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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우리철학에서의 비국소성의 문제

작성자유토피아|작성시간17.09.07|조회수102 목록 댓글 0

 

비국소성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쉽게 예를 들면

왼손, 오른손에 각각 동전 하나씩 놓아봅니다.

두 동전이 겉보기에는 공간적으로 떨어져 있어도

실상 서로 연결되어 있는 비국소적 존재입니다.

서로 떨어져 있는 입자들이 정보나 에너지를 주고 받는 것이 아니라

순간적으로 서로 아는 상태로 존재하며

마치 한 덩어리처럼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주의 어떤 구성 요소도

전체와 독립적으로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공간적으로도 떨어져 있지 않으며

시간적으로도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관찰자와 대상은 시간적으로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과거, 현재, 미래가 분리되어 있지 않고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시간적, 공간적으로 분리되어 있지 않은

하나의 덩어리이므로

시간이나 공간의 구분은 무의미합니다.

마음과 뇌의 작용은

홀로그램적 특성이 있음이 밝혀지면서

비국소성의 원리가

마음의 영역에도 적용됩니다.

 

 

양자역학에서의 비국소성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전자(電子)는 스핀(spin)이 1/2입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전자는 스핀의 합이 0이기 때문에 +1/2의 스핀을 가진 전자를 얻었다면, 반드시 -1/2의 스핀을 가진 전자를 얻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어떤 사람이 +1/2의 스핀을 가진 전자를 갖고 있다면, 다른 사람은 -1/2의 스핀을 가진 전자를 가지고 있다고 예상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스핀이라는 것은 원래 각운동량이기 때문에 이러한 각운동량은 에너지와 운동량처럼 보존됩니다.

따라서 두 전자의 각운동량의 합이 0 이 되도록 만들 수 있고, 또한 만들어 집니다.

전자를 빨간 공과 파란 공으로 비유해서 설명하자면, 빨간 공과 파란 공은 한주머니에서 나눌 수 있고, 나누어 지는데, 어떤 사람이 주머니에서 빨간 공을 꺼냈다면, 다른 사람은 필연적으로 파란 공을 꺼내게 되어 있다고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전자도 한주머니에서 +1/2의 스핀을 가진 전자를 꺼냈다면, -1/2의 스핀을 가진 전자가 주머니에 남아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전자는 실제로 그렇지 않습니다.

 +1/2의 스핀을 가진 전자를 꺼냈다고 해도, 주머니안에 -1/2의 스핀을 가진 전자가 남아 있으라는 보장이 없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마치 두 개의 전자가 하나로 포개진 것처럼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1/2의 전자와 -1/2의 전자를 멀리 떨어뜨려놓고 +1/2의 전자의 고유의 상태를 바꾸어 주면 멀리 떨어져 있는 -1/2의 전자의 고유의 상태도 똑같이 바뀐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1/2의 전자를 -1/2의 전자로 고유의 상태를 바꾸어 주면, -1/2의 전자도 +1/2의 전자로 고유의 상태가 바뀌는 것입니다. 

이것을 양자역학은 비국소성(non-locality)을 가지고 있다.

즉, 한 장소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각각 다른 장소에서도 동시성이 있다라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스핀의 실제성은 물리적인 사실이나 양자역학에서 제대로 기술하지 못하므로 양자역학은 불완전하다라는 결론을 내립니다. 이것을 EPR paradox라고도 합니다.

 

순환법칙이 설명하는 양자역학의 비국소성(non-locality)

전자는 -전하이지만, +전하와 함께 순환(循環, circulation, rotation)합니다.

따라서 -전자는 +전자와 한 쌍을 이루며 하나의 시스템을 구성합니다.

전자의 순환과정은 -전자 → -+전자 → +전자 → +-전자의 순환이며, 이것은 하나의 전자 가지고 있는 순환과정입니다.

따라서 +전자는 -전자를 가지고 있는 셈입니다.

이렇게 물질(반전자+)과 반물질(전자-)는 순환을 하며 공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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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국소성(非局所性)” 이론에 관하여

“에너지의학” 및 "양자의학"에서는 “비국소성” 이론이 매우 중요한 이론이기 때문에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비국소성” 이론에 관하여 “지금여기” 1998년 5/6호에 게재된 내용을 요약하고자 합니다.

뉴턴 물리학의 주요 패라다임은 물질은 최소 단위인 원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인간의 의식은 두뇌에서 일어나는 화학 작용의 산물이고, 존재하는 모든 것은 서로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두 개의 독립적인 개체는 어떤 신호를 통해서만 정보 전달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주는 정확한 역학 원리에 따라 움직이는 거대한 기계로 생각합니다.

 

이러한 뉴턴 물리학의 패러다임은 지난 300년간 지속되면서 대부분의 일상 생활 속에서 잘 들어맞는 적합한 모델이었으며, 인류 문명이 놀라운 기술적 진보를 이룩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고, 또한 행성의 운동을 기술하는데 사용했던 뉴턴의 공식은 인간을 달에 착륙시키는 일에도 사용 되었습니다.


그러나 20세기가 들어서면서 빛과 소립자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뉴턴 물리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새로운 실재(reality)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즉, 1900년 독일 과학자인 막스 플랑크(Max Plank)는 고온의 물체에서 빛이 방출 되는 양상을 관찰하는 과정에서 빛이 연속적인 에너지 분포를 보일 것이라는 일반적인 생각과는 달리, 빛이 에너지 덩어리로 불연속적인 분포를 나타낸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 결과는 플랑크와 아인슈타인으로 하여금 빛이 파동과 입자의 성격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생각으로 이끌었으며 이것이 양자 물리학의 시작이었습니다.


1920년대에 이르러 과학자들은 원자의 구조를 밝히는 과정에서 전자(電子)가 행성처럼 단단한 물질 입자의 성질 뿐만 아니라 파동적인 성격을 가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즉, 소립자가 입자와 파동의 이중성을 갖는 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뿐만 아니라 전자(電子)가 운동을 하는데 필요한 에너지가 어디에서 오는가에 대해서도 알 수 없었으며,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측정하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사실(불확정성 원리)을 발견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과학자들은 소립자들이 보이는 파동이 우리가 일상적으로 알고 있는 파동과는 다른 것이라는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즉, 소립자의 파동은 전 우주 공간에 걸쳐 있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하여 1964년 영국의 물리학자 존 벨(John Bell)은 새로운 관계식을 제안하였는데 그것은 어떤 숨은 변수가 있어 양자 입자에 영향을 미치며 이 숨은 변수들은 시공간의 제한을 뛰어넘는 작용을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비국소성(non-locality)”이라고 불렀습니다.


“비국소성” 이론에서는 입자들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상호 작용이 거리와 상관없이 빛보다 빨리 동시적으로 순간적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예를 들면 우주의 한 끝에 있는 입자의 속성을 변화시켰을 때 그 입자와 상관관계를 이루고 있는 다른 입자의 속성도 역시 동시적으로 변화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벨의 주장은 마침내 1982년 알렌 아스펙트(Alain Aspect)와 그의 동료에 의해 파리에서 행한 실험을 통해서 사실로 증명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아스펙트의 실험은 동시적 사건의 발생이 시공간을 초월하는 어떤 요소와 관계되어 있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이러한 이론과 실험이 기초가 되어 오늘날에는 많은 과학자들은 입자는 양자진공이라고 부르는 감추어진 실제의 표면 위에서 일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진공이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아무 것도 없는 텅 비어 있는 공간이 아니라 그 반대로 막대한 에너지로 역동적으로 농축되어 있는 공간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 에너지는 어떤 부딪힘이나 마찰도 없기 때문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장비로는 측정이 불가능합니다.

이 양자진공은 미국의 물리학자 데이비드 봄이 제한한 “숨은 질서(implicate order)”와 통하는 개념입니다.

 

그래서 물질 입자와 파동들은 이 양자진공의 표면 위에서 요동치며 존재 속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바다를 양자진공에 비유한다면 인간은 바다 속을 헤엄쳐 다니는 물고기와 같은 것입니다. 따라서 생물과 무생물을 포함하여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양자진공 수준에서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 “비국소성” 이론은 “양자의학”에서 다루는 “원격치료” 및 “기도 치료”와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한 번 다루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 이론은 초상 심리학에서 다루는 텔레파시, 예지 및 원격투시 등을 설명하는 이론이기도 하고, 칼 융이 말하는 동시성(synchronicity)의 원리를 설명하는 이론이기도 합니다.

종합해서 말씀드리면, 지금까지 과학이 밝혀낸 사실은 우리의 자연은 뉴턴 물리학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과 양자역학으로 설명해야 하는 것이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양자역학이 제안된 지 벌써 10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양자역학의 보편적인 개념이라고 할 수 있는 “비국소성” 이론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면 그만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로 몰아 부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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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는 전체로서의 수많은 다양한 객체들이 서로 독립적이지만 서로는 기계적인 결합을 한다고 보는 것이 기존의 과학적인 관점입니다. 이를 근대적인 과학관이고 국소성의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그러나 비국소성의 관점이란 우주는 하나이며 서로는 아주 긴밀한 연관성을 가진다는 개념입니다.

아주 복잡한 틀로 연결되어 있다는 관점을 취하고 있는데 그렇다고 하여 알수가 없는 것이고 무질서한 것이기에 탐구할 그 무엇도 없다는 식으로 모로쇠로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놀랍게도 우리조상들은 이미 비국소성의 원리에 충실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힘에 기반한 문명세계가 구축되면서 비국소성의 관점은 도퇘된 것입니다.

천부경의 글 내용은 세상이 비국소성의 원리에 의하여 구축되었다는 점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돌멩이 하나가 있습니다. 이 돌멩이 하나가  우주를 환원한다는 것입니다.

즉 돌멩이 하나를 가지고 우주의 탄생과 소멸 그리고 그 운동과정을 정확하게 설명할수가 있다는 겁니다.

아니 실제 천부경은 이 하나를 가지고 설명한 겁니다.

 

이제 우리는 이돌멩이 하나를 가지고 우주의 숨겨진 질서를 찾아내는 겁니다.

 

이 돌멩이 하나를 아주 질서있게 분해하고 미분작업을 합니다.

수학시간에 차원으로 분해하기도 합니다.

즉 돌멩이는 체즉 3극좌표에 해당합니다.

이를 면-선-점으로 분해합니다.

 

돌멩이를 하나의 일정한 크기의 것으로 질서있는 모양을 갖추게되면 피라미드가됩니다.

 돌멩이의 크기를 무한하게 분해하면 그 크기가 보이는 점의 상태는 않보이는 상태입니다.

 

이제 이 돌멩이를 구간척도로 구분해봅니다.

 

돌멩이 그자체는 인이라고 명명합니다.

그렇다면 그 내용물에서 보이는 부분을 지라고 명명합니다.

문제는 천의 영역입니다. 이는 그 영역을 알 수가 없습니다. 무한의 공간을 차지하고 그 크기를 논할 수가 없습니다.

 

톨멩이는 처음 천에서 출발하여 지가되고 지가 합하면 인이되는 겁니다.

돌멩이의 인= 천지의 합입니다. 그러므로 천지인이란 우주는 하나의 돌멩이로 환산됩니다. 모든게 다 연결되어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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