의하면

불교의 경전에 나오는 신화나

도교의 장생불사의 신선(神仙) 이야기,

역사적 인물이면서 신화적 인물인 경우 등

각 역사 시기에도 다양하고 풍성한

신화적 단편들이 산재해 있다고 합니다.

 

더구나 소수민족이나

민간에 전승되는 신화까지 포함한다면

그 내용이 참으로 방대하다는 것이지요.

 

 

하(夏), 상(商), 주(周)

 

 

하상주단대공정(夏商周斷代工程)이란 게 있답니다.

여기서 공정(工程)이란 propject를 뜻한답니다.

Xia–Shang–Zhou Chronology Project

 

하(夏)-상(商) 또는 은(殷)-주(周)-진(秦)-한(漢)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時代)

-수(隋)-당(唐)-송(宋)-원(元)-명(明)-청(淸)

...

 

중국 역사를 배우며 외웠던 것이지요.

여기서 하상주란

말 그대로 하(夏), 상(商), 주(周) 시대를 말합니다.

상(商)나라를 은(殷)이라고도 하는데  

상나라 말기에 도읍을 은(殷)으로 옮겼기 때문이랍니다.

 

하, 상, 주 시대의 연표(年表)를 정리하기 위한

연대학(年代學) 연구사업이 하상주단대공정이랍니다.

공정은 1996년부터 시작하여 2000년에

하(夏), 상(商), 주(周)의 연대를 확정하여 발표했답니다.

 

그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기원전 2070년경, 하나라가 건국되었다.

기원전 1600년경, 하나라가 상나라로 교체되었다.

기원전 1300년경, 반경(盤庚)이 은허로 천도하였다.

기원전 1046년, 상나라를 대신하여 주나라가 건국되었다.

상나라 왕 반경으로부터 제신(帝辛)까지의

대체적인 연대를 확정하였다.

주나라 왕의 재위연대를 구체적으로 확정하였다.

 

하상주 단대공정 이전에

역사적으로 확인 가능했던 연도는

기원전 841년이었는데

기원전 2070년까지로 거슬러 올라간 것입니다.  

비판의 소지가 많답니다.

 

아무튼 삼황오제(三皇五帝)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한편으로 삼황오제의 줄임말이

황제라는 설도 있으나

황제(皇帝)라는 명칭은 진(秦)이

천하를 통일하고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것으로

황황(煌煌)한 상제(上帝)라는

뜻을 지니고 있답니다.

 

 

삼황(三皇)

 

태호복희(太昊/太皞/伏羲),

염제신농(炎帝神農), 황제헌원(黃帝軒轅)이

제왕세기와 십팔사략에서 이야기하는 삼황이며

사기와 풍속통의 등에서는

복희, 여와, 신농을 거론합니다.

일부에서는 수인(燧人)을 들기도 하고요.

 

 

복희(伏羲, 伏犧) 또는 포희(庖犧)는

사람의 머리에 뱀의 몸을 가졌으며

사람들에게 사냥법과 불을 활용하는 법을 가르쳤답니다.

하지만 아래 그림에서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복희(伏羲, 伏犧) 또는 포희(庖犧)

복희화괘(伏犧畵卦)라고  

/복희가 팔괘를 그렸다/라는 그림인데

명나라 때 역대고인상찬(歷代古人像贊)에

나온답니다.

 

 

염제신농(炎帝神農)은

농경과 의료 기술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염제신농(炎帝神農)

약초를 맛보는 신농입니다. 

의약을 가르쳤다는 뜻이겠지요.​

 

 

염제신농(炎帝神農)인데

쟁기와 비슷한 농기구를 들고 있습니다.

농사법을 가르쳤다는 뜻이겠지요. ​

 

 

황제헌원(黃帝軒轅)은

제위시 황룡이 나타나 혹은 봉황이 나타나

토덕(土德)의 상서로운 징조가 있다고 하여

황제(黃帝)라는 명칭이 붙여졌다고 합니다.

 

황제는 집짓는 법과 옷 짜는 법을 가르쳤으며,

수레를 발명했고, 글자 개념을 처음으로 도입해

천문과 역산을 시작했답니다.

 

사기의 오제본기에는

 

헌원이 방패와 창 쓰는 법을 익혀서

조공하지 않는 자들을 정복하자

제후들이 와서 복종했다. 

그러나 치우만은 포악하기 그지없어

정벌할 수 없었다.

 

라고 쓰여 있는 것으로 보아 황제의 힘은

병기(兵器)에서 나온 것으로 여겨지며 

신화적인 삼황의 반열에 적합치 않아 보입니다.

오제에 넣는 것이 더 마땅한 것 같습니다.

 

 

황제헌원(黃帝軒轅)

​여와(女媧)

명말청조(明末淸初)를 살았던

소운종(蕭雲從)이란 사람이 그린

이소도(離騷圖)에 실린 그림이랍니다.

여와를​ 삼황(三皇)에 포함하는 기록도 있어

함께 올려둡니다. ​

​아래는 복희와 여와가 함께 어울려 있는 그림인데

삼황오제 이야기와는 사뭇 다릅니다.

복희(伏羲)와 여와​(女媧)

​오누이이면서 부부가 되었다는

복희와 여와입니다.

가운데 아이가 매달려 있습니다.

인류의 시조임을 나타낸다고 합니다. ​

​*

유소씨(有巢氏)​와 수인씨(燧人氏)

유소씨와 수인씨는 삼황에 들지는 못하고

옛날에 그런 사람이 있었다는 정도로

취급되고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삼황보다 더 오래 전부터

사람들을 가르쳐 왔고

사람들은 그들을 섬겼는지도 ​모릅니다.

짤막하게 그들의 기록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유소씨 이야기는 장자의 도척(盜跖),

한비자의 오두(五蠹)에 나온답니다. ​

상고시대에 사람이 적고 새나 짐승이 많아서

사람들이 새, 짐승, 벌레, 뱀을 이기지 못하였다.

어느 성인이 나무를 얽어 집을 만들면서

여러가지 위험을 피하게 해주니

사람들이 기뻐하여 그를 천하의 왕으로 삼고

유소씨라고 불렸다.

 - 한비자(韓非子) - ​

나무에서 불을​ 취하는 수인

수인은 부싯돌(燧)지닌 사람(人)으로

그 뜻을 풀 수 있습니다.

복희는 불을 사용하는 법을 가르쳤는데

수인은 불을 만드는 방법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수인 역시 삼황에 포함되기도 한답니다.​

사람들은 나무 열매나 조개를 먹었으나
비린내 나고 더러운 냄새로
배 속이 상하여 병이 걸리는 사람이 많았다.
어느 성인이 부싯돌로 불을 일으켜
날생선이나 날고기를 익히니
사람들이 기뻐하며 그를 천하의 왕으로
삼았으니 그가 수인이다.

 

- 한비자(韓非子) -

​*

 

오제(五帝)

 

제왕세기와 십팔사략에 의하면

소호 금천(少昊 金天), 전욱 고양(顓頊 高陽),

제곡 고신(帝嚳 高辛), 제요 도당(帝堯 陶唐),

제순 유우(帝舜 有虞)가 오제(五帝)랍니다.

 

사기(史記)에 의하면 황제(黃帝), 전욱(顓頊),

제곡(帝嚳), 당요(唐堯), 우순(虞舜)을

오제로 꼽고 있습니다.

 

소호금천(少昊金天)은 황제(黃帝)의 아들이고,

전욱고양(顓頊高陽)은 소호(少昊金天)의 형의 아들이었으며,

제곡고신(帝嚳高辛)은 소호(少昊金天)의 아들이랍니다.

 

 

 

전욱 고양(顓頊 高陽)

제곡 고신(帝嚳高辛)

제요도당(帝堯陶唐)

요순시대를 언급할 때, 그 요임금입니다.​

제순유우(帝舜有虞)

​역시 요순시대의 순임금입니다.

 

 

요순시대(堯舜時代)

 

제요도당(帝堯陶唐)과

제순유우(帝舜有虞)의 시대를

우리가 흔히 듣는 요순시대라고 합니다.

 

요(堯)는

제곡고신(帝嚳高辛)의 아들로 이름은 방훈(放勳)이고

당요(唐堯) 또는 제요도당(帝堯陶唐)으로도 부른다.

요는 도당씨(陶唐氏)라고도 부르는데,

요가 처음에 도(陶)라는 지역에 살다가

당(唐)이라는 지역으로 옮겨 살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순(舜)은

전욱고양(顓頊高陽)의 후손으로

성은 우(虞), 이름은 중화(重華)이고

우순(虞舜) 또는 제순유우(帝舜有虞)로도 부른다.

 

 

하(夏) 왕조의 성립

 

 

면류관(冕旒冠)을 쓴 우(禹) 임금

그때도 그러했는지 모르겠으나 ​

우리 눈에 익숙한 모습입니다. ​

면류관은 평천관(平天冠)​이라고도 하는데

​후한(後漢) 때 완성된 모습을 갖추었다는군요.

 

하(夏) 왕조는 대략 2070 BC에 건국되어 

​1600 BC 경에 멸망했다고 합니다.

 

순임금 때에 우임금이 선양(禪讓) 방식으로

왕위를 물려받았다고 합니다.

우임금은 신하인 백익(伯益)에게

왕위를 선양하고자 했으나

결국에는 아들인 계(啓)가 왕이 되었고

이후 왕위세습이 이루졌기에

우임금을 하나라의 시조로 여기게 되었다는군요.

 

자세한 이야기는

뒤에 쓰도록 하겠습니다.

 

 

하왕조의 대략적인 위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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