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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주역의 세계

작성자유토피아|작성시간18.05.12|조회수108 목록 댓글 0

주역을 좀 알고 싶어서 읽었다.

주역은 점치는 책이라 생각하고 별관심이 없었다.

근데 중용을 읽어보고 성리학이 만들어지는 것을 얼핏 보니 주역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알았다.

그래서 주역이 어떻게 유교 경전이 되는지가 궁금해졌다.

내가 관심 있는 부분만 대강 정리해 보았다.

역의 내용을 깊이 파고드는 책이라기 보다는 역이 어떻게 변화 발전해 왔는지를 쉽고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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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易經)의 성립

1) 전설

역의 성립에 관해서는 유명한 전설이 있다. “역의 진리는 깊다. 사람은 세 성인을 거치고, 시대는 삼대를 거쳤다라는 말이 있다. 세 사람의 성인은 바로 복희와 주()의 문왕, 그리고 공자이다.

역의 전설로서는 또 한 가지가 있다. 역을 연산’ ‘귀장’ ‘주역의 세 종류로 보는 이른바 삼역설이다. 그러나 연산역과 귀장역은 전하지 않는다.

 

2) 경전과 십익

역은 8괘를 기초로 한 64괘로 구성되고 있는데, 64괘와 그 괘를 이루는 384효에 관한 설명인 괘사와 효사가 있어, 여기까지를 ()’이라 한다. ‘은 상·2편으로 나누어지며, 점을 치는 경우의 판단은 이 에 의해 행해진다. 그러나 은 너무 난해하여 이를 해석하는 ()’이 만들어지게 되었는데, 이것이 <단전> 상하편, <상전>상하편, <문언전>이다. 그리고 역의 전체에 대해 다양한 측면에서 해석을 시도한 <계사전> 상하편과 괘의 상()을 설명한 <설괘전>, 64괘의 순서를 설명한 <서괘전>, 64괘의 괘명의 의미를 설명한 <잡괘전>이 있어, 모두 10편의 전 즉 십익(十翼)이 갖춰지게 된다.

 

3) 간이(簡易), 변역(變易), 불역(不易)

역의 의미에 대해서는 다양한 학설이 있지만, 한대(漢代)부터 말해 지기 시작한 것으로 역은 하나의 명칭으로 세 가지의 의미를 나타 낸다고 하는 설명이 가장 일반적이다. ‘간이즉 간단하고 쉬운 것, ‘변이즉 변하고 바뀌는 것, ‘불역즉 변하지 않는 것의 세 가지 의미이다. 일반적으로 이 세 가지 중에서도 특히 변역의 의미를 중시한다. 오늘날 영어로 “ The Book of Changes”라고 번역하는 것도 이에 따른 것이다.

 

2. 사상으로서의 역

경전으로서의 확립

1) 한 대 초기의 시대 상황속에서

<>()’과 십익(十翼)을 갖추어 완성된 것은 한나라 초기였다. 유교의 도덕적인 정치사상과 예악의 문화주의가 평화스런 왕조의 체제를 유지하는데 적합하여 한나라의 국교로 정립되었다. 바로 유교에 의한 사상통일인 것이다. 국립대학이 설립되고, <역경>, <시경>, <서경>, <예기>, <춘추>의 오경을 위한 강좌들이 개설되어 전문적인 박사관이 교수를 맡게 되었다. 으른바 오경박사가 설치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은 이제 유교의 오경 속에 포함됨으로써 확고부동한 지위를 확보하게 되었다. 본래 아무런 사상성이 없던 점서(占筮)의 책이어서 진시황의 분서까지도 피할 수 있었던 <>이 잠깐 사이에 이처럼 파격적인 대우를 받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2) 인간사와 자연현상을 결부시킨 한역(韓易)

일반적으로 한나라 시대의 역학 즉 한역은 복잡 미묘한 주술적 서법을 특징으로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3) 자연철학으로서의 음양사상

인간세계의 질서가 우주자연계의 질서와 일치한다고 보고, 자연계의 질서에서 어떤 모범을 획득하려는 것이 바로 천인합일 사상이다. 한 대에는 그 천인관계의 메커니즘을 분명히 하기 위해 자연철학으로서의 음양사상이 채용되었다.

 

4) 동중서의 사고방식

유교의 국교화를 추진한 중심인물은 동중서라는 공양학자였다. 역사는 그를 처음으로 음양사상을 도입하여 이를 유학자의 중심으로 삼게 한인물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는 ()과 인()의 감응관계는 대단히 두려워할 만한 것이다라면서, 인간의 문제와 자연 현상의 밀접한 관계를 강조했다. , 천변지이(天變地異)라는 자연의 이상 현상을 모두 인간세계의 사건에 대응해서 일어난다는 사고방식이다. 결국 동중서가 지향하는 것은 바로 하늘을 중심으로 하는 도덕적인 질서의 확립인데, 이 목표는 현실의 왕권 확립까지도 포함하는 것이었다.

 

5) 사상으로서 공인되다

역의 경전화는 이러한 공양학파의 움직임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한나라 초기의 문예 부흥기에 역을 전해준 학자들도 역시 제나라 사람들이었다. 역이 성인이 하늘을 모범으로 삼아 만들었다는 것은 <계사전>에서도 강조하는 내용이다.

 

2. 노장과의 관계와 왕필의 역

1) 천재 왕필이 살았던 시대

경전이 된 역은 그 후 의리의 역으로서 사상적으로 깊은 사색의 대상이 되었는데, 그 대표는 위()의 왕필(226-249)과 북송(北宋)의 정이천(1033-1107)이다. 왕필의 경우는 노장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정이천의 경우는 불교의 화엄철학에 의지한 측면이 많았다.

 

2) 혼탁함을 버리고 본질을 추구한다.

() 대의 역은 자연현상과 인간사 간의 밀접한 관계를 강조하는 주술적인 점으로서 번성했다. 결국 한역은 결국 민간의 주술과 아무런 차이가 없게 될 정도로 타락하게 되었다. 왕필은 바로 이것을 일소했던 것이다. 번거로운 점치는 기술을 완전히 제거하고 역을 순수한 사상서로 취급하여 그 깊은 의미를 명확히 했던 것이다.

 

3) 진리를 파악하면 괘의 의미나 상징은 버려라

역을 배운다는 것은 곧 그 진리를 파악하기 위해서이며, 그저 경문이나 괘의 형태만 알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본래 괘의 상은 의미를 나타내는 것이고, 괘사와 효사는 상을 설명한 것이다. 그러므로 의미를 분명히 하기 위해서는 상에 의존하는 것이 제일이고, 상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는 말에 의존하는 것이 제일인데, 말에 의존해서 상을 생각하고 상에 의존해서 의미를 생각한다. 그리고 말은 상을 분명히 하기 위한 수단이므로, 상을 알았으면 말은 잊어버려야 한다. 상은 의미를분명히 하는 수단이므로, 의미를 알았으면 상은 버려야 한다.”

 

4) ‘()’가 만상의 근본

진리는 눈에 보이는 잡다한 현상의 뒤에 있는 유일하고 절대적인 것으로서, 그것이 이 현상세계를 지탱하고 있다. 그 진리란 바로 라고 왕필은 생각했다.

이 현상세계의 모습은 다양한 변화와 차별을 가지고 있다. 현상세계가 한낱 거짓이라거나 틀렸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듯 현상세계가 존재하는 것은 그 근저를 꿰뚫는 보편적인 무가 있기 때문이라는 사고방식이다. 현상의 이면에 침잠해서 무의 심연에 이르러, 현상의 참된 의미를 통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왕필의 실천적인 관심이었다.

 

3. 송대 철학의 정수 정이천의 역

1) 현상을 지탱하는 ()’의 세계

정이천의 철학은 ()’철학이라고 일컬어진다. 주자에 의해서 집대성된 송대의 철학을 이학(理學)’이라고 부르는 것은 ()’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하기 때문이다. 를 유학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것은 형 정명도이지만, 이학으로서의 특색을 확실히 한 것은 동생 정이천이었다. 이천은 만물은 음양의 ()’에 의해 생성된다고 보면서도 그 물질적인 외에 그 현상의 배후에서 그것을 의미있게 하고 근거를 제공하는 것으로서의 의 존재를 강조했다.

역의 말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음양하는 것(한번 음이 되고 한번 양이 되는 것), 그것이 도()이다라고 읽을 수 있다. 그런데 이천은 이것을 부정하여 음양하는 까닭이라는 것을 생각해냈다. , 음양 이외에 그것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근거를 생각해내어 그것을 바로 도라고 했다. 이 도는 와 같은 의미였다.

“‘음양하는 까닭이 도이다라는 해석은 후에 주자에게 계승되어, 주자학의 중요한 논리를 구성하게 된다.

 

2) 역이 존중된 시대

노장과 불교에 대항해서 그에 뒤지지 않는 심원한 유학사상을 설명하기 위해 역이 이용된 것이었다. 그러면서 역의 사상이나 말에 근거하여 우주론을 설명하거나 도덕적인 실천론을 전개하기도 하는 경향이 차츰 성행하게 되었다. 정이천의 <역전>도 이러한 상황에서 탄생했던 것이다.

 

3) 변화하는 사상(事象)을 통해 를 파악

역의 근원은 가 있는 후에 상()이 있고, 상이 있은 후에 수()가 있다. 역은 상에 근거해서 이를 밝힌 것이다. 상이나 수의 말단으로 취급될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역의 상을 완미하고 괘사와 효사를 숙독해서, 그것을 현실의 경험에 비춰 해석하면 세계의 사상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요컨대 <역전>은 이러한 관점에서 역에 나오는 말을 해석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4) 본체와 작용

()와 상()의 관계를 분명하게 설명한 것이 정이천 철학의 특색이었다. 그는 그 관계를 본체와 작용은 근원이 같고, 드러남과 미묘함은 사이가 없다라고 표명했다.

현상의 뒤에 숨어서 현상을 의미 있게 만드는 근원의 실체, 그것은 물론 이다. 그리고 그 실체의 현상화한 움직임이 바로 사상(事象)이다. ‘사상은 본체와 작용의 관계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므로 양자는 같은 근원을 갖는다. 그리고 또한 어떤 간격도 없이 서로 상즉해서 합치하고 있다. 사상을 떠난 는 없고, 를 떠난 사상도 없다.

 

5) 하나의 달도 다양하게 보일 수 있다.

이천의 논리는 여기서 하나의 비유로 바뀐다. 그것은 달의 비유이다. 맑은 밤하늘을 비추는 달은 물론 하나이지만, 그 형체는 땅 위의 다양한 것에 비친다. 바다에 비친 달, 급류에 찌그러져 보이는 달, 물동이 위에 고요히 비치는 달, 술잔 위의 작은 달.... 본래의 달은 하나일지라도 그 비추어진 형체는 다양한다. ‘가 드러나는 방식도 이와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이것은 전체와 부분의 관계는 아니다. 달의 어느 부분만이 비치는 것이 아니듯이, 하나하나의 현상에 숨어 있는 는 본래 완전한 것이다. 다만 를 받아들이는 쪽의 상황에 의해서 그 형태가 바뀔 따름이다.

 

6) 도덕성의 기반

역에 대한 이천식의 해석은 역을 유교경전에 걸맞게 도덕적인 의미를 보여주는 책으로서의 성격을 강화시켰다. 그리고 이러한 도덕성은 가 드러난 것으로서 설명됨에 따라 비로소 개별적인 것을 초월한 강력하고 보편적인 기초를 얻게 되었다. , 도덕성이 근원적인 와 합치되는 것으로 제시될 때, 그것은 아무리 해도 피할 수 없는 규제력으로서 사람들에게 다가설 것이다.

를 중심으로 하는 도덕성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그것은 주자에게 계승되어, 마침내 반주자학의 사람들로부터 이로 사람을 죽인다고까지 비판받을 정도가 되었다. 그 발단은 정이천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어쨌든 이천의 <역전>은 강력한 도덕성을 우주론적 사변의 근거에 호소한 책이었다. 역은 이제 완전한 의리의 책, 도덕철학의 책이 되었따.

 

7) 화엄철학의 영향

사물과 진리의 일치를 말한 정이천의 철학은 사실 화엄철학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화엄의 교리에서는 이법계관, 사리무애법계관, 사사무애법계관의 세 단계로 세계관을 설명한다. 첫 번째는 현상의 뒤에 있는 의 세계만을 진실이라고 인정하는 입장이고, 두 번째는 현상과 가 상즉해서 일치한다고 보는 입장이며, 세 번째는 의 절대성으로부터 현상의 개별적 차이를 부정하여 만사를 평등하게 보는 입장이다. 이천의 입장이 두 번째의 사리무애와 일치한다는 것은 금방 알 수 있다. 화엄의 철학에서는 세 번째의 입장을 최고의 경지로 여기지만, 유교로서는 현실세계까지 부정할 수는 없었다. 이천은 화엄철학을 배우면서도, 유학자로서의 본분을 지키면서 독자적인 견해를 만들어냈던 것이다.

 

의리의 역으로서 다루어야 할 것은 아직도 많다. 송학을 집대성한 주자는, 앙필과 정이천이 경시한 점서(占筮)와 상수(象數)를 다시 중시하여 의리(義理)와 점서의 종합을 시도했다. 그것이 바로 <주역본의>이다. 그러나 청대 초기에 이르면 상수학을 도교적 기술의 혼합이라고 비판하여, 다시 순수한 의리의 역으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황종희나 왕부지의 역학이 그것이다.

 

8) 왕부지의 설

변역의 사상을 가장 강조한 사상가는 청나라 초기 17세기의 왕부지이다. 그는 천지의 덕은 바뀌지 않지만, 천지의 변화는 날마다 새롭다고 말하고, 오늘의 해와 달은 어제의 해와 달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변화하여 멈추지 않는 것이 세계의 본질이라고 말하면서 정적인 세계관에 반대한 그의 말은 날카롭다. 그리고 그 역시 순환사상 속에 있다. 그의 새로움은 대대(待對)하는 양자의 상호내재성을 강조한 점에 있을 것이다.

움직이고() 있을 때에 고요함()이 있고, 고요할 때에 움직임이 있다. 고요함은 움직임을 포함하고, 움직임은 고요함을 버리지 않는다. 움직임이 극에 달하면 비로소 고요함이 되고, 고요함이 극에 달하면 비로소 움직임이 된다고 하는 것은......”

대립하는 양면의 상호전환은 여기서 더욱 쉽게 이해될 것이다. 그리고 대대(待對)의 운동은 영원히 반복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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